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국 장보고 유적지

정헌의 티스토리 2025. 6. 26. 23:21

■장보고 유적지 / 적산 대명신, 장보고 기념관, 적산선원, 적산 법화원

 

청도 풀만호텔에서 숙박후 약 4시간을 버스로 달려 위해시에서 중식 후 적산 법화원으로 갑니다. 위해시는 산동반도의 맨 우측 일원입니다. 따라서 법화원의 위치가 위해시 중에서도 남쪽해안이라 할 수 있는 석도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구글지도에서 석도항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장보고 유적지는 규모가 상당히 넓으며 그 중 적산명신, 장보고 기념관, 적산선원 일원.구 법화원 등을 둘러보고 출국을 위해 석도항으로 이동합니다. 법화원에서 석도항 까지는 약 20분여 거리로 가까운 편이며,  오후 3시경 출국수속 후 6시경 인천항으로 출발하는 중국여행 실질적 마지막 날입니다.

 

▷일정

청도 풀만호텔 숙박 - 영성시 적산 법화원 - 석도항에서 귀항 (2025.  6. 15.)

 

▷탐방후에

 

◐청도 풀만호텔

 

청도시내에서 약 1시간쯤 이동후 어느 도시의 풀만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모택동 주석이든가?

 

 

 

 

 

로비

 

 

 

 

 

호텔로비에 옥으로 된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귀한 돌인것 같아 기념으로 남깁니다.

 

 

 

 

 

중국의 지도같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작품들,

 

 

 

 

 

숙소를 나서면서 장터가 열렸습니다.

일정상 쇼핑방문이 없기때문에 가이드를 통해 농산물, 연태고량주 등 술종류, 차종류 등등 가이드가 차안에서 주문을 받고 이곳에서 배달해 주었습니다.

 

 

 

◐ 장보고 유적지 / 적산대명신, 장보고 기념관, 적산선원, 적산법화원 등

 

입장료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일단 매표먼져 해야 합니다.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적산명신(우측 하단) - 장보고 기념관 - 적산선원, 법화원쪽으로 이동하면서 관람하게 됩니다.

 

 

 

 

 

이런 전동차를 타고 구간별 이동합니다.

 

 

 

 

 

들머리

 

 

 

◐ 적산대명신,

 

전동차를 타고 적산 대명신 입구 주차장으로 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적산 대명신입니다.

장보고 유적지에서 위치상 가장 높은 곳 일겁니다.

 

 

 

 

 

이곳 입구를 따라 100~200m쯤 가야합니다.

 

 

 

 

 

 

 

 

 

 

 

 

 

 

 

 

 

적산명신 비석이 가로로 길게 놓여있습니다.

 

 

 

 

 

앞 광장?

 

 

 

 

 

적산대명신은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습니다.

아래서 올려다 보니 오늘 짙은 구름으로 인해 사방으로의 조망은 없습니다.

 

 

 

 

 

구름속에 어렴풋이 그 크기를 가늠해 봅니다.

 

 

 

 

 

적산명신

 

 

 

 

 

명신상의 아랫쪽은 사원인 셈입니다.

 

 

 

 

 

안에는 거대한 적산명신 대신 이런 상을 모셨습니다. 

 

 

 

 

 

적산명신상의 아랫쪽은 1,2층의 공간으로 이곳은 내부의 2층입니다.

 

 

 

 

 

2층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무슨 그림인지 몰라도 한쪽 벽면을 온통 이런 벽화로 채웠습니다.

안내문이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내부 2층을 한바퀴 돌아 윗층으로 나가면 적산명신이 있습니다.

 

 

 

 

 

규모가 대단합니다.

짙은 구름으로 인하여 사방 선명히 보이는 곳이 없습니다.

 

 

 

 

 

 

 

 

 

 

적산명신을 둘러보고 내려왔습니다.

 

 

 

 

 

주차장으로 되돌아 갑니다.

 

 

 

 

◐장보고 기념관

 

적산대명신 주차장 조금 아랫쪽에 장보고 기념관이 있습니다.

장보고 해상기행 방문기념비가 한국청소년연맹 총재명의로 한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념관 입구입니다.

 

 

 

 

 

앞쪽의 부조물

 

 

 

 

 

 

 

 

 

 

 

 

 

 

 

 

 

 

 

 

 

 

 

 

 

 

 

 

 

 

 

 

 

 

 

 

 

 

 

 

 

 

 

 

 

 

 

 

 

 

 

 

기념관의 안내문에는 한글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백화원

 

백화원

 

 

 

 

 

외견상 백화원은 썩 멋있다 싶은 생각은 들지않습니다.

 

 

 

 

 

백화원을 입구에서 올려다 보고,

 

 

 

 

 

맞은편 적산선원으로 갑니다.

 

 

 

◐적산선원

 

적산선원

 

 

 

 

 

언듯 보기에 거북몸통에 용의 머리입니다.

 

 

 

 

 

 

 

 

 

 

 

 

 

 

 

 

 

 

 

 

 

 

 

 

 

 

 

 

 

 

 

 

 

 

 

 

 

 

 

 

 

 

 

 

 

 

 

이곳은 일반인 출입금지

 

 

 

 

 

관음전 앞 분수쇼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좌측 조금 보이는 건물이 관음전입니다.

 

 

 

 

 

거대한 코끼리상이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관음전

 

 

 

 

 

분수쇼를 구경하고 법화원으로 내려갑니다.

 

 

 

 

 

 

 

 

 

 

 

구 법화원 앞쪽 또다른 건물이 있어 들어가봅니다.

 

 

 

 

 

자개는 아닐 것이고 옥?으로 만든 벽화?

한문으로 되어 있어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법화원

 

법화원으로 왔습니다.

 

 

 

 

 

적산 법화원은 통일신라 때 당나라 산동성 원덩현 적산촌에 장보고가 세운 사찰입니다.

적산 법화원은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 적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당나라때  신라인 장보고가 지은 것으로 당시 산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불교사원이었습니다. 먼 옛날에 적산은 온콩 붉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여기에 사는 적산신이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가져다 준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장보고가 당나나 무령군의 소장자으로 있을때 1년 수확량이 500섬이나 되는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하여 창건하였는데, 신라의 승려로서 당나라에 가는 사람은 물론, 일본 승려들 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찰에서 우리 고승들이 여름에는 <금광명경>을, 겨울에는 <묘법연화경>을 강론하였는데, 그때마다 많은 신라인들이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찰의 도움을 받은 바 있는 일본 승려 옌닌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이 사찰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데, 그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의 승려로서 신라의 승려를 시봉하여 스승으로 섬기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인 장보고는 흥덕왕 3년에 청해진을 창설하고 대사를 봉해 받음으로써 한.중.일 삼국의 해상무역을 독점하고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여 해상무역왕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무역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면서 적산에 불교사찰을 지어 많은 스님들을 모셔와  <법화경>을 앍어 <적산법화원>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런데 적산법화원에서 열린 법회는 모두 신라 언어와 신라 방식 그리고 산라 승려들에 의하여 진행되었고, 참석한 대중 역시 모두 신라교민들이었다 합니다. 당시 산둥반도 연해안 곳곳에는 신라인들이 촌락을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법화원은 재당 신라인들에게 있어서 교화를 담당하는 장소이며 만남의 장이었고, 교민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중심체였으며 신라 교민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열린 장소였습니다. 

 

 

 

관음전

 

장보고 대사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려서 부터 무예에 뛰어났고 물에 익숙한 궁복(장보고)은 친구 정연과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당나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하녀 궁복은 그 곳에서 뛰어난 무예을 바탕으로 이사도의 난을 진입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령군의 군중 소장이라는 당나라 장군이 되기도 합니다. 그 무렵 당나라(이사도의 난, 안사의 난)와 신라(김헌창의 난, 김법문의 난) 모두 중앙 집권력이 이원되어 흉년과 기근이 잇달아 들며서 각지에서 도적이 횡행하였습니다. 바다에서 그러하여 해적이 신하 해안에 출몰하여 많은 주민들을 포획해 가 중국에 노예로 팔았으며, 무역선도 해적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당나라에서의 풍요로은 생활 속에서도 고국을 잊지 않은 그는 어느 날 당나라 해적들의 손에 의해 끌려 온 수많은 신라 백성들의 안타까은 노예생활을 보고 분개하여 조국으로 돌아가 우리나라 해안을  어지럽히는 해적을 소탕할 결심을 세우게 됩니다.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왕의 허락을 얻어 남해안 해로의 요충지인 청해에 진을 설치하고 성책과 항만 시설을 보수하는 한편, 흥덕왕으로 부터 1만 군사를 받아 훈련시켜 우리나라 근해를 노략질하던 해적들을 소탕하기 시작합니다.

청해진은 건설될 당초부터 장보고 대사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세력의 성격을 띤 것으로, 그에게 내려진 청해진 대사라는 벼슬은 당나라의 절도사 정도의 힘을 가진 직책이었지만 장보고 대사는 천민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국가는 정부에 있지도 않은 관직을 만들어서 준 것입니다.

 

 

 

 

 

법화원 뒷쪽에 또다른 건물이 있습니다.

 

장보고 대사는 해적을 소탕하여 동지나해 일대에 해상권을 장악한 뒤, 중국과 일본을 잇는 삼각 무역을 주도하여 신라의 경제적 부강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839년에는 신라 왕실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김우징을 도와 파벌과 모략으로 얼룩진 당시의 왕실을 평정하고 김우징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 공적으로 장보고의 세력은 중안 정부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러나 신무왕 김우징은 짧은 시간동안 왕위에 오르다 죽고 그 아들 문성왕이 즉위하자, 김우징과 함께 왕실을 평정할 때 김우징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는 약속을 아들인 문성왕이 이행하려고 하였으나 중앙 귀족들은 장보고 대사께서 미천한 섬 출신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하고 나섭니다. 그 뒤 청해진과 중앙 정부 사이에는 대랍과 반목이 날로 심화되어 갔고, 몇 년 뒤 장보고는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의 보수 세력들이 보낸 무주 출신의 염장에 의해 암살을 당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법화원을 둘러보고 실절적인 중국 산동반도 여행은 마무리 됩니다.

 

 

 

 

 

법화원 앞쪽의 만수석

 

 

 

 

 

법화원 주차장으로 왔습니다.

 

 

 

 

 

 

날씨가 조금 개여 적산대명신상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법화원 주차장을 출발하여,

 

 

 

 

 

석도항 출국장으로 왔습니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경입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셔틀버스를 타고 석도항으로 갑니다.

 

 

 

 

 

오후 6시 경인가? 7시 경인가?

석도항을 출발합니다.

선내에서 석식과 숙박으로 인천항으로 이동합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오늘은 짙은 안개로 인해 비행기도, 선박도 접항이 불가하여 해상에서 몇 시간 기다리다 인천항 대교아래를 통과합니다.

 

 

 

 

 

아침 9시 경이면 인천항에 도착하여 하선할 것인데 해상에서 3시간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12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인천항에 접압하였습니다.

 

 

 

 

 

인천여객선터미널

 

 

 

 

 

인천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여 중국 공자기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