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광양 망덕산, 망덕포구 정병욱가옥, 노거수, 명당(배알도)수변공원

정헌의 티스토리 2019. 1. 27. 23:36

■ 광양 망덕산(197.2m), 망덕포구 정병욱가옥, 노거수, 명당(배알도)수변공원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 망덕포구다, 과거 우리나라 김양식이 최초로 재배되기도 한 곳이나 광양제철이 들어서고 나서는 그 이름만 남아있다,

이곳 망덕포구는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곳은 아니나 윤동주 시를 보존한 정병욱 근대가옥으로 인해 문학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매화가 필무렵 겸사겸사 찾는 분들이 많다,

이곳 망덕포구를 찾는다면 망덕산을 올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정상 주변 사선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망덕포구는 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현 망덕포구는 횟집단지 등으로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횟값은 비교적 비싼 편으로 보면 되겠다,

 

 

 

▷ 가는 길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 탐방코스

망덕산 - 수변공원 - 정병욱생가 - 노거수 - 배알도(명당)수변공원.

 

 

▷ 탐방후에

 

▣ 망덕산

 

 현위치에서 약수터, 망덕봉 정상, 사선대로 코스를 잡았다,

 

 

 

 

 

망덕포구,

 

진월면소재지 가까이에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좌.우 물고기 모형의 대형 조형물이 있고, 윤동주 시비공원이 조그마하게 자리하고 있다.

진월면 소재지에서 수변공원을 지나 망덕포구로 들어서는 다리를 건너면 이내 망덕산 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배 모형의 화장실이 산뜻하다,

 

 

 

 

 

주변 소형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기반공사가 어수선하다,

좌측 저만큼 등산로 안내도가 보인다,

 

 

 

 

 

망덕산 등산로 들머리,

 

망덕산은 장수 영취산에서 분지한 금남.호남정맥이 이곳 저곳 호남지역을 돌아

이곳 망덕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곳으로 호남정맥의 들머리이자 마지막 날머리인 셈이다,

 

 

 

 

 

망덕산으로 오른다,

과거 이곳을 올랐을 때보다 지금은 주변을 많이 정리하여서 등산로 들머리 찾기는 쉽다,

 

 

 

 

 

들머리 오름길,

 

 

 

 

 

이내 우측으로 육각정이 있다,

 

 

 

 

 

초반 살짝 오르막이다,

 

 

 

 

 

 

 

 

 

 

 

 

언덕으로 올라 묘지를 지나면,

 

 

 

 

 

이내 갈림길,

 

 

 

 

 

위 갈림길의 이정표,

 

좌측으로 약수터 170m,

직진(우측) 망덕산 정상 510m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망덕산 정상방향으로 100m거리에 약수터로 가는 길이 또 있으므로 이곳으로 약수터를 둘러보고 윗쪽으로 나오면 된다,

 

 

 

 

 

먼저 약수터를 둘러보러 간다,

 

 

 

 

 

약수터엔 약수외 이웃하여 사각정이 있다.

 

 

 

 

 

약수라 하지만 선뜻 음용하기에는 께름칙해 보인다,

 

 

 

 

 

약수터  뒷편으로 많은 면적은 아니지만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우당 (雨棠  /  아가위(산사나무열매) 당,팥배나무, 산앵도나무)

 

 

 

 

 

德山高出海東邊 (덕산고출해동변)  해동변에 망덕산이 높이 솟아

絶勝聲名百世傳 (절승성명백세전)  절경이란 명성이 백세에 전해내려온다,

萬里風煙難盡得 (만리풍연난진득)  만리에 펼친 온갖 풍연을 모두 만나기란 어렵지만

浪吟詩句發天然 (랑음시구발천연)  맘껏 읊은 시구로 천연한 모습 드러내보네

                            

     丙子 八月  日

     姜  大  榮   磻溪(반계)

 

 

 

 

 

모과나무 한그루와 앞쪽으로 대형의 노거수들이 눈에 띈다.

 

 

 

 

 

약수터를 둘러보고,

윗쪽 길을 따라 망덕산 정상으로 간다,

 

 

 

 

 

윗쪽 길은 아랫쪽 길에 비해 좁다,

 

 

 

 

 

이내 망덕포구로 이어지는 주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이곳 이정표,

 

약수터 110m, 망덕산 정상 410m,

약수터 인근으로 하여 출렁다리로 가는 길이 있나 보다,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아닌 듯,  망덕산 정상에서 천왕산 방향으로 내려서도

출렁다리를 건너게 됨으로 이 길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망덕봉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의 오르막을 보인다,

중간, 전망좋은 곳이 있다,

 

 

 

 

 

잠시 조망을 보고 간다,

 

 

 

 

 

 

 

 

 

 

 

 

정상으로 많이 올라온 곳이다,

 

묘지가 있는 곳에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다, (이정표는 없음)

좌측으로 오르면 망덕봉 정상이고,  직잔하면 전망대 및 부석정으로 가는 길이다,

좌측 정상으로 먼저 오른다,

 

 

 

 

 

묘지 뒷편으로 오르면 이내 정상이다,

 

 

 

 

 

망덕봉 정상은 주변 나무들로 인하여 조망은 없다,

 

 

 

 

 

망덕봉 정상 표지석,

 

 

 

 

 

망덕산 정상 이정표,

망덕포구에서 천왕봉으로 가볍게 한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잡아도 되겠다, 

 

 

 

 

 

정상을 뒤로하고 사선대쪽으로 간다,

 

 

 

 

 

무덤 뒷편 능선을 따라도 된다,

             

 

 

 

 

이내 사선대로 왔다.

망덕봉 정상에서 북쪽으로 살짝 아랫쪽에 있는 셈이다,

들머리에서 약수터, 망덕봉 정상을 거쳐 이곳까지 오는데 천천히 50분여 소요되었다,

 

 

 

 

 

이곳 사선대엔 묘한 바위가 있다,

 

 

 

 

 

 

 

 

 

 

 

 

 

사선대라 음각되어 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한바퀴 둘러본다,

 

 

 

 

 

 

 

 

 

 

 

 

 

 

 

 

 

 

 

 

 

 

 

 

 

 

 

 

 

 

 

 

 

 

 

 

 

포구쪽 아래의 묘지옆 바위도 제법이다,

 

 

 

 

 

정상의 돌출된 바위 아래로는 수직의 절벽이라 아찔하다.

 

 

 

 

 

 

 

 

 

 

 

 

 

 

 

 

 

 

 

 

그래도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이곳이다,

앞쪽 보이는 마을이 진월면소재지이다,

 

 

 

 

 

부석정은 사선대 서쪽 아래에 있다,

  

 

 

 

 

 

 

 

 

 

 

 

 

부석정에서 동쪽 사선대쪽 바위.

 

 

 

 

 

부석정 서쪽아래의 바위이다,

이 바위는 주변의 소나무가 많이 자라 아랫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한번 더, 

 

 

 

 

 

건너편 천왕봉,

우리나라 천왕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들중 지리산 천왕봉을 제외하곤 대부분 제 이름값을 못하는 것 같다,

 

 

 

 

 

부석정에서 살짝 당겨본 섬진강휴게소,

 

 

 

 

 

사선대, 부석정 주변에서 10분여 머물다 되돌아 간다,

좌측에 보이는 사면으로 난 길은 무덤쪽을 지나 내려가는 길.  우측 오름길은 망덕봉 정상으로 가는 길,

 

 

 

 

 

사선대에서 25-6분,

망덕포구 들머리로 되돌아 왔다,

사선대까지 오르는데  약수터, 망덕봉 정상 포함 천천히 50분여,

선대 주변에서 10분여,  망덕포구로 내려오는데 25-6분,

넉넉잡고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 윤동주 기념무대, 윤동주 시비공원, 전망대 등

 

망덕산 들머리 앞쪽,

전망대.

 

 

 

 

 

 

 

 

 

 

 

 

진월면소재지 방향.

저만큼 하얀 전망대와 물고기 모형 조형물, 윤동주시비 조각공원이 서로 이웃해 있다,

차량으로 지나친 곳으로 사진은 없다,

 

 

 

 

 

망덕포구 해안으로 데크로드가 있다,

자전거와 사람들이 같이 걸을수 있는 길이다,

 

 

 

▣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옥 가옥

 

외부에서 바라본 정병욱 가옥,

보이는 건물중 도로변쪽 일부만 개방되어 있고, 문화유산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이 건물은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가 온전히 보존되었던 곳이다.

 

윤동주(1917~1945)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1941년에  시 19편을 정리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발간하려 하였으나 영문과 이양하 교수가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며 출간 보류를 권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대신 자필 시고집 3권을 만들어 한 권은 자기가 갖고 나머지 두권은 이양하교수와 후배인 정병욱(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22~1982) 에게 맡겨 두었다.

그 뒤 해방이 되고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가 지닌 시집 원고는 그 행방을 찾을 길 없었다. 정병욱이 전쟁터로 강제징용을 가면서 윤동주 원고를 잘 보관해 달라고 유언처럼 말하고 떠나자 정병욱 모친께서 명주보자기에 겹겹이 싸서 당시 광양 양조장을 하던 이 집 마루밑 항아리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것을 1948년 다시 찾아 윤동주의 유품속에 있던 시 12편을 합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게되었다.

<현지 안내문과  정호승시인의 산문 바둑이 미안하다에서 발췌>

 

 

 

 

 

이 집은 정병욱의 부친이 건립한 건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한 건축물이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 만주 길림성 용정시 인근의 명동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다,

 

그곳에서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용정의 은진중학교에 다니다가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가게 된다, 그때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로 자퇴하고 용정으로 되돌아가 공명중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1938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다,

1940년 윤동주가 3학년 때 정병욱을 기숙사에서 만나게 된다, 정병욱이 1학년때 윤동주는 3학년이었지만 나이는 윤동주가 5살 많다, 정병욱이 2학년에 들어서면서 기숙사를 따나 같은 방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사이가 더욱 깊어진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을 앞두고 시집 간행을 기획한다,

 

자기의 시작품 19편을 골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사'라는 제목으로 세 부를 직접 필사하여 1부는 자신이 가졌고, 한 부는 이양하 지도교수께, 그리고 나머지 한 부는 정병욱에게 줬다,

이 시집에 실린 19편의 작품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시가 '별헤는 밤'으로 1741년 11월 5일로 적혀있고, 시집을 여는 '서시'로 쓴 것이 11월 20일로 되어있다, 그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기념으로 출판하려고 계획했으나 이양하 교수는 '십자가', '슬픈족속',  '또 다른 고향' 같은 작품은 일본 관헌의 검열통과가 어려울뿐 이니 라 신변까지 위험할 수 있으니 출판 보류를 권하게 된다,

 

 

 

 

 

1942년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동경 릿쿄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였고, 그해 가을  경도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편입한다. 그러나 1943년 7월에 독립운동 협의로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검거되어 1944년 3월 독립운동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28세(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절한다,

정병욱은 윤동주기 체포되었을 때로부터 반년 뒤인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끌려간다, 그전에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로 부터 받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광양 망덕포구 자기 집으로 가져가 어머니께 잘 간수해 줄것을 당부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과 윤동주가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조선이 독립하면 그 원고를 연희전문학교로 보내 세상에 널리 알려 달라는 비장한 부탁도 하게된다,

 

 

 

 

 

다행히 일제는 패망하였고 정병욱은 살아서 돌아왔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마루청 밑에 장독을 묻고 그 속에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던 윤동주 원고를 꺼내 준다,

정병욱은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함으로써 윤동주의 시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윤동주가 직접 쓴 세 부의 시집 중 윤동주 본인 보관분은 일제에 체포,투옥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이영하 교수께 드린 것도 찾을 길이 없었는데 다행히 정병욱에게 준 시집이 극적으로 출판된 것이다,

 

 

 

 

 

이 가옥이 정병욱의 부모님이 살았던 자택이었다,

후에 정병욱의 부친 정남석 님의 외종동생 소유로 넘어갔고 현재는 그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윤동주 시집의 보관장소에 대한 관심을 끌지못했는데 그 가옥 소유자의 딸이 재학중이던 광양제철고 교지편집부에서 취재를 하여 망덕리 23번지가 윤동주 유고보존 가옥이라는 이야기를 2005년 '한빛' 교지에 실었고, 광양 지역신문의 보도로 더욱 알려졌다, 

 

 

 

 

 

위 보도를 접한 광양시청에서 망덕의 유고 보존 가옥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광양시 이성웅 시장이 유고보존 가옥의 근대문화유산 등록작업에 탄력을 붙인 결과 2007년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 근대문화유산 제 341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2008년 여름, 윤동주 시인의 고향인 만주의 조선족 학생이 이곳을 방문했고, 중국 동북3성에서 조선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윤동주 문학상'에 입상한 고등학생 20여명이 이곳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을 직접방문해  이곳에서 즉석 연극대회까지 펼치기도 했고,

광양의 한 지역신문사에서도 '시인 윤동주와 광양의 만남' 을 주제로 2008년 이후 매년 윤동주 백일장 사생대회를 열고있다 한다,

 

 

 

 

 

 

 

 

 

 

 

 

 

 

 

 

▣ 망덕포구의 어느 노거수

 

마을 중간 도로변의 노거수

 

 

 

 

 

 

 

 

 

 

 

 

 

 

 

 

 

 

▣ 명당(배알도) 수변공원

 

 차량으로 명당(배알도)수변공원으로 왔다,

 현재는 배일도와 망덕포구로의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망덕포구에서 도보로 이동하여도 된다.

 

 

 

 

 

강이라 해야하나? 바다라 해야하나?

배알도를 중심으로 해안쪽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안쪽으로는 공단조성이 한창이다,

 

 

 

 

 

 자전거전망대로 이름 붙였다,

 

 

 

 

 

배알도로 연결된 저 다리를 건너보기 위해서다,

 

 

 

 

 

 

 

 

 

 

 

 

 

 

 

 

 

 

 

 

 

 

 

 

 

 

 

 

 

다리 중간에 커다란 구멍을 내여 변화를 주었다,

 

 

 

 

 

배알도로의 진입은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완전 개통되었다.)

 

 

 

 

태인대교쪽,

 

 

 

 

 

섬진대교쪽을 둘러보고 오늘 일정을 마친다,

가볍게 둘러본 망덕포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