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옥룡암, 보리사, 통일전, 효소왕릉.성덕왕릉
농특회 모임이 있어 경주에 갑니다.
경주엔 가 볼 곳이 많습니다. 시내 대릉원 주변으로 계림, 첨성대, 동궁과 월지,월성교, 교동 최씨고택등 서로 이웃해 있습니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경주 오릉, 천관사지, 나정, 포석정, 삼릉 등등이 있고, 일반적으로 삼릉을 들머리로 하여 경주 남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서쪽으로 홍무공원과 김유신 묘역, 경주무열왕릉 주변을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근년에 시내 동쪽편 상서장, 최치원독서당, 황복사지 삼층석탑, 진평왕릉, 경북천년의 숲, 신문왕릉,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등 낭산 주변을 다녀왔습니다.
오늘 모임이 저녁시간대라 집에서 12시경 출발하여 중간에 중식 후 오후 시간대에 옥룡암, 보리사와 마애석불, 통일전,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일정
옥룡암- 보리사, 마애석불 - (망덕사지, 망덕사지 당간지주) - 통일전 - 효소왕릉, 성덕왕릉, 성덕왕릉귀부- 토함 한우채 (2026.4. 10.)
▷탐방후에
◐옥룡암(현 불무사)

경주 천년의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옥룡암과 보리사가 있습니다.
먼저 옥룡암에 왔습니다.
절 바로 앞까지 승용차 진입이 가능합니다.

경내 노송 한 그루

종무소 내지는 요사인 듯 싶습니다.
옥룡암은 이육사 시인이 1936과 1942년에 머물며요양했던 곳으로 알려지 있습니다.
특히 1942년 여름, 옥룡암 내 요사채인 삼소헌(三笑軒)에서 약3개월간 머물며 그의 대표작인 '청포도'의 초고를 구상하고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옥룡암 옆쪽에 작은 계곡을 끼고 있어 주변 경관이 좋습니다.
가을철 단풍이라도 들면 아주 멋질 곳입니다.

주 불전은 대웅전입니다.

옥룡암 자체는 크게 짜임새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삼층석탑이 상당한 연륜을 보입니다.

남산 탑곡 제2사지 석재(난간석등)

대웅전입니다.
3칸의 아담한 규모입니다.

대웅전 내부.

대웅전 옆의 이 건물은?
일로향각(一爐香閣)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한개의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보통 법당을 관리하는 스님이 기거하는 곳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대웅전 앞입니다.
사진상 뒤로 보이는 건물은 삼성각입니다.
삼성각엔 산신, 칠성, 나반존자(독성)를 모십니다.
산신은 그 지역 산을 지키는 신령으로, 호랑이와 함께 인자한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칠성은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존재입니다.
독성(나반존자)은 스승 없이 홀로 깨달음을 얻은 성인으로, 말세의 중생에게 복을 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 세분을 각각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에 모셨으나, 나중에 한 곳에 모시게 되면서 삼성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조금 상부쪽 관음전으로 왔습니다.
왼쪽에는 소림정사의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관음전 좌측에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이 있습니다.

부처님 좌우에 황룡사 9층탑, 7층탑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공사중이라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애불상군 좌우로 돌아 상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쪽에도 불상이 조각되어 있고 마애불도 있습니다.

그늘과 양지와의 음양 차이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주 남산 탑곡 제2사지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이 석탑은 통일신라 9세기 후반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형태이다,
석탑의 비례, 부재의 구성방법, 장엄구의 구성 등에서 경주 남산 일원에 많이 남아있는 지역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층기단 석탑 계통이면서도 기단의 탱주(건물이나 석탑의 기단부에서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기둥)가 없고, 몸돌을 받는 탑신받침을 별석으로 만들어 넣었다. 지붕돌의 받침은 3단이며 낙수면 모서리에 내림마루(목조 건축에서 무서리 부분에 기와를 여러 겹으로 쌓아 높이 솟아 있는 부분)를 새기고 그 끝 부분에 장엄구를 설치했던 홈이 남아있다. 1977년 없어진 부분을 보충하여 원형을 복원하였다.
이 탑의 독특한 세부 기법은 시대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경주 남산에 조영된 석탑의 양식 및 시기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현지 안내문에서>

경주 남산 탑곡 제2사지 탑재(면석)
탑곡 제2사지(현 옥룡암) 마애불상군 보호책 서남쪽에 일부가 드러나 있던 탑재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20년 정비하였다.
석탑의 상층기단면석(석탑을 만들기 위해 땅 위에서 쌓아 올린 단의 표면석)으로 추정되며, 탑재 양쪽 가장자리에 우주(몸돌이나 기단석 등의 모서리에 새긴 기둥)가 새겨져 있다. 크기는 너비 135cm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마애불상군 측면
◐보리사,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마애석불

보리사에 왔습니다.
주차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삼층석탑이 있고,

범종각이 있습니다.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내부

크지않은 절이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깨끗한 사찰입니다.


석조여래좌상으로 갑니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보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은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있는 석불이다. 광배와 더불어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까지 갖추고 있어 경주 남산 석불 가운데 가장 온전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석불은 머리가 작은 소라모양으로 덮여 있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인 옥계가 높게 솟아있다. 얼굴은 다른 돌로 조각하여 끼운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덮은 옷은 주름이 촘촘한 편이다. 손의 모양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배 부분에 대고 있고 오른손은 향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불상과 별도로 만들어 세운 광배는 꽃무늬, 불꽃무늬, 작은 화불(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변화하여 나타나는 부처)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광배 뒷면에 왼손에 약그릇을 든 약사불을 선으로 새긴점이 독특한데 동방 약사, 서방 아미타라 하여 석조여래좌상을 아미타불로 보기도 한다,
이 불상은 옷주름이 복잡하고, 가슴은 평평한 편이며 무릎은 다소 작게 표현하였다. 불상에 나타난 기법으로 보아 이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보다 늦은 시기인 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향마촉지인 : 좌선할 대의 손 모양, 오른손을 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은 땅을 기리키는 모양,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성취한 정각(正覺)을 지신(地神)이 증명하였음을 상징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보리사를 둘러보고 입구로 내려갑니다.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이번엔 마애석불로 갑니다.

주차장에서 마애석불까지는 약 200m 전후가 될 듯 싶습니다.
초반 사면을 지나 제법의 경사길을 따라 급하게 100m쯤 올라야 합니다.

규모면에서 너무 작아 애개~ 싶습니다.

보리사 마애석불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이 불상은 암벽에 돋음새김한 좌상이다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바위 면에 연잎모양으로 얕게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겼다.
불상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고불고불하게 말려 소라쳐럼 새긴 나발이다. 두 어깨를 덮고 있는 법의 사이로 가슴이 드러나 있고, 그 아래에 속옷의 윗단이 넓고 경사지게 표현되었다. 두 손은 아랫배 부근에서 옷자락 안으로 숨어 있다. 가부좌한 하체는 가운데로 향하는 옷의 주름들로 두툼하게 표현되었다. 다리 아래에 얕게 음각된 연꽃잎은 연화대좌로 보인다 상체에 비해 하체의 폭이 좁아 다소 왜소한 느낌을 준다,
불상의 온화한 얼굴 표정과 단정한 자세는 명상에 잠긴 부처의 자비심이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기법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 망덕사지 당간지주

망덕사지와 당간지주는 저만큼 거리를 두고 지나칩니다.
◐통일전

통일전에 왔습니다.

넓게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규모가 꽤 있다싶은 생각이 듭니다.
주차료, 입장료 등은 없습니다.

통일전은 신라의 삼국통일 위업을 기리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1977년 건립된 곳으로 태종 무열왕 김춘주,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전각입니다.

세분의 비석,

통일전


3분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영정 주변 회랑에는 사진, 통일과 관련한 그림을 전시하였습니다.

통일전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연못쪽으로 한바퀴 돌아 통일전 탐방을 마무리 합니다.
◐ 효소왕릉, 성덕왕릉, 성덕왕릉 귀부

경주시내에서 불국사로 가는 방향으로 볼 때 도로 좌측편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4차선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작동하므로 신호등에 맞춰 진입하시면 됩니다.
나중 되돌아 나올 때도 불국사쪽으로 좌회전 신호등이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후 조금 걸으셔야 합니다.
현 철로는 없지만 옛 철길이 이곳을 지나갔나 봅니다.

구 철길을 건너,

먼저 효소왕릉을 만납니다.

효소왕은 성덕왕의 형입니다.

효소왕릉
이 능은 신라 제32대(재위692~702)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왕의 맏아들로서 6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며, 어머니인 심목태후가 8년간 섭정하였다. 효소왕의 재위 기간에 관제를 정비하고 의료 교육기관인 의학을 설립하였다. 고구려의 엣 땅을 되찾기 위하여 성을 많이 쌓았고, 왕도에 물품의 유통을 쉽게하기 위하여 시장을 열었다. 효소왕이 죽은 후에 망덕사 동쪽에서 장사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시가지 동남쪽 형제봉의 남서쪽 산자락에 있다. 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동생인 성덕왕의 능이 있다. 봉분 가장자리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둘레돌 몇 기가 드러나 있다. 내부 구조가 동방무덤(석실분)인 것을 확인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성덕왕릉
효소왕릉에서 100m쯤 거리에 있습니다.

형의 무덤인 효소왕릉에 비해 석조물이 많습니다.


이곳은 신라 제33대 성덕왕(702~737)의 무덤이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 효소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농사짓는 백성들에게 정전(丁田. 신라때 토지 제도의 하나, 15세 이상의 남자에게 나누어주던 토지)을 지급하였고, 규흘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서 정치를 안정시켜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성덕왕이 죽은 후에 이거사 남쪽에 장사를 지냈으며, 왕의 무덤은 동촌 남쪽 혹은 양장곡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능은 형제봉의 남서쪽 산자락에 있다. 둘레돌의 버팀돌 바깥쪽에 삼각형 돌이 받쳐져 있다. 이 돌 사이에 갑옷을 입은 입체 십이지신상이 있다. 그 중 원숭이상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능 주위로 돌난간을 둘렀고, 능 앞에 돌사자와 관인상을 배치하였다. 이 능의 비는 성덕왕 사후 18년이 지난 경덕왕 13년(754)에 세운 것이다 비석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비석받참만 남아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관인상

왕릉 둘레로 사람 모습의 12지신상.
그의 목이 없고 한 개 정도 제대로인것 같습니다.

성덕왕릉 앞쪽에 성덕왕릉 귀부가 있습니다.


이 귀부는 통일신라 성덕왕의 능앞에 세웠던 비석의 거북 모양으로 된 받침이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효소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비석 몸체와 머릿돌은 없어지고 이 받침돌만 남아 잇다. 받침돌의 거북은 목이 부러졌으며, 네 발에는 발톱을 새겨 놓았다. 등에 육각형 무늬를 새겼으며, 중앙에 비석 몸체를 꽃았던 네모난 홈이 있다. 거북의 등에 새긴 무늬나 다른 덩굴무늬로 보아 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경덕왕 13년(754)에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덕왕릉은 통일 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왕릉으로 십이지와 석인(石人), 석수(石獸)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예로서 학술적인 의미가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성덕왕릉과 귀부를 둘러보고 회원들의 만남 장소인 불국사 관광단지로 갑니다.
'경북지역의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주 옥산서원, 불국사, 동궁과 월지 (0) | 2026.05.27 |
|---|---|
| 경주박물관, 석굴암, 불국사 (0) | 2026.05.25 |
| 고령 고이동벽화고분, 장기리암각화, 안화리암각화, 김면장군유적, 반룡사, 개실마을 (1) | 2026.03.23 |
| 고령 영모정, 시온산수목원, 가얏고정원, 우륵공원과 중화저수지 둘레길, 우륵박물관 (0) | 2026.02.02 |
| 경주 상서장, 최치원 독서당, 황복사지 삼층석탑, 낭산 추정 고분지 왕릉석재, 진평왕릉, 천년숲정원, 신문왕릉,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지, 중생사 (1) | 2025.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