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퇴계종택 및 퇴계태실, 고산정, 농암종택과 분강서원, 세계유교박물관
안동시 도산면소재지에 퇴계종택이자 퇴계태실이 있고, 바로 인근에 온계종택 삼백당이, 퇴계태실에서 동쪽으로 약간 거리를 두고 침와당고택, 서쪽으로 멀지않은 곳에 도산온천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았지만 웅부중학교 외관 또한 특이해 보입니다. 이중 퇴계종택이자 퇴계태실만 둘러보고, 고산정, 농암종택과 분강서원(예일당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몰랐음)을 둘러봅니다.
▷일정
(선성현문화단지) - 선성미정 조식 - 안동 퇴계태실 -고산정 - 농암종택과 분강서원 (예일당) - 세계유교박물관 - (친구네 농장) - 연지곤지 중식, 앞 카페 / 2025. 5. 7.
▷탐방후에
◐선성미정 조식
선성현 한옥체험관 앞쪽에 위치한 식당이다.
식당 내부는 정갈한 편이다.
60명 정도는 수용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이면 앞쪽 회관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집 메뉴
◐퇴계태실
도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퇴계태실에 왔습니다.
성임문(聖臨門) 편액을 달았습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건물이 노송정입니다.
현 목재의 재질도 잘 늙어 깔끔합니다.
안동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 / 국가민속문화유산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은 퇴계 이황의 조부 이계양이 조선 단종2년(1454)에 지었다.
이계양이 봉화현 교도(고려.조선 시대에 각 지방의 교육 기관에 파견하던 교관, 교수관이 없는 학교에 생원, 진사로 임명하였다.)가 되어 부임지로 가는 길에 온혜리를 지나면서 산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중턱에 앉아 쉬다가 지나가는 승려와 온혜의 풍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함께 마을로 내려왔는데 스님이 주변을 살피다가 낮은 구릉 기슭의 빈터를 가리키며 "여기에 집은 짓고 살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계양이 노송정 종택을 짓고 대대로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후에 퇴계가 1501년 이 집 몸채 한가운데 있는 튀어나온 방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퇴계태실로 부르게 되었다.
본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형이다. 본채의 중앙에 세 면을 계자난간으로 둘러 누각 형식으로 독특하게 꾸민 곳이 '퇴계태실'이다.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어 큰사랑과 작은 사랑이 분리되어 있는데, 마루 윗쪽에 온천정사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본채 동쪽에는 'ㅡ'자형 건물인 노송정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쪽에 사당이 있다. 대문은 성림문이라고 한다.
온혜파 종택은 20세기 중반에 고쳐 지어졌다고 하나 전체적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모습을 지닌다. 특히 태실과 같은 독특한 방은 상류 주택의 한 면을 보여준다.
본래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60호 "퇴계 태실'로 지정되어 있었다. 2018년 11월에 '안동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 민속 문화재로 등급이 올랐다.
이곳 생가의 건물은 조금 다릅니다.
태실이 중앙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우측엔 마루가 있습니다.
대청마루에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많은 상입니다.
퇴계선생태실
사진에선 구분이 잘 안되지만 태실은 돌출되어 있고 사방이 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사당입니다.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수형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퇴계 생가를 둘러보고 노송정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山南洛閩(산남락민 / 물이름 락(낙), 종족이름 민)
산남쪽에 낙읍과 민을 말한다고 한다. 낙읍은 정호, 정이 형제가 태어난 곳이고, 민은 주자가 태어난 곳이다.
그러므로 이들 현판은 퇴계선생이 동방유학의 최고봉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해동추로(海東鄒魯)는 해동, 즉 조선의 맹자와 공자가 태어난 곳이라는 설명이며, 이황 선생을 중국의 공자와 맹자에 비겨 추앙한 것이라고 한다.
구암(龜巖)은 퇴계의 12대 후손인 이홍중선생의 호입니ㅂ다. 퇴계선생의 부친 묘소 인근에 있는 구암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지간(芝澗/ 산골물 간)은 퇴계의 14대 후손인 이종도선생의 호라고 합니다.
퇴계생가 앞집 건물입니다.
위 사진의 집입니다.
◐고산정
고산정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수십길 절벽 우측에,
고산정이 있습니다.
조금 위치를 이동하였습니다.
다리를 건너 고산정까지 갈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건너다 보는 것으로 대합니다.
고산정 / 경상북도 유형무화재
고산정은 정유재란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바 있는 성성재 금난수의 정자아다. 안동팔경의 하나인 가송협의 단애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자의 주위에는 외병산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낙동강의 상류인 가송협의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고산정은 정면 3킨,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자연석으로 축대를 높게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얕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였다. 주두(柱頭)의 상부에는 보아지를 끼웠으나 외부에는 초각(草刻)을 하지 않고 내부에만 초각을 하였다.
<민족문화대사전에서 발췌>
멀리서 바라본 고산정입니다.
◐농암종택과 분강서원
농암종택에 왔습니다.
농암선생고택 편액을 달고있습니다.
농암종택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집이며, 직계자손들이 650년을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집이다. 최초 이 집을 지은 분은 영천이씨 안동입향시조 이헌으로, 선생의 고조부이다. 군기시소윤 벼슬을 했다. 고려말 영천에서 서울로 내왕하다가 이 곳 산수를 사랑하시어 그대로 복거하였다. 자손들인 이분으로부터는 23세손, 선생으로부터는 18세손까지 내려왔다. 농암선생이 '불천위'로 모셔졌기에 '농암종택'으로 부른다,.
종택은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긍구당'은 1370년 전후, 이헌이 지은 건물이며, 명농당은 1501년 선생 나이 44세 때 귀거래의 의지를 표방하고 지은 집으로, 벽 위에 귀거래도를 그렸다.
종택과 분강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은 여러 종류인데, 특히 1526년에 그린 '분천헌연도(보물1202)는 선생 당시의 풍광이 잘 나타나 있다. 바깥마당에 거목의 홰나무가 있어 이를 구인수라 불렀다. 그 연유는 선생 당시 아들, 사위 등 9남매가 벼슬을 하여 수연을 하기 위해 모이면 이 나무에 그 인끈 9개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또 마당에는 옥인석, 금상석이리는 우아한 4각형의 단아한 바위가 있었고, 명농당 앞에는 영금당이라는 아담한 연못도 있다. 그러니까 종택 건물 역시 긍구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니 600년의 역사는 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1544년 신재 주세붕선생이 청량산을 가던 도중에 선생을 예방했는데, 그때 선생과 농암종택을 묘사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농암을 분강가로 찾아뵈오니, 공이 문밖까지 나와 맞이했다. 방에 들어가 바둑을 두니 곧 술상이 나왔다. 공의 아들 문량은 자가 대성인데 모시고 있다가 축수의 노래를 불렀다. 나와 대성이 일어나 춤을 추니 공이 또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이때 공의 춘추 78세로 내 아버지의 연세여서 더욱 감회가 깊었다. 공의 거처는 비록 협소했으나 좌우로 서책이 차 있으며, 마루 끝에는 화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담 아래에는 화초가 심어져 있었고, 마당의 모래는 눈처럼 깨끗하여 그 쇄락함이 마치 신선의 집과 같았다."
지금 종택의 사랑마루에는 선조임금이 농암가문에 내린 '積善적선'이란 어필이 걸려있다. 크기가 무려 1m나 되는데 선생 아들 매암 이숙량이 왕자사부의 벼슬을 받아 선조임금께 나아가 사은숙배하니 임금이 "너의 집은 적선지가가 아니냐"하시고 즉석에서 써서 하사했다. 선생의 효와 경로정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었다. 그 밖에도 종택은 33점의 보물과 2점의 지방문화재를 포함한 5천여 점의 전적과 고문서 등의 유품을 최근 국학진흥원에 기탁하여 그 목록집이 발간된바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긍구당(肯構堂 / 즐길 긍, 얽을 구) 유형문화유산
긍구당은 조신 시대의 학지이자 문신인 농암 이현보(1467~1555)가문의 종택에 속한 별당이다. 이 건물은 원래 영천 이씨 집안의 안동 입향조인 이헌이 고려 후기에 처음 건축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현보 당시에 너무 낡은 상태였는데 아들 이문량이 다시 고쳐지었다. 본래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에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다가, 농암 유적지를 정비하면서 200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다시 지었다. 현재 농암 종택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종택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긍구당이라는 이름은 이현보가 <서경>의 한 구절에서 취해 지은 것으로, 여기에는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흘히 하지 말고, 오래도록 이어받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면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신잠이 썼다. 긍구당은 'ㄴ'자형의 건물로 기단을 2단으로 높게 만든 후 건물 전면에는 누마루를 두고, 뒤에는 온돌방과 마루를 둔 구조로 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명농당
분강서원
분강서원
현대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동재와,
서재.
사당
사당
관리사 인 듯,
관리사도 체험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 하다.
분강서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으로 강의 수량이 적을때는 건너갈 수 있겠다.
비각
사당구역
농암종택과 분강서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세계유교박물관
안동댁 수고않았습니다.
◐ 곤지곤지
안동시내 외곽의 음식점입니다.
돌솓밥으로 유명한 집인가 싶습니다.
중식후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차한잔 하고 내년 청주에서 만날것을 약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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