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강진 백운동원림. 무위사

정헌의 티스토리 2022. 5. 3. 00:06

■ 강진 백운동원림. 무위사. 

 

그동안 여러 차례 전남 서남쪽을 다녔지만 아직 미답사지로 강진의 백운동원림과 무위사 자연산책로, 초당림, 해남군 연동리 윤선도유적지와 녹우당비자나무숲이 있다. 지난해 우연히 백운동원림을  매스컴에서 접하고 나서 한번쯤 찾아야 겠다고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 강진까지 은근 거리가 멀어 기회를 보던 중 친구들과 함게 찾은 강진 당일치기 여행 일정을 잡아본다. 백운동원림과 무위사, 강진읍에서의 한정식, 오후엔 강진만생태공원과 남미륵사를 둘러보면 한 코스가 되겠다.

백운동원림은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호 백운동은, 본관 원주, 1627~ ?)가 조영하여 은거했던 별서 정원으로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지며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

당일여행으로 백운동원림 사진이 많아 강진여행 1 카테고리에서는 백운동원림과 무위사를, 강진여행 2편에서 강진만 생태공원과 남미륵사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 가는 길

 

 

 

 

 

▷ 탐방코스

    백운동 원림 - 무위사 - (청자골 종가집 중식 - 강진만생태공원 - 남미륵사)  /  2022. 4. 30.

 

 

▷ 탐방후에

 

    ▣ 백운동원림, 월출산다원

 

 

백운동 정원은 안내도상 안운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옳으나, 진입로를 찾아 들어가기가 어렵고 주차공간도 작아 월출산다원 주차장을 이용하는것이 편하다.

 

 

 

 

 

 

안내도상 월출산 다원 주차장엔 현 건물 공사가 진행 중으로, 도로변까지 공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현재는 주차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이 건물이 완공되고 주차장이 정비되면 조금 나아지겠다.

 

 

 

 

 

 

월출산다원 주차장은 백운동원림의 상부 도로변에 위치한다.

따라서 도로 아랫쪽으로 내려서는 곳에 백운동 원림이 있다.

 

 

 

 

 

 

월출산다원의 경계를 따라 살짝 내려간다.

농로 한쪽켠에 보도도 설치하였지만 관리가 부족하다.

 

 

 

 

 

 

월출산다원으로 내려가는 중간, 특별히 이정표는 없지만 우측으로 샛길이 제법 넓다.

백운동정원으로 가는 길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백운동 정원으로 가는 이정표상 길을 따르고자 도로를 따라 조금더 내려간다.

 

 

 

 

 

 

좌측으로는 월출산 다원이다.

다원  건너편에 보이는 암봉은 월출산 자락의 양자봉이다.

앞쪽 골짜기가 경포대인 셈이다.

 

 

 

 

 

 

구정봉 방향이다.

저곳 어느 봉이 백운동 12경 중 1경인 옥판봉이지 싶다.

 

 

 

 

 

 

같이한 일행들.

 

 

 

 

 

 

월출산 다원

이곳 농로변에서 다원조망이 좋다. 다원 안쪽으로 걷기좋은 길이 조성되어 있지는 않다.

 

 

 

 

 

 

주차장에서 200m쯤 내려섰다.

이곳은 백운동정원을 찾는 사람들은 많고?  땅의 소유주는 월출산다원? 거고 그래서 공사자재로 창고쪽으로 들어서는 곳이자 백운동 정원 입구를 은근히 차단한 느낌이 든다.

 

 

 

     

 

 

이곳 이정표

 

월출산다원 1.0km,

백운동정원 0.4km

 

 

 

 

 

 

백운동정원 들머리

대나무로 차단시킨 것은 제주도의 대문을 흉내낸 것이아니라 출입을 금지시키고자 하는 무언의 갈등이 있는듯한 느낌이다.

 

 

 

 

 

 

위 대나무 장대를 무시하고 들어선다.

 

 

 

 

 

 

 

 

 

 

 

 

 

 

백운동 정원으로 가는 길 아랫쪽으로 백운계곡 탐방로(안운주차장)가 있다.

어떻게 돌아보는 것이 좋을까 순간 망설이다 백운동 정원을 둘러보고 이곳 계곡탐방로를 따라 올라오면 되겠다 싶은 생각을 마음속으로 해 본다,

 

 

 

 

 

 

위 이정표를 확대해 본다,

뒤에 알았지만 백운계곡 탐방로 방향은 안운저수지(주차장)로 연결된다.

 

 

 

 

 

 

백운동원림으로 향한다,

 

 

 

 

 

 

다원 중간 백운동 진입로와 만난다.

아랫쪽으로 살짝 돌아서 온 셈이다.

 

 

 

 

 

 

백운동으로 내려간다.

천천히 걸으면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곳이다.

 

 

 

 

 

 

백운동원림 뒷편으로 내려선다.

길의 폭은 임도수준이다.

 

 

 

 

 

 

백운동 원림의 1대 동주 처사 이담로 부부의 합장묘이다.

 

 

 

 

 

 

이담로의 본관은 원주,  호는 백운동으로 월출산을 배산으로 하고 계곡에서 양쪽으로 갈라진 산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전면에 우뚝솟은 청하벽이 안산 역할을 하는 이곳 길지에 공명을 버리고 임천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고 은거의 삶을 실천하고자 백운동원림을 조영하였다.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낸 영영화가 계유정난에 휘말려 벼슬을 버리고, 1456년 전남 해남으로 이거하였고, 후손 좌승지 이남과  함경병마절도사를 지낸 그 아들 이억복이 1540년에 강진으로 이주한 이후 원주이씨 일족이 강진에 세거하게 되었다.

 

백운동 원림은 내원과 외원으로 나눠져 있는데 내원은 연지와 곡수로, 돌 화단, 건물 등을 자연에 순응하여 배치하였다. 층암절벽의 험준한 지형과 울창한 계속수림의 음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 가운데에 탁 트인 너른 공간을 조성하고 건물들을 배치하여  햇볕이 머물게 함으로써 안온함이 극치를 이룬다.

 

외원은 계곡과 암석들이 다양한 수목들과 함께 자연 그대로 어우러져 있다. 특히 외원의 계류를  수로와 연지를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내원에 흘려보내 여러 굽이로 휘돌아 다시 담장 밖 계곡으로 흘러나가게 한 유상곡수는 뒤로 물러남이 곧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곡절 많은 인생도 이와 같다는 처사의 도가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학(家學)했던 동강 이의경은 사도세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경향각지의 시인묵객과 관작(官爵)들이 백운동 원림을 유람하고 남긴  시문과 서화 200여펀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에서>

 

위 사진은 내원을 윗쪽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백운동 원림을 내려다 보았을 때 우측의 계곡이다.

계곡이 깊지는 않지만 수량은 제법이다.

 

 

 

 

 

 

주 계곡 건너편으로 산책로가 있는 듯.

 

 

 

 

 

 

계곡으로의 샛문?

 

 

 

 

 

이 사진은 백운동 주차장 가의 안내도로 백운첩의 사진이다.

 

백운첩은 다산 정약용이 1812년에 초의선사를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 들러 하룻밤을 유숙한 후 백운동의 풍광을 시로 쓰고 그림으로 그린 시첩으로 백운동도와 서시, 백운동 12경, 발문, 다산초당도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백운동의 풍광을 잊지 못한 다산이 초의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서시와 발문, 백운동 12경 중 8수(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의 시를 직접 짓고 초의 3수(홍옥폭, 풍단, 정선대), 제자 윤동 1수(운당원)를 쓰게 하여 총 14수의 시를 완성한 후 백운동과 다산초당 중 어느 것이 아름다운지 겨뤄 보고픈 마음으로 다산초당도를 마지막으로 그려 넣어 당시 백운동 4대 동주 이덕휘(1759~1828)에게 선물했다.

 

백운동 12경

 1.  제1경 : 옥판봉  / 월출산 구정봉의 서남쪽 봉우리의 이름

 2.  제2경 : 산다경  / 별서정원에 들어가는 동백나무(별칭 산다) 숲의 작은 길(경)

 3.  제3경 : 백매오  / 바위언덕(오)위에 심어둔 백(백) 그루의 홍매

 4.  제4경 : 홍옥폭  / 단풍나무 빛이 비친 폭포의 홍옥같은 물방울

 5.  제5경 : 유상곡수 / 잔(상)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

 6.  제6경 : 창하벽  / 붉은색(하)의 글자가 있는 푸른빛(창) 절벽(벽)

 7.  제7경 : 정유강  /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별칭 정유)가 있는 언덕(강)

 8.  제8경 : 모란체  / 모란이 심어져 있는 돌계단(체)의 화단

 9.  제9경 : 취미선방  / 산허리(취미)에 있는 꾸밈없고 고즈넉한 작은 방

10. 제10경 : 풍단   / 창하벽 위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풍)가 심어진 단(단)

11. 제11경 : 정선대  / 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이는 창하벽 위의 정자

12. 제12경 : 운당원  / 별서 뒷편은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운당) 숲

 

 

 

 

 

 

백운동 정원의 제일 중심 건물이다.

 

 

 

 

 

 

自怡堂(자이당,기쁠 이) 현판을 달고있다.

이담로의 6대손인 이시헌이 '스스로 기뻐한다'는 의미의 자기 호를 따서 지었다 한다.

 

 

 

 

 

 

자이당 앞쪽의 매화나무 아래 제3경 백매오 안내표지판이 있다.

바위 언덕(塢 / 둑오) 위에 심어둔 백(百)그루의 홍매

 

帀屋層嵒翠(잡옥층암취)  / 집 둘레에 층층 바위 아주 푸른데  (두를 잡, 바위암, 푸를 취)

栽花百本紅(재화백본홍) / 백 그루 홍매화 나무 가꾸네 (심을 재)

往來山色裡(왕래산색리) / 산빛어린 속에서 오가노라면  (속 리(이))

都在暗香中(도재암향중) / 온통 암향 속에 있는 것 같아 

 

 

 

 

 

 

 9경 취미선방

 

 

 

 

 

 

제8걍 모란체 / 모란(牧丹)이 심어져 있는 돌계단(砌/섬돌 체)의 화단

 

山人深色譜 (산인심색보) / 산 사람 색보에 조예가 깊어 (계보 보)

不肯讓時豪 (불긍양시호) / 호걸에게 양보하길 즐기질 않지  (즐길 긍, 사양할 양)

已貫分株法 (이관분주법) / 그루를 나누는 법 하마 익숙해 (이미 이, 꿸 관)

仍無採藥勞 (잉무채약노) / 작약캐는 수고로움 아예 없겠네 (인할 잉, 캘 채, 약 약(약초))

 

 

 

 

 

 

백운동의 정문인 셈이다.

백운유거(白雲幽居) 현판을 달고있다.

 

 

 

 

 

 

이곳 정자 앞 마당엔 각진 직선형태의 유상곡수가 있다.

 

 

제5경 유상곡수 / 잔(觴, 잔 상)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

 

六曲穿牆水 (육곡천장수) /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뚫을 천, 담 장)

回頭復出牆 (회두부출장) /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회복할 복/ 다시 부)

偶來三兩客 (우래삼양객) / 어쩌다 온 두세분 손님이 있어      (짝 우)

閒坐共流觴 (한좌공류상) /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한가할 한, 잔 상)

 

 

 

 

 

 

수소실.

 

이곳은 산수가 수려한 경승지에 위치해 있고, 상하연지를 이용하여 수공간을 조영하는 등 자연과 인공을 적절히 배합한 구성을 이루어  전통 원림의 원형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별서 조영 후 심명규, 임영, 김창흠, 김창집, 김재찬, 이하곤, 정약용, 초의선사 등 조선후기 많은 문인들이 백운동을 노래한 시를 남겨, 조선후기 별서 중 가장 풍부한 기록과 자료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강진에 유배 중이던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1786~1866)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가지 풍경을 시로 지어 <백운첩>을 남겼는데 그를 근거로 현재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최근에는 안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과정에서 고려청자와 고려기와 등이 대량 출토되어 조선후기 별서로 조영되기 훨씬 전인 고려시대에 백운암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백운동 정문을 나선다. 

백운동 정문(백운유거)을 나서면 바로 좌측 기슭에 제6경 창하벽, 제10경 풍단 안내표지판이 나란히 있다.

 

제6경 창하벽    / 붉은색(霞/하)의 글자가 있는 푸른빛(蒼창) 절벽(壁)

 

定是風斤斲 (정시풍근착)   /  틀림없이 바람이 도끼로 깍아 (도끼 근, 깍을 착)

從他雨蘚渝?(종타우선유)  / 그 틈으로 비 이끼가 스면든 게지 (다를 타, 이끼 선, 변할 투.변할 유 / 꾈 투?)

惜無岣嶁刻 (석무구루각)   / 바위에 새긴 글씨 없음 아쉬워 (아낄 석, 산꼭대기 구, 봉우리 루(누))

大字染猩朱 (대자염성주)   / 붉은 빛깔 큰 글자 써 두었다네 (물들 염 ,성성이 성(오랑우탄, 붉은 빛)

 

 

 

제10경 풍단 / 청하벽 위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楓)가 심어진 단(壇) 

 

金谷繁華昔年栽 (금곡번화석년재)/ 금곡의 번화한 숲 그 옛날에 심은 것 (예 석)

紅羅步障兩邊開 (홍라보장양변개)/ 붉은 비단 가림막이 양편으로 열려 있네 (벌릴 라, 걸음 보, 막을 장, 가 변 )

臨溪竹閣何年破 (임계죽각하년파)  / 냇가 임한 죽각은 어느 해에 부서졌나

猶有西山爽氣來(유유서산상기래) / 그래도 서산에선 맑은 기운 밀려온다   (오히려 유, 시원할 상)

 

 

 

 

 

 

작은 다리를 건너 백운동 주차장으로 내려가게 된다.

 

 

 

 

 

 

백운동 암각 글 

 

좌측으로 보이는 자연석에 새겨져 있는 백운동 세 글자는 백운처사 이담로(1627~1701) 선생이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이라고 바위에 새긴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안내문에서>

 

 

 

 

안운주차장, 안운저수지의 안운은 지명 이름이다.

 

 

 

 

 

 

백운동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첫 다리 아래에 폭포 아닌 폭포가 있다.

 

제4경 홍옥폭

단풍나무 빛이 비친 폭포의 홍옥(紅玉)같은 물방울

 

快瀉千峯雨 (쾌사천봉우) /  천봉에 빗방울 쏟아지더니  (쏟을 사)

分飛百道泉 (분비백도천) /  냇물이 백 갈래로 갈리어 난다

都從楓樹裏 (도종풍수리) /  온통 단풍나무 속을 따라서  (속 리)

衝過竹亭前 (충과죽정전) /  죽정(대나무정자) 앞을 부딪히며 지나가누나.

 

 

 

 

 

안운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저만큼 안내 표지판이 희미하다.

 

 

 

 

 

 

제2경 山茶徑(산다경) / 별서 정원에 들어가는 동백나무(별칭 山茶) 숲의 작은 길(徑 /지름길 경)

 

夾岸油茶樹 (협안유다수) /  언덕을 끼고 심은 동백나무가 (낄 협)

今成滿路陰 (금성만로음) / 이제는 길 가득 그늘 만드네

頭頭結蓓蕾(두두결배뢰) /  가지마다 꽃 보숭이 맺혀 있으니 (꽃봉우리배, 꽃봉우리 뢰)

留作歲寒心 (유작세한심) /  세한의 마음을 남겨둔 걸세.

 

 

 

 

 

 

백운동(안운)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차량 몇 대 주차할 수 있는 소형 주차장으로 주변엔 백운동 원림 안내문, 백운첨 등의 안내도가 있다.

또한 강진 월출산 달빛길이란 이름으로 무위사 - 백운동 별서정원- 월출산다원 - 이한영생가 - 월남사지 - 달빛한옥마을까지  5km(약1시간 15분) 안내표지판도 있다. 길은 걸어 볼만 하겠으나 차량 회수는 택시가 아니면 곤란하겠다. 참고로 이곳에서 안운저수지로 이어지는 길이 있으며 소형 차량은 다닐 수 있다.

 

 

 

 

 

 

백운동 원림으로 되돌아 간다.

 

 

 

 

 

 

백운동을 흐르는 계곡을 우측에 두고 상부로 오르는 길이 있다.

 

 

 

 

 

 

정원으로 되돌아 간다.

사진은 백운동 각자가 있는 곳이자 홍옥폭 주변이다.

 

 

 

 

 

 

백운동의 정문을 지나 내원으로 되돌아 왔다.

현판은 백운유거 ( 그윽할 유)

 

 

 

 

 

 

정선대에도 올라 본다.

정선대는 담으로 둘러진 내원 밖에 있다.

 

 

 

 

 

 

정선대로 오르는 길,

 

 

제7강 정유강 /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별칭 貞蕤/곧을 정, 드리워질 유)가 있는 언덕(岡 /언덕 강)

 

千尺紅鱗樹 (천척홍린수)  /   천 길 되는 붉은 비늘 나무가 있어

山空靜影長 (산공정영장)  /   빈산에 고요히 그림자 길다.

自生三籟韻 (자생삼뢰운)  /   저절로 삼뢰의 소리가 나서

詩作半樓凉 (시작반루량)  /  이따금 정자 절반 시원케 한다.

 

 

 

 

 

 

제11경 정선대(停仙臺/머무를 정)는 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이는 창하벽 위의 정자로, 머무를 정, 신선선자를 쓴다.

 

 

院碧篁林晩 (원벽황림만)  / 집에 푸른 대숲이 뉘엿도 한데 (집원, 푸를벽, 대숲황, 저물만)

牆紅薜茘秋 (담홍벽려추) / 담장에 담쟁이 붉은 가을이로다. (승검초 벽, 타래붓꽃 려)

試從圭竇外 (시종규보외) / 시험삼아 샛문의 밖을 따라서 (홀 규,  구멍두(구멍, 쪽문,규문))

徐步石欄頭 (서보석란두) / 바위 난간 머리가지 쉬엄 걸었지. (천천히 서, 난간 란(난))

雨洗娟峯出 (우세연봉출) / 비에 씻겨 고운 뫼 모습 나오고  (예쁠 연)

年深灌木幽 (년심관목유) / 해묵은 관목들도 그윽하여라. (그을할 유)

經營見若志 (경영견약지) / 경영함을 기록 남겨 보인다 하면  (같을 약)

將就抱閒愁 (장취포한수) / 장취원이 한가로운 근심 품을 듯, (안을 포, 근심 수)

 

 

 

 

 

 

정선대에서 바라본 옥판봉

옥판봉은 월출산 구정봉 서남쪽 인근의 봉우리 이름이란다.

 

 

옥판봉

 

내 예전 영산에 놀러 와서는               옷깃 떨쳐 절정까지 오르려 했지.                      

힘 빠져 능히 내려오지 못하고            해 지자 입은 옷이 너무 추웠네.

사슴 가죽 깔개로 몸을 감싸고            여러 시내 웅덩이를 건너왔었지

돌아와선 깊은 유감 품고 지내며         구슬피 구정봉만 올려다봤네.

그럭저럭 하다보니 7년이 지나           수염 터럭 어느새 고기 가실세.

굳이 묵은 소원을 풀고자 하여            이에 다시 선경에 거닐었다네.

빙 둘러선 뭇 봉오리 고운 빛깔이        목을 길게 빼고서 나를 보는 듯

뭇 신선 티끌 먼지 깨끗이 씻고           단정하게 옥홀을 들고 섰는 듯.

뻬어난 기운 푸른 옥색 맑기도 하고     엷은 구름 맑은 그림자 머금었구나.

우러러 바라보니 기쁜 맘 들어            수고로이 다리 시게 걷지 않았네

이제야 알겠네 예전 오를 때               거칠게 기운만 부려댄 줄을.

산인은 산 위로 오르지 않고               가만 앉아 마음이 고요하다네.

 

 

 

 

 

 

다시 정원으로 내려와,

 

 

 

 

 

 

정원 주변을 둘러본다,

 

 

 

 

 

 

백운동 원림을 별서정원이라 한다.

별서의 별은 나눌 별, 서는 농막 서자를 쓴다. 따라서 별서는 농장이나 들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가 주거하는 주택에 속한 정원과 구별된다.  

 

 

 

 

 

 

 

 

 

 

 

 

 

 

 

 

 

 

 

 

 

 

내원 우측(정원을 올려다 보았을 때) 대나무 숲을 본다.

백운동 제12경 운당원인데 별서 뒤편의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운당) 숲이라 한다.

별서 뒷편의 왕대나무 숲은 보지 못했으며, 이곳은 별서 옆인데 대나무 숲이 제법이여서 이곳이 운당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제12경 운당원  / 별서 뒷편의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운당) 숲

 

君不見白雲洞裏篔簹군불견) 그군불견대 백운동의 운당원을 못 보았나 (왕대 운)

琅玕矗矗穿雲根 (랑간촉촉천운근) / 깍은 옥이 빽빽하게 구름 뚫었다네.(옥돌 랑(낭), 옥돌 간, 우거질촉, 뚫을 천)

直上靑霄八十尺 (직상청소팔십척 ) / 하늘 위로 80척을 곧바로 솟아올라 (하늘 소)

俯視玉井峯頭石 (부시옥정봉두석) /  옥정봉 머릿돌을 굽어보아 살피고   (구부릴 부)

玉骨磨瑩照人面 (옥골마영조인면) /옥골이 반들반들 사람 얼굴 비추니 (갈 마,  옥돌영 : 의혹할 형, 밝을 영, 옥돌 옥)

四方觀者驚初見 (사방관자경초견) /  사방의 구경꾼들 처음 보곤 놀란다네. (놀랄 경)

耽津小吏嗟不忠 (탐진소리차불충) /탐진의 구실아치 불충을 탄식하노니

此物不令貢額充 (차물불령공액충) / 이 대나무 공물로 충당하지 아니하네 (바칠공, 이마 액)

枉取村家自枯竹 (왕취촌가자고죽) / 애꿏게 시골집의 비쩍 마를 대를 취해  (굽을 왕, 마를 고)

驛馬飛塵入王宮 (역마비진입왕궁) / 역마가 먼지 날리며 왕궁으로 드는 구나.

 

 

 

 

 

 

별서정원 앞에서 올려다 본 정선대쪽,

묘지 뒷편으로 3개의 바위가 그럴 듯 하다.

저곳 묘지는 백운동 원림을 조성한 이담로의 6대손이자 다산 정약용의 제자 자이 이시헌의 묘이다.

 

10세에 대산 정약용의 제자가 되었고, 장성하여 경남 창령의 유학자 하석 성근묵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덕행과 문장이 뛰어나 유명한 시인묵객과 관작들이 그를 찾아 백운동에 왔고, 특히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소치 허련(진도 운림산방), 호남 관찰서 서헌순 등 당대 최고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 전문서인 동다기를 필사기록으로 남겨 우리나라 차의 역사를 새로이 쓰게 했고, 삼증삼쇄라는 독특한 제다법으로 차를 제조하여 보급한 다도인이였다. 그 제다법은 지금가지 이어져 백운동이 차문화의 성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시헌은 백운동에 전해오는 선대 기록들을 정리한 <백운세수첩>을 비롯해 백운동의 14경을 노래한 문집 <자이집>, <수졸암행록>,<칠세모묵>,  <시간일람>등 각종 기록을 남겨 백운동의 역사가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담으로 둘러진 내원 아랫쪽 탐방로를 따라 내려서 안운제, 월출산다원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이내 만나는 대밭 방향 갈림길,

이 길은  대나무밭을 지나 백운동정원 중간쯤으로 이어진다.

이 대나무밭이 운당원이 아닌가 싶다.

 

 

 

 

 

 

안운제 방향으로 좀더 내려가면 제법의 공터에 정자가 있고,

아랫쪽 저수지(안운제)가 있다.

 

 

 

 

 

 

저수지변으로 도로가 이어지고,

전주 옆에 이정표가 있다.

보이는 도로 우측으로 가면 가까운 거리에 안운주차장(백운동 주차장)이 있고,

좌측 방향 아래 이정표의 월출산 다원 방향으로 이어가면 월출산 다원 입구 인근의 백운동 계곡방향 갈림길로 이어진다.

 

 

 

 

 

 

위 안운저수지 옆의 이정표.

 

월출산 다원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 길을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라 따르지는 않았다.

 

 

 

 

 

 

백운동 원림으로 되돌아 간다.

 

 

 

 

 

 

대나무 숲길(운당원)을 지나 별서정원으로 올라 되돌아 간다.

    

 

 

 

 

 

월출산다원은 백운동 원림 들머리에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특별히 차밭으로 난 탐방로는 없는 것 같고 농로를 따라 둘러봐야 할 것 같다.

 

 

 

 

 

 

백운동원림을 둘러보는데 천천히 약 1시간 20분 소요하였다.

 

 

 

 

     ▣ 강진 무위사

 

 

백운동 원림에서 가까이 위치한( 약 2KM정도?) 무위사 주차장으로 왔다.

 

 

 

 

 

 

무위사는 지난해? 둘러본 곳으로 관심은 무위사 좌측 뒷편의 탐방로에 관심이 많이 가지만 오늘 일정상 이 탐방로를 걷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쉽다.

 

 

 

 

 

 

들머리 찻집,

 

 

 

 

 

 

극락보전

 

무위사 사적에 의하면, 무위사는 원표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13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우리나라 조선 시대 불교 건출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의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높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는 달리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론,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대웅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좌측 측면,

석탑. 선각대사 탑비, 월출산산신각, 미륵전 등이 보인다.

 

 

 

 

 

 

극락보전 마당에서 바라본 우측.

 

 

 

 

 

 

    

 

 

 

   

 

 

샘물,

뒤쪽으로 대적광전 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보물 제1312호)

 

극락보전의 주불인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흙으로 만들어진데 대해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중앙의 아미타여래상은 전체적으로 안정감 잇는 신체 비례를 지닌 결가부좌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좌측의 관음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쓴 채 왼쪽 다리를 내린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우측의 지장보살상은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오른쪽 다리를 내린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제 313호,1476년 조성)와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불교미술양식이 결합된 수준 높은 작품으로서 조선 초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극락보전 측면 모습이다.

 

 

 

 

 

 

미륵전,

 

 

 

 

 

 

월출산 산신각

 

 

 

 

 

 

무위사 선각대사 탑비 (보물 507호)

 

형미스님(854~917)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의 명승으로, 무위사에서 주지로 8년간 머무르며 무위사 중창을 주도하였다.

탑비는 거북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 거북 받침돌과 운용문이 있는 머릿돌에 표현된 조각 수법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몸돌 앞면에는 형미스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언휘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시를 썼다.

 

 <현지 안내문에서>

 

 

 

 

 

 

무위사 좌측 뒷편에 자연관찰로가 있다.

길이는 1 km정도

걷기 좋은 길일 것 같은데 오늘 시간적 여유가 없다.

 

 

 

 

 

 

자연관찰로 들머리.

 

 

 

 

 

 

자연관찰로 날머리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겠다.

 

 

 

 

 

 

 

 

 

 

 

 

 

 

 

 

 

 

 

 

 

 

성보박물관도 둘러본다.

 

 

 

 

 

 

 

 

 

 

 

 

 

 

 

 

 

 

 

 

 

 

불화와 극락전 배벽사면 벽화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조촐한 박물관이다.

 

 

 

 

 

 

범종각

 

 

 

 

 

 

무위사는 주차장과 거리가 가까워 절만 둘러본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30분여 무위사 탐방을 마치고 강진읍내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