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학 기행 1 / 모현관과 미암박물관. 면앙정. 명옥헌원림.
문학기행 7월 일정으로 담양을 찾았다.
이곳 담양은 정자기행이란 이름으로 예전에 찾아본 적이 있는 곳으로 초행은 아니다.
미암 유희준 선생과 관련된 모현관, 송순의 면앙정가로 알려진 면앙정, 오희도 선생의 명옥헌원림,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식영정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사진의 양이 많아 1,2편으로 구분했다.
▷ 가는 길
우측 상단 장산리에 미암박물관이 있음.
▷ 탐방코스
미암박물관. 모현관. 연계정 - 면앙정 - 중식(담양애꽃) - 명옥헌원림. (2021. 6. 19.)
▷ 탐방후에
미암 유희준(1513~1577)은 선조초년의 명신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미암(眉巖), 별호는 연계(漣溪/물놀이 연)이다.
하서 김인후와 함께 모재 김안국의 문인으로 중종33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수찬 정언 등을 지냈다,
1547년 을사사회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고 이어 한반도 최북단인 종성에 19년간 적배되었다가 1567년 선조즉위와 함께 해배되어 재등용 되었다.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 주제학 전라감사 등 내외 고위관을 역임하고, 예조 형조 이조 등 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1577년 선조의 부름을 받아 상경하여 입궁을 대기하던 중 65세로 졸하였다.
경사(經史)와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거의 산일되었으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미암일기초(眉巖日記草)가 남아있다.
부인은 이곳 산 이름을 문호로 한 홍주송씨 덕봉(宋德峰)이며 시문에 능하여 조선조 4대 여류문인으로 꼽힌다.
미암은 해남출신이지만 이곳 대곡이 처향(妻鄕)이어서 말년에 대대적으로 집을 짓고 안주하였으며, 후손들도 누대세거하였다.
이곳 미암박물관엔 국가지점 문화재인 보물 제260호 미암일기와 지방지정 유형문화재 제265호 모현관 고문서, 민속자로 제36호 미암사당 벽화 등 800여점의 유물과 복제물 모형물을 수장전시(收藏展示)하고 있다.
보이는 건물은 연계정.
과거 이곳을 찾았을때에는 관리상태가 엉망이었었는데 지금은 양호하다.
앞쪽 연못 가운데 건물이 모현관.
화재를 대비하여 연못가운데 건립했다한다.
선산유씨 미암 종가.
종가 입구.
미암 사당.
정면 문틀 상단 외벽에 칸별로 6자×2자 크기의 벽화가 3폭 있는데, 왼쪽부터 박학도, 등룡도, 봉황도가 그려져 있다.
유교적건축물인 사당에 벽화가 그려져 있기는 매우 드문 사례로 희귀성이나 상징미가 돋보여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한다.
연못을 한바퀴 돌아본다.
이웃하여 장산미술관 까페.
▣ 면앙정
면앙정으로 왔다.
도로변 제법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야 한다.
미끈하게 잘 생긴 참나무 한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의 나무들 수령도 대단하다.
면앙정기를 비롯한 면앙정중수기념비, 면앙정가비를 세웠다.
면앙정은 송순(1493~1582)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지은 것이다.
송순은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이나 국사를 논하기도 하였으며, 기대승, 고경명, 임제, 정철 등의 후학을 길러냈던 유서깊은 곳이다.
건물은 정면3칸 측면 2칸이며 전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골기와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추녀의 각 귀퉁이에는 활주(기둥)가 받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를 한 것이며, 1979년과 2004년에 주붕을 새로 올렸고, 주변 대나무와 잡목을 제거하여 시야를 확보하였다.
면앙정삼언가(俛仰亭三言歌)
면앙 송순이 면앙정에서 지은 석자 여덟줄의 한시이다.
우에서 좌로 눈에 익은 면앙정 글자가 있으나, 세로로 읽어야 한다.
揖 / 읍, 읍할 읍, 모을 집, 모을 즙
扶 / 부, 도울 부, 기어갈 포
藜 / 려, 명아주 려(여)
送 / 송 보낼 송
굽어보니 땅이요 우러르니 하늘이라
이 가운데 정자 지으니 호연한 흥취이네
풍월을 부르고 산천도 끌어들였으니
지파?이 짚은들 흠돼랴 한백년 살면 되지
면앙정은 크지않은 동산의 정상에 위치하며, 주변 노거수로 인해 넓은 들판을 내려다 보기는 것은 제한적이다.
▣ 담양에꽃
지역 맛집으로 알려진 집이다.
예약하지 않은면 한 참 대기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이집 메뉴.
▣ 명옥헌원림
명옥헌 원림 주차장이다,
주소는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435-2,
내비에서 대형버스가 진입할 수 있는 도로를 놔두고 고산촌집(음식점 이름) 앞으로 난 도로로 안내하는 바람에 조금 헤맸다.
이 길은 승용차는 다닐 수 있지만 대형버스 진입은 불가하다.
명옥헌 원림을 찾는 분들이라면 위 주차장에 주차한 후 마을로 난 길을 따라 몇백미터 걸어 올라야 한다.
원림 바로 앞에 차량 몇대 주차공간은 있지만 협소하여 주차장을 신설하고 마을에서 명옥헌으로 오르는 도로를 차단하여 차량진입을 금하고 있다.
후산리 은행나무는 멀찍이 도로변에서 보는 것으로 대한다.
명옥헌 원림 바로앞이다.
예전에 이곳까지 차량을 가지고 왔는데, 관광객이 늘어나고 마을길이 좁아 마을 입구에 주차장을 조성하고 이곳으로의 차량 출입은 통제하고 있다.
명옥헌 원림은 조선중엽 명곡 오희도(1583~1623)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숲을 가꾸었다.
오이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과 배롱나무를 심었다.
명옥헌 왼쪽으로 시냇물이 흐르는데 조그만 계곡인데도 물이 끊이지 않고 바위를 두드린다. 그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 같다하여 명옥헌이라 이름 지어졌다.
명옥헌원림은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근섬을 만들고 주변에 배롱나무(백일홍)와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 당시 우주관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네모)하다'는 천원지방(천원지방) 사상이 담겨져 있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정원의 뒤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 지내던 도장사(도장사) 터가 남아있으나 간과했다.
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명옥헌에서 내려다 본 하지쪽.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와 하지 두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모양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상지의 섬은 자연석을 활용한 것 닽다.
상지 주변의 배롱나무.
하지 주변의 배롱나무.
명옥헌 원림을 둘러보고 소쇄원으로 향한다. 이후 일정은 담양 문학기행 2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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