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석정 황석선생 충의기적비, 서도역, 혼불문학관, 청호미술관,임실 삼계석문, 이웅재고가, 원동산의견비, 해월암, 오수리석불(석불사)
소설 혼불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당시의 민족혼과 풍속사를 잘 묘사한 작품으로 작가 최명희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쓴 미완성의 대하소설이다. 혼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서도역과 혼불문학관은 찾는것 자체로 여행의 한 목적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찾아본다.
임실의 대표적 관광지로는 치즈테마파크와 사선대, 옥정호 붕어섬 정도가 기억된다. 근래 책모임에서 작가 최명희에 대해 자주 거론하어 탐방을 기획하였다. 혼불문학관은 남원과 연계하여 주로 찾는 곳지만 임실(오수)과 연계도 가능하겠다 싶어 몇 군데를 선정했다.
황석선생 충의기적비는 국가지정 현충시설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서도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잠시 둘러보았으며, 혼불문학관 좌측 조금 윗쪽에 있는 청호미술관카페와 호성사는그림과 도자기 등을 감상하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혼불문학관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임실 이웅재고가는 소설 혼불에서 이 건물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길래 코스에 넣고, 인근의 단구대와 구로정, 삼계석문도 찾아보기로 한다. 원동산공원(의견비), 해월사, 오수리석불(석불사), 오수망루, 임실향교 등은 오수면내에 위치하고 있다. 오수의견공원과 인근의 의견관광지는 크게 볼 것은 없는 것 같아 통과하였다.
임실 삼계면 쪽으로 오괴정(삼계면 삼은2길), 노동환가옥(삼계면 후천리 465), 계림군(김균)사당(후천리), 만취정(박사골마을), 광제정(세심휴양림으로 가는 중간), 세심자연휴양림, 죽계저수지, 학정리 석불과 성문사등은 오늘 일정에서 제외했지만 다음 찾을 기회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탐방코스
남원 석정 황석선생 충의기적비 서도역 - 혼불문학관, 청호미술관과 호성사 - 임실 삼계석문, 구로정, 단구대 - 이웅재 고가, 삼계강사 - 원동산 공원 - 해월암 - 석불사,
▷탐방후에
▣남원 석정 황석선생 충의기적비
남원시 사매면 수월길 27-1
수월마을 입구에 4기의 비석이 있다.
조선중직대부 광릉령 남도의병장 석정황석선생 충의기적비 (朝鮮中直大夫 光陵令南道義兵將 石廷黃석先生 忠義 紀跡碑)
서도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잠시 들러본다.
석정 황석(1848~1919)선생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서 전북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이후 조선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1896년 전북도내 유림들에게 통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도모하였으나 이 계획이 실패하자, 나주에서 기우만이 의병을 일으킬 때 참여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고광순, 이석용 등과 수차례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도모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가족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9년 고종황제의 붕어소식에 자결하여 순국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2002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석정선생의 충의기적비는 석정 황석선생 충의기적비 건립추진위원화와 남원시가 공동으로 추진하여 200.3년 전북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수월마을에 건립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2004년 부터 현충시설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석정황석선생 충의 사적비
우리는 동방의 문화민족으로서 국권을 지키고 보전하기 위하여 외침이나 경국(傾國)의 위기가 닥칠때마다 일신일가(一身一家)를 다바쳐 나라를 구한 충신열사가 수없이 이어져 왔으나 아곳 수월에서 출생하신 석정선생의 충의 또한 만인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 선생은 가숙(家塾/글방숙)에서 수기치인의 학문을 닦았고 약관에 향시에 급제하여 장차 大器감으로 향당의 추앙을 받았고 43세에 음직(蔭職) 중직대부 광릉령에 제수되었으며, 갑오란이 일어나자 급거 귀향 의병대장이 되어 민란을 진압하였고, 을미년에 국모시해때와 을사혁약때는 호남에 제유(諸儒)와 거의(擧義) 결사 항거코저 하였으나 늑령(勒令/굴레륵(늑))으로 해산되자 울분으로 향리에서 두문중(杜門中/막을 두) 경술국치가 되자 명운을 나라와 같이 하려다가 신자(臣子)의 성충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마을앞 무산봉에 의두대(倚斗台/의자할의, 기이할 기,별태, 대대)를 쌓고 10년을 하루같이 북향망배 절행을 실천하였다. 고종황제 부문(訃聞)에 접하여 애통절명시 <先考遺言一未成 不忠不孝敢爲生己未立春前二日浩然北逝(갈서)快吾情>을 남기고 자문(自刎/목벨문)하였으나 미수하고 6일후 재자(再刺/찌를자) 성인하시니 황제 인산(因山) 익일이다. 선생의 충절탁행이 일제의 억압과 세파에 뭍혀 가려졌으나 근년 선생의 유집을 찾게되어 그 사적이 알려지자 이를 계기로 전국각지의 유림들이 선생에 대한 존모하는 마을을 일으켜 미성을 모았으며, 임오년 8월 15일 정부의 포상이 있었고 전라북도와 남원시의 지원에 힘입어 선생의 생가 마을에 충의기적비를 세우게되니 늦게나마 어찌 다행스럽지 않겠는가 !
우리는 이 비 앞에 옷깃을 여미고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러고 나아가서 후생(後生)들로 하여금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단기 4336년 걔비4월 일,
<석정황석선행충의기걱비추진위원회>
황석선생 기적비 옆에 통훈대부 이조좌랑을 지낸 황공 휘 하묵선생의 비도 있고,
통정대부를 지낸 또 다른 황공의 비는 비각안에 모셔져 있다.
옆의 비
▣서도역(폐역)
①혼불문학관
②슬로우빌 혼불.차방
③혼불민박
④혼불체험관
⑤청호저수지
⑥종가집
⑦노봉마을회관
⑧구서도역
⑨구서도역영상촬영장
⑩혼불마루
서도역
①서도역 대합실
②서도역사관
③도선실
④역무원관사(서도역공동체센타)
⑤역장관사
⑥등나무터널
⑦잔디광장
몇 가게가 문을 열었다.
겨울을 제외하고 주말이 되면 나오시나 보다,
서도역
역앞에 전날 있었던 행사용 천막과 의자를 아직 치우지 않아 살짝 돌아서 역으로 간다.
인근의 다른 건물.
서도역 내부로 들어가 본다.
역 안쪽에서 바라본 서도역
분위기가 과거에 찾았을 때보다 살짝 변했다.
철길을 따라 한바퀴 둘러본다.
북쪽,
남쪽 방향이다.
먼저 북쪽으로 난 철길을 따른다.
저 건물옆에 소규모 주차장이 있다.
철길은 계속 이어가지만 이곳까지 왔다가 되돌아 간다.
윗쪽, 아랫쪽으로 가볍게 산책삼아 한바퀴 돌아보면 된다.
예전에 비해 살짝 변화를 주었다.
▣혼불문학관
혼불문학관에 왔다.
혼불문학관은 혼불문학관, 교육관, 새암바위, 청호저수지와 주변으로 소공원? 정도가 있고, 좌측 약간 윗쪽에 호성사와 청호미술관겸 카페가 있다.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
서북으로 비껴 기맥이 흐를 염려가 놓였으니, 마을 서북 쪽으로 흘러내리는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 천손의 천추락산세향을 누릴 만한 곳이다 라고 이르셨다
-혼불 중에서-
혼불문학관
혼불은 최명희 작가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 까지 17년 동안 혼신을 바쳐 집필한 대하소설로, 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혼불은 일제강점기 때 사매면 매안 마을의 양반가를 지카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아름다운 우리말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했다.
혼불에서 우러난 아름다움과 애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댓바람 소리에 어우러지며 대실을 건너와 노봉마을과 사매면을 보드랍게 감싸 안는다. 꽃심을 지닌 땅 노봉과 땀 냄새 묻어나는 거멍굴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혼불을 느낄 수 있다. 실개천을 따라 혼불과 걷노라면 최명희 작가의 속삭임이 귓가에 머문다.
혼불문학관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자 혼을 불사른 최명희 작가의 뜻을 영원히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아우름의 터전이다 혼불의 문학정신은 혼불문학관과 혼불의 배경지 노봉마을에서 맑은 샘을 이뤄 넓디넓은 대양으로 도도히 뻗어나갈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교육관
내부를 개조하여 교육장 내지는 체험장을 만들었다.
교육장 내부는 이렇게 바뀌었다.
새암바위
최명희 작가는 웬일인지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새암을 이뤄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최명희 작가은 뜻을 담아 바위의 이름을 새암바위라고 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최명희 문학관으로 왔다.
최명희문학관도 전에 찾았을 때와는 배치를 달리했다.
최명희문학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앞쪽에 범바위가 있다.
▣호성사와 청호미술관
최명희 문학관 좌측 약간 윗쪽에 호성사가 있다.
대웅전 등 주불전이 별도로 없어 분위기는 일반 절과는 살짝 다르다.
아랫쪽 청호미술관
호성사와는 한집으로 보면 된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이런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우측은 카페를 개업했다.
미술관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으며,
근접 촬영을 자제해 달래서 분위기만 촬영했다.
시계(공)와 이상향에 대한 비슷한 그림이 많다.
생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도자기 관으로 왔다.
주로 송, 청대의 도자기라고 한다.
카페에서 차한잔 하며 주인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지 송하스님은 어릴때부터 절밥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그림에도 조예가 있는지 서울 인사동에 인연을 맺은 분들도 상당히 많다. 미술관의 대부분 그림에 정동산이란 필명을 쓰는데 주지 송하스님이 아닌것 같다. 부채에 수묵화나 동양화 등의 그림을 그려준 이야기도 한다.(인터넷 상에서 정동산으로 검색하면 선생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일대에 한옥 호텔도 들어서고, 전원주택단지 조성과 오토캠핑장, 명상 숲 등 조성이 곧 착공될 것이라 한다. 청호저수지 둑 보강공사와 함께 주변 산책로가 조화롭게 정비될 것이라 한다.
이웃하여 혼불문학관, 서도역이 있어 상생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 하였더니 관광객도 유치하고 소멸되어 가는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신념을 보인다.
사업도 해야하고, 불교공부도 해야하고 바쁘시겠다고 하니 어릴적부터 절밥을 먹어서 불경 공부는 안해도 된단다. 사업에 매진한다면 몇 년 후 이 일대가 멋진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청호저수지
청호저수지 앞으로 왔다.
저수지 둑은 안팎으로 석재로 보강하고 주변 산책로를 정비하여 깨끗하고 멋진 저수지로 탈바꿈 될 것이라한다.
내년이면 주변 정비가 완료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호성사의 송하스님 구상이 제대로 진행되면 야트막한 일대의 소나무 숲에 명품 쉼터가 조성될 것이다.
▣구로정, 단구대, 삼계석문
혼불문학관과 서도역은 행정구역상 남원시에 속하고 있어 남원시내의 김병종 미술관 등과 연계하여 두어번 찾은적이 있는데, 오늘은 시선을 임실쪽으로 돌려보았다.
남원시와 경계하고 있는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석계삼문과 구로정, 단구대를 보러 왔다.
이곳까지 입구까지 차량 진입은 가능하나 회차지가 좁아 회차하기기 어렵다. 이곳 50~100m쯤 직전에 작은 삼거리가 있으므로 그곳에서 회차하였다.
오수 둔데기마을 옛길
임실 오수면과 삼계면 사이 옛길이 교통의 발달로 50여년 전에 끊겨진 것을 다시 잇고, 혼불의 고장 남원 서도와 순창 동계를 연결하여 옛 선조들의 생활과 역사적 흔적을 찾아 마을간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옛길 일부를 복원했으나 이 길을 걷기위해 외지에서 찾기에는 거리가 짧다.
단구대, 구로정, 삼계석문만 보는 것도 좋다. 이곳 삼계석문은 임실지역과 남원 북부 사매면 일원의 크고작은 시내가 모여 이곳을 지나 동계면(용궐산 입구)에서 섬진강에 합류된다.
조금 오르면 구로정 직전 좌측으로 단구대가 있다.
단구대는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산46번지 산기슭에 있는 거다한 바위로, 바위 빛깔이 자색이기 때문에 자단(紫丹)이라고도 한다. 단구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 척에 이르는 높은 대로 수십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다.
그 맞은 편에는 대천대(對天臺)가 있으며, 동쪽의 방장산이 읍(揖)을 하고 서쪽의 동산이 고(告)하는 형국의 수려한 경관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단구대에는 1663년 구로회에서 저성한 구로정이 있다. 구로회는 1660년을 전후하여 둔덕리 일대 60세 이상 노인 9명이 조직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의병활등을 하였던 사람들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단구대의 아래쪽에는 단구(丹丘), 구로유대(九老遺臺), 육구로장구소(六九老杖屨所)가 새겨져 있으며, 구로일소(九老一少)로 구로 장제(張㫼), 한빈(韓賓), 하득도(河得道), 한유(韓瑜), 장서(張曙), 장선(張䁢), 하만리(河萬里). 최휘지(崔徽之),. 최유지(崔攸之). 일소(一少)이문규(李文規) 등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근데 구로는 9명의 노인으로 보면 되는데 육구로는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강변
반구대 바로 윗쪽에 구로정이 있다.
1656년경 세워진 것으로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일대 4개 성씨 9명의 노인이 만든 누정이다,
이들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에 참가하거나 의병의 형제, 혹은 그 아들로 구성되었다. 그간 구로정이 낡고 허물어져서 2020년에 새로 중수하였으니 정면 2칸, 측면1칸에 팔작지붕을 올렸고, 목재 활주로 추녀를 받혔다. 오늘날 구로회 후손들은 매년 음력 4월 9일이며 시를 짓고 한 잔을 술을 올려 이들을 기리고 있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저~곳
사진상에서는 희미하지만 구로정에서 바라보면 각자된 바위(석계삼문)가 보인다.
이곳 구로정에서의 거리는 약 70m,
삼계석문으로 가면서 되돌아 본 구로정
중간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삼계석문이 저만큼 또렸해졌다,
삼계석문( 三磎石門 /시내계)은 1663년경 구로회에서 조성한 것으로 구로정에서 서쪽으로 약 70m정도 떨어진곳에 있는 암각서를 말한다. 폭4.7* 두께 2.2* 높이7.5 m의 거대한 바위에 해서체로 三磎石門(삼계석문)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한 글자의 크기가 약 70*80cm정도로 4글자의 총 길이는 4m에 이른다. 이 글씨는 구로회의 일원인 최유지의 아들 최기옹이 썼는데, 고운 최치원이 썼다는 경남 하동 쌍계사 입구의 雙磎石門(쌍계석문)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삼계는 둔덕리 앞으로 흐르는 오수천, 율천(월평천)과 오천이 합수하는 곳을 말하며, 강바닥과 산사면 곳곳에 큰 바위들이 즐비하여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글자의 크기가 상당하다.
되돌아 간다.
삼계석문에서 저만큼 구로정이 보인다.
구로정을 지나
산위쪽으로 이런 데크를 조성하였다.
되돌아 간다.
어느 길로 오르든지 구로정 아래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삼계석문을 둘러보고 이웅재 고가로 간다.
▣이웅재고가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이웅재 고가로 간다.
이웅재 고가 /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2호,
이 집은 이담손(李聃孫)이 조선 연산군6년(1500)경에 지은 것을 여러차례 보수한 건물이다.
이담손은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의 증손이며, 전주이씨로선 둔덕리에 맨 처음 들어온 사람이다. 경사면을 축대로 쌓은 장방형의 대지에 자리한 이 집은 동남쪽을 향하여 안채, 사랑채, 대문채가 위치하고 있는 ㄷ자형의 가옥이다. 사랑채는 일자 형으로 고종1년(1864)에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문에는 고종 7년(1870)에 이문주(李文胄/투구 주)에게 내린 효자정문의 현판이 걸려있다. 대문도 이 때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이 지방 사대부들이 주거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집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효자정문
유명조선효자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 이문주 지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마주한다.
춘성정정사기적비(春城正精舍紀跡碑)
사랑채에서 내려다 본 솟을대문
사랑채와 이어진 아랫채
안채로 간다.
헛간?
안채
충효전승 편액이 걸려있다.
안채 마루에서 내려다 본 아랫채쪽,
안채와 붙어있는 이 건물엔 마루가 보이지 않는다.
안채 좌측의 방
아랫채는 곡간?
저곳 샛문으로 나가본다.
사랑채로 연결되는 아궁이
사랑채 뒷편으로 나왔다.
사랑채 뒷편
툇마루가 있다.
이곳은 안채의 측면인 셈이다.
안채 우측 뒷편에 사당이 있다.
춘성정사(春城正祠)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샛문을 통해 되돌아 간다.
안채
입구이자 출구쪽
대문을 나선다,
평상이 놓여있는 저곳은 구시(구유)로 인해 소를 키우던 외양간 느낌이 난다.
▣삼계강사(三溪講舍)
삼계강사에 왔다.
마을입구들 들어서자 우측으로 난 골목을 따라야 한다.
솟을대문까지 차량을 진입시키면 회차가 곤란하므로 갈림길 입구에 잠시 주차해도 되겠다,
삼계강사는 조선 중엽인 천계(天啓) 원년 (1621) 3월에 강사로 창립하여 7개 마을 성(최, 이, 한, 김, 하, 장, 양)이 동계를 조직, 부근의 어린 학동들을 교육하는 서재로 운영하였다. 1910는 한일합방 이후 일본 강점기에는 이곳에서 민족 자강과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오수 공립보통학교 교실로 3년간 사용하였고, 강사 재산을 헌납하여 오수 초등학교를 건립하는데 그 초석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삼계강사계안 (三溪講舍契案) 135책과 고문서 92장은 삼계강사계악 운영에 관한 사항을 담은 것으로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모습과 함께 혼례, 상례, 관례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계원 500여명으로 구성된 삼계강사회원이 유지관리에 임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삼계강사사적비
삼계강사
이 앞을 흐르는 계곡이 3곳이어서 삼계라 하였나 보다.
옆엔 이런 건물이 있고,
앞쪽엔 어울리지 않지만 이런 건물이 있다.
▣오수 원동산공원(의견비)
오수면 소재지내 어느 중식집에서 식사 후 의견비가 있는 원동산공원에 왔다.
원동산 공원 입구(앞)에 원동산식당이 있다. 뷔페식 한식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집에서 식사를 할까 했는데 금일 휴업이다.
저만큼 의견비
의견비의 비문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의견비 앞에서 바라본 공원 정문쪽,
여러 공적비들,
원동산 공원의 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월암
해월암에 왔다.
들머리 급하게 휘어지는 오르막길에는 조심스레 운전을 해야겠으며, 해월암 바로 앞에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하다.
해월암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
해월암은 저라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본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본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이다. 공민왕 1년(1352)에 해경대사와 월산대사가 창건하고 두 사람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해월암이라 하였다. 1915년 봉인 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월암의 본전은 ㄱ자 모양인데 한쪽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다른 한쪽 지붕은 앞면이 사다리꼴인 우진각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쪽으로 1993년경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경나에는 본전을 비롯하여 산신각과 종각, 요사해(승려들이 거처하는 집)가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해월암 맞은편에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 뒷편의 본전
법당보다는 가정집 같은 느낌이 든다.
측면에서 바라본 본전,
스님이 대웅전 불상 사진을 찍어 인화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조명도 없고 위치를 잡을 사다리도 있어야 하며, 또 불상사진은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죄송하다고 했다.
대웅전을 뒤로한다.
▣석불암 석불
길거리 이정표에 삼층석탑을 안내하고 있어 이를 찾아왔는데 석탑은 찾지못하고 석불사가 있다.
작은 석탑이 있고,
오수리 석불/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오수리 석불은 높이 4.5m이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 불상과 광배(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 뒤에 표현한 원광)가 일체형으로 밋밋한 두상에 육계(부처의 머리 위헤 혹과 같이 살이 올아온 것이나, 지혜를 상징함)가 솟아 있으며, 이목구비는 단순하다. 배 모양의 광배에는 연꽃무늬의 두광(부처의 정수리에서 바오는 빛)과 불꽃무늬가 새겨져 매우 화려하다.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오는 큰 바윗덩어리를 본 아낙네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바위 그 자리에 멈춰 버렸으며, 그것이 석불이 된 것을 보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석불이 마을 앞까지 와서 앉았더라면 마을이 더욱 융성하고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렷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주변
이상으로 석불사를 둘러보았다.
결국 삼층석탑은 찾지 못했다.
오수면소재지 내 망루는 차창으로 보았고, 의견공원에 갔으나 기대 이하인 듯 하여 위치만 확인하고 되돌아 나왔다. 시간이 남으면 향교, 의견공원 등을 둘러본 수 도 있겠고, 임실로 이동하여 임실차즈테마파크나 사선대를 둘러봐도 좋다.
임실치즈테마파크는 주차료, 입장료 등은 없으며, 근년에 장미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국화와 더불어 인기있는 광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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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무직산 2, 만일사 (3) | 2024.09.29 |
김제 벽골제, 아리랑문학관, 정종수고택과 장화쌀뒤주, 정화암생가, 아랑문학마을과 하얼빈역 (3) | 2024.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