경기지역의 산

청와대 둘러보기

정헌의 티스토리 2018. 4. 21. 13:07

■ 청와대 둘러보기

  

1950.6.25 전쟁이 발발하자 우리군은 낙동강 유역까지 패퇴하나, 유엔군의 도움으로 동년 9.28일 서울을 수복하게 된다. 이에 국방부는 후방에 흩어져 있던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육군 11사단을 창설한다,

1951년 2월 7일, 음력으로는 정월 초이튿날이다, 우리군 11사단(사단장 최덕신) 9연대(연대장 오익경) 3대대(대대장 한동석)는 산청군 금서면 가현마을, 방곡마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 등  2개군 4개 마을에서 양민을 통비분자로 간주하여 705명(유족회 주장)을 집단학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후대에 이를 산청,함양사건 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 부대는 이틀후 거창군 신원면으로 진격해 2월9일부터 11일까지 거창양민 719명을 살해한다, 거창사건이다. 사망자 대부분은 노인이요, 부녀자요 어린애이다. 이 사건으로 연대장 오익경은 무기징역, 대대장 한동석은 10년형을 선고 받지만  1년도 안된 이틈해 특별사면된다. 사단장 최덕신은 국가요직을 두루 거치고 후에 월북한다, 

수십년이 흐른 1996년 거창사건 등과 관련하여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공포되고,  후 산청군 금서면과 거창군 신원면에 이들 억울한 영혼을 달래는 추모공원이 조성되었지만 유족들의 아픈 마음은 여전하다,

그 후손들 중 몇몇이 청와대 외관 구경에 나선다,

 

 

▷ 일정 (2018. 4. 17)

토속촌 삼계탕 - 청와대.

청와대 관람은 청와대홈페이지 에서 사전 예약해야 한다,

 

 

▷ 탐방후에

 

청와대에서 멀지않은 곳에 삼계탕집이 있다,

맛집으로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단체관광객이 더 많이 보인다,

 

 

 

 

 

외양은 그렇다 치고,

내부는 한옥의 형태라 소박한 정겨움이 있다,

 

 

 

 

 

맛뵈기 인삼주 한두잔에

소주도 한잔 더했다,

 

 

 

 

 

청와대 방문전 시간적 여유가 있어 경복궁에 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궁, 박물관 등이 월요일 휴관인데 반해 이곳은 화요일이 휴관일이다,

우리 일행이야 그렇다 치고, 수학여행온 학생들도 밖에서 보낸다,

 

 

 

 

 

청와대 사진은 제한적이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간단한 영상물 시청을 한다,

춘추관 건물앞을 지나 상춘재앞 녹지원에서 잠시 쉬었다간다,

 

 

 

 

 

뒤로 보이는 기와집이 상춘재이다,

여러해 전 이곳을 방문했을때는 상춘재 앞까지 갔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허용된다.

 

 

 

 

 

옛 경무대 본관터로 이동한다,

천하제일복지로 표시되어 있다.

 

 

 

 

 

오래된 주목나무,

 

 

 

 

 

 

 

 

 

 

 

 

경무대 흔적을 표시하기 위함이라 함.

 

 

 

 

 

청와대 본관앞으로 왔다.

 

 

 

 

 

 

 

 

 

 

 

 

 

 

 

 

 

 

영빈관 앞을 지나,

 

 

 

 

 

칠궁으로 간다,

칠궁은 청와대와 인접한 건물로 청와대에서 관리하며,

청와대 관람객에 한해서 개방한다고 한다,

 

 

 

 

 

칠궁(七宮)은 조선의 왕을 낳은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곳이다,

      

 

 

 

 

영조가 후궁출신인 모친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毓祥宮)을 건립한 이후 역대 왕 또는 왕으로 추존되는 이의 생모인 후궁의 묘를 옮겨와 합사하게 된 것으로 원래는 1724년 (영조원년)에 지은 육상궁만  있던 터였으나 1908년(순종2년)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 오면서 7명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칠궁이 되었다한다,

 

 

 

 

 

 

 

 

 

 

 

 

 

 

 

 

 

 

 

연호궁(延祜宮)

영조의 후궁이며 죽은 후 왕의 칭호를 받은 진종을 낳은 정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궁이다.

진종은 정빈에게서 태어나 세자로 정해졌지만 10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즉위 후 진종에게 왕의 칭호를 주고 정빈을 위해 성조 2년(1778)에 경복궁 서북쪽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연호궁이라 이름지었다, 연호궁은 고종7년(1870)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옆에서 한번 더,

 

 

 

 

 

 

 

 

 

 

 

 

냉천정 쪽으로 간다,

 

 

  

 

 

냉천정

 

냉천정은 영조가 어머니의 제삿날에 나와서 몸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가다듬어 제사를 준비하던 집으로, 육상궁 경역과 대빈궁 경우궁 경역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725년에 육상궁과 더불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두칸은 온돌방, 동편 한칸은 대청으로 되어있다, 냉천정의 뒷편에는 냉천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제사 때 이 곳의 물을 사용하였다. 냉천의 벽면에는 1727년에 영조가 쓴 냉천과 냉천정에 대한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냉천정의 앞마당에는 자연(紫淵)이라고 새겨진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냉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모아 만든 것이다,

 

 

 

 

 

자연(紫淵)

 

냉천(冷泉) 비문(碑文)

御墨雲翰(어묵운한)  임금님의 글월을 새기다

昔年靈隱中(석년영은중)  냉천이 옛날에는 영은에 있었고

今日此亭內(금일차정내)  오늘인 이곳 정자에 있구나

雙手弄淸漪(쌍수농청의)  두손으로 맑은 물을 어루만지니

 冷泉自可愛(냉천자가애)  냉천이 가히 좋구나

 

 

 

 

 

대빈궁 경우궁 경역 안내문

 

이 곳에는 희빈 장씨의 신주를 모신 대빈궁,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선희궁, 인빈 김씨의 신주를 모신 저경궁, 수빈 박씨의 신주를 모신 경우궁, 순헌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덕안궁이 있다, 대빈궁, 선희궁, 저경궁, 경우궁은 1908년에, 덕안궁은  1929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덕안궁 경역에는 모두 대섯채의 건물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덕안궁이다,

대문에서 덕안궁으로 이르는 길에는 어도가 깔려있고 어도의 왼쪽 편에 이안청이 한채 서 있다,

덕안궁 왼편을 돌아 어도를 따라가면 뒷쪽으로 세채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데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과 경우궁이다. 선희궁과 경우궁은 하나의 건물로 되어있고 영빈 이씨의 신주와 수빈 박씨의 신주가 따로 모셔져 있다,

 

 

 

 

 

덕안궁,

고종의 후궁으로 영왕을 낳은 순헌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궁이다,

광무 원년(1897)에 엄비가 아들을 낳으면서 경운궁 안에 거쳐할 궁을 세워 그 궁을 경선궁이라 불렀고, 엄귀비가 세상을 떠나자 덕안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3년에는 새로 궁을 짓고 엄귀비의 신주를 모셨다.1929년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서 현재에 이르고있다,

  

 

 

 

 

좌에서 부터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과 경우궁

 

저경궁은 선조의 후궁이며 죽은 후 왕의 칭호를 받은 원종을 낳은 인빈김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으로서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신위를 모신궁이다,

선희궁은 영조의 후궁이며 준은 후 왕의 칭로를 받은 장조를 낳은 영빈 이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장조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세자에 정해졌으나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으로 순조를 낳은 수빈박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칠궁을 나선다.

 

 

 

 

 

칠궁앞 무궁화 공원에서 청와대 관람 입구쪽으로 셔틀버스를 타거나,

관광버스로 왔다면 이곳에서 승차하여 청와대 관람을 마무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