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청 3매를 찾아서
일상이 그리움이 된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는 날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에 산청 3매를 찾아가 본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여 봄 소식 또한 조금 이른 것 같다.
우한폐렴은 계속해서 가파르게 기록을 갱신하고 있고,
개화 상태는 20~30정도다.
▷ 탐방코스 (2020. 2. 27.)
정당매(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뒷편) - 남명매(산천재 앞뜰)와 양단수 전망대 - 원정매(남사마을 하씨고가 앞뜰)
▷ 탐방후에
▣ 정당매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에 왔다.
단속사지 법당자리 앞 동서로 세워졌던 통일신라시대 쌍탑으로 보물 제 72호, 73호로 지정된 단속사지 3층석탑이다,
동쪽 탑이다.
서탑,
동서 두 탑은 양식이나 규모가 비슷하여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으나 서탑은 파손이 심한 편이다.
상륜부는 노란, 복발, 앙화 등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1967년 해체 보수 때에 서탑의 일충 몸돌의 윗부분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넣는 둥근모양의 사리공이 확인되었다한다.
주변,
단속사 발굴작업의 흔적들,
3층석탑 뒷편(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정당매가 있다.
정당매 주변으로 흩어져 있는 이 돌들은 단속사지 옛터에 사용된 것이리라.
이곳 정당매는 통정공 강회백 (通亭公 姜淮伯/ 1357~1402) 선생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분께서 단성면 사월리 오룡골에서 출생하시어 유년시절(20세 때 과거합격(1386) 하기전)지리산 자락 신라고찰 단속사에서 공부할때 심은 매화나무라 한다.
그 후 통정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 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매라 불리면서 6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던 중 1982년 11월 10일부로 경남도 보호수 12-41제 260호로 지정되었다.
강회백은 20세(1376) 등제후 1389(창왕원년) 판밀직사, 1391년 문하부의 세번째 관직 정당문학(종2품)에 이르고 대사헌을 겸하였다. 그리고 대간 김진양 등과 함께 조준 등을 탄핵하여 유배시키기도 하였으나 1392년 역성혁명이 성공하자 도리어 진양으로 유배당한 여말의 충신이었다.그러나 그는 1398년 이성계로부터 "동북면도순문사"를 제수받아 정헌대부에 이르렀고1402년 7월(태종2)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 경상도 도관찰사가 내려졌으나 그해 11월46세로 병몰하였다.
<산청향토사에서>
들머리에 조금은 초라하지만 조식선생의 시비 하나가 있다.
이 시비의 내용은 아니지만 남명선생의 단속사 정당매를 옮겨본다.
사파승 영산불고(寺破僧瀛山不古/ 바다영) 부서진 절에 많던 중 몇 남고산도 예대로 아닌데
전왕자심미감가(前王自是未堪家/바를 시, 견딜 감) 고려왕은 친히 집안 바로 다스리지 못하였네.
화공정오한매사(化工正誤寒梅事) 하늘의 조화도 진정 한매의 지조를 그릇쳤음인가
작일개화금일화(昨日開花今日花) 어제(고려)꽃피우더니오늘(조선)도 꽃피우누나.
<남명선생문집. 단속사 정댕매>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한매를 심은 주인공이 끝내 지조를 굽혔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꼬집은 시이다.
이 매화는 약 100년후 그의 증손 강용휴(姜用休)가 고매에 접을 붙였다는 기록이 김일손(金馹孫)의 정당매발(政堂梅跋)에 보인다,
정당매가 노거수로 수세가 좋지않아 2013년 가지의 일부를 접목으로 번식하여 2014년 완전 고사된 정당매 옆에 후계목을 식재하여 관리하고 있다.
고사목 옆에 3그루의 후계목이 자라고 있으며,현재는 나무도 어리고 가지모양 또한 큰 기품을 가지고있지 않아 볼 품은 없다,
2020. 2. 27일 현재 개화상태는 20 - 30%
정당매각(政堂梅閣)
▣ 남명매
시천면 사리. 산천재로 왔다.
산천재 앞마당의 정당매
이 매화나무는 남명선생(1501~1572)이 61세에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산천재를 짓고, 뜰에다 심은 것이라 전한다.
기품있는 모습은 선비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남명매라 부른다.
偶吟 (우음) 우연히 읊다.
朱點小梅下 (주점소매하)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 찍다가
高聲讀帝堯 (고성독제요) 큰 소리로 요전을 읽는다.
窓明星斗近 (참명성두근)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이 밝고
江闊水雲遙 (강활수운요) 강물 넓은데 아련히 구름 떠있네.
이곳 매화 역시 20~30% 개화율을 보이고 있다.
간혹 산천재 관련서적을 뒤척이다 보면 산천재 벽화관련 얘기가 나온다,
현재의 산천재 벽화이다.
유흥준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 벽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좌측 벽면,
題德山溪亭(柱) 제덕산계정(주) 덕산계곡 정자기둥에 글을 쓰다, / '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淸看千石鐘 (청간천석종) 천석이나 되는 종을 한번 바라보시게나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크게 치지 않는다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사람들은 그 천석종이) 두류산을 닮았다고 떠덜고들 있지만은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마저 울린대도 (지리산은) 오히려 안 울리네
산천재 서쪽으로 돌아가면 몇 그루의 소나무와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을 볼 수 있다.
산천재를 둘러보고 뒷편 도로변으로 나오면 남명선생 묘소 입구가 있다,
남명선생 묘소를 참배한 적이 없어 오늘 둘러보기로 한다.
남명선생 묘소 들머리는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위 남명묘소 입구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소형 차량도 다닐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이고,
다른 한 곳은 남명기념관 좌측 뒷편 오솔길이다.
이이 두 길은 남명선생 묘소 직전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오늘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본다.
생각 외로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닌것 같다.
남명묘소 조금 못미쳐서 두 길은 서로 만나게 된다,
윗쪽에 남명선생을, 아랫쪽에 부인 송씨를 모셨다.
남명선생 묘소는 선생이 살아 있을때 직접 고른 곳이라 한다,
선생 무덤 아랫쪽에 숙부인(두번째 부인)인 은진 송씨의 무덤이 있다.
정경부인의 산소는 부인의 고향인 김해 산해정 앞산에 있다.
남명묘소,
묘소앞 비석에는 그의 가장 친한 벗이었던 성운의 글이 새겨져 있다.
오른 쪽 공간에는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라 한다,
묘지 앞쪽에 양단수 전망대 이정표가 있다.
거리 620m,
길은 남명묘소 우측 뒷편으로 이어진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하여 전망대까지 갔다오기로 한다.
길은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중간 제법의 오르막이지만 심하지는 않다.
오르막이라 지그재그로,
남명선생 묘소에서 620m, 천천히 17~ 8분,
양단수 전망대엔 팔각정이 정갈하다.
시천면 앞뜰이라 할 수 있는 천평들.
시천과 삼장천이 시천면소재지에서 합류한다.
줌으로 당겨본다.
천왕봉 방향은 구름이 가득하다.
이곳 양단수 전망대에서 능선방향으로 길이 있다.
지리산둘레길 8코스 마근담 방향이다,
이 능선은 이방산 방향인데 어떻게 마근담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궁금하지만 지금 시간이 오후 4시 20분을 넘고있어 다음기회에 이 길을 찾아봐야겠다.
되돌아 내려간다.
남명묘소에서 양단수 전망대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데 35분쯤 소요되었다.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마을로 내려가는 곳에 주차장도 있다.
원정매
지도상 남사예담촌 하씨고택 (지도상 오류로 실제 민박하는 집은 아님) 민박으로 표시된 곳에 원정매가 있다,
마산상회.
위 카카오 지도상 표시된 마산상회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마산상회 옆 골목을 따라 10~20m쯤.
하씨고가는 대문이 잠겨져 있다.
하씨고가 대문이 잠겨있어 지난해 찍은 사진을 가져왔다.
위 사진은 2019년 3월 6일날 촬영한 것으로 오늘보다는 활짝 피었다.
역시 지난해 촬영한 것이다.
오늘은 마산상회 옆 소공원에서 담 너머로 원정매을 둘러본다.
비닐하우스 너머로 윗 부분만 보인다.
2020. 2. 27.일 현재 개화상태이다.
역시 20~30% 정도 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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