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대구 동구 옻골마을, 도동측백나무숲, 불로동고분군, 단산지

정헌의 티스토리 2022. 5. 30. 17:44

■ 대구 동구 옻골마을(경주최씨 종가), 도동측백나무숲, 불로동 고분군, 단산지(봉무공원)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대구에 갔다가 오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둘러본 대구 동구 몇 군데이다.

이들 관광지는 서로 근거리에 위치하여 이곳 저곳 같이 둘러보면 되지만,  단독으로 주변의 등산로와 연계하여 걸음 걸어도 되겠다.

옻골마을은 팔공산 녹색길과 연계하여도 되겠다. 등산길은 3코스로 구분되며  되돌아 올 적엔 적의 자건거길을 이용하면 될 듯 싶다.

도동측백나무숲에서는 향산칠색 트레킹코스를 연계하여 걸으면 되겠다. 향산칠색 트레킹코스는 모두 7코스로 나눌 수 있으며, 제 7코스는 단산지. 불로동 고분군과도 연결된다.

당일 신숭겸장군 유적지는 생략했다. 단산지에서 멀지않은 곳인데 시간도 조금 부족했지만 깜빡 잊었다. 지나고 보니 잠시 둘러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불로동 고분군을 둘러보고 별도로 단산지로 이동하였지만 불로동 고분군과 단산지를 한 코스로 걸어도 된다. 이 길 또한 가볍게 걷기좋은 길이다. 단산지는 저수지변으로도 길이 있지만 능선상으로도 등산로가 있어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하면 되겠다.

    

 

 

▷ 가는 길

 

카카오 지도를 확대하여 봉무고분(단산지), 불로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하여 동남쪽 근거리에 도동측백나무숲, 옻골마을이 있고, 북쪽 근거리에 신숭겸장군 유적지가 있다.

 

 

 

 

▷ 탐방코스  (2022. 5. 29.)

대구 옻골마을(경주최씨 종가) - 도동측백나무숲 - 불로동 고분군 - 단산지(봉무공원) 둘레길 

   

 

 

▷ 탐방후에

 

▣ 대구 옻골마을

 

 

위 안내도는 옻골마을(현 위치)에 있는 팔공산녹색길 안내도이다.

초행자가 알기 쉬운 안내도는 아니나 옻골마을과 연계산행을 대비하여 올려본다.

 

 

 

 

 

 

옻골마을 입구에 아담한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찾는 분들이 많아서 주차장에 주차하지 못하고 길가에 주차했다. 옻골마을이 막다른 곳이어서 도로를 왕래하는 차량은 많지 않으므로 도로변에 주차해도 큰 무리는 없다.

 

 

 

 

 

 

옻골마을 입구.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옻골마을은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주변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 불려졌다. 1616년 (광해8년) 조선중기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경주 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마을 어귀,

칠계유지 및 괴림 보수준공기념비가 있다.

 

 

 

 

 

 

물없는 연못가엔 노거수가 울창하다.

비보숲이다.

 

 

 

 

 

 

칠계유지?

 

 

 

 

 

 

저쪽  보이는 곳에 등산로가 있어 참고용으로 올려본다,

 

 

 

 

 

 

이곳으로 팔공산 녹색길과 연결된다,

 

 

 

 

 

 

마을 입구에 옻골마을 홍보관이 있다.

 

 

 

 

 

 

이어 위용이 대단한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있다.

 

안내문에 최동집나무라 적혀있다.

최동집(1588~1661)의 호는 대암이며, 아버지 최계는 임란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분이다. 한강 정구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광해군 8년(1616)에 이곳 둔산동 칠계(漆溪) 즉 옻골에 정착했다.

효종이 대군으로 있을 때 효종을 모시고 청나라에 인질로 가다가 중도에 교체되었다. 명나라가 망하자 숭정처사를 자처하여 부인동에서 은거하며 평생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고 주민을 교화했다,

국가민속문화제 제261호로 지정된 그가 살던 집은 대구지방에 현존하는 민가로서는 가장 오래되어 조선시대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령 400년 정도된 이 회화나무는 경주최씨 대암공파의 파조이자 지역사회 문풍진작에 크게 기여한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최동집 나무라 한다.

 

 

 

 

 

 

마을 입구 돌담집 (010- 2502 - 2648)

 

벡숙, 잔치국수, 칼국수, 비빔국수, 비빔밥,  파전,  도토리묵 .....

마을 유일의 음식점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한옥과 돌담이 깔금하다.

마을을 안내하는 이정표 또한 정갈하다.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집도 있다.

 

 

 

 

 

 

크지않은 마을이므로 대체로 우측길로 올라 좌측으로 내려오는 기분으로 둘러본다.

 

 

 

 

 

 

최흥원 정려각

 

둔산동 옻골마을 중간에 위치한 이 건물은 조선 후기 영남의 대학자이자 효를 위한 덕목을 정하고 부모의 병을 극진히 돌보는 등 효행으로 유명하였던 백불암 최홍원을 기리기 위해 1789년 조정의 명으로 세운 것이다.

최흥원은 옻골마을 입향조인 대암 최동집의 5대손으로 1705년에 태어나 82세를 사는 동안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 130여명의 많은 제자를 기르며 향약을 실시하는 등 백성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대산 이상정,  남야 박손경과 더불어 영남 삼로로 추앙을 받으며 당대 영남 퇴계 학맥을 이끌었다. 1784년에는 정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문효세자의 익위사익찬이 되어 스승이 되었다.

정려각은 단순한 구조로 벽면 상부에 홍살문이 설치된 1칸의 비각을 중심으로 주위에 토석 담장이 네모꼴로 둘러져 있다. 최흥원정려각은 규모는 작으나 18세기 후반 건축양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이 집은 유독 마당가에 꽃을 많이 가꾸고 있다.

 

 

 

 

 

 

동계정과 백불암고택 또는 수구당 갈림길에서 동계정을 먼저 둘러보는게 낫다.

동계정 출입문은 닫혀 있는 듯 하지만 밀고 들어가면 된다.(측면 출입문이 잠겨있지는 않다.)

 

 

 

 

 

 

옻골마을 맨 윗쪽이자 동쪽에 위치한 이 정자는 백불암 최흥원의 아들인 동계 최주진을 기리기 위해서 1868년 훼철되었던 동산서원의 자재를 사용하여 1910년에 세운 것으로, 최주진의 호를 따라 동계정으로 이름지었다.

정자의 용도는 주로 후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칠 때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동계정은 옻골마을에 있는 수구당. 보본당과 달리 대청이 중심에 위치하지 않고, 가장 왼쪽에 위치하여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양식이나 공간의 구성이 조선 후기의 정자와 비교하여 부재의 크기가 작아지고, 구조를 이루는 방법 등이 간결해져 근대기의 특성이 강한 편이지만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로 넘어가는 건축양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동계정(東溪亭)

'계'자는 시내 계자를 쓰는데 편액엔  이런 모양이라 일반인은 쉬이 알기 어렵다.

 

 

 

 

 

 

되돌아 나와 수구당쪽으로 향한다.

 

 

 

 

 

 

수구당(數咎堂 / 허물 구, 최흥원 선생의 처음 號, '허물을 헤아린다'는 뜻.)은 백불암 최흥원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경주최씨 옻골 입향조인 대암 최동집의 9세손인 애일재 최명덕이 아들의  분가를 위해 살림집으로 개조되면서 사랑채와 안채 2동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건립 당시 안채는 기와가 얹혀진 와가였던 반면 사랑채는 초가지붕을 갖추고 있었다. 1918년 두 건물을 고쳐지으면서 안채는 칸수를 늘리고 기둥을 높였으며, 사랑채에는 새로 기와을 올렸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중앙에 개방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다양한 공간이 구성되었는데, 안채에는 2개의 방과 부엌이, 사랑채에는 사랑방. 침방을 두었다.

사진은 사랑채로 동산서원, 인수재, 경의당, 가행재,  광당정사 편액이 걸려있다. 

 

 

 

 

 

 

안채.

효제사 편액이 걸려있다.

 

 

 

 

 

 

수구당을 지나면 백불암고택(경주최씨 종택)이 있다.

 

 

 

 

 

 

경주 최씨 종가인 백불암고택은 마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입향조인 최동집이 1630년에 지은 고택으로 대구 지역 가옥 중 가장 오래된 주택 건물이다. 백불암은 조선 정조, 영조때 학자인 최흥원의 호이다.

이 고택은 현재 국가민속문화재 제2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가 튼'ㅁ'자로 세워져 있다. 고택의 오른쪽으로는 보본당이 있다. 보본당은 입향조인 대암선생의 제사를 위해 1753년 지어진 건물로 사당과 재실, 음식을 장만하기 위한 포사로 구성되어 있다. 보본당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 학교로 사용 되었으며, 또 백물암 선생이 반계수록을 최초로 교정한 장소이다. 

<안내문에서>

 

 

 

 

 

 

대문을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가 있다.

좌.우 형태가 다르다.

 

 

 

 

 

 

 

 

 

 

 

 

 

사랑채 좌측 옆으로 돌아가면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안채.

 

 

 

 

 

 

 

 

 

 

 

 

 

안채 뒷편에도 조그만 정원이 있다.

 

 

 

 

 

 

안채를 바라보았을 때 우측문을 열고 나가면 보본당이 있다.

 

    

 

 

 

 

보본당.

 

이곳 보본당 서쪽방은 우리나라 실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반계 류형원 선생이 저술한 반계수록을 1770년 백불암 선생께서 영조의 명을 받아 이곳에 교정청을 설치하고 최초의 교정본을 완료하여 나라에 바친 유서깊은 곳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보본당 편액

 

 

 

 

 

 

보본당 좌측 뒷편의 사당과 벌묘는 보수중이다.

 

 

 

 

 

 

백불고택은 규모가 상당하다.

한바퀴 둘러보고 사랑채로 되돌아 나왔다.

 

 

 

 

 

 

잠시 쉬었다 간다.

 

 

 

 

 

 

옻골마을에서 가장 중심건물인 백불암 고택을 둘러보고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간다.

 

 

 

 

 

 

겸헌고택

 

 

 

 

 

 

아랫채 겸헌고택,

 

 

 

 

 

 

안채의 벽체가 묘하다.

 

 

 

 

 

 

별 기대하지 않고 옻골마을을 들렀는데  잘 왔다싶다.

마을을 둘러보는데 약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 도동 측백나무숲

 

 

도동측백나무숲 주차장으로 왔다.

도동측백문화마을 종합안내도가 제법 낡았고, 주차장이 깨끗하다.

 

 

 

 

 

 

한켠에는 향산칠색 트레킹코스 안내도가 있다.

이곳과 연계하여 다양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주차장

 

천년기념믈 ONE 도동측백문화마을 조성사업

도동 측백문화마을 조성사업은 대구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국토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으로 선정되어 시작되었다.도시재생사업의 핵심 시설이라 할 수 있는 측백향 커뮤니티센터, 특산품판매장, 주민 커뮤니티 공간, 측백 홍보관 및 측백나무 숲 전망카페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에 백림장이란 음식점 한 곳이 있다.

 

 

 

 

 

 

천년기념물 1호다.

 

 

 

 

 

 

도동측백나무숲은 마을앞을 흐르는 개울가 절벽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요즘 날이 가물어서인지 측백나무 잎의 색깔이 선명치 못하다.

 

 

 

 

 

 

도동 측백나무숲은 면적  35,603㎥의 향산 절벽에, 높이 5~7m의 측백나무 1,400여 그루가 숲을 형성하고 있다. 측백나무는 종래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곳을 비롯하여 경북 영양, 충북 단양 등 어러 곳에서 자생하고 있음이 밝혀져 한국을 원산지로 인정하게 되었다. 측백나무의 남방 한계선에 자리한 도동 측백나무숲은 식물 분포학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는데, 대구가 낳은 조선 초기 대학자 서거정(1420~1488)이 찬미한 '대구십영' 중 '북벽향림'이 바로 이곳이다.

측백나무숲 사이에는 19세기 초 인근 아홉 노선비들이 개최한 시회를 기념하는 구로정도 볼 수 있다. 지정 당시에는 이 지역이 달성에 속해있어 '달성의 측백수림'으로 불리다가, 1981년 달성군 공산면이 대구직할시에 편입되면서 수림이라는 한자를 풀어 현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이곳은 초선초기의 대학자 서거정 선생이 말한 대구의 경치가 좋은 열 곳 중 제6경에 해당하는 북벽향림이다.

옛날에는 절벽 앞 개울물이 깊고 푸르렀으며 숲도 훨씬 울창하여 시인들과 풍류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대구에서 영천,경주로 가는 길목이어서 길손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천년기념물을 처음 선정할 당시에 측백나무가 집단으로 자라는 곳으로는 가장 남족이며, 옛날에는 묘지의 둘레나무로 심는 등 측백나무 쓰임의 귀중함을 감안하여 제1호로 지정(1962)되었다. 현재 1,200여 그루의 측백나무가 굴참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물푸레나무 등과 같이 섞여 자란다.

이 중 일부는 나이가 수백 년에 이르나 대체로 키 4~5m, 줄기지름 10cm전후에 불과하다. 흙 한 점 제대로 없는 바위틈에서 긴 세월을 간신히 지키고 있는 이 특백나무 숲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의 귀중한 식물문화재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관음사 쪽으로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측백나무숲

 

 

 

 

 

 

관음사 무설전

 

낙가산에 자리잡은 이 절은 670년(문무왕1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광종 때에 심지왕사가 중창하였으며, 1933년 해인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절은 이 고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관음전에 모신 관음보살은 큰 영험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현지 안내문에서>

 

 

 

 

 

 

관음사 무설전 앞에서 관음전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있다.

 

관음전,

천불전,

삼성각,

 

 

 

 

 

 

 

 

 

 

 

 

 

낙가산 관음암.

 

 

 

 

 

 

이 절벽위의 조그만 건물은?

 

 

 

 

 

 

관음전

 

 

 

 

 

 

관음전 내부.

관음전이 천불전을 겸하고 있지는 않을 건데, 천불전. 삼성각은 어디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되돌아 간다.

 

 

 

 

 

 

절벽에 위치한 관음암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고,

 

 

 

 

 

 

옆쪽의 다른 길을 이용하여 되돌아 내려간다.

측백나무군락과 관음암 주변을 둘러보는데 20분이면 충분하다.

 

 

 

 

▣ 불로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에도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단산지와 먼 거리가 아니어서 이어서 걸어도 되나보다.

 

 

 

 

 

 

고분군만 둘러본다면 탐방방향은 단순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아 보면 되겠다.

 

 

 

 

 

 

반시계 방향으로 코스를 잡는다.

 

 

 

 

 

 

사적 제262호(1978. 6. 23.지정)된 대구 동구 불로동 335번지 일원의 고분군은 팔공산의 남쪽 줄기가 낮아지면서 금호강의 북쪽 충적평야와 만나는 구릉지에 형성된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현재  210여기의 고총고분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대규모 고분군이다.

1983년 무렵 학계에 알려진 이후 1967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2기의 소형분 조사를 실시하였고, 2001년에는 경북문화재연구원에서 주능선에 위치한 대형분 2기와 주변 석곽묘 10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대형 고분은 지름이 약22m, 높이 6m의 원형의 봉토안에 4기의 수혈식 석곽을 순차적으로 덧대어 만들었다.

무덤의 주조는 대부분 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돌을 쌓아서 축조한 수혈식 석곽형이다. 일부 석곽중에는 가운데에 칸막이를 쌓아 시신을 매장하는 공간과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을 구분한 것도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금귀걸이, 유리구슬 목걸이 등 장신구와 말 그림이 새겨진 토기류, 재갈, 말띠드리개 등의 마구류, 화살촉, 도끼, 낫 등의 무기류와 상어(돔배기) 뼈 등 음식물 등 다양하다,

관련 고고학의 성과를 참조하면 이 고분군의 조성 연대는 기원후 5~6세기경이며, 불로동 지역을 통솔하던 유력한 정치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 이상 현지 안내문에서>

 

 

 

 

 

 

 

 

 

 

 

 

 

 

 

 

 

 

 

 

 

 

 

 

 

 

 

 

 

 

 

 

 

 

 

 

 

 

 

 

 

 

 

 

 

 

 

 

 

 

 

 

 

 

 

 

 

 

 

 

육안으로 볼 때 저만큼에서 고분군은 끝나는 것 같고, 우측 사면으로 군데군데 고분군이 보인다.

저만큼 중간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만큼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앞쪽의 고분이 제106호이다.

 

 

 

 

 

 

 

 

 

 

 

 

 

 

 

 

 

 

 

 

 

 

 

 

 

 

 

 

 

 

 

 

 

 

고분군을 한바퀴 둘러보고 주차장 입구로 되돌아 오는데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 단산지 둘레길 (봉무공원)

 

 

단산지 둘레로 난 저수지길은 3.5km, 약 50분 소요되고,

불무공원 등산로는 3.7km, 약 1시간 20분 소요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단산지 주차장

저수를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대 둑 우측 아래에 위치한다.

옻골마을, 도동 측백나무숲, 불로동고분군에 이어 이곳 단산지(봉무공원)주차장 모두 아주 넉넉치는 않으나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주차료도 없다.

 

 

 

 

 

 

주차장에서 저수지로 살짝 오른다. 거리도 가깝다.

 

 

 

 

 

 

봉무공원 표지석이 깔끔하다.

 

 

 

 

 

 

먼저 둑방길로,

단산지 저수지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아본다.

 

 

 

 

 

 

 

 

 

 

 

 

 

저곳이 봉무공원으로 나비생태관이 있다.

 

 

 

 

 

 

저수지 둑 아랫쪽,

상가가 많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저수지 둑을 건너와 되돌아 본 경관이다.

또한 이 주변에 등산로 들.날머리도 있다.

 

 

 

 

 

 

단산지 둘레길은 대체로 숲이다.

조금 특이한 점은 저수지변이 바닷가처럼 대부분 암반이다.

 

 

 

 

 

 

걷기좋은 길이어서 걸음걸으러 온 분들이 많다.

 

 

 

 

 

 

 

 

 

 

 

 

 

 

 

 

 

 

 

 

 

 

 

 

 

 

 

 

 

 

 

 

 

 

구절송 전망대 갈림길

 

 

 

 

 

 

 

 

 

 

 

 

 

 

 

 

 

 

 

 

들머리에서 2km 지점쯤,

체육공원을 지난다.

 

 

 

 

 

 

 

 

 

 

 

 

 

 

 

 

 

 

 

 

처음엔 웬 나비사육장? 싶었다.

 

 

 

 

 

 

이내 나비누리관이 있고,

 

 

 

 

 

 

나비생태학습관.

주변에 나비사육장, 곤충생태관, 나비누리관, 나비학습관, 무궁화 동산이 있다.

 

 

 

 

 

 

이 주변이 봉무공원인 셈이다.

 

 

 

 

 

 

 

 

 

 

 

 

 

매점도 있다,

 

 

 

 

 

 

뒷쪽 정원도 살짝 둘러본다.

주변에 테니스장, 배트민턴장, 족구장 등 운동시설과 나비정원이 있는 곳이다.

 

 

 

 

 

 

단산지 입구쪽,

저곳 계단길을 따라 산책로가 있다.

 

 

 

 

 

 

천천히 단산지 둘레길과 봉무공원을 둘러보는데 1시간쯤 소요되었다.

이곳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