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령 몇군데 / 칠효각, 망우당 생가, 세간리 현고수
미타산 산행후 귀가길에 들러본 의령 부림면 입산리의 칠효각,
유곡면 세간리 망우당 생가와 현고수(느티나무)이다.
▷ 가는 길
▷ 탐방후에
▣ 순흥안씨 칠효각
망우당 생가를 찾다가 이정표를 잘못보고 진행하다 보니 세간교 주변이다.
들머리 이정표를 보면 백산 안희재 생가. 입산리 탐진안씨 종택, 안호상고택 등등 믾다.
시간이 부족하여 입산리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리목에 있는 칠효각을 둘러본다.
귀가후 이 지역을 검색해 보니 마을 유래가 대단하다.
△ 부림면 입산리는 유곡천를 사이에 두고 경산리와 접하고 있다.
입산(立山)마을의 원래 한자 지명은 설산(雪山, 설뫼)인데 쉬운 토박이말로는 「설미」라고 불렀고 큰 도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있는 마을이 경산(景山, 볕뫼)인데 역시 쉽게 부르면서 「별미」라고 해 왔다.
두 마을은 안씨와 이씨, 정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이름을 두고 어느쪽이 좋다거니 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설미는 눈 온뒤의 산이 아무리 보기좋다해도 햇볕이 나면 녹아 버리고 마는 것이니 경산이 좋은 이름이라는등 부질없는
실랑이를 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설뫼마을 사람들이 눈(雪)대신 꼿꼿이 서다(立)라는 글자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의령군청 문화관광과 >
△ 순흥안씨 가훈
친척과 화목하라.
처음에는 한사람 같던 몸이 남처럼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몹시 통탄할 말이다.
친족이 남처럼 되었다면 그것은 서로 잊어버릴 지경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선조의 입장에서 이를 본다면 다같이 귀여운 손자 같을 것인데 어찌 소원하게 대할 것인가?
갈래가 비록 다르더라도 핏줄이 서로 이어지고, 사는곳 이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소식이 서로 닿아서 일년에 한번이라도
와서 한 뜰에 모이게 되면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니, 마땅히 돈돈하고 사랑하는데 힘쓰고 화목하
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정성껏 대접하고, 장점을 모아 단점을 보완하고, 어두운 점을 밝혀주고, 근심스러운 것을
도와주고, 멀어지는 것을 가엽게 생각하고, 어리석은 것을 불쌍하 여기고, 일가 친척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우리선조의
지극한 뜻을 받들도록 해서, 옛날부터 안(安)씨는 친족간에 화목하다는 칭찬이 다시 오늘에 들리도록 하라.
힘쓰고 또 힘써라.
△ 설뫼마을은 약 450년전(명종9년) 임란직전(1,550년경) 터를 잡고 세거(世居)한 탐진(耽津)안씨 집성촌으로
연육세(連六世) 8효자(八孝子) 정려를 받은 효행의 가문으로 시작하여 임란공신이자 중시조이신 지헌(止軒)
안기종 의병장 이후 근세(近世) 조선말부터 해방이전에는 독립유공자 세분을 비롯하여 제헌의원 등을 배출
하였고 초대 문교부장관도 나신 교목세가(喬木世家)이자 유서깊은 마을로 전통 한옥이 즐비한 부촌이자 명문
고촌이었고 또한 개화의 물결이 가장 먼저 들어온 개명마을이라고 알려져있다.
< 의령군청 문화관광과 >
△ 마을형성과정
입산마을에는 최초에 청도김(金)씨가 살았다고 하나 약 600년전 관향조(貫鄕祖)이신 탐진안씨 시조가 개성 장단에
사시다가 이성계 역성혁명(易性革命)때 창녕 영산으로 피난 하였으며, 다시 서울에서 3대로 관직에 봉직하다가
1,500년초에 경산 안골(內谷)로 이주하셨고 1,600년초에 한 고승의 예언에 쫓아 길지로 알려진 입산으로 이주하여
10대로 종가(宗家) 천석지기 부자집안으로 대를 이어온 마을이다.
<의령군청 문화관광과>
△ 유물유적
1.효행정려(孝行旌閭)
파조 헌납공이하 연6세 8자손 모두의 정려와 대를 건너 효자, 열부 도합 10분의 효행정려각으로
재호를 초기 7효 정려였기에 칠효각으로 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팔효각(八孝閣)이다.
2.이충각(移忠閣)
임란당시 곽망우당과 함께 의병장으로 활동하신 18장중의 한분으로 충익사에 봉안되신 지헌(止軒)안기종(安起宗)
의병장의 유허비각 이다.
3.건국유공자유적비(建國有功者遺跡卑)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받으신 수파 안효제 송은 안창제, 백산 안희제(예정) 선생의 공적비 건립등 앞으로
계속 충과 효행비를 건립할 곳이라 탐진안씨 문중의 효충원(孝忠園) 이라 부르고 있다.
4.상로제(霜露齊)
탐진 관향조의 파조 헌납공 재각으로 백산선생께서 1910년 사립 창남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던 유서깊은 곳이다.
5.고산서당(高山書堂)
영남의 구학 본산으로 270여년전에 설립한 곳이며 접장 유치명(柳致明), 이진상(李盡相) 공이 강학하였던 곳으로
수파 송은, 백산선생등 안씨 문중 자제들과 부근사람들이 수학하던 곳이다.
6.지헌고택(止軒古宅)
입산마을 입향조이신 지헌공의 고택으로 10대를 이어 천석을 하신 20대 대종가 집이다.
7.백산생가(白山生家)
지방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된 백산 안희제 생가이며 별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관리 되고 있음.
8.수파정(守波亭)
1883년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 및 흥해 군수를 역임후 독립유공 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으신 수파 안효제 추모 정사이다.
9.송은정(松隱亭)
1883년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 사가를 하신후 만주 망명지에서 독립유공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으신 송은 안창제 추모 정사이다.
10.안호상박사 생가(한뫼생가)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하셨고 국내 철학박사 1호로서 사후 의령출신으로 최초의 사회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 하신분의 생장지다.
11.의암생가(宜庵生家)
설산공의 아들이신 의암 안덕문의 생가로 의암문집 3책 1질의 제본 목판 150 여장이 전해지고 있다.
12.근산생가(槿山生家)
의령출신 재헌국회의원이시며 안호상박사의 사촌이신 안준상(安駿相) 전의원이 생장하신 생가이다.
13.만세공원(萬歲公園)
마을입구 버스길에서 마을로 가는 중간 논들가운데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곳이 기미년 만세를 불렀던
자리라 그 뜻을 기념 하기 위하여 세운 나무인데 수령 80년을 헤아리고 있으며 지형은 농로 개설과 경지
정리로 들 복판이 되어 버렸다.
<의령군청 문화관광과>
△ 칠효각, 창열각, 창효각.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강려하기 위해 효장, 충신, 열녀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것을 말한다.
입구의 순흥안씨가 탐진안씨?
순흥안씨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이다.
고려 신쫑(신종 1197-1204)때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냈으며 흥령현(興寧縣, 경북 영주 순흥의 별칭)에 살았으므로
본관을 순흥이라 하였다. 대표적 인물로 안향(주자학의 대부), 안창호(독립운동가) 등이 있다.
탐진안씨의 시조는 안원린(安元璘)이다.
고려시대 정당문학 검교중추원사를 역임하고 탐진군에 봉해졌다.
그는 순흥안씨 시조 안자미의 7세손 3형제(안원승, 안원형, 안원린) 가운데 안승원은 순흥안씨를 계승하고 안원형은
신죽산안씨, 안원린은 탐진안씨의 시조가 되었다.
▣ 망우당 생가
큰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던 현고수 뒤편의 망우당 곽재우 생가터에는 최근 조선초기 건축양식으로
안채 등 7동의 건물과 부대시설을 갖춘 정겹고 아담한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 유곡면 세간리 곽재우장군 문화공원이다.
세간리 마을앞의 다리를 건너가면 직진 세간리 현고수, 우측으로 망우당 생가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 2층 누각엔 큰 북이 있고,
△ 몇군데 품위있는 시도 있다.
△ 증 주인
창 앞에선 서늘한 솔바람 소리 언제나 들려오고
섬돌 아래선 물에비친 둥근 달 그림자를 늘 볼 수가 있네.
날마다 몸이 한가롭고 마음또한 고요하니
평생토록 높은 벼슬자리 부러워하지 않으리.
△ 복원된 생가를 둘러본다.
△ 곽재우 의병장은 본관은 현풍이고 호는 망우당, 시호는 충익이다.
이곳 세간리는 외가곳으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된다.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쟁발생 9일만에 이곳 세간마을에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다.
가동(가동) 10여명에서 출발한 그의 의병부대는 첫 전투인 5월4일 기강전투와 5월하순 정암진대첩 승리 이후로
군세가 급격하게 늘어나 2,000여명에 달하였다.
△ 장군은 백마을 타고 항상 붉은옷(紅衣)을 입고 선봉에서 전장을 누볐으므로 천강홍의장군으로 불리었다.
정유재란때는 밀양, 영산, 창녕, 현풍 등 4고을을 군사를 이끌고 화왕산성을 지켜 적의 접근을 막았다.
△ 유곡찰방과 성주목사, 경상우도방어사, 경상좌도병사, 한성부좌윤, 삼도통제사 등 29회에 걸친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대부분 사직하거나 부임하지 않았다.
1617.4.10 강사에서 66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활달한 필체에 글씨. 시문에 능하였으며 문집으로 망우당집이 있다.
△ 이곳 생가는 조선중기 일반사대부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로
안채와 사랑채, 별당, 큰 곳간채. 작은 곳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5년에 복원 정비되었다.
△ 세간리 은행나무.
지정번호 : 천년기념물 제 302호
지정일자 : 1982. 11. 4.
소 재 지 :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808-2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 24.5m, 둘레 9.1m정도이다.
마을의 동편 의병장 곽재우 생가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현고수(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로 믿어지고 있다.
특히 남쪽가지에서 자란 두개의 짧은 가지(돌기)가 여인의 젖꼭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
들이 찾아와 정성들여 빌면 효력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 세간리 현고수
지정번호 :천년기념물 제 493호
지정일자 : 2008. 3. 12.
소재지 :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736- 1
△ 의령 세간리 현고수는 유곡면 세간마을 앞에 위치하고 있는 느티나무로,
나이는 5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5m, 둘레는 7m이다.
△ 이 느티나무가 현고수(懸鼓樹)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25년(1592년) 4월 13일 왜적이 부산포로 침입하자 당시 41세의 유생이었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義兵)을 모아 훈련을
시켰다고 하여 이 때부터 느티나무보다는 현고수로 불리며 뜻있는 이들의 아낌을 받아 왔다.
△ 미타산 산행후 귀가길에 둘러본 세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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