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특회

밀양 금시당

정헌의 티스토리 2022. 11. 11. 22:47

■밀양 금시당

 

  3년만에 다시 만난 농특회 모임이다.

  이번 모임을 주선한 막내가 밀양 상동농협에서 근무했기에 금차 모임은 밀양이다. 동료 13명의 부부가 참석했다.

  일정은 밀양축협 한우플라자에서 반주를 곁들인 저녁모임, 후 팔도장터, 숙소에서의 뒤풀이로 이루어지고, 다음날 숙소 인근의 전주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 얼음골 케이블카 탑승, 고향마을 중식 후 내년을 기약한다.

  다음날 묘사가 있어 금차 밀양에서의 모임엔 저녁식사와 팔도장터만 참석하고 저녁에 귀가하였다.

  당일 약간의 시간이 있어 금시당, 백곡재를 둘러보았다. 금시당은 은행나무로 인하여 단풍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과거 밀양아리랑 길을 걸을 때 용두연유원지쪽 코스를 택함으로서 금시당에서 청룡사로 이어지는 길을 걷지 못했었는데 이 길 또한 걷기좋은 길이다.

 

 

▷ 가는 길

    

    금시당 단풍이 곱게 물들면 많은 인파로 인해 지도상 금시당유원지로 표시된 곳이 주차장이 된다.

 

 

 

 

▷ 탐방후에 (2022. 11.5.)

 

  

금시교,

위 카카오지도상 금시당유원지로 표시된 곳에 주차를 한다.

이곳외 국궁장 주차장과 주변의 도로에 주차할 수 있으나 단풍철 주말에는 안내원이 아예 금시당유원지 주차장에 주차 안내를 한다.

 

 

 

 

 

주차후 둑방길을 따라 금시당 백곡재로 간다.

저쪽 하얗게 보이는 건물이 국궁장으로 평일이나 단풍철이 아니라면 국궁장 주차장에 주차하면 되듯하나 많은 차량을 수용하기엔 장소가 협소한 편으로 은행나무가 곱게 물드는 주말이면 금시당유원지에 주차 안내한다.

 

 

 

 

 

저만큼 금시당.

 

 

 

 

 

금시당 입구

 

 

 

 

 

산성산 1.3km,

용두목 산림욕장(용두산)  1.9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금시당 백곡재  / 경남도 문화재 자료 제228호

 

금시당은 조선 명종때 좌부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1513~1566)이 1565년에 지은 별장이다.

이광진은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밀양강이 굽이치는 언덕 위에 금시당을 짓고 노년을 보냈다. '금시/금시'는 '지금이 옳다'는 뜻으로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각금시이작비/각금시이작비, 지금이 옳고 지난 날이 틀렸음을 깨닳았다'에서 따온 것이다.

금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는데 이를 5대손인 이지운이 1744년 복원했으며, 1866년 크게 고쳐지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기에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곡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금시당을 복원한 백곡 이지운(1681~1763)을 추모하기 위하여 1860년에 세운 재사(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집)로 금시당 동쪽 축대 위에 있다. 건축 규모나 양식은 금시당과 그의 같으며 온돌방과 마루만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금시당과 백곡재 모도 조선 후기 영남지방 양반 가문의 전형적인 정자 건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정원에 있는 은행나무는 이광진이 심은 것으로 밀양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돌담이 아름답다.

 

 

 

 

 

정문인 셈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만나는 건물,

풍경카페로 개조했다.

 

 

 

 

 

 

 

 

 

 

 

 가격도 착하다.

 

 

 

 

 

 

 

 

 

 

풍경카페에서 담 너머로 내려다 본 은행나무

 

 

 

 

 

금시당으로 내려서는 중문을 지나 내려선다.

아랫쪽 건물이 금시당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백곡재이다.

 

 

 

 

 

금시당.

 

 

 

 

 

사진은 찍었지만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다.

 

 

 

 

 

금시당.

입구의 안내문엔 이 건물이 금시당 같은데 현판은 보지못했다.

 

금시당은 예부터 아름드리 잣나무가 숲을 이룬 임간(임간) 경승지였다.

1800년 근간에 사림의 공론(공론)으로 창건되었던 백곡서원(백곡서원)이 있었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 사당이 훼철되고 그 유지만 남아 있다.

백곡서원은 고려말 문장과 풍절로 이름난 문절공 기우자 이행(이행), 조선 중종 때의 한림학사 월연 이태(이태), 승지 금시당 이광진(이공진) 등 여주이씨 명현 5분이 향사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은행나무,

 우리 지역(산청 향교)앞 수령 약 500년의 은행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었는데,

 11월 5일 현재 이곳 은행나무는 아직 푸른 기운이 더 많다.

 

 

 

 

 

 

 

 

 

 

 

수령 약 420년,

수고 22m, 흉고높이 둘레 5.1m.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후문?

샛문?

 

 

 

 

후문을 나서 바라본 은행나무.

 

 

 

 

 

각도를 조금 달리하여 한컷 더.

 

 

 

 

 

금시당 후문을 나서면 제법 공간이 있다.

 

 

 

 

 

 

 

 

 

 

 

금시당에서 강변을 따라난 길을 따르면 청룡사로 이어진다.

 

 

 

 

 

 

되돌아 와 백곡재를 둘러본다.

 

 

 

 

 

금시당과는 방과 마루의 방향만 다를 뿐 비슷하다.

 

 

 

 

 

백곡서재

'백'자는 '측백 백'자로 측백나무, 잣나무 등을 말한다.

 

 

 

 

 

금시당과 백곡재,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되돌아 간다.

 

5시를 넘은 시간, 생각보다 삼문동 축협 한우플라자로 가는 길이 많이 막힌다.

저녁 식사후 팔도장터를 끝으로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