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순천 탐매마을과 기독교역사박물관, 국가정원과 순천만

정헌의 티스토리 2026. 3. 21. 10:56

■순천 탐매마을과 기독교역사박물관, 국가정원과 순천만

 

순천에 갑니다.

요즘  매화꽃이 한창이어서 탐매마을 홍매화를 둘러보고  간혹 들러는 향토정에서 중식후 오후 시간에 순천만국가정원, 스카이큐브, 순천만 습지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순천시 구도심에는 가볍게, 큰 기대없이 다녀볼 만한 곳이 몇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순천문화의 거리 인근으로 순천향교,  금곡동 용강서원, 옥천동 일본식가옥, 옥천서원등이 있고, 매곡동 탐매마을 주변으로는 탐매거리와 기독교 역사박물관 주변을 들 수 있습니다.

매곡동 탐매마을은 그 자체보다는 주변과 연계하는게 좋습니다. 탐매희망센타 앞쪽 이정표에 기독교 역사박물관 이정표가 있어 둘러보았습니다.

향토정에서 중식후 순천만국가정원을 둘러봅니다.

 

 

▷일정

순천 매곡동 탐매마을 거리, 선교사 주택과 기독교 역사박물관 - 향토정 중식 - 순천만 국가정원,스카이큐브, 순천만 습지  / 2026.  3.  20.

 

 

▷탐방후에

 

◐탐매동 홍매화거리

 

순천 웃장시장 맞은편 유료주차장에 주차하였습니다.

구례 등 지금 매화가 한창이어서 이곳 탐매마을도 개화시기가 비슷할 거라고 여겨 번잡함을 피해 이곳에 주차하였습니다만, 이곳 매화는 이미 저버렸다고 주차관리하시는 분이 말합니다.

 

 

 

 

 

맞은 편에 웃장

 

 

 

 

 

탐매마을로 방향을 잡습니다.

탐매마을은 과거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만 시기를 잘 맞추지 못해 비온후 낙화만 흐더러지게 보았습니다.

 

 

 

 

 

어느 분 비각 옆을 지납니다.

 

 

 

 

 

도심에 이런 비각이 남아 있음이 옛스럽 습니다.

 

 

 

 

 

탐매희망센타을 찾아갑니다.

 

 

 

 

 

 

 

 

 

 

 

 

탐매희망센타는 이곳 홍매화 탐방의 센타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탐매희망센터에서 매곡동 행정복지센타까지가 탐매거리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탐매희망센터 주변에 소공원이 생겼습니다.

 

 

 

 

 

 

 

 

 

 

 

 

소공원에 올라봅니다.

 

 

 

 

 

 

 

 

 

 

 

 

매곡동 주변에 여러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매산등(매곡동의 다른 이름),

난봉산성(매곡산성),

석탑청동불감(보물제1874호,

북정리 당산나무 옆) 및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현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 학교, 

순천 구 남장로교회 조지와츠 기념관,

순천매산중학교 매산관, 

구 선교사 프레스톤 가옥,

안력산 의료문화센터(알렉산드병원),

기독교역사박물관,

광산김씨 김중석 효자문,

개방정원(홍마가헌, 감수헌, 매산등100년정원),

매곡동 북정리,

웃장(5일장) 및 국밥축제(9월),

순천대학교,

홍매화거리와 탐방희망센터

 

 

 

 

 

 

 

 

 

 

 

조그만 공원입니다.

 

 

 

 

 

도로변에서 바라본 소공원

 

 

 

 

 

매곡동 행정복지타운 방향으로 향합니다.

 

 

 

 

 

 

 

 

 

 

 

 

 

 

 

 

 

 

 

매화마을에 매화나무가 아주 많은 곳은 아닙니다.

 

 

 

 

 

 

 

 

 

홍매화거리 코스 : 탐매희망센터 - 원불교 - 산산중 - 순천대 후문

역사문화예술 코스 : 탐매희망센타- 효자손- 천사 희망을 담다 - 기독교역사박물관-홍매가헌(홍매화정원), 탐매정원.

이곳 홍매화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피는 마을임을 감안하여 위 코스를 다녀보면 한나절 코스로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매곡동행정복지센타까지 갔다가 되돌아 갑니다.

 

 

 

 

 

탐매희망센터로 되돌아 왔습니다.

 

 

 

 

 

탐매희망센터 앞에 기독교박물관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 이정표를 따릅니다.

 

 

 

 

 

 

 

 

 

 

 

 

순천매산여고 뒷편입니다.

 

 

 

 

 

선교마을 주거구역 안내표지판이 있습니다.

 

 

 

 

 

외쪽 철대문을 들어서면 선교마을 주거구역이고,

우측 도로를 따르면 이내 기독교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입구에 애양원 재활직업보도소 부지(구 선교사 주거공간) 안내표지판이 있습니다.

1913년 조성된 순천 선교사들이 주거공간이라 합니다. 현대에는 전남 동부의 최초의 장애인 직업교육학교가 운영된 장애인 직업교육의 산실이라 합니다. 원내에 코잇 선교사 가옥, 더함 선교사 가옥(구 크레인 선교사 가옥), 외국인 어린이학교, 애양원 장애인 직업학교 신, 구 교사 건물, 선교마을 옛 담장, 선교사 정원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입구 우측편에 애양원 장애인 재활직업보도소 석조 교사가 있습니다.

애양원은 1909년 포사이트 선교사 한센병 환자 치료 계기로 임시 치료소 운영에서 출발하여 1911년 윌슨 선교사 한국 최초 한센병 전문병원 '광주 나병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1926년 조선총독부 광주 나병원 강제 이전명령으로 1927년 여수 율촌으로 이전하고 순천선교부 소속으로 편입된니다. 1935년 나병원을 애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손양원목사, 태평양 전쟁 등을 거쳐 1967년 여수애양재활병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위 건물은 1954년 보이열 애양원장이 선교부 초기 건물을 활용해 건축한 후 1962년 인애자 선교사가 순천 대홍수때 임시 결핵진료소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1974년 코플 선교사가 애양원장으로 있을 때 외과적 치료가 끝난 장애인들의 사회 활동을 돕기 위해 전남 동부지역 최초로 장애인 직업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애양원의 의료사역이 한센병 치료에서 장애인의 사회 재활로 바뀐 역사적인 전물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크지않은 선교사 마을입니다.

좌측편을 들머리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둘러봅니다.

 

 

 

 

 

이 현대식 건물은 애양원 재활직업보도소 콘크리트 신 교사입니다.

 

애양원의 장애인 직업교육이 활성화되면서 1982년에 새롭게 건축한 재활직업보도소 건물입니다. 장애인편의법(1997)이 시행되기 이전에 건립된 무장애 시설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순환형 램프 구간과 대형 벽난로가 특징이며, 당시 사용했던 기자재와 서류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시 교육생에게는 무료 교육, 기숙사 제공, 취업알선, 심리 상담, 생활 교육 등이 제공되었습니다. 졸업생 가운데 66.7%가 취업에 성공하였고 17.8%가 개업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애양원 재활직업보도소 콘크리트 신 교사 앞쪽에 있는 건물입니다.

 

코잇 선교사 가옥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13년 건립한 순천선교부 초기 주택으로 선교부 개설의 실무를 담당한 코잇 선교사가 오랫동안 거주하였습니다. 코잇 선교사는 순천선교부 개설을 위한 개척선교사로 임명되어 선교부 부지 구입부터 선교부 시설 건립과 도시기반 건설 등에 크게 기여했으며, 구례 노고단 수양관 선교마을 건립도 도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주한 지 일주일 만에 풍토병으로 두 자녀를 잃은 것을 계기로 순천에 현대식 병원과 상수도 시설이 건립되었습니다.

이 선교사 주택은 윌슨(우월순) 애양원장을 비롯해 밀러(민유수) 순천고등성경학교장,  풀 크레인(구바울)애양원장(전주예수병원장) 등이 거주한 선교부 중심 가옥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정원을 가로 질러,

 

 

 

 

 

구 선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국가등록문화재)에 왔습니다.

 

1913년 선교사 주거구역에 건립한 미남장로교 선교사 자녀들의 초등 교육기관입니다. 1970~90년대에는 애양원 장애인 직업학교인 재활직업보도소의 예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물의 외형을 회색 벽돌로 만들어 주변의 석조로 건축한 선교사 가옥과 대조를 이루며, 정교한 벽돌쌓기 기법과 집회시설다운 정문부 등에서 조형적 가치가 높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정면에서 바라본 순천선교부 외국인어린이학교

 

 

 

 

 

살며시 문을 열어보니 잠겨있지 않아 내부로 들어가 봅니다.

현 빈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함 선교사 가옥에 왔습니다.

 

 

 

 

 

더함 선교사 가옥(구 크레인 가옥)

 

1913년 건립 당시부터 1937년까지 크레인 박사 가족이 거주해 순천 사람들에게는 '크레인 선교사 가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크레인 가족은 순천의 근대 교육과 신학, 식물학, 의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1년 남장로교 마지막 선교사였던 더함 선교사 부부(노우암. 노혜련)가 순천선교부 영역 축소와 보존 관리 문제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1985년까지 거주하였습니다. 건물의 외부는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부는 콘크리트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더함 선교사 가옥의 측면 모습입니다.

반지하가 있어 차고인가? 싶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순천시 기독교역사박물관에 왔습니다.

 

 

 

 

 

기독교역사박물관 좌측편 도로를 따라 쬐끔 올라봅니다.

 

 

 

 

 

묵상의 길

 

매산등 선교마을의 기도산을 탐방하는 길입니다. 순청부읍성의 주산인 난봉산을 기독교인들은 '기도산'. 또는 '에덴동산'이라 불렀습니다. 교인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 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현재 1913년 조성한 선교마을 옛 상수도 시설이 남아 있으며, 2012년 교인들이 기도했던 공간에 '가도의 벽' 조형물을 세우고 묵상의 숲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안내문에서>

 

 

 

 

매산등 성지 순례길

매산등운 조선시대 이래로 아이들의 풍장터(애기 장터)가 있었던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1913년 난봉산 자락 언덕에 미국 남장로교 순천선교부가 교회. 학교. 병원과 선교사 주택 등을 건립하면서 선교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1986년까지 교육. 의료. 복음 분야의 80여명의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이로써 매산등은 전남 동부지역 기독교의 요람일자 최초의 종합병원이 설립된 근대의료의 중심, 미래 인재양성을 위한 근대교육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또한 일제에 저항한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풍토병 등으로 수많은 순교자와 희생자를 배출한 기독교 성지이기도 합니다. 현재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역사적인 다섯 동의 근대건출물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매산등 성지순레길은 선교마을의 교회. 교육, 주거. 의료 구역과 기도산*묵상의 숲)을 탐방하는 역사체험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탐매마을을 찾을 때 이곳 매산동 성지 순례길을 포함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묵상의 방

 

 

 

 

 

묵상의 방은 박물관 성경 필사 체험실입니다. 이 건물은 과거 선교사들이 지은 석조건물 자재를 재활용하여 2012년 박물관 개관 때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한국 교회의 오랜 전통인 성경 사경과 묵상을 위한 전용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성경 필사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성경책을 만들어 보고, 내면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는 장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경과 원고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묵상의 방과 박물관 사이에 맨튼윌슨(애양병원 초대원장)이 의료선교를 목적으로 타고 다니던 차량과 동종의 모델인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1921년식 FORD  T-MODEL,  4기통  2,899cc로 미국 위스콘신주에 보관중이던 차량을 선교사 후손인 린튼가에서 기중하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역사박물관을 둘러봅니다.

 

 

 

 

 

박물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비로 들어서면 직원이 지하층의 제1전시실을 둘러보고, 1층의 제2전시실, 2층의  기역자 교회를 둘러보는 순서로 안내합니다.

 

 

 

 

 

지하1층의 제1전시실에 왔습니다.

 

이 전시실에는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유입된 기독교의 발달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종교가 이닌 서양의 학문으로 들어와 근대식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발전되었는지와 당시 조상들의 생활상까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공간입니다.

 

 

 

 

한켠엔 1950년대 선교사들의 여행가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놋쇠 다리미와 곱돌판, 사각반, 함, 망태기와 패랭이, 지승바구니, 베개, 미투리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순천 노회의 역사

노회는 특정지역내 여러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모임(회)으로 생각하시면 쉬울 듯 합니다.

 

 

 

 

 

순천 안력산병원 진료권, 크로마하프, 실로폰, 매산중하교 모자 등등

 

 

 

 

 

 오르간 등등 

 

 

 

 

 

1층 제2전시실을 둘러봅니다.

 

 

 

 

 

제2전시실은 순천시를 중심으로 호남 동부권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삶과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질적인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던 선교사들의 노력 등을 생활유물과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4대를 거쳐 100년을 넘게 이어온 유진별 가문의 특별한 한국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요선교사의 활동을 연도별로 구분하여 게시하였습니다.

 

 

 

 

 

100년 넘게 이어지는 한국 사랑

한국에 온 선교사 가문 중 특히 두 명문가를 든다면 언드우드家와 린튼家를 들 수 있습니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미국 북장로교가 파송한 대표적인 선교사였고, 유진 벨은 남장로교가 파송한 대표적인 선교사였습니다. 이 두 가문의 공통점이 있다면 100년이 넘도록 4대째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해 오고 있느는 점입니다.

그 중  유진 벨과 린튼가문은 호남지방 선교사역에 헌신하였고, 특히 순천지역과는 관계가 깊습니다.

린튼가 유진 벨의 3세손 휴 린튼의 자녀 중 세테판 린튼, 제임스 린튼,  존 린튼 이들 3형제(5형제중 3형제)가 한국에서 일하는 4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출생하여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린튼 가문은 유진 벨 재단을 설립하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에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 벗들Christian Friend of Korea"이라는  NGO를 통해 17년째 북한의 결핵퇴치운동과 우물파주기 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존 린튼은 교통사고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겪고 한국형 응급구급 차량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이를 직접 설계. 제작하여 119응급구조체계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존 린튼은 2012. 3. 21일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로 인정되어 "특별 귀화자"로 한국 국적을 취들하였습니다.

존 린튼의 한국 이름은 인요한(1959~) 입니다. 

 

 

 

 

 

제2전시실의 전시 유물

소형 TV, 휴대용 축음기, 탁상용 날자 카운터, 1900년대 다리미 등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산 반자동 세탁기와 주방 가열기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에 기역자 교회(작은 예배당)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종교로 처음 유입될 당시(19세기, 조선시대)에 남자와 여자가 한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유교의식 남녀칠세부동석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예배당 구조로써 한국 근대사회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소중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낯선 유교적 가치관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며 박물관 관람 후 실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ㄱ' 자의 꺾인 안쪽 부분은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서리 부분에 십자가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작은 도서관 윗쪽 부분이 궁금해,

 

 

 

 

 

기독교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 교내에 프레스턴 선교사 가옥(국가등록문화재)이 있습니다.

1913년 순천에서 처음으로 건립한 선교사 가옥으로 순천 선교부 개설을 주도한 프레스턴 선교사가 오랫동안 거주하였습니다. 건물은 순천 옥천에서 나는 화강암(호랑이석)으로 건물 외벽을 쌓고 한식 기와를 얹은 한양 절충식 구조입니다. 해방 후에는 순천선교부의 의료사역을 주관한 역대 애양원장 보이어(보이얼). 토플(도성래) 선교사 가족 등이 거주하였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매산여자고등학교 정문 앞입니다.

 

순교자들

 

신사참배 반대운동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매산학교와 안력산병원의 문을 닫고 저항하였으나, 본국으로 추방당했습니다.  1940년 순천중앙교회에서도 황두연 장로와 10여명의 학생들이 원탁회를 조직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쳤으나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원탁회원들과 박용희 목사가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또 1940년 순천노회 소속 목회자 15명이 구속되어 징역 3년에서 1년까지 구형되었습니다.(박용희, 선재련, 김형모, 감상도, 나덕환, 오석주, 김정복, 선춘근, 박창규, 김순배, 임원석, 양용근, 김형재, 강병담, 안덕윤)

 

신사참배반대 순교자(1942~1943)

이기풍 목사 :평양신학교제1회 졸업생, 1938년 신사참배 반대로 구속되어 온갖 고문으로 중병을 얻어 병보석 중 순교

양용근 목사: 매산학교, 평양신학교 졸업, 신사참배 반대로 광주형무소에 복역중 고문을 받고 옥중 순교

 

여순사건 순교자(1948.10.)

 

 

 

 

 

랜더로버와 인휴 선교사

 

순천의 검정고무신이라 불리며 순천 복음화에 힘쓴 인휴 선교사가 타고 다녔던 차량과 동종 모델이라 합니다.

인휴 선교사와 안기창 목사님은 6.25전쟁때의 미국 전략지도와 건설부에서 발간한 지도를 구입하고, 사전에 각 교단의 주소록을 수집하여 지도를 정리하였습니다. 정리 후 그들은 개척 후보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국 농어촌 구석구석을 방문하면서 지도에 표시된 각 교파들의 교회와 개척후보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전국의 두메산골과 비포장으로 된 험로를 다니기에 튼튼한 랜드로버 차량이 적당하였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저구실 샘으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매산 여고를 한바퀴 돌면서 순례길 곳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만 오후 일정도 있고하여 이쯤에서 마무리 합니다.

 

 

 

 

◐향토정 식당

 

간혹 순천에 가면 들러곤 하는 한식당입니다.

 

 

 

 

 

집의 내부는 수수하게 정감이 가는 분위기 입니다.

 

 

 

 

 

순천에서 이름난 맛집으로 찾는 분들이 많은 집입니다.

 

 

 

 

 

◐순천만 국가정원

 

순천만 국가정원에 왔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10,000원으로 순천만습지까지 같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경로는는 무료입장입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초창기에 이어 여러본 와 본 곳입니다.

가볍게 산책삼아 새로운 곳이 있나하고 이곳 저곳 다녀봅니다.

 

 

 

 

 

비비큐 식물원으로 갑니다.

참고로 관람차 탑승요금은 어른 3,000원이며 경로우대는 없습니다.

 

 

 

 

 

 

 

 

 

 

 

 

 

 

 

 

 

 

 

 

 

 

 

 

 

 

 

 

 

 

 

 

 

 

 

 

 

 

 

 

 

 

 

 

 

 

 

 

 

 

 

 

 

 

 

 

 

 

 

 

 

 

 

 

 

 

 

 

 

 

 

 

 

 

 

 

 

 

 

 

 

 

 

 

 

 

 

 

 

 

 

 

 

 

 

 

 

 

 

 

 

 

 

 

 

 

 

 

 

 

 

 

 

 

 

 

 

 

 

 

 

 

 

 

 

 

 

 

 

 

 

 

 

 

 

 

 

 

 

 

 

 

 

 

 

중국정원을 지나

 

 

 

 

 

 

 

 

 

 

 

 

스카이큐브 탑승장으로 갑니다.

 

 

 

 

 

운행구간은 정원역(순천만국가정원)에서 순천만역(문학관이 있는 곳)간 4.6km 구간을 왕복하며 순천역에서 정원역으로 되돌아 오는 스카이 큐브의 마지막차는 동절기(11월~2월)는  17:30붐, 하절기(3~10월)는18:30분 입니다. 

스카이큐브 소요시간은 편도 약 10분이며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평일) 휴무합니다.

탑승요금은 어른 왕복 8,000원,  편도 6,000원입니다.(경로우대는 없습니다.)

 

 

 

 

 

스카이큐브 순천만역에서 내리면 순천만 갈대밭입구까지 열차(버스) 정류장이 있고, 이어서 순천문학관, 낭트정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천만 스카이큐브 역에서 벗어나면 이런 열차(버스)가 순천만 갈대밭 입구까지 무료로 운행합니다.

순천문학관에서 순천만 갈대밭 입구까지는 약1.5km거리 입니다.

 

 

 

 

 

순천문학관

 

 

 

 

 

낭뜨정원

 

 

 

 

 

 

 

 

 

 

 

 

순천만 갈대밭 입구에 왔습니다.

 

 

 

 

 

용산전망대로 가는 길은 여러번 다녀봤기에  이번에는 람사르길로 갑니다.

 

 

 

 

 

 

 

 

 

 

 

 

순천만 람사르길(맨발걷기길)

2코스는 이곳(생태체험선 선착장)에서 순천문학관까지 1.3km(20분)

3코스 이곳에서  장산소공원까지는 4.1km(70분)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장산 소공원쪽으로 갑니다.

 

 

 

 

 

건너편 용산전망대로 가는 데크길이 보입니다.

 

 

 

 

 

용산전망대쪽 능선

 

 

 

 

 

흑두루미탐조대

 

 

 

 

 

둑방길과 둘방 아랫쪽  자전거길이 나란히 있습니다.

이 둑방길을 맨발걷기 길이라 하나 봅니다.

 

 

 

 

 

과거 이 길을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용산전망대쪽 길보다는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생태체험장 옆을 지납니다.

 

 

 

 

 

 

 

 

 

 

 

 

 

 

 

 

 

 

 

자전거 U턴하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이만큼에서 되돌아 갑니다. 생테처험 선착장입구에서 25분쯤 소요되었습니다.

 

이곳 해안을 따라 계속 직진하여 안풍습지를 지나 처음 만나는 마을이 장산마을입니다. 따라서 장산 소공원은 장산 마을 인근 어디쯤 있는 곳일것 같습니다.

과거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이곳을 조금 지난 대밭? 인근에서 통행을 차단하였습니다만 지금은 통행을 허용하나 봅니다.

 

 

 

 

 

 

 

 

 

 

 

 

 

 

 

 

 

 

 

 

 

 

 

 

 

 

생태체험선 선착장 인근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곳 생태체험선 선착장 인근에 탑승장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갈대열차는 오후 6시 20분에 있습니다. 

현재 시간은 6시를 조금 넘고 있습니다.

순천만습지(순천문학관) 스카이큐브 탑승장에서  순천만국가정원으로 가는 스카이큐브 막차는 오후 6시 30분 입니다.

(순천만 국가) 정원역에 도착하여 나머지 한국정원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잘 꾸며진 습지 주변을 지나,

 

 

 

 

 

한국정원으로 왔습니다.

 

 

 

 

 

겨울철이어서 정원의 연못(부용지)엔 물을 가두지 않았나 봅니다.

 

궁권의 정원

조선시대 궁궐 후원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조성되었습니다.

창덕궁 부용지와 부용정, 경복궁 교태전의 후원 문,  아미산 화계, 길상 문양의 전통 꽃담을 볼 수 있습니다. 어수문, 만월문과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물로문이 있어 궁궐 정원의 특장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으로 숙종 33년(1707 / 정조 증측)애 건립되었습니다.

부용은 연꽃을 나타내며 왕의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는 부용정으로 숙종 33년 택수재를 지었으며 정조때 규모도 커지고 이름도 고쳐지었습니다. 신하들을 초대하여 꽃구경하고 낚시질과 뱃놀이를 즐겼으며, 시를 지어 부용정에 걸기도 하였습니다. 건물면적은  30㎡(높이 5m)이고,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면의 기본형은 정면만을 다각으로 잡이 5칸이 되게 한 +자형특수평면인데, 배면 한 칸은 연못에 높은 석주를 세우고 수중누각이 되게 하였습니다.

부용지는 가로세로가 30m에 달하는 네모꼴의 큰 연못입니다. 그 한 가운데에 둥그란 섬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전통적 우주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땅 위로 흐르는 물이 고인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진 연못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어수문

정조 즉위 원년에 지은 어수문은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이며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관계도 물과 물고기처럼 친밀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어수문은 왕만이 출입할 수 있었으며 신하들은 허리를 숙여 다닐 수 있는 양옆 협분(작은문)으로 드나들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어수문을 지나면 만월문이 있습니다.

 

만월문은 궁궐 후원에서 군자의 정원으로 넘어가는 문입니다. 둥그런 만월문을 통해 바라보는 군자의 정원은 한 폭의 산수화 같습니다.

<안내문에서>

 

 

 

 

 

꽃담

 

 

 

 

 

광풍각

 

군자의 정원

군자의 정원은 자연속에서 학문을 연구하던 옛 선비의 정원을 보여줍니다. 선비들이 앉아 시를 읊었을 것만 같은 세심정, 면못 위에 오롯이 서있는 광풍각과 서석지, 낮은 담장과 정겹게 느껴지는 협문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품으려 했던 옛 선비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서석지와 경정

 

서석지는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세연정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가 연못으로 정영방이 지었습니다. 정영방은 광해군의 실정과 당파싸움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서석지와 경정 등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였습니다.

 

 

 

 

 

서석지와 경정(敬亭)

 

 

 

 

광풍각

 

양산보의 스승 조광조가 유배당하여 죽게되자 출세를 버리고 은둔을 위해 지은 소쇄원의 별당으로 지어졌습니다. 광풍은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 이라는 뜻으로 광풍각에는 영조 31(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이 그려진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소쇄원은 양산보가 창암촌에 30살부터 짓기 시작하여 39살이 되었을 때 완성을 보았습니다.

 

 

 

 

 

세심정

조선 중기 남명의 제자 최영경 등이 중심이 되어 덕천서원을 지을 때 함께 지은 정자입니다.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위치한 세심정은 덕천서원 유생들의 휴식처로 세운 정자이며, 세힘이란 말은  주역의 '성인이 마음을 씻는다/는 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소망의 정원으로 왔습니다.

소망의 정원은 옛 서민들의 민간신앙을 모티브로 조성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하나, 돌 하나도 소중히 여길 만큼 자연을 신성시했습니다. 자연은 간절한 기도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두 손 모아 빌던 우리의 옛 정서를 반영한 공간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한국의 정원을 둘러보니 어둠이 내립니다.

 

 

 

 

 

나무 도감원

나무도감원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나무부터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수종까지 200여종의 자생나무와 수종을한자이레 모은  '살아있는 나무 백과사전'입니다. 

 

 

 

 

 

 

 

 

 

 

 

 

 

 

 

 

 

야외음악당

 

 

 

 

 

 

 

 

 

 

 

 

 

 

 

 

 

 

 

 

 

 

 

 

 

 

 

 

 

 

 

 

 

 

 

 

 

 

 

 

 

 

 

 

 

 

 

어둠이 내려고서야 순천만국가정원 탐방이 마무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