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일상들

산청 유람 / 동의보감촌, 남명 기념관, 예담촌, 겁외사

정헌의 티스토리 2016. 2. 16. 22:04

■ 산청유람

 

직장 동료들과 산청 투어를 했다.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자기 지역을 좀더 알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지역 문화유산 해설사 세분의 지역별, 분야별 성의있는 설명을 곁들였다.근데, 철학적일수록, 개념적일수록 대충의 기억은 있어도 금새 잊어버린다.

마침 2015.10.28일자 조선일보에 연재된  "박종인의 땅의 역사"중 산청편을 스크랩 해둔게 있다.

이분은 지역과 인물을 연계시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대체로 꼬박꼬박 읽어보는 편이다.

              

                                

경상남도 산청은 촌이었다. 서울에서 여섯 시간 걸리는 불편한 교통에다 특산물이라곤 지리산에서 나오는 산나물 정도? 땅은 600㎢인 서울보다 근 200㎢가 넓은 794㎢요, 인구는 지금도 3만5000명 정도다. 보이는 풍경이라곤 사방을 에워싼 고산준령뿐이라 군이름도 뫼 산에 맑을 청 산청(山淸)이었다. 2005년 12월 대전-진주고속도로 개통으로 천지가 개벽했다.촌동네 산청은 서울 에서 3시간이면 닿는 청정 자연으로 말머리가 바뀌었다. 청정 약초로 신분이 급상승했다.

1박 2일은 예사였던 지리산 천왕봉 등정이 산청에서는 당일 등반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보였다. 산나물 뜯어 먹던 촌구석, 그 고단한 표정 뒤에 숨어 있던 장구한 역사가. 옆 마을 거창에서 산청으로 시집온 이 여자는 "몰랐던 내 뿌리를 산청에서 찾았으니 뼈는 산청에 묻겠다"고 했다. 여자 이름은 김은주다.

 

     .............  중     략  ......................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이 난 곳도 산청이요, 근대 선승의 표본인 성철 스님 탄생지도 산청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유학자 남명 조식이 은거하며 제자를 기른 곳도 산청이다.

무형문화재 목조각장 108호 목아 박찬수도 산청 사람이다.

이들이 남긴 흔적은 모두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목적지로 변했다.

사람을 보니 산청이 보인다.

수수께끼의 인물 구형왕에서 왕을 찾는 여자 김은주, 그리고 산중으로 들어온 의사 김종권까지 모두 산청이다. 

 

 

 

▷탐방코스

동의보감촌 - (구형왕릉/ 조선일보 박종인의 땅의 역사 산청편 ) - 남명기념관 - 예담촌 - 겁외사.

(초행이라면 이외에 대원사, 내원사와 주변 계곡을 곁들이면 좋다)        

 

 

▷ 탐방후에 (2016. 2. 13)  

 

▣ 동의보감촌.

 

구형왕릉에서 10분 거리에 동의보감촌이 있다.

연전에 소설과 드라마 '허준'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소설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의 고향이 산청임을 근거로 만든 거대한 한방 테마공원이다. 지리산에서 나는 질 좋은 산청 약초 명성도 한몫했다. 박물관, 약선식당, 산책로, 공원, 휴양림, 체험관 등 여행지로 손색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기록이든 설화든 지명이든 어디에도 유의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허준보다 백 년 늦게 생초면에 박애주의 의사 유이태가 살았다. 동의보감촌 홈페이지에도 유의태 대신 유이태가 소개돼 있다.

 

............. 박종인의 땅의 역사 중에서,  이하 생략 ..............

 

 

 

 

 

 

 

기(氣)란 무었인가 ? 

 

氣의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농경사회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필요가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서인 ≪설문해자 設文解字≫는 기를 운기(雲氣), 즉 구름이라 풀고 있는데, 은·주시대 이전부터 기는 바람이나 구름을 포함한 기상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기상과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천기(天氣)와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가 결합하여 곡물이 생장한다. 동물은 식물의 생명력을 소화·흡수의 과정을 거쳐 활동력으로 삼는다고 고대인들은 생각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기천문.

 

氣는 이렇게 해서 생태계 일반을 두루 관통하고 있는 우주적 생명력을 뜻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 역시 氣의 흐름이었다.

그것이 피의 순환과 연관된다고 보아 혈기(血氣)라 했고, 호흡이 그 관건이라 보아 기식(氣息)이라 했다.

내적 생명의 상태는 자연히 밖으로 드러난다 해서 기색(色)·기분(分)·기품(品)이라는 표현이 있게 되었다.

글에서는 문기(文氣), 글씨에서는 서기(書氣)가 문제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동의전 현판을 달고있다.

당초 명칭이 등황전으로 계획되었으나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행사의 성격과 부합하기 위해 동의전으로 했다

우리나라 남한에서 목조건물로 경복궁 다음으로 큰 건물이라 소개되고 있다.     

 

 

질병은 체내에 있는 氣가 순조롭게 돌지 않을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한의학에서는 치료를 엉킨 氣, 막힌 맥(脈)을 소통시키는 행위로 이해한다.

한의학의 치료와 결합한 도교(道敎)는 기를 잘 기르고 보존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자면 재산이나 명예 따위의 세속적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생리적 필요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연금술과 호흡법을 개발시켰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동의 약선관과 뒷편 찻집

 

그런데 공자 이래 유가(儒家)의 생각은 달랐다.

생리적 욕구인 기는 오히려 다스리고 제어해야 할 대상이었다.

공자는 “혈기를 조심하라.”고 했고  순자는 “인간과 동식물에 공통된 힘은 氣이나,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이성으로 기를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맹자는 “의지가 굳으면 기를 움직일 수 있다.”고 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또 한편 순수한 감정과 도의적 자긍심을 야기(夜氣)·호연지기(浩然之氣)로 명명함으로써 논란을 예비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우측으론 전각전과 화장실이 있다.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와 도교가 치밀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기반으로 사상계를 풍미하게 되자, 유학은 예의범절을 익히고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포괄적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정비하여야 했다.

송대에 이르러 주돈이·정호·정이 그리고 장재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이기철학(理氣哲學)의 체계를 세운 사람이 바로 주희(朱熹)였다.

우리 나라에서 전개된 기의 사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의 이기론을 약술할 필요가 있다.

......... 이하 생략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앞쪽에 부석정,

 

인터넷 다음에서 기를 검색하면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따라서 氣는 그 범위가 넓고 깊어 일반인들이 쉽게 이야기 하기 어렵다.

그 범위를 인체에 한정한다 하여도 마찬 가지다.

 

 

 

 

 

 

 

이곳의 터 이야기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리산(智異山)은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여 지리산, 저 멀리 백두산이 흘러왔다 하여 두류산, 옛 삼신산(봉래산(蓬萊山:금강산)·영주산(瀛洲山:한라산)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이들 3산을 삼신산(三神山)· 삼선산(三仙山)이라고도 한다)의 하나인 방장산이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산청군 금서면 특리(特里. 특별한 마을)로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주산은 왕을 뜻하는 왕산(王山)이고, 우측은 문자적 힘이 결집된 필봉산(筆峰山), 좌측은 왕이 거쳐하는 궁을 받친다는 망경산(望京山)으로 왕이 문무백관을 거느린 형국이다.

이곳의 터는 백두대간 기맥 끝자락의 응결된 단전자리로 3개의 혈자리가 있다.

하늘의 별자리와 같아서 일명 자미원(紫薇垣) 터라 할 것이다.

첫번째 혈자리는 명혈(明穴)이다, 생기가 있는 혈자리로 우주의 거울과 같다. 비출수록 천기를 얻는다고 하여 예부터 이러한 터를 하늘의 뜻처럼 윤회고(輪廻苦)를 풀고 채우는 자연스러운 품위마저 얻게 된다는 곳이다, 석경(石鏡)을 세운 자리이다.

두번째 혈자리는 기맥의 기운이 큰 용을 꽈배기처럼 꼬아 두르고 진행하여 합세된 힘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통파혈(通派穴)이다. 귀감석(龜鑑石)을 세운 자리이다.

세번째 혈자리는 탄파혈(灘派穴)로 반딧불이 별이 되는 자리이다.셍명을 파괴하는 주역 64번째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를 다시 되돌려 사람을 살릴수 있는 주역63번째 괘인 수화기제(水火旣濟) 상이 맴도는 곳이다. 당초 이곳에 복석정을 세울 계획이였지만, 엑스포 행시시 동의전 광장 활용을 위해 세우지 못하고 복석정은 동의전 앞 동쪽에 세웠다.

3개의 혈자리에 세운 삼석인(석경, 귀감석, 복석정)에 관한 설명은 삼석인이 세워진 곳에 있다.

                                          

 - 민홍규의 "터" 중에서 -

 

 

 

 

 

 

        

 동의전 뒷편에 귀감석이 있다.

 

기천문을 들어서면 대체로 먼저 찾는 곳이다.

위에서 말한 두번째 혈자리이다.

 

 

 

 

 

 

 

맨윗쪽.

우에서 좌로 천하귀감의 글자를 볼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민향식님과 함께 했다.

현 전국 해설사협회장을 겸하고 있다.

산청 생초에서 농사짓고 산지 60여년, 이젠 기 전문가가 되었다.

 

 

 

 

 

 

 

 기 체험이다.

 

귀감석(통파혈) 앞에서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의 오링 테스트도 해보고,         

목덜미 지압?

목덜미 부드럽게 맛사지, 엄지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듯 어깨 주무르기, 어깨부분 지압 등등 후에 오링 테스트도 해 본다,

경락과 혈, 침과 뜸 그리고 약제 처방 등

동의보감촌을 찾을 때는 한방과 기에 대한 관심을 더하면 찾음의 기쁨이 배가 된다.

          



 

              

 

 

머리 정수리에 손바닥으로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 후 손을 뗀후 오링테스트를 해본다.

전.후가 다른 것 같다.

 

 

 

 

 

 

 

이곳은 기가 모여 있는 곳,

30여분 이상

주변에 머물며 기를 받고 가시라.

이참도 이곳에서 기를 받고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었고

이재근 전 군수도 이곳에서 기를 받아 2013 한방바이오엑스포를 유치했다. 

 

 

 

 

 

 

 

두번째 기 체험을 할수 있는 석경으로 간다.  

동의전 뒷편의 언덕 위에 있다.

             

 

 

 

 

 

 

동의전 우측 뒷편,

돌계단을 따라 오른다.

 

 

 

 

 

 

 

안개 자욱한 곳에 사재정(思齎亭) 금빛이 은은하다.

 

 

 

 

 

 

 

석경(첫번째 혈자리로 명혈이다.)

 

이곳에서는 하늘의 기를 머리로 받는다.

석경의 기운은 자신을 돌아보고 나쁜 기운은 내보애며, 재생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오링테스트

 

 

 

 

 

 

 

 

 

 

 

 

 

 

 

 

의전 좌측 뒷편으로 내려온다.

부정이 정이 되려다 들통나 곤욕을 치렀다.

차와 약초과자. 

나무향 은은한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 좋다.

 

 

 

 

 

 

 

오늘 따라 안개가 심하다.

 

 

 

 

 

 

 

 

세번째 기체험.

 

 

 

 

 

 

 

 

복석정 (福石鼎)

정자亭이 아니라 솥鼎자 이다.

따라서 복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풀이하면 되겠다.

                

 

 

 

 

 

 

기체험장에서 산책로를 따라 박물관으로 간다.

오늘 일정은 동의보감촌을 두루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기 체험과 박물관 관람으로 한정한다.

 

 

 

 

 

 

 

단군신화의 호랑이와 곰,

지리산 천왕봉 높이를 100분의 1로 축소한 19.15m의 침탑을 지난다,

 

 

 

 

 

 

 

박물관으로 간다,

 

 

 

 

 

 

 

 

은밀한 곳을 지난다.

 

약탕기 속에는 무었이 들어있는가?

허리 밑을 비추는 가로등이니 당연히 전구가 들어있다.

우리말로 유머를 더하니 불알이 된다.

 

 

 

 

 

 

 

 

조그만 연못가에 신의정이 있다.

 

 

 

 

 

 

 

 

 

 

 

 

 

 

 

 

 

전통한방테마파크.

 

 

 

 

 

 

 

한의학 박물관 내부이다.

 

 

 

 

 

 

 

동의보감.

 

25권 25책.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여 1613년 내의원에서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 목활자로 첫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 이 책은 원래 1596년(선조 29)에 태의 허준이 왕명을 받아 유의(儒醫)인 정작(鄭碏)과 태의 이명원(李命源)·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찬집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그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여 계속 편집하도록 하였으며, 내장방서 500권을 내주어 고증하게 하였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여 1610년에 마침내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백성을 위한 처방이 담겼다.

 

당시 당약은 너무 비싸서 일반 백성은 죽을병에 걸려도 약 한첩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당약 완첩 3.7g의 가격을 쌀10말로 비교하였다.

따라서 한가지 약재를 써서 병을 치료하는 단방처방을 담아 값싼 약재로도 효과를 볼수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면 배울게 많다.

 

 

 

 

 

 

 

정, 기, 신.

 

 

 

 

 

 

 

 

 

 

 

 

 

 

 

내 손안에 건강이 있다.

 

 

 

 

 

 

 

기지개,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자.

기의 흐름에 좋다.

가슴을 두드리는 것도 좋다.

 

목을 좌 또는 우로 돌려 시야의 범위를 확인하고,

손끝에서 손목까지 여러 종류의 박수를 친후 좌우 시야 범위를 확인해 보자.

박수의 효능을 체험할수 있다.

 

 

 

 

 

 

 

 

 

 

 

 

 

 

 

휙 둘러보고 나왔다.

찬찬히 둘러보면 많은 것을 배울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으로 오름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트.

 

 

 

 

 

 

 

 불로문

 

 



 

 

 

동의보감촌에는 몇군데 음식점이 있다.

 

상부 동의전 옆의 동의약선관과 아랫쪽 주차장 주변에 3군데 음식점이 있다.

약초와 버섯골,

많이 알려진 집이다.

 

 

 

 

 

 

 

이웃하여 산삼마을이 있다.

 

 

 

 

 

 

 

 그 옆에는 찻집.

 

 

 

 

 

 

 

산청각,

한우고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곰국 판매도 한다.

         

 

 

▣ 전 구형형왕릉

 

                         

입력 : 2015.10.28 03:12   

 

왕산 골짜기 수수께끼의 돌무덤
산청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923m짜리 산 이름은 왕산(王山)이다. 계곡이 아름다워 연중 사람이 몰린다.
등산로 초입에 돌무지가 있다. 크고 작은 잡석으로 일곱 층을 쌓은 높이 7.15m짜리 거대한 돌무더기다. 주변에는 높이 1m 정도로 돌담이 둘러쳐 있다. 4층 정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벽으로 막혀 있어 그 속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은 하늘만 남기고 온통 숲에 에워싸인 돌무더기는, 새벽부터 밤까지 신비롭다. 사적 제214호다. 그 앞에 서 있는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駕洛國讓王陵 (가락국양왕릉)

 

     

경남 산청 깊은 골짜기에는 돌무덤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가야국 마지막 왕 구형왕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김은주는 매일 아침 왕릉을 찾아 경배를 한다. 역사와 무관하게 살던 그녀는 지금 김해 김씨 덕양전 가락국역사관 관장이다.

 

경남 산청 깊은 골짜기에는 돌무덤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가야국 마지막 왕 구형왕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김은주는 매일 아침 왕릉을 찾아 경배를 한다. 역사와 무관하게 살던 그녀는 지금 김해 김씨 덕양전 가락국역사관 관장이다. / 박종인 기자

가락국은 삼국시대 신라에 복속된 가야를 이르고, 양왕은 '나라를 바친 왕'이니 신라에 항복한 가락국 마지막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삼국사기 법흥왕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법흥왕 19년(서기 532년) 금관국의 왕 김구해가 왕비와 세 아들인 맏아들 노종, 둘째 아들 무덕, 막내아들 무력과 더불어 자기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임금이 예를 갖추어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직위를 주었으며, 금관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김구해, 즉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부다. 전하기로, 구형왕은 "적에게 나라를 바친 왕이니 돌무더기에 묻으라"고 유언하고 죽었다. 그런데 돌무덤의 공식 명칭은 구형왕릉이 아니라 '전(傳) 구형왕릉'이다. 전하기로 구형왕릉이라고 카-더-라는 뜻이다. 왕릉으로 인정할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했다는 기록뿐, 어디에 묻혔다는 이야기는 없다.그래서 1971년 돌무덤이 사적으로 지정될 때 이름 앞에 전(傳) 자가 붙었다. 하지만 산청 사람들은, 그리고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 사람들은 산청 왕산 기슭에 있는 이 돌무덤이 구형왕의 왕릉이라고 믿는다.

.................. 이하 생략 ............

 



 

▣ 남명 조식선생 유적

 

시천면 소재지로 이동한다.

함양의 금대산, 삼봉산이나 오도재에서 지리산 조망은 지리산 북쪽면이다. 

지리산 동쪽 조망은 덕산이 으뜸이다.

구태여 산에 오르지 않아도, 사람 사는 마을에서 조망이 좋다.

 

 

 

 남명선생시비

 

 덕산 시냇가 정자 기둥에 쓴다.

 

 천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없다오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으리. 

 

 

 

 

 

 

 

 산천재를 둘러본다.

 

 

 

 

 

 

 

산천재,

동재,서재

서재는 없다.

어떤 분은 지리산 천왕봉이 서재라고도 한다.

 

  

 

 

 

 

 

 산청 삼매중의 하나인 남명매

 

 

 

 

 

 

 

 

 

 

 

 

 

 

 

 

 

 

 

 

 

 

 

 

 

 

 

 

 

 

 

남명 기념관,

 

 

 

 

 

 

 

주로 남명관 해설을 맏고 계신다.

 

 

 

 

 

 

 

신명사도 (神明舍圖)

 

신명사는 마음의 집이라는 뜻으로 신체안에서 내적으로 마을을 잘 다스리는데  필요한 것이며 성리학에서 말하는 敬이다.

그런데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눈, 귀, 입을 통해 보고, 듣고,말하는 것을 잘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가 사물이 만났을때 스스로 성찰하고 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사람의 정신 세계를 눈과 귀, 입 등과 관련하여 한장의 도해로 표시하였으니 그 해석 무궁무진하다.

 

 

 

 

 

 

 

경의검,

진본은 분실되었고 모조품이다.

 

 

 

 

 

 

 

성성자.

 

 

 

 

 

 

 

서한,

내용은 모르지만 글씨가 예술이다.

 

 

 

 

 

 

 

남명 문하생들의 의병활동

 

 

 

▣ 남사예담촌

 

남사 예담촌 바로가기 : http://yedam.go2vil.org/

마을내 대표적인 건물로는 이씨고가, 최씨고가, 사양정사, 사효재를 들 수 있으며 옛 담장과 100년 소나무, 300년 회화나무, 600년 감나무, 700년 매화나무를 들수 있다.

남사천 건너로 기산 박헌봉선생 생가와 국악전수관이 신축되어 있고, 니사재, 산책로를 따라 유림독립기념관과 이동서당 등등이 있다.

 

 

 

사양정사.

이 집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후손이다.

              

 

 

 

 

 

 

샛문을 지나면 안채라 할수있는 선명당이 있다,

사양정사 앞쪽의 하씨고가에서는 소나무, 감나무,매화나무를 볼 수 있다.

 

 

 

 

 

 

 

 최씨고가 대문은 사랑에서 본다.

 

 

 

 

 

 

       

곳간, 화장실 등

 

 

 

 

 

 

 

 

 

 

 

 

 

 

             

문과 창의 차이

 

 

 

 

 

 

 

이집에도 매화나무가 있다.

 

 

 

 

 

 

 

차근 차근 남사마을을 둘러볼려면 두어 시간은 금새이다. 

 

 

 

 

▣ 성철스님 생가 및 겁외사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대전 통영선 고속도로와 이웃해 있다.

 

 

 

 

겁외사를 둘러본다.

 

절의 배치는 여느 절과 조금 다른다.

정면에 생가가 있고, 대웅전은 좌측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대웅전 외벽의 벽화도 성철스님 일대기이다.

 

 

 

 

 

 

 

어느절에 동상이 있던가?

부도? 탑인가?의 일종으로 보아야한다고도 해설사는 말한다.

 

 

 

 

 

 

 

 

 성철스님.  <산청군청 문화관광과 자료임> 

 

퇴옹 성철 큰 스님은 출가한 곳 해인사 백련암에서 1993년 10월 4일 7시30분 열반에 들었다.

그는 어지럽던 한국불교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가야산 호랑이었고 우리 한국 불교의 얼굴이었다.

타종교인들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부처님 오신날 방한을 스스럼없이 환대하였던 한국의 거인 그의 속관은 합천이씨로서 임천처사죽각광우의 11세손으로  1912년 2월 19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부율은공 이상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유가소생으로 일찍이 단성초등학교를 거쳐 진주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 전주이씨와 혼인하여 맏딸을 두고 젊은시절 사상적으로 방황하던 그는 불경에 이끌려 지리산록에 위치한 대원사에 참배하려 입사했다. 처자까지 거느린 그가 속인은 들어갈수 없는 탑전에 자리를 깔고 참수행에 들어간 것이다.

절집의 '룰'을 깨뜨린 셈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마간 실랑이가 벌어졌으나 굳은 집념은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해인사 백련암에 머물던 동산스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왔다.

 

 

 

 

 

 

 

여러 스님들이 그를 살펴보았고, 동산스님이 그에게 "중이되어라" 고 권했다.

동산스님은 그를 성철이란 법명을 주면서 머리를 깎였다. 그는 후일담을 "우습게 중이 됐어" 라고 했다.

그 때 나이 24살(1935년)이었다. 집에서는 맏아들의 출가에 대해 펄쩍 뛰었다.

그러나 그의 집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중이 안되면 내가 죽을 팔자라" 고 어머니와 아내에게 위협을 했다.

그 후 금강산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모친이 자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속세와의 단절을 위해 산위에 올라가 어머니를 접근 못하게 "후레자식" 처럼 돌을 던졌다고 한다.

모친은 한 수 더 떴다. "너 보러 안왔다. 금강산 구경하러 왔지" 라고 했다 한다.

 

 

 

 

 

 

 

 

큰 스님 그는 1984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한 것은 이기심 때문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퇴옹의 답변은 "출가란 조그마한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인 국가와 사회를 위해 사는게야 !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일체를 위해서 사는데 있는 이것이 불교의 참 사상이야" 라고 했다 한다.

 

 < 이상 산청군청 문화관광과 자료임 >

  

 

 

 

 

 

 

승철스님 기념관,

개관을 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앞 문이 닫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