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산

함양 용추사 용추폭포

정헌의 티스토리 2020. 9. 6. 16:31

■ 함양 용추사, 용추폭포

 

안의 3동은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을 이른다.

화림동은 서상에서 발원하여 안의로 흘러드는 남강의 지류이며, 심진동은 수망령에서 발원하여 안의로 흘러드는 지우천 계곡이다. 원학동은 현재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과 수승대 일원으로 조선시대에는 안의현에 속했기 때문에 안의 3동이라 한다.

이른 새벽 태풍 마이삭이 부산을 스치고 지나갔다.

 태풍이 지나가고 군데군데 푸른 하늘이 드리운날 거창 가조에 있는 Y자형 출렁다리와 주변 산책로를 걷고, 귀가길 함양 안의면에 위치한 심진동 용추폭포를 둘러본다. 지난 밤 폭우로 인해 폭포가 장관을 이룰 것 같은 생각에서 이다.

 

 

 

▷ 가는 길

 

 

 

 

 

 

 

▷ 탐방후에  (2020.  9.  3.)

 

 

옛 장수사터 입구의 일주문 앞 주차장에 주차한다.

용추폭포와 용추사를 둘러보고 수망령쪽 도로를 따라 내려오기 위해서이다.

 

 

 

 

 

 

용추사 아래에 용추폭포가 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하여 수량이 풍부하다.

 

 

 

 

 

 

높이 약 15m정도의 크지않은 폭포지만 울림이 우렁차다.

 

 

 

 

 

 

 

 

 

 

 

 

 

 

 

 

 

 

 

 

용추폭포를 둘러보고 용추사를 둘러본다.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

 

 

 

 

 

 

종무소 겸 요사.

 

 

 

 

 

 

용추사 입구에 우측으로 용추폭포 상부로 가는 길이 있다.

 

 

 

 

 

 

용추폭포 상부로 내려서 본다.
당곡 정선생(唐谷 鄭希輔先生 1488~ 1547) 은 누구?

남해 이동면 초곡마을 출생, 17세 되던때에 함양으로 이주하여 35세때 초옥을 짓고 영.호남 문인들을 가르키기 시작함.

선생이 32세때인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58세때인 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도 있었다.

당곡선생은 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후착 양성에 대한 집착이 컸으며, 선생 문하에서 수학한 문인들 대부분이 선생보다 13세 아래인 남명 조식(1501~1572)의 문하로 들어가 배움을 계속했고 출사도 하고 계속 수학하기도 했다한다.

 

 

 

 

 

 

폭포 상부

 

 

 

 

 

 

암반 계류가 멋진곳인데 오늘은 수량이 너무 많다.

 

 

 

 

 

 

??대.

 

 

 

 

 

 

용추사를 좌측에 두고 계류를 따라 오르면 건너편으로 다리가 있다.

기백산, 또는 거망산 등산후나, 수망령 쪽에서 내려오다 용추사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넌다.

 

 

 

 

 

 

상류,

 

 

 

 

 

 

하류.

 

 

 

 

 

 

아랫쪽에서 올려다 본다.

 

 

 

 

 

 

용추계곡 상류에서 내려오는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일주문( 구 장수사)  200m 전방에 기백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장수사 일주문 앞으로 내려와 오늘 일정을 마친다.

용추사와 용추폭포를 둘러보는데 천천히 35분쯤 소요되었다.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다 보면 용소, 꺽지소, 요강소, 매산나 소를 차례로 만난다.

요강소 또는 매산나소 건너편 산 기슭에 매바위가 있다.

안내문에 보면 무학대사가 처음 찾아낸 바위란다.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와의 절친한 관계를 시기한 정도전의 계략에 의해 무학대사가 되례 쫓기는 처지가 되어 어디든지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그러던 중 우연히 이곳 계곡을 들리게 되었다. 헤집어 들수록 가경이라 거듭 탄복해 하면서 이沼 (소)앞에 당도했다. 이때 무학대사의 머리위를 날던 한 마리의 새가 갑자기 풀숲으로 숨으며 맥을 못추는 거였다. 대사가 그 연유를 퍼뜩 알아차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사의 눈에 띈 것은 큰 매였다. 길지가 있는건 당연했다. 이렇게 해서 찾아진 곳이 현재의 은신암터다.

 

 

 

 

 

 

'매산나 沼' 의 '매산나' 유래는 지나는 행인들이 이 매바위를 행해 '매산나' 하고 외치는 데서 비롯되었다.

즉 '매가 살았나'는 식으로 고함을 치면 암벽에 의해 울림되어 오는 걸 '매삿다' 즉 '매가 살았다'는 대답으로 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암벽의 바로 아래. 아주 깊고 넓은 소를 '매산나소'로 부르게 되었다.

 

 

 

 

 

 

용추폭포나 용추사는 금원산, 기백산이나 황석산, 거망산 산행후 내려오는 길에 둘러보면 된다.

아님 가볍게 이곳 계곡을 찾아 한 나절 보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