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청평사 가는 길
청평사는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에 있다.
육로로 가는 길도 있지만 꼬불꼬불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대체로 소양강 댐을 건너 배편으로 간다.
뒷편에 유명한 오봉산이 있어 산행과 연계하여 찾는 경우가 많다.
▷ 가는 길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천리 소양강댐 주차장
▷ 탐방후에 ( 2016. 7. 3 )
▣ 소양댐
△ 소양강댐이다.
저수율이 낮아보인다.
크게 볼것 있는 곳은 아니지만 청평사 가는 배편이 있고, 유람선도 있다.
△ 청평사 가는 배편은 매 30분 마다 있다.
요금은 1인당 편도 3,000원, 왕복엔 6,000원이다.
청평사 입장료 1인당 2,000원은 별도로 청평사 입구에서 받는다.
△ 유람선이다.
△ 주변,
△ 청평사 선착장간 오가는 배인것 같다.
크기는 이와 비슷하다.
△ 저만큼 청평사쪽 선착장 이 보인다.
소양댐 선착장에서 청평사 선착장 까지는 약 12-3분쯤 소요된다.
▣ 청평사.
△ 청평사로 간다.
△ 안내도,
적의 탐방코스를 잡으면 되겠다.
△ 입구 상가 지역.
△ 첫번째 다리를 건넌다.
올려다 볼때 오봉산의 우측 계곡에 있다.
△ 상가.
△ 나중 한잔한 곳이기도 하다.
△ 청평사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
이곳 청평사가 아름다운 또하나의 이유는 수려한 자연 경관과 함께 슬프고도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당나라 때의 이야기이다.
태종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당시의 법도에 어긋나게도 평민 청년과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은밀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인지 이 사실을 알게된 태종이 격노하여 청년을 사
형에 처하자 형장에 홀연히 커다란 뱀 한마리가 나타났다. 바로 공주를 사랑한 죄로 죽음을 당한 청년
의 원혼이 다시 태어난 상사(相思)뱀 이었다.
△ 뱀은 평소 몰래 찾아가던 궁궐로 들어가 공주의 봄을 칭칭 감아 버린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의
화신이라 해도 흉물스러운 뱀의 모습에 너무 놀라 의원들을 불러 온갖 시술을 해보았지만 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영험있는 사찰에서 기도를 드려보라는 어느 노승의 권유에 따라 공주는 유명 사찰을 순례
하다가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도착한 공주는 구성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계곡에서 범종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자 "종소리를 들어보니 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 합니다. 절에가 밥을 얻어 오려고 하니 잠시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수 있
는 지요" 하니 그동안 한번도 이런 부탁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을 풀어 주
었다. 공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때마침 법회가 열리고 있는 법당에서 기
도를 올리고 있었다.
한편, 상사뱀은 시간이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공주를 찾아 나섰다.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와 함께 벼락이 내려쳐 뱀이 그 자리에서
죽고 불어난 빗물에 따나려가 버렸다. 법회를 마친 공주가 음식을 얻어가지고 내려와 보니 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알수 없는 공주는 깜짝 놀랐으나 시원스럽기도 하
고 애처롭기도 하여 상사뱀을 정성껏 묻어 주었다.
△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종은 기뻐하며 금 세덩어리를 보내 법당과 공주가 거처할 건물을 세우게 하고,
또 하나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나머지는 후일 건물을 고칠때 쓰라고 이곳 오봉산 어딘가에 묻어 두
었다고 한다.
공주는 상사뱀의 극락왕생을 빌며 오랫동안 이곳에서 머무르며 부처님의 은공에 감사드리다가 석탑
을 세우고 귀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직까지 그때 묻었다는 금덩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후 공주가 머무르던 동굴을 공주굴, 목욕을
했던 웅덩이는 공주탕, 삼층 석탑은 공주탑이란 애칭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 두번째 다리를 건넌다.
청평사 계곡 입구의 다리이다.
△ 다리목,
청평사 1km,
△ 청평사 가는 길,
△ 계곡을 우측에 두고 오른다.
△ 거북휴게소와 매표소,
입장료는 어른 1인 2,000원이다.
△ 전날 내린 비로 계곡이 풍부하다.
△ 공주설화
△ 청평사에는 당나라 공주와 관련한 설화가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여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서 방랑을 하다가 한국의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
이에 공주는 당나라의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청평사를 고쳐 짓고 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때 세운탑을 공주탑이라 하고 공주가 목욕한 곳을 공주탕이라 하며 상사뱀이 운회를 벗어난 곳을
회전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 걷기좋은 오름길이 계속된다.
△ 거북바위,
△ 대충 닮았다.
거북바위는 자연 암석으로 예전부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게 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 것
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이 바위 아래쪽에 신규선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사람은 1915년에 청평사를 정비하고
청평사의 역사책인 청평사지를 편찬토록 한 사람이다.
△ 구송폭포 하부에 조그만 폭포가 있다.
△ 이내 구송폭포가 있다.
△ 구송폭포는 주변에 소나무 아홉그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 윗쪽에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송대가 있다. 구송폭포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아홉가지 폭포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구성폭포라고도 한다.
이 폭포에서는 일년 내내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특히 폭포의 양쪽에 수직으로 펼쳐진 절벽은
단정한 모습의 선비처럼 아름답다.
구송폭포는 순천 서면 삼악산의 등선폭포, 남산면 문배마을의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폭포로 꼽
힌다.
△ 약간 각도를 달리하여,
△ 폭포앞 계곡 옆에 공주굴이 있다.
△ 굴이 아니라 바위 밑이다.
△ 폭포를 지나 청평사로 간다.
△ 폭포 상부,
△ 이 건물은 ?
△ 까페,
세향원
△ 청평사 고려선원이 어디인가?
청평사는 973년 고려 광종24년 백암선원으로 창건되어 1천년 이상을 이어온 선원이다.
고려시대에는 이자현, 전진국사 승형, 문하시중 이암, 나옹완사 등이,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보우, 환적당,
환성당 등이 이곳에 머물렀다.
고려선원에 머문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은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였고 뛰어난 문인들은 시문으로 이곳의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
청평사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고려시대 이자현은 37년간 청평사에 머물
면서 청평사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연못 등을 조성하였는데 이렇게 조성된 고려선원은 자연과 인문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구송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이 계곡을 수놓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 보존된 선동과 서
천계곡,이들을 에워싼 부용봉의 바위들이 청평사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삼층석탑,
이자현이 조성한 영지, 한국 서예사에 빛나는 문수원기비와 시장경비, 사찰 주변의 노란 매화 군락지, 조선
시대 스님들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 비를 기원하는 기우단터,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과 제석단터, 공주설
화 유래가 전해지는 회전문 등은 고려선원의 풍부한 인문자원이다.
△ 세향원을 지나면
바로 좌측편에 진락공 이자현 부도가 있다.
△ 진락공은 이자현이 죽고 난 후 임금이 내려준 이자현의 시호이다.
이 부도는 청평사를 세번째로 중창한 고려시데ㅐ 이자현(1061-1125)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양식으로 볼때 1,700년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자현 생존 시기와
600년의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스님의 부도라는 설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자현의 유골은
질그릇으로 만든 함에 넣어서 청평사 북쪽의 청평식암 근처 바위틈에 안치했다고 한다.
△ 고려선원
청평사만 둘러볼 경우,
19 선동부도에서 23번 5층 석탑까지 둘러봄이 좋을 것 같다.
△ 세향원, 이자현부도, 명문바위, 영지는 서로 이웃해 있다.
△ 영지 명문(銘文) 바위,
△ 그렇게 크지 않는 바위 위에,
△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심생종종생 心生種種生 : 미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심멸종종멸 心滅種種滅 :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네
여시구멸이 如是俱滅已 :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처처안락국 處處安樂國 : 곳곳이 모두가 극락세계로구나.
△ 영지,
△ 이 연못은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언급되어 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하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연못에 물결이 일지 않으면 부용봉이 물속에 그림자처험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장마기 지거나 가뭄이 들어도 물이 늘거나 줄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정원의 일부처럼 만든 연못을
연지(蓮池)라고 하는데 사찰이나 궁궐에 이런 연못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 돌탑무지?
다리 직전에 있다.
△ 청평사 앞,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 약 280년,
△ 약수,
△ 청평사,
△ 좌측 가게,
△ 우측,
범종각
△ 가운데 대웅전,
△ 좌측 관음전이 있고,
△ 우측엔 나한전이 있다.
△ 대웅전,
△ 대웅전 내부,
△ 대웅전 앞,
△ 대웅전 좌측 뒷편에 극락보전이 있다.
△ 극락보전 마당 한켠에 수령 830년의 주목이 있다.
오봉산으로 오름길 또는 하산길이 이 주목 우측에 있다.
△ 싱싱히고 올곧음이 좋다.
△ 우측 뒷쪽의 작은 나무는 수령 530년.
△ 극락보전 옆에는 산신각,
△ 극락전까지 왔다가 내려간다.
좌측 건물이 대웅전, 우측 건물이 관음전이다.
△ 선방? 요사? 쪽으로,
△ 뭐지?
△ 지나 내려온 곳,
△ 청평사 주계곡쪽으로
△ 청평사앞 주 계곡을 따라 오봉산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 주계곡쪽,
공주탕 안내표시판이 있다.
△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저곳이 공주탕이 보인다.
△ 공주탕은 공주설화에서 공주가 목욕재계를 하였다는 곳이다.
공주 설화는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가 상사뱀을 구송폭포 아래에 떼어놓고 절에 올라와
인간세상에서 물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스님의 옷을 만들어 가사불사를 한 공덕으로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불교에서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다는 의미 외에도 착하지 않는 마음까지도 함께 씻어 낸다는 의
미를 갖고있다.
△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면 오봉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 청평사 계곡,
△ 위에서 내려다 본 공주탕
△ 줌으로 살짝.
△ 앞쪽에서 본 공주탕,
도로에서 잘 보이지 않게 절묘하게 자리잡았다.
△ 청평사 앞을 지나 되돌아 내려간다.
△ 이 탑은 고려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3m가 조금 넘는다,
기단위에 3층을 쌓은 탑으로, 지붕돌인 3층 옥개석은 계곡에서 찾아 복원을 하고 3층 탑신석은 새로 만들어 얹었다.
이 탑 아래의 가파른 오솔길은 현재의 포장길이 생기기 전에 청평사를 오가던 옛길로 환희령이라 불렸었다.
탑은 대체로 법당앞에 세우는데 이 탑은 절 주변 산의 암반위에 세운 것이 특징이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 3층석탑
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중국 당나라의 평양공주가 몽에 붙었던 상사뱀을 청평사에 와서 떼어내게 되자 그 은혜를 갚기위해 이 탑을 세웠다
는 공주설화가 전하고 있어서 공주탑이라도 불리운다.
△ 공주탑 아레서 인적드문 등산로를 따라 내려서면 구성폭포로 내려서게 된다.
△ 상가에서 막걸리 한잔씩 한다.
△ 별미다.
영숙이가 썼다.
▣ 샘토 중식
△ 소양강댐 하부,
식당촌이 있는 곳이다.
△ 닭갈비에,
막국수를 맛본다.
△ 오늘 일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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