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미동산수목원, 단재 신채호 유적지, 베이커리카페 공간
꽃피는 봄날 청주시 미원면에 위치한 미동산 수목원을 찾았습니다. 수목원 탐방로외에 임도산책로, 미동산 등산로까지 있어 몇 시간 걸음 걷기에 좋은 곳입니다. 집에서 9시 30분경 출발하여 현지에 도착하니 11시 30분경이 되었습니다. 수목원 내에 요기를 할 곳이 없기 때문에 입구의 다연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미동산 골짜기를 따라 충북산림자원환경연구원, 산림과학박물관, 난대식물원, 숲속도서관,메타세퀄이아 숲길 등 2시간 30분여 수목원을 산책하였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베이커리 카페 공간으로 가는 중간의 낭성면 귀래리에 위치한 신채호선생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단재기념관, 사당, 묘소, 동상 등이 서로 이웃해 있어 같이 둘러보면 됩니다.
베이커리 카페 공간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카페입니다. 청주시내 변두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고, 정원 또한 멋지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1시간 30분여 체류하다가 귀가길에 오릅니다.
▷일정
청주 미동산 수목원 - 단재 신채호선생 유적지 - 베이커리 카페 공간 / 2025. 4. 27.
▷탐방후에
◐다연식당
미동산 수목원 앞입니다.
산청에서 2시간여 소요되어 이곳에 도착하니 11시30분 경입니다.
많은 차량으로 인해 수목원 내 산림환경연구소 옆에 주차하고 입구로 나오니 이래 저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수목원 내에서는 점심을 먹을 곳이 없으므로 살짝 이른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수목원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이곳엔 다연시당외 숲사랑 편의점과 카페등이 있고, 이곳에서 100m쯤 떨어져 식당이 한 곳 더 보였습니다.
다연식당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음식이 정갈합니다.
◐미동산수목원
청주시 미원면에 있어 청주, 대전 등 대도시와 거리상 가깝고 수목원내 산책로가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어 걷기 좋은 곳입니다.
오늘은 중앙을 흐르는 하천 좌.우 주변과 노랑색 실선의 임도 내지는 적색실선의 등산로 한 쪽을 걸어볼까 하고 왔으나 결국은 수목원 탐방로 위주로 이곳 저곳 다녔습니다.
미동산 수목원 방문자 센타
제법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지만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수목원 내 충청북도 산림환경연구소에 주차했습니다.
수목원 입장료도, 주차료도 없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인원체크를 위해? 실내를 거쳐 입장하도록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청주공항 확장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입구들 들어서면 미동산수목원이 반깁니다.
초반 제법 넓은 잔디광장이 있습니다.
우측으로 충청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있습니다. 오늘 저 곳에 주차하였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습니다.
우측 미동산수목원 산림교육센타 쪽으로 가면 임도, 미동산 등산로 입구가 있고, 계곡 주변의 좌.우측으로 걷기좋은 도로 및 산책로가 있습니다.
우선 계곡을 좌측에 두고 우측편 도로를 따라 오릅니다.
미동산 수목원은 계곡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수목원 탐방로를 따르면 가장 무난하겠으나, 이 길을 다 걷고 임도나 등산로 중 한 곳 정도 더 걸을 욕심을 내다보니 어느 길이 좋을 지 망설여 집니다.
따라서 수목원 상부로 오르면서 우측, 좌측을 왔다갔다 하면서 다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임도 탐방로나 등산로를 따라 내려올까 생각을 합니다.
규화목
산림과학박물관 앞쪽입니다.
산림과학박물관을 둘러봅니다.
산림과학박물관 뒷편에 다육식물원이 있습니다.
다육식물원 내부입니다.
다육식물원 옆에 식충 공중식물원이 있습니다.
식충 공중식물원
다육식물원, 식충 공중식물원 뒷편에 암석원이 있습니다. 크게 볼 것은 없습니다.
무궁화원을 지납니다.
암석원 일부
미선나무 정원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내 고향 / 임찬순
내 고향은
지금도 한결같이
5월 햇빛처럼 빛나는 세월이고
여름 새벽의 청정한 하늘이다.
언제나 나의 꽃이고 큰 강물이다.
아직도 가장 높은 곳에서 펄럭이는.
하천을 건너는 다리는 여러곳 있습니다.
수국담채원쪽으로 왔습니다.
현 수국은 많이 보이지 않아 수국담채원이란 이름이 더 그럴듯 합니다.
난대식물원을 둘러봅니다.
난대식물원 내부에서 나비생태원으로 연결됩니다.
나비생태원
나비생태원 입구로 나왔습니다.
미로원이 있으나 조금 엉성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칩니다.
바이오 식물원
목재문화체험장
목재문화체험장의 연장입니다.
콘크리트와 목조의 비교체험
콘크리트(concrete)
-냉복사 현상 발생(저체온 유도)
-면역력 저하, 질병감염 폭증
-유해 방사선인 라돈 기체 방출 (폐암발생 원인)
-가정과 학교 내 폭력 급격히 발생
-일본의 시즈오카 대학에서 실시한 생쥐사육 실험결과 : 생존류 7%
목조(Wooden construction)
-부드러운 질감과 자연적인 무늬와 재색 등으로 따뜻한 느낌을 받음
-자율신경계의 조화, 심신안정
-쾌적한 습도조절 능력이 탁월
-목조학교는 집중력이 3배 상승
-일본의 시즈오카 대학에서 실시한 생쥐사육 실험결과 :생존률 85%
계곡 주변길을 따라 오르면 소류지가 있습니다.
주변엔 메타세퀄아아가 숲을 이루고, 소류지엔 분수를 설치하였습니다.
미동산수목원 메타세쿼이아길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전망대에 올라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일 뿐 실제로 넘을 수 있는 벽이다.
행동의 가치는 그 행동을 끝까지 이루는데 있다.
당신이 생각한 대로 당신은 될 수 있다.
한발 더 높은 곳이 있는 당신~~ 이제 보이시나요.
한동안 이런 숲길이 계속됩니다. 참 걷기좋은 길입니다.
숲속생태도서관에 왔습니다.
숲속도서관 우측 뒷편 건물입니다.
1층 숲속(휴) 쉼터
2층 숲속체험전시장
이런 출렁다리 몇 개가 보이면 수목원의 상부인 셈입니다.
수목원 상부엔 철망으로 진입을 차단하는 경계벽을 세웠습니다.
수목원 상부
철망으로 막혀있지만 우측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초행이라면 어~ 더 이상 진입은 막았네 라며 돌아설 곳이기도 합니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
임도를 따라 고개까지 가 보고 싶었는데 집사람이 먼저 내려가는 바람에 되돌아 갑니다.
생뚱맞게 전국 기능경기대회개최기념석이 있습니다.
우측에는 지성, 애착, 책임을 각자한 위민탑도 세웠습니다.
제법 넓은 광장을 이런 류의 공원으로 만들 계획인가? 싶습니다.
다른 좋은 길도 있지만 이 산책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바깥쪽 길을 따르면 안쪽 길은 걷지않아도 보이거나 상태를 대충 감잡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습지원? 이끼원?
단풍나무원,
어느 길을 따라도 아래에서 만나게 되지만 데크길을 따라봅니다.
데크길은 열림마음 나눔길로 이름지었습니다.
이런 갈림길도 있습니다.
지나 내려온 데크길엔 열린나눔 마음길로 이름붙였습니다
걷지않은 길을 걷기위해 수국담채원(난대식물원 옆) 앞으로 왔습니다.
한켠에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입구 휴 광장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2시간 30분여 미동산 수목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참 걷기좋은 길입니다.
◐단재 신채효 유적지
단재 신채효 유적지에 왔습니다.
고드미 마을
귀래리는 본래 청주시 산내 이상면 지역으로 조선 광해군 때 신요라는 분이 곧은 말로 상소하여 귀양살이를 하다가 풀리어 이곳으로 들어와 숨어살았다고 합니다. 인조가 반정하여 여러 번 불러도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마을을 곧으미, 고드미, 또는 귀래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림리, 삼곡리, 도곡리, 문박리 일부를 합쳐 귀래리라고 고치고 낭성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귀래리는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어린시절부터 성균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란 마을로, 1936년 2월에 만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 후 그 유해를 고향인 이 곳에 안장하였습니다. 현재 묘소를 비롯하여 사당, 기념관이 있으며, 유적지 성역화 계획이 진행 중입니다.
신채호 기념관, 신채호사당, 묘소 동상과 교육관이 이웃하여 있습니다.
신채호 기념관을 먼저 둘러봅니다.
단재 신채호선생 (1880.12.08 ~ 1936. 2. 21.)
단재 신채호 선생은 언론인이자 역사가, 문학가이며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왜놈들의 발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그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돌보지 않고 제국주의 지배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미쳐 못 보고 옥중에서 순국했거니와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겨레의 해방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자신을 길을 걸어갔습니다.
단재 신채호!
그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우리 민족의 큰 스승입니다.
나서 자라고
할아버지의 처가인 회덕현 산내면 도림(현 대전시 중구 단재로 229-47)에서 출생
7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고향 인근인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로 이사함.
19세때 신기선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입학,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활동함
25세때 신규식, 신백우 등과 산동학당을 설립하고 신교육운동을 전개함
독립운동의 길
26세 시험헤 합격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곧 사임, 낭성면에 온 장지연(황성신문주필)을 만났으며 그의 초청으로 <황성신문> 논설기자가 됨
28세 항일 비밀조직인 신민회에 양기탁, 이동녕, 이화영, 이동휘, 안창호, 전덕기, 이갑, 이승훈 등과 참여
30세 <대한매일신보>에 여러 논설 발표, 부인 풍양 조씨와 이혼
32세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활동, 광복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
34세 상하이로 이동,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에 참여
35세 광개토대왕릉을 비롯한 만주일대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 백두산을 답사함, <조선상과>탄생에 큰 영향을 끼침
36세 베이징에 정착하여 도서관에서 역사서를 탐도그 <조선사(훗날 조선상고사)>집필구상 및 저술활동
41세 베이징으로 돌아와 보합단에 참여,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의 주선으로 박자혜와 결혼
43세 류자명의 주선으로 중국인 최초의 아나키스트이자 베이징대 교수였던 리스펑을 만나 교류함
49세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 회의를 개최하고 선전물 발행과 포간제조소 설치 자금을 마련하기로 함. 5월 8일 타이완 지룽우체국에서 유문상이라는 가명으로 현금 수령을 기다리다 피체후 '외국위체위조사건'의 죄목으로 다렌형무지소에 수감됨
51세 뤼순형무소로 이감
57세 2월 18일 뇌일혈로 쓰러짐, 2월 21일 주인 박자혜와 두 아들을 짧게 면회 하고, 오후 4시경 감방에서 홀로 순국, 2월 25일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 고드미마을 옛 집터에 암장
조선상고사 총론 중에서
.....
이와 같은 전장비사의 보고를 만나서 나의 소득이 무엇이던가.
인력과 물력이 없으며, 재료가 있어도 나의 소유가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일일지간, 그 외부에 대한 조천한 관찰이지만, 고구려의 종교 예술 경제력 등의 여하가 안전에 활현하여 '당지에 집안현의 일람(한범 봄)이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만독함보다 낫다.'는 단언을 내리었다. 후래에 항주 도서관에서 아방 금석학자 추사 김정희의 발견한 유적을 가져다가 지나인이 간행한 <해동금석원>을 보니, 나말 여초의 사조와 속상에 참고될 것이 많으며.............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1962)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이승희와 상경하여 이완용 등 오적을 참형에 처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일진회에서 한일합방론을 제창할 때에는 "역적을 치지 않은 사람 또한 역적이다"라는 격문을 돌리고 성토문을 냈다. 이 사건으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 1909년 유림 137명이 연명한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경상도의원에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한중호조사'를 창립하는 등 중국과의 외교를 통해 중국인들도 의 독립운동 후원을 이끌어냈다.
신채호 등과 임시의정원회의에서 대통령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성토하였다.
○ 1920년 상하이에서 박은식과 발간한 사민일보와 1921년 신채호와 베이징에서 발간한 천고(天鼓)를 통해 중국사회와 국제사회를 향한 독립운동 선전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1925~1926년 새로운 독립기지를 개척하기 위해 국내에서 직접 자금을 모금하였는데, 이 때 유림들과 모은 군자금으로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대한 투탄의거를 일으켰다.
○ 1927년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되었는데, 이 때 받은 고문으로 두 다리를 못쓰게 되자, 스스로 벽옹(앉은뱅이 늙은이)이라는 별호를 썼다. 14년 중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재판과정에서 변호를 거절하고, 일본의 회유책에도 강경하게 대응하는 등 수감 내내 극렬한 옥중투쟁을 벌였다.
○ 1945년 해방 후에는 김구 등과 임시정부 중심의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승만의 독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수차례 옥고를 치루는 등 탄압을 받았다. 전국유림대회를 열어 친일유림을 내쫓고 성균관을 재건하고 유도회를 조직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 1962냔 3월 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훈했다.
곡(哭)단재 / 홍명희
단재개 죽다니, 죽고 사는 것이 어떠한 큰일인데,
기별도 미리 안하고 슬거머니 죽는 법이 있는가.
죽지 못한다 죽지못한다.
나만 사람이라도 단재가 지기로 허하고 사랑하는 터이니 죽지 못한다,
밀리면 죽을리 만무하다, 그런데 죽다니, 무슨 소린고.
세상 사람이 다 죽었다고 떠들더라도 나는 죽지 않았거니 믿고 싶다.
만나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서도 보지 못하고 지냈느니
만나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서 다시 보지 못하려니 생각하면 그만이다.
신문의 보도와 수범의 통기가 나에게는 다 부질없는 일이다.
..........
살아서 귀신이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단재는 살아서도 사람이고 죽어서도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한 줌 재가 되다니
신체는 재가 되더라도 심장이야 철석과 같거니
재가 될 리 있을가.
모두가 거짓말 같고 정말 같지 아니하다.
신채호 선생의 편지입니다.
켈리그래피를 연상시키는 필체입니다.
사당과 묘지, 동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청주 신채호 사당 및 묘소
한말의 민족주의 사학자이며 언론인이고 독립 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및 묘소이다. 선생의 호는 단재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26세에 성균관 박사를 지냈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 민족의식을 높이는 논설을 쓰면서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다 1928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복역중 순국하였다. <조선상고사>등 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사당은 1960년에 신씨 문중에서 낭성면 관정리에 세웠던 것이나, 1978년 이곳으로 옮겨 새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을 세우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묘소는 선생이 어린 시절에 살던 옛 집처인 이곳에 단장하였다. 묘비는 한용운, 오세창이 만든 것을 신백우가 세웠으며, 1972년에 세운 사적비가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정기문(正氣門)
단재영각
사당 남쪽 근거리에 위치한 선생 동상
사당 오른쪽,
단재 신선생 묘소 입구
옛 살던 집터여서인지 주 능선상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듯한 묘지로서는 개인적으로 뭔가 어색하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단재교육관
교육장외 별다른 시설이 없어 둘러볼 것은 없습니다.
◐베이커리 카페 공간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대형 카페입니다.
주차료는 없으며, 입장료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카페를 이용해 주기를 바랍니다.
일부 입구에 단순 입장은 1층에 문의바란다는 문구가 있습니다만 1층은 카페 주문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변 정원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찾는 유명명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공간정원은 소나무가 주류이지만 여타 철쪽과 다른 나무들도 혼재되어 있습니다.
아주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정성을 많이 들인 정원입니다.
카페를 앞에서 바라봤을때 좌측으로 오르는 길을 따릅니다. 물론 우측, 카페 건물내부를 거쳐 오르는 길도 있습니다.
꽃마차.
카페의 2층인 셈입니다.
야외에 의자를 여러곳 두어 쉬며 차를 마실수 있습니다.
대충 왼쪽으로 올라 역S자 내지는 8자 형태로 둘러봅니다.
산기슭을 이용한 정원으로 산책 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크지 않은 면적이라 이곳저곳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시면 됩니다.
탐방로는 크게 임도가 있고, 군데군데 소로를 만들고 포인트를 두어 정성스럽게 가꾸었습니다.
이곳은 카페 옥상입니다.
모과나무 한그루 싱싱합니다.
주변에 수국을 심어 꽃 필 무렵 찾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자도 있습니다
맨 상부로의 출입은 막았습니다.
이곳 저곳 카페 정원을 산책하고 차한잔 하고나니 1시간 30분이 지났습니다.
귀가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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