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지역 둘러보기 4 / 산청3매를 찾아서
봄을 재촉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산청3매를 찾아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가장 오래된 원정매와 정당매는 둘 다 그 수명을 다하고 곁가지가 제법 자랐다, 비록 고매의 기품은 없으나 두 매화에
얽힌 배후의 인물들을 음미해 보고, 남명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다,
특히 오늘은 미세먼지라도 씻어낼 듯, 조용히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둘러보는 답사도 운치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휑하니 둘러볼 것을 해설을 들어가며 의미를 찾아 본다,
산청 지역학 연구모임 회원 7명의 4번째 답사 일정이다,
▷ 일정
남사 원정매 - 운리 정당매 - 시천면 사리 남명매 - 중식 및 찻집
(서로간 거리가 있어서 승용차로 둘러봄이 편하다. )
▷ 둘러보기 (2019. 3. 10 )
▣ 원정매
남사 예담촌 주차장,
한켠에 남사리 연혁비가 서있고, 앞쪽 언덕 위 전망대로 이어지는 석조 육교엔 대체로 어울리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많다, 오늘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 산청삼매를 찾아 먼저 남사마을을 찾아본다, 남사마을은 옛 돌담으로 인해
우리나라 아름다운마을 1호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이씨고가, 최씨고가 등 고택과 돌담, 서원, 박물관 등 여럿 볼거리가
있는 마을로 산책로를 따라 느릿느릿 배회해도 좋겠다,
오늘은 산청삼매를 찾아보는 일정이어서 하씨고가의 원정매를 찾아본다,
큰 길을 따라 마을 앞쪽으로 나오면 도로변에 근접해 있는 진양 하씨고가를 만날수 있다,
평소 대문을 닫아두는 경우가 많아 어쩜 둘러보기 어려운 곳일 수 도 있다,
대문간에 매화집이라는 조그만 문패를 달았지만 이 집을 찾는데는 별 도움은 안될 듯 싶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수령 약 670년의 매화나무가 한그루 있다,
산청3매 중 하나인 일명 원정매(元正梅)다,
고려말 문신 원정공 하즙(河楫, 하연의 증조할아버지)이 심은 것으로, 원정매라는 이름은 그의 시호가 원정이었던
데서 비롯하였다, 남사마을엔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고관들이 심은 매화나무가 더러 있는데 그 중에서 원정매가
가장 기품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고사해 그 밑둥치에서 새로 싹을 틔운 자손 ? 에게 대를 잇게했고, 古梅로서의 등걸은 시멘트로 원형을
만들어 기억하게 했다,
원정매 앞에는 자그만 시비가 있다,
원정매
집 양지바른 곳에 일찍 심은 한그루 매화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섣달 찬 겨울에도 아리따운 꽃망을 나를 위해 피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없더라)
영매詠梅 (원정공 매화 詩)
연분홍 꽃잎이다.
이 매화집은 중간에 잠시 다른사람이 살긴 했지만,
진양하씨가 32대째 살고 있다,
'원정구려' 현판을 달고 있다,
이곳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은 진양하씨 사직공파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 원정공 송헌 하선생 유적비가 이를 말해주고 있으며, 성주이씨, 밀양박씨 등과 더불어 이 마을의 토성(土姓)이다.
이곳 진양하씨는 원정공 전부터 비롯되었으며, 이곳은 원정공의 생가라 할 수 있겠다,
원정구려 현판은 대원군 이하응이 썼다고 하며, 원정공의 옛집이란 뜻이다,
원정공 후손인 하겸락은 1825년 태어나서 1853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870년에는 신도진 첨사가
되어 변방에서 위엄을 세우니 대원군이 크게 기뻐했다하니 이분 때문에 이 현판을 하사받았나 보다,
돌꽃담펜션 주인,
우린 사진촬영에 바쁘지만 미술을 전공한 분 답게 작은 스케치북을 펼친다,
진양하씨 뒷집이다,
하씨고택 우측 옆으로 길이 터여있으나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여서 한집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씨고가를 앞에서 바라보았을때 우측에 감나무 밭이 있다,
이 밭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사양정사 방향으로 들어서면 노거수 감나무 한그루가 있다,
남사마을엔 몇 그루의 나무가 있어 유명을 더한다,
이곳 하씨고가의 원정매와 감나무, 이씨고가 입구의 회화나무가 그것이고,
사양정사 뜰에 있는 단풍나무도 둘러 볼 만 하다,
이곳 감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조선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7살때 심은 나무라 한다,
산청의 곶감은 주류가 반시(납작감)로 곶감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감나무는 산청곶감의 원종이기도 하며 현재도 감이 주렁주정 열린다,
매년초 열리는 산청곶감 축제때 이곳에서 제를 올리므로 복받은 나무다.
이 감나무는 사양정사 쪽에 샛문을 만들어 둘러 볼 수 있도록 하였으나
문을 잠궈놓아 담 너머로 보거나 아님 하씨고가로 들어와야 볼 수 있다.
하씨 고가의 원정매와 감나무를 둘러보고 정당매를 보기위해 단속사지로 향한다.
▣ 정당매
단속사지 3층 석탑은 지도상 표시 앞쪽 공터에 있고,
정당매는 15와 16번 사이에 있다,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마을 어귀 노송이 군락을 이룬 곳에 상당한 규모의 당간지주가 쌍으로 있고,
탑동으로 올라서는 길목에 남명선생 시비가 있다,
보이는 시비는 근년에 세운것이지만 우측의 비석은 시비인듯 아닌듯 해독할 수 없다.
남명선생시비 (南冥先生詩碑)를 옮겨본다.
덕산 시냇가 정자 기둥에 쓴다, 題德山溪亭株
천섬 들어가는 큰 종울 보소서!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오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마을로 올라서면 바로 단속사 절터이다.
정유재란때 불이나 폐허된 터에는 탑 두기를 동서로 덩그러니 세우고 수많은 애기를 풀어낸다.
주변은 마을 사이로 폐사지를 복원하기 위해 파헤쳐진 공터가 하 세월이다,
서쪽 탑이다.
단속사지의 법당자리 앞에 동서로 세워졌던 통일신라시대의 쌍탑이다,
각각 보물 72, 73호로 지정된 이 탑의 기단은 이중으로 아래 기단은 각 면이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을 이루고 있는 지붕돌 아래에는 다섯개의 주름이 있다, 동서 두 탑은 양식이나 규모가 비슷하여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알수 있으나 서탑은 파손이 심한 편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
仰花등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1967년의 해체 보수 때에 서탑의 일층 몸돌의 윗부분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넣는 둥근 모양의 사리공이 확인 되었다.
이 탑들은 신라계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다소의 생략을 보이는 9세기 석탑의 정형을 보이고 있다,
< 안내문에서 >
동쪽 탑이다,
정당매는 위 탑에서 마을안쪽으로 몇십미터 거리에 있다,
수령 약640년생으로 통정 강희백선생이 어린시절 단속사에 심었다는 매화나무로 꽃색갈은 백색이며 홀꽃이다.
경남도목 고유번호 12-41호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증국동국여지승람 제30권 역사편에서 통정강희백
(1357-1402)이 이 절에서 글을 읽으면서 매화 한 그루를 손수 심었다. 그 뒤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렀으므로
그 매화나무를 정당매라 하였다.
옆에 비각이 있고,
이 나무 등걸 또한 고사하고 옆에 새 순이 솟았다,
정당매
한 기운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 오나니
천심을 섣달전의 매화에서 볼 수 있네
스스로 큰 솥에 국맛을 조화하는 열매가
부질없이 산중에서 떨어졌다 열렸다 하네
단속사견매 斷俗寺見梅 (동문선권22)
정당매(政堂梅)
이곳 정당매는 통정공 회백(通亭公 淮伯) 선생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분께서 사월리 오룡골(五龍골)에서
출생하시어 유년시절 지리산 자락 신라고찰 단속사(斷俗寺)에서 수학하실대 수식(手植)한 매화나무다,
그 후 통정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겸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
매라 불리면서 630여년 오늘까지 보존되어 오던 중 1982년 11월 10일부로 경남도 보호수 12-41 제 260호로 지정
되었다,
원정공 하즙(河楫)선생께서 수식한 원정매, 통정공께서 수식한 정당매, 남명 조식(趙植)선생게서 수식한 남명매와
같이 산청의 삼매 (山淸三梅)로 불리운다,
▣ 남명매
남명매는 산천재 앞뜰에 있다,
산청군 시천면 사리,
남명기념관 앞쪽에 산천재가 있다,
이곳에 남명선생 시비가 있다,
주변을 휙하니 둘러보고,
산천재로 들어간다,
산천재 마당앞에 한 그루 매화나무가 있다,
남명매이다,
남명매
한해 저물어 홀로 서있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이 내렸구나
선비 집 오래돌고 매우 외롭고 가난했는데
네가 돌아와서 다시 조촐하게 되었구나
설매(雪梅) 남명집
남명매는 수령 약 450년 생으로 산천재 뜰에 남명 조식선생이 61세이던 명종16년(1561년) 손수 심은 매화로
연한 분홍빛이 도는 반겹꽃이 가득핀다.
산천재(山天齋)
이곳은 남명 조식선생이 61세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장소이다,
산천이란 주역의 대축괘大畜卦의 괘상으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는 의미를
담고있다, 선생은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국왕에게 세 차례 글을 올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을 것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건의하였다, 우리 정신의 큰 봉우리인 선생이 학문과 인격을 완성하고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던 노학자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안내문에서>
題德山溪亭柱 제덕산계정주 덕산의 시냇가 정자 기둥에 씀
請看千石鐘 청간천석동 천 석들이 큰 종을 보게나!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않는다네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어찌 저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을까 ?
조식 남명문집 목판,
이 첵판은 남명 조식(1501~1572)의 시문집 제작을 위해 제작한 목판이다,
선생의 문집은 몇가지 사유로 인하여 여러 차례 변천을 겪었는데 크게 세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인조반정 이전에 간행된 초기본인 갑진본(甲辰本) 계통이 있고, 이후 처음 간행을 주도하였던 정인홍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고 체제에 다소 변화를 가져온 이정본(다스릴 이, 이정 = 문서나 글을 다시 정리하여 바로잡아 고참)
계통이 있으며, 고종 연간에 문집의 내용을 대폭적으로 수정한 중간본 계통이 있다, 문집은 처음 160년(선조 35) 해
인사에서 간행하였으나 판각이 불에 타 1604년(선조 37)에 다시 간행하여 배포하였으며, 이후 이정본에서는 편년등
의 내용이 추가되고 <학가유편>과 <산해사우연원록> 까지 포함한 이정합집본이 간행되도록 하였다,
현재의 목판은 중간본 계통의 최후 간행본으로 185매로 된 6책의 완전한 분량이 보존되어 있다. 선생의 문집은 선생
의 학문의 맥과 깊이를 전해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지역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전하고 있어 남명학 연구는
물론 지역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안내문에서>
덕산복거 덕산복거 덕산에 터를 잡고서
春山底處无芳草 춘산저처무방초, 없을 무, / 봄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只愛天王近帝居 지애천왕근제거, 다만 지 / 천왕봉이 하늘 가까이 있는 것을사랑해서라네.
白手歸來何物食 백수귀래하물식 /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겠는가?
銀河十里喫猶餘 은하십리끽유여, 먹을 끽, 오히려 유 / 십리 흐르는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산천재를 둘러보고,
남사마을 어귀로 되돌아와 파전에 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신안면 외송마을 뒷편에 있는 찻집으로 이동해 하루의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가 와서 좋았고, 사람들과 함께해서 좋았고, 의미를 부여하니 문학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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