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 중원미륵리 사지
월악산 국립공원내에 위치한 송계계곡은 맑은 물과 숲으로 인해 특히 여름철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다.
자연대, 월광폭포, 학소대, 망폭대, 수경대, 와룡대, 팔랑소 등 송계팔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월악산, 만수봉,
포암산, 월항삼봉, 마역봉, 신선봉, 북바위산 등 크고 작은 명산과 덕주사, 미륵리사지등의 관광지가 있다.
▷ 가는 길
충주 수안보 / 한화 리조트 및 서울시공무원 연수원
▷ 일정 (2013. 4. 14)
한화 리조트 1박 - 충주호 / 벗꽃축제 - 서울시 공무원 연수원2박 - 송계계곡 및 미륵리사지
▷ 탐방후에
△ 중원 미륵리사지
중원 미륵대원지는 옛기록에 전하는 계립령과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북향으로
펼쳐진 사지로,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 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 남아 있다.
미륵리사지는 사적 제317호로 1987년 7월 10일 지정되었으며, 이 미륵리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습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의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10.75m의 넓이
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
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된 반축조석굴입니다. 모든 조영계획은 석굴암을 모방하였고 규모가
웅장한 반면에 퇴화과정이 역력한 석굴이라 하겠습니다.
1982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발굴한 바 있으나 확실한 년대는 알 수 없고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
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 이었습니다.
< 충주시청 문화관광과>
△ 당간지주
입구 우측편에 모아 두었다.
△ 미륵대원리 석조귀부.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좌측(동쪽)에 위치하며
북향(北向)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거북모양 비석 받침돌이다.
△ 이곳에 본래부터 있었던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조각한 비석 받침으로,
이 절터의 내력을 적은 사적비를 떠받치기 위하여 조성된 듯하나 현재 비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제작시기와 용도를 확인할 수 없으며 뒷면 일부의 조각이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품이다.
△ 화강암으로 조성된 거북이 등에는 비를 세우기위해 파놓은 홈이 있고,
머리와 다리가 힘차게 표현되었으며,
왼쪽 윗면에는 새끼거북 2마리가 귀엽게 조각되어 있다.
△ 미륵대원리 사각석등.
고려 초기에 세워진 석등으로 추정되며 크게 기단부, 화사석, 옥개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일부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원래는 평면 사각형의 판석형 석재가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석은 투박한 복판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연화문은 대형으로 새겨져 있지만 치석 수법이 정연하지 못하고
다소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앙련문을 표현하였는데, 하대석에 비하여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연화문은 복판으로 각 면이 가
운데 배치된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나가는 형상으로 표현되어 하대석과 대조를 이룬다.
화사석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모서리마다 원주형 기둥을 세워 옥개석을 받치도록 했다.
상륜부는 현재 사각형 받침대가 올려져 있고 나머지 부재들은 결실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
호하며, 간주석과 화사석은 독특한 치석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미륵리 사각석등은 전형적인 석등 양식
에서 다소 벗어난 이채로운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화사석은 고려시대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으로 고려시대 개경 일대에 건립된 사찰에서 확인되고 있다.
< 충주시청 문화관광과>
△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은 보물 제 9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불입상은 보관까지 합하여 모두 6개의 돌을 쌓아 올려서 하나의 거대한 불상을 구성하고 있다. 육계에 나발이
있으며 양귀는 큼직하게 만들었으나 어깨에 닿지는 않는다. 상호는 둥근편이며 미간에는 큼직한 백호가 있고 눈섭
은 반원형이고, 눈은 약간 솟아 오른 듯한 눈두덩 아래에 가느다랗게 반개한 듯한 직선형이다. 코는 알맞게 표현되
었으며 입술은 두꺼운 편이며, 굵은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인데 옷주름 등은 약식화한 경향이 뚜렷하다. 상호에 비해 어깨등이 위축 되었음을 느끼게 하며, 어깨
에서 발끝까지가 거의 같은 폭으로 내려오는 등 인체묘사에 충실하지 않아 몸체에 비해 얼굴에 많은 정성을 들인
것 같다.
팔은 형체만 겨우 살렸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손등을 보이게 했으며 왼손은 오른손 아래서 손바닥을 위로하여
가볍게 무엇인가를 쥐었다. 위에서 흘러내린 옷 주름은 무릎부분에서 좌·우측면으로 약간씩 돌아갔으나 불상의 뒷
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발은 좌대 위에 나란히 놓였는데 몸체에 비해 작은 편이다.
미륵불 건립에 대해서는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확실히 알수 없지만 삼국유사에 미륵대원등
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연선사가 살았던 그 전에 만든 것으로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서러워하여 이곳까지 와서 이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
고 그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 충주시청 문화관광과>
△ 미륵리 5층석탑 (보물 제95호)
이곳에는 고려시대의 석불입상이 있을뿐 아니라 이 석불을 위해서 석굴이 만들어졌던 자취가 있어 주목되고
있으며 그 앞면에 석탑과 석등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현재 기단 아랫부분이 파묻혀있어 그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탑신부는 4각형 중층의 양식을 따르고, 중석은 자연석에 가까운 조잡한 4각형 돌로 우주나 탱주의 표현은 되
어 있지 않다.
갑석은 매우 좁은 2장의 판석으로 덮였고 밑에는 형식적인 부연이 있으며 윗면은 경사가 뚜렷한데 중앙에 역
시 형식적인 몰딩이 있다. 탑신부는 1층 옥개석이 2장일뿐 옥신이나 다른 옥개석은 모두 1장의 돌로 되어있다.
각 층의 체감 비율도 고르지 못해서 매우 엉성해 보인다. 옥개석은 일반형 석탑의 옥신과 옥개석 비례를 무시
하고 너무 좁아졌기 때문에 미관을 아주 손상시키고 있다. 받침은 각층이 5단이지만 추녀가 짧기 때문에 6단
받침같이 보일 정도이며, 추녀밑은 수평이고 옥상의 경사는 매우 급한데 전각의 반전도 거의 없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 발만 남아 있으며, 노반은 5층 옥개석의 크기에 비하여 6층 옥개로 잘못 알 정도로 큼직
하고 복발은 조식이 없는 반구형이다. 꼭대기에 남아있는 철제찰간이 희귀한 유례이다.
< 충주시청 문화관광과>
△ 미륵리 사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서인지,
대웅전과 요사채는 계곡 우측으로 우측으로 위치하고 있다.
△ 박쥐봉?
줌으로 조금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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