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양 무이산 (474.9m)
"안의가요?"
"아니가요,"
안의에 간다는 건가? 아니 간다는 건가 ?
버스 안내양이 있을때 우스개 삼아 하던 얘기니까 오래 전 일이다,
안의는 산청에서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동안 스쳐 지나 다녔다면 오늘은 안의를 둘러보러 간다,
주변 대봉산(괘관산), 천황산, 황석산, 거망산, 금원산, 기백산 등 쟁쟁한 산들에 가려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지만 무이산이란 아담한 봉우리도 올라본다,
▷ 가는 길
함양군 안의면,
▷ 탐방코스
안의 (광풍정 - 허삼둘가옥 - 독립지사 사적지-노응구생가 - 변조암) - 무이산 - 농월정관광단지 - 구로정 - 광풍정
(쉬엄쉬엄 사적지 둘러보며 점심시간 없이 약 3시간 30분, / 2018. 2. 14 )
▷ 탐방안내도
▷ 산행후에
함양군 안의면 버스주차장 인근에 광풍루가 있다,
안의 중심지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건물이다,
주변 도로변을 따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이곳에 주차한다,
이 누각은 1712년(태종12) 당시 이안 (안의의 옛이름) 현감이던 전우(全遇)가 건립하였는데 당시 선화루라 했다,
후 1425년(세종7)에 김홍의(金洪毅)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1494년(성종25)에 안의현감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중건하면서 광풍루로 바꾸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불타는 등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자로 된 광풍루 안내문과,
상무좌우사접장 하경순포선불망비 (商務左右社接長 河瓊珣褒善不望碑 / 기릴 포(褒))
상무사는 1899년 (광무3) 설립된 상업 관장 기관이다,
이보다 앞서 1883년(고종20)에 설립된 혜상공국(惠商工局)이 2년 뒤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되면서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의 단체를 좌단(左團),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의 단체를 우단(右團)으로 불렀다,
상무사는 좌단을 좌사(左社), 우단을 우사(右社)로 고쳐 불렀다,
안의를 중심으로 한 상무좌우사의 접장 하경순(하경순, 1875∼1946)의 공적을 기려 안의 상인들이 1911년 세운 비석이다,
의병대장 문태서 기공비
함양군 서상면 상님리 장구지동에서 출생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금강산에 들어가 병법을 연구하던 중 1905년 일본이 외교권을 강탈하자 금강산을 나와 최익현의 의병에 참가하였다,
1907년 일제가 헤이그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의 양위와 군대해산을 감행하자 해산된 군대가 모두 의병에 투신하여 의병운동이 전개되었고, 장군은 덕유산을 근거지로 부하 약 200명을 거느리고 경상도 전라도 등을 넘나들며 일본군을 습격하고 타격을 주었다,
이후 전국적 의병의 서울 진공작전에 참여했다가 진공이 중지되자 옥천군 이원역을 폭파하기도 했다,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대대적인 공세에 몰린 장군은 유격전을 벌이다 1912년 8월 본가 방문 중 왜국 밀정의 계략에 빠져 피체, 1913년 서울에서 34세의 나이에 옥사하였다,
광풍루를 둘러보고 의병장 노응규 생가방향 이정표를 따른다,
농월정, 동호정 방향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앞쪽 전주에 허삼둘 가옥 이정표가 있어,
대충 초등학교 인근이기도 하여 허삼둘가옥으로 방향을 잡는다,
허삼둘 가옥,
이 집은 약 100년 전에 건립된 고택으로 ㄱ자형 안채, 일자형의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곳간 등으로 구성되어 상류주택(부자집)으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
언듯 육안으로 보기엔 그의 근년에 신축된것 같아 고택으로서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주요민속문화자 제207호로 지정되어 있다,
행랑채인지? 문간채인지? 우회하여 안채로 간다,
주변 돌담은 강돌을 주워다 쌓았는데 비교적 정교하고 집 둘레로의 규모도 상당하다,
역시 근년에 쌓은것 같다,
안채.
ㄱ자형 건물로 사랑채?를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부엌의 위치가 특이하게도 안채 중앙 ㄱ자 정모서리에 있어 여성중심 가옥의 특징을 보인다 한다,
하긴,
이 집은 70여년 전 윤대흥이란 사람이 진양 갑부 허씨 문중에 장가들어 부인 허삼둘이 지은 집이란다.
보통의 통례는 남자이름으로 지칭하는데 이 집은 실세 부인의 이름을 따서 허삼둘 가옥이라 하나보다.
허삼둘 가옥을 둘러보고
안의초등학교 정문으로 왔다,
안의초등학교는 옛 안의현의 동헌이 있었던 자리다.
일제가 지금의 면마다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그 자리를 옛날 현정이 있던 자리를 택하였다 한다.
신 시가지에 일본인 관리가 통치하는 면사무소를 세우면서 조선왕조의 전통성을 죽이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신식문명을 내세우는 양면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전북 고부현청은 고부초등학교, 충북 연풍의 연풍초등학교 등)
정문 인근에 변조암 및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의 의병장 노응규 생가 방향으로 변조암이 있다,
항일독립지사 사적공원옆을 지난다,
충혼탑은 사당 우측 언덕위(오르는 길이 있는데 올라가 보지는 않았음)에 있다?
여순반란사건(1948), 한국전쟁 지리산 공비토벌 등으로 인하여 희생된 함양군 안의면 출신 육군대위 노병출외 지역출신 130명의 반공투사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의 조국사수, 향토수호의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히기 위해 1968년 5월 유족들 자체 자금으로 건립하였다 한다,
항일 독립지사 사적공원
신암 노응규 선생은 강화도조약(1896)후 밀려드는 외세의 침략아래 항상 나라외 민족을 생각하는 우국충정의 선비였으며, 안의면의 서재기, 정도현, 박준필, 최두원, 최두현, 임경희, 성경호 등과 더불어 진주성으로 진격 하는등 진주를 중심으로 크게 의병활동을 하였다 한다,
변조암 가는 길,
이내 의병장 노응규 생가가 있다,
노응규 의병장 (1861-1907)
본관은 광주, 호는 신암이다, 함양 얀의면에서 노이선의 2남으로 태어났다,
최익현의 문인으로 을미사변 직후, 승려대표 서재기와 정도현, 박준필, 최두원, 최두연, 임경희, 성경호 등 문인대표들과 함께 (진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안. 마산. 진해 등지의 의병을 합쳐 그 휘하의 병력이 1만을 넘었다,
1896년에 ( ) 의병장과 힘을 모아 일본군에 함락된 진주성을 단숨에 격파하고 이후 영남과 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07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순국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의병장의 집터 추정지에서 서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이곳에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등 3동의 한옥구조물로 생가를 복원했다,
안채,
생가 앞쪽으로 안의면소재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생가를 둘러보고 변조암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상수도시설이 있다,
등산로 들머리,
변조암은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100m쯤 거리에 있다,
변조암을 둘러보고 오기로 한다,
앞쪽 철구조물의 차고 등으로 인해 깨끗한 절집의 이미지는 적다,
마음을 다스리는 글
福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德은 겸양에서 생기며 智慧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기느니라.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기느니라,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말고 맑고 아름다움을 볼 것이며, 입을 조심하여 실없는 말을 하지말고 착한말 바른 말 부드럽고 고운 말을 언제나 할 것이며. 몸을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 어른을 공경하고 덕있는 이를 받들며 지혜로운 이를 따르고 모르는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라, 오는것을 거절말고 가는 것을 잡지말며, 내 몸 대우없음에 바라지 말고 일이 지나 갔음에 원망하지 말라, 남을 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을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災禍)가 따르니니라, 불자야 이글을 읽고 낱낱이 깊이 새겨서 다같이 영원을 살아 갈지어다,
변 조 암
변조암 옆 석불은 습기로 인해 외모가 추해보인다,
좌측 뒷편 고개너머에 등산로 들머리이지만 이곳에서 마땅히 오름길이 없다,
들머리 광풍루, 허삼둘 가옥, 노응규 생가, 변조암 등을 둘러보는데 35분쯤 소요되었다,
이곳 들머리로 되돌아 나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죽립회에서 관리하는 대밭공원
특히 대밭공원이랄것 까지는 없다,
대밭 옆으로 지나는 수준이다,
대밭을 지나 살짝 오른 곳에 운동시설이 있다.
탐방로,
좌우로 조망이 트인다,
좌측 안의면 소재지.
우측 황석산쪽,
난시청 해소를 위한 방송중계시설물 옆을 지난다,
저만큼 무이산이 올려다 보인다,
우측의 봉우리가 정상이다,
변조암 들머리에서 12-3분,
안의면 소재지에서 월림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생태통로가 있다,
탐방로는 터널 아래 도로를 지나도록 되어있다,
물론 터널 상부로 지나가는 길은 있지만 많이 다니지 않아 희미하다,
생태통로,
이곳 생태통로앞 도로변 이정표,
무이산 정상까지 1.5km,
경운기가 다닐수 있는 농로이다,
이 넓은 길은 조금후 우측 농지가 있는곳 까지이고,
탐방로는 좌측 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무이산은 안의분들의 산책로로 보면 된다,
따라서 안의쪽에서 오르는 길은 몇군데 있다.
우측이 무이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지금까지 그의 평지수준을 지나왔다면
이제부터 서서히 무이산으로 오름길이 시작된다,
그래봐야 별 힘든 곳은 아니다,
지역민들의 짧은 산책로이기 때문에
배낭을 메고 오른다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지 모른다,
이곳도 산이라고 배낭을 메고 오나????
살짝 고도를 높이면,
이내 상부 능선이 완만해진다,
아래 생태통로에서 약 40분,
면소재지 광풍루에서 약 1시간 30분 소요되어 삼거리에 오른다,
정상은 이곳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3분여 거리에 있다,
무이산 가는 길,
이만큼쯤이 정상이다,
낮은 산이니 만큼 특별히 봉우리 다움은 없고, 주변 소나무 숲으로 인해 조망도 별로다,
정상을 살짝 넘어서는 곳에 쉼터를 마련하였다,
두셋 벤치가 있고,
시도 있고,
약간의 조망도 트인다,
안의면 소재지 방향이다,
이곳은 기백산 방향,
1-2분 정상에 머물다 되돌아 간다,
삼거리,
이곳에서 무이산 정상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데 7분여(가는데 2-3분, 오는데 2-3분, 정상 1-2 분,
길은 평지로 보면 됨) 소요되었다,
서쪽 대봉산(또는 천황산)쪽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등산로 상태는 불량한 편이지만 살살 다닐만 하다,
간혹 망개(청미래) 덩굴이 발목을 잡지만 넝쿨이 길지않아 다니는데 큰 지장은 없다,
좌측으로 벌목지대,
벌목지대에서 바라본 안의쪽,
야트막한 능선상의 봉우리에 삼각점 표시도 있다,
대체로 소나무 숲이다,
요만큼,
직감적으로 고개가 선명하다.
무이산 정상에서 약 20분,
정상 인근의 삼거리에서 17분여 내려오면 고개가 선명하다,
내려서는 방향에서 볼때 좌측 시목리 방향으로는 이내 농지가 있다,
농월정 유원지 방향으로도 길이 선명하다,
물론 지금은 사람다닌 흔적이 적어 많이 묵어있지만,
과거 이지역 주민들이 넘나들던 흔적이 많은 길이다,
등로 상태도 제법 넓다,
산 사면으로 완만하게 내려간다,
함석지붕의 조그만 창고 뒤로 내려간다,
창고 용도가 뭔지 모르겠다,
안에 물탱크가 들어있는것 같기도 하고,
위 고개에서 12분여,
어느 잘 지어진 집 뒤로 이어진다,
위 집으로 내려서기 직전 20-30m 구간은,
수풀이 무성하여 진행하기 조금 어려운 곳도 있다,
내려선 곳,
통통하게 생긴 강아지 두마리가 제법 앙칼지게 짓는다,
지나오면서 되돌아 보니 초계당이다,
농월정 관광단지 도로변에 있는 집이다,
온 김에 농월정을 둘러보고 간다,
농월정 관광단지,
현위치 농월정 관광지,
안내도 대부분이 윗쪽을 북쪽, 아랫쪽을 남쪽으로 그리는데 이곳은 꺼꾸로다,
따라서 언듯 알아보기 어렵다,
농월정을 둘러보고 선비문화탐방로를 따라 안의면 소재지 광풍루로 되돌아 갈 것이다,
농월정은 관광단지 내에 있는 다리를 건너가야 하지만 과거 여러번 다녀본 길이라,
농월정으로 건너가지 않고 선미문화탐방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상가를 막 벗어나는 곳이다,
탐방로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오른다,
농월정 약간 상부의 강변 상부쪽이다,
강 하부쪽,
좌측으로 농월정이 희미하다,
농월정으로 건너가 보려 하지만 마땅찮다.
지족당 장구지소 농월정,
누군가의 방화로 새로 지은 건물이다.
여기서 장구란 지팡이와 신을 뜻하는 것으로 산책하던곳 쯤으로 보면 되겠다.
되돌아 간다,
농월정을 둘러보고 오는데 20분여 소요하였다,
관광단지 선비문화탐방로 안내도 옆에 이정표가 있다,
안의 오리숲 방향으로 선비문화 탐방로를 따라간다,
농월정 관광단지를 막 벗어나는 곳에 한옥단지가 보인다,
위 한옥을 포함하여 도로 좌.우로 농월정 오토캠핑장이다,
캠핑장 인근에서 바라본 무이산,
강변을 따라 내려오면 월림교가 있다,
월림교를 건너,
강 가운데 소나무 숲이 좋다,
월림교를 건너면 이내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길을 모를 우려는 없다,
구로정 가는 길,
주변에 감국? 구절초?
화초를 심었던 화단이 있다,
조금 심어놓고 이름을 붙였나 싶다,
그늘이 없어 여름철 이 길을 걷는다면 덥겠다,
또다른 다리목을 지나 저만큼 구로정인가 싶다,
구로정 (九老亭)
월림리 성북마을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야은 이은석, 중암 이교희, 석초 우한석, 성천 양두영, 금계 이규용, 서암 노응주, 만송 박원기, 모암 이보원, 우선 백현기 9인이 수계룰 하여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1955년 자손들이 이를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안의면소재지에서 멀지않은 곳이다,
안의 오리숲,
강둑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겠다,
과거 안의현이 있었던 곳으로
호국 선비들이 많았나 보다,
오리숲 원경,
농월정 관광단지에서 쉬엄쉬엄 약 1시간 소요되어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특별히 힘들곳도 없는 길을 쉬엄쉬엄 구경하여가며 3시간 30분여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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