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불일암 무소유길 / 불일암, 광원암, 감로암, 부도암, 송광사
KBS방송 프로그램 나무야 나무야에서 불일암 가는 길이 방송된 적이 있다,
오늘 순천을 찾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에 송광사로 간다, 송광사 주차장 내 상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나니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을 지난다, 당일 도로를 따라 불일암에 오른 후 광원암을 둘러보고 무소유길을 따라 내려오고자 하였으나, 불
일암에서 바로 감로암으로 이어가는 길을 보고 감로암, 부도암을 거쳐 송광사로 내려왔다, 따라서 송광사 입구에서 다
시 무소유길을 따라 광원암으로 오르게 되었다,
초행으로 가볍게 송광사와 위 암자를 모두 둘러보고자 한다면 무소유길을 따라 광원암을 먼저 둘러보고 불일암으로 오
른 후, 불일암에서 감로암 가는 길을 따라 감로암, 부도암을 거쳐 송광사로 내려서면 된다. (아니면 역순이라도 좋고)
▷ 가는 길
▷ 탐방코스
송광사 주차장 - 불일암 - 감로암 - 부도암 - 무소유길- 광원암 - 송광사 - 주차장
(천천히 2시간 30분 / 2019. 3. 25. )
노랑색 실선이 무소유 길이다,
좌측 하단에 관광단지 외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 상부 하천 건너편에 매표소가 있다,
광원암은 무소유길 불일암 갈림길에서 1~200m 정도로 지도에서 보는것 보다는 가깝다,
▷ 탐방후에
송광사 주차장 옆의 상가지역아다,
집에서 느즈막하게 아침을 먹고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1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다,
어느 집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고 기웃거려 본다,
그러다 인연이 닿은 곳이 관광식당의 상호를 가진 이 집이다,
관광단지내 상가는 합동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내부는 그게 그것 일 듯,
세련되거나 깨끗한 느낌과는 거리가 좀 멀다,
괜히 잘못 들어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없어진다,
중년의 주인 아주머니, 인상만큼이나 마음 씀씀이가 참 착하다. 음식맛 또한 정갈하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로또복권 당첨된 기분이다.
중식 후 송광사로 향햔다,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을 넘고있다,
상가 지역에서 매표소 까지는 1~200m쯤? 도보로 오르는 길도 있고, 차도도 있다,
상가지대에서 도보로 매표소로 간다.
상가를 막 벗어나는 곳에 안내도가 있으나, 조계산과 송광사, 선암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주이다,
저만큼
우측, 보이지 않는 곳에 매표소가 있다,
관람료,
어른 1인 3,000원,
매표소 진입 전 건너편 도로 쪽,
보이는 다리로 연결되며 보이는 우측편에 주차장이 있다,
즉 상가 주차장 보다는 쬐끔 상부에 있는 셈이지만, 일반인 차량은 저곳 까지만,
매표소를 지나면 이내 길상다원과 불교용품 매장이 있다,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건너편 도로와 연결되는 다리 위의 누각을 청량각이라 이름 붙였다,
청량각 건너 도로를 따르는 길이 차량통행로이다, 이 길은 비포장길로 역시 걷기좋은 길이다,
오솔길(人道), 걸어 올라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오르고, 나중 주차장으로 내려올때 차도로 내려오면 같은 길을 걷지않아서 좋겠다,
청량각 앞,
걸어올라가는 길 들머리에 무소유길 안내표시판이 있다,
이곳에서 탑전(성보박물관 아랫쪽 무소유길에서 송광사로 갈림길 있는 곳 인근의 건물)까지 0.4km 약10분,
탑전에서 불일암까지 0.8km, 약30분, 합해서 편도 1.2km. 4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걸어 올라가는 길.
중간,
좌측편 바위
이내 늘씬하게 잘 생긴 소나무 한그루 있는 곳에 갈릴길이 있다,
이곳 갈림길 이정표,
좌측 도로를 따라 광원암, 불일암 오르는 표시가 있고,
불일암 무소유길은 우측 다리 건너로 이어진다.
불일암으로 바로 오르는 길은 차량도 오를 수 있는 길로, 거리는 무소유길에 비해 조금 가깝지만 그게 그거다,
무소유길은 송광사 승보박물관 쪽으로 쬐끔 오르다 탑전에서 불일암으로 오르는 도보길이다,
불일암에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길로 보면 되겠다,
만약 초행이라면 어느길로 불일암에 오를까 갈등하지 말고 무소유 길을 따라 오르길 권하고 싶다,
차도를 따라 불일암으로 오른다,
나중 내려올때 무소유길로 내려오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이 생각은 불일암에서 바로 감로암으로 이어가는 길이 있음을 알고 무소유길을 따라 오를것 하고 쬐끔 후회하게 된다,
경관이 좋은 곳 몇 군데,
불일암, 광원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아주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편백나무? 삼나무? 숲이 있는 곳에 갈림길이 있다,
좌측 불일암, 직진 광원암으로 오르는 길이나, 이곳에 이정표가 없어 초행이라면 어느 길이지? 싶을 수 있다,
또한 이곳 편백 또는 삼나무 숲이 시작되는 곳은 탐전쪽을 거쳐 오르는 무소유 길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직진하여 광원암 쪽으로 쬐끔(50m쯤) 오르면 불일암으로 오르는 오솔길과 이정표가 있으나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할지 조금 주저할 수 있겠다,
광원암 주지를 친구삼아 찾아 오르는 나이 지긋한 어른 한분과 동행하였기에 그분이 저곳이 불임암 가는 길이라
알려 주어서 이곳에서 좌측 길을 따른다,
이내 넓은 길은 끝나고,
오솔길로 바뀐다.
시진은 지나온 편백숲을 되돌아 본 곳으로,
우측에 보이는 길이 넓은 길을 따라 이곳으로 올라 왔지만, 직진으로 보이는 곳에 편백숲으로 난 오솔길이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솔길 아랫쪽 광원암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편백숲 자체가 그리 크지않아 별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 수 있는 곳이다,
불일암 가는 길,
대나무 숲길이 깨끗하다,
무소유 길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대나무 숲이 아주 넓지는 않다,
상부쪽으로 오를수록 대나무의 굵기는 가늘어져,
불일암 사립문들 들어서면 이대로 바뀐다.
불일암 입구
송광사, 감로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감로암을 거쳐 송광사로 가는 길을 택할 것인가? 무소유길을 따라 송광사로 내려갈 것인가?
순간적으로 갈등을 한다,
우선은 불일암을 둘러보고,
불일암 입구,
대나무는 이대(箭竹 / 전죽, 화살 箭)로 바뀐다,
불일암으로 들어선다.
탱자나무 한 그루가 수목원 느낌이 난다,
건너편 요사인가?
비닐로 덮여있는 것이 파초 뿌리이다,
현 불일암을 지키고 있는 분은 덕조스님이다,
이곳 파초는 법정스님이 심은 것이고,
그래서 스승님 생각하듯이 얼어죽지 않도록 낙엽을 덮고 비닐을 씌워 보온하는 것이라 한다,
요사채를 살짝 당겨본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불일암이 자리하고 있다.
송광사에서 약 0.8km, 30분쯤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암자이다,
16국사 중 제7대 지정국사(慈靜國師)가 창건한 자정암(慈靜庵) 폐사 터에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이
1975년 중건하여 불일암(佛日庵)아라는 편액을 걸고 1992년까지 17년간을 수행했고,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열반 후,
앞뜰 후박나무 아래 안식했다,
법정스님 의자.
스님은 이곳에 주석하면서 <무소유>. <석가귀감>, <서있는 사람들>, <영혼의 모음>, <불타석가모니>
<말과 침묵>. <산방한담>, <진리의 말씀>, <물소리 바람소리>, <신역화엄경>, <턴 빈 충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숫타니파타>, <인도기행> <버리고 떠나기>의 수필집과 역서들을 집필했다.
불일암 좌측 편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스님은 이곳에서 장작도 패고,
새들에게 먹이도 주면서,
채마밭도 가꾸었나 보다,
입구의 건물은 욕간,
불일암 앞뜰에서의 조망이다,
불일암을 앞에서 마주 보았을때 우측 지능선에,
제7대 자정국사 부도 묘광탑이 있다.
자정국사는 이 터에 자정암을 처음 세운 분이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 송광사에서 16국사가 배출되었다,
현존하는 16국사 부도 중 자정국사 (? ~ 1301)의 부도 묘광탑은 모양새가 단아하고 기품이 있으며.
당시의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부도탑 앞에서 바라본 불일암,
불일암을 둘러보고 사립문을 나선다,
불일암 입구의 이정표,
감로암 방향은 산허리를 돌아 송광사와 감로암으로 가는 길이 있다,
당초의 계획은 감로암 가는 길이 있는 줄 몰랐기에 아래 광원암을 둘러보고 무소유길을 따라 송광사로
내려갈 계획이었지만, 이곳에서 감로암으로 바로 가기로 한다,
광원암과 무소유길은 나중 송광사를 둘러보고 다시 올라오면 된다,
감로암 가는 길,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을 쬐끔 따르기도 한다,
살짝 산 사면으로 돌아 오르는 곳에,
시멘트 포장된 도로가 여기까지 왔다,
이곳에서 조계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있는것 같다,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중간,
감로암 앞쪽 자리 좋은 곳에 원감국사 비가 있다,
감로암,
감로암은 송광사 16국사 중 제6세 원감국사(1226~1293)께서 창건하였다,
원감국사는 19세 때 장원급제하여 10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일본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시문에도 능하여 문집 등이 전하며 1275년에는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초정을 받았는데 보물 제1376호인
티베트문법지가 이 때 유물이다,
감로암에 모셔진 아미타불상은 1624년에 광원암에서 조성하여 보조암, 해청당을 거쳐 2014년 감로암에
개금, 봉안하였다,
한때 국제선원이었던 감로암은 2014년에 새롭게 중창되어 천년에 가까운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기도도량으로 그 면모를 다하고 있다,
감로암 이곳 저곳,
감로암을 둘러보고 송광사로 내려간다,
감로암에서 조금 내려오면 부도암이 있다,
부도탑으로의 입구는 닫혀있어 나즈막한 담 너머로 본다,
부도군과 접하여.
율원이라 표시되어 있다,
정갈한 축대 또한 인상적이다,
발길은 여기까지.
입구에서 부도암? 율원?을 바라보고,
송광사로 내려간다.
각 암자간은 몇백미터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무슨 건물이 이렇게 크지?
내려와서 보니 성보박물관이다,
과거 송광사는 몇번 와본 곳이지만 성보박물관을 둘러보지 않았다,
근데 마침 오늘이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성보막물관에서 송광사 대웅보전 쪽으로 간다,
외견이 그렇듯 하나 실은 화장실이다,
앞쪽에 보이는 승보전을 가운데 두고
사진상 좌측 뒷편이 관음전, 우측은 대웅보전이다,
우물, 구시, 기타 석조물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비사리 구시
송광사 3대 명물(쌍향수, 능견난사)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느티나무로 만든 대형 용기이다,
비사리 구시는 송광사 인근의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봉갑사 근처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전하며, 그 용량은 2,600여리터에 달한다,
<송광사지>에 따르면 절에 큰 행사가 있을때 밥을 짓는 곳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비사리 구시와 관련하여는 승주 땅 어느 고을의 할머지 전설이 전한다,
송광사에 들러 불공을 드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할머니가 어느날 점심을 먹다가 아무 이유없이 조용히 숨지고,
죽은 사자를 따라 염라대왕앞에 서게 된다,
염라대왕은 승주 송광사를 무척 좋아했기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 염라대왕은 여러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
에게 정말로 송광사에 가본적이 있느냐? 묻고 가보았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비사리구시 길이와 폭이 얼마나 되느냐
묻는다, 할머니 차례가 되어 비사리 구시의 길이, 높이, 너비를 물으니 "살아생전 해마다 초파일에도 가고 보조국사
제사날도 가보고 여러번 가보았지만 구시를 보고도 재 보지않아 알 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이에 염라대왕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크게 칭찬하고 좀더 살다가 오라했다. 죽었다 살아온 할머니는 100수를 누렸고
이후 아들이 비사리 구시 길이 17자, 높이 3자, 너비는 4자임을 재어보고 알려 주었으나 일주문을 나서면 잊어버려
명주실로 가로,세로, 높이 많큼 끊어서 빨간 주머니어 넣어드렸고 염라대왕이 물으면 길이가 이만큼 된다고 대답하
게 했다. 이게 유행이 되어 너도나도 빨간주머니에 구시의 규격을 잰 명수실을 넣어다녔다 한다,
대웅보전,
상당히 웅장하다,
관음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文臣)들이 허리
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관음전 뒷쪽으로 돌아,
계단을 따라 오르면,
보조국사 감로탑이 있다,
보조국사 감로탑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희종 6)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일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란 시호와 감초탐(甘露塔)이
란 탑호를 내렸고 3년 후인 1213년(강종 2년) 음력 4월 10일에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되돌아 내려와 대웅보전 앞에서 바라본 승보전,
지장전,
역시 지장전 건물이다,
송광사 약사전과 영산전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으로 내부에는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형태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보물 302호)
이웃해 잇는 영산전은 영취산에 거주하며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
제1368호로 지정되어 있는 후불탱인 영산회상의 설법하는 장면을 모사한 영산대회탱과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러 그린 팔상탱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인조 17년(1639년)에 창건되었다 (보움 제303호)
약사전과 영산전은 언듯 보면 붙어있는 건물같아 보이나
다른 건물이다,
승보종찰조계총림송광사청원,
종고루,
침계루,
세월각(洗月閣), 척주당(滌珠堂)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 (관용: 불교에서 재(齋)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일)로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시켰으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되어다,
두 건물 내부는 비어 있다,
송광사 침계루,
우화루,
일주문?
송광사 규모에 비해 일주문의 크기자 작아 과연 일주문이 맞나? 싶다,
일주문 바로 앞 주변 이곳 저곳,
하마비
사람들에게 신성구역을 알리는 표시다, 조선 태종 13년(1413) 왕명으로 종묘와 궁궐 문앞에 大小人員皆下馬라고 새긴
경계석을 세우고 이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게 내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하마
비의 연원이다,
송광사 하마비는 조선의 왕실기도처인 축성전 (1886)을 건립하고, 고종 24년 (1887)에 세운 것이다, 전국적으로 왕실
기도처 역할을 하는 사찰 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송광사 일주문을 뒤로하고,
도로변 편백숲 우거진 곳에 무소유길이 있다,
미쳐 걷지못한 무소유길을 따라 불일암(불일암은 갔다 왔으므로 정확히는 광원암)으로 간다,
불일암 안내표지판,
뒤로 보이는 건물이 탑전인지 모르겠다,
송광사 경내로 보면 가장 아랫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외견상 별 볼게 없을것 같았는데 한번 찾아 볼 걸 하는 후회감이 든다,
우측의 이 길을 따르면 승보박물관을 지나 송광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무소유길을 따라 불일암 방향으로,
불일암 입구의 삼나무 숲으로 왔다,
마주 보이는 길이
불일암으로 오르는 길이고,
조금 윗쪽에 불일암으로 오르는 길이 또 있다,
이곳에는 이정표도 있다,
광원암으로 간다,
불일암 갈림길에서 가까운 거리에 광원암이 있다,
광원암은 외견상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별로없다,
대충 한바퀴 주변을 둘러보고 되돌아 간다,
불일암 갈림길 주변,
좌측, 지나 올라온 무소유길을 따라 내려간다,
직진하여 내려가도 되지만 거리는 별 차이가 없다,
탐림으로 이어지는 다리로 되돌아 내려왔다,
주변 편백숲 군락이 좋다,
다리 건너 불일암 가는 길,
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간다,
송광사로 오르는 길을 한번더 되돌아 보고,
청량각을 건너면서 계류 상류쪽을 본다.
매표소 쪽으로 내려간다,
매표소를 나선다,
아래 주차장에서 쉬엄쉬엄 여유있게 2시간 30분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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