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산

창원 경남도립미술관, 창원수목원,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저도연륙교

정헌의 티스토리 2026. 6. 15. 18:55

■창원 경남도립미술관, 창원수목원,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저도 연륙교

 

삼목인문학 모임 회원분들과 함께 이건희 소장, 파카소 도예 특별전을 보러 경남도립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이 양반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도예작품은 또 새롭게 다가옵니다. 

중식은 준비한 충무깁밥으로 창원 수목원 피크닉 존에서, 해결하고 잠시 쉰 후 문신미술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문신미술관은 여러해 전 창동예술촌과 더불어 들런 적이 있는 곳으로 원형미술관이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휴식을 겸해 차한잔 하면서 쉴 수 있는곳으로 저도 연륙교를 찾았습니다. 날씨가 살짝 덥기도 해 팥빙수로 통일하고 일행중 윤선생이 한턱 쏘셨습니다.

 

 

▷일정 

창원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수목원 - 창원시립 문신미술관 - 저도 연륙교 - 산청에서 석식 - 귀가

 

▷탐방후에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경남도청옆에 있는 경남도립미술관 주차장은 넓은 편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찾는 분이 많지 않아 추차 여유는 있습니다.

 

 

 

 

 

이곳 도립미술관 3층에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 도예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둘러보러 왔습니다.

 

 

 

 

 

도립미술관은 초행입니다.

 

 

 

 

 

주차료는 없으며, 관람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24세까지) 및 군인은 700원입니다.

중.고등학생과 경로는 무료여서 관람 비용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다.

 

 

 

 

 

 

 

 

 

◐경남 도립미술관 3층 / 제4전시관, 제5전시관

 

피카소 도예특별전은 3층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3층에 제4, 제5 전시관이 있습니다.

이곳 작품을 도슨트님이 예쁘고 상냥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여인,

 

피카소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는 여인입니다.

연인은 그의 삶과 예술의 원동력이었으며,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이자 화풍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특히 도예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곳인 프랑스 남부도시 발로리스의 마두라 공방에서 만난 자클린 로크(1926~1986)는 노장의 피카소가 도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운 중요한 조력자입니다. 피카소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400점이 넘는 작품울 남겼습니다. 도예에서는 접시를 포함, 물병과 화병 등을 변형시켜 여성의 특징적 모습을 묘사한 도조(도자 조각)방식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피카소만의 유희적 도예의 특징을 만들어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이젤 앞의 자클린 / 1956, 

백토, 화장토, 회색  파티나 장식, 부분유약 시유

42*42*3.5cm

 

 

 

 

자클린의 옆모습 / 1956

백토, 흑색 파타나 장식,  부분 유약 시유

19*19* 2.5cm

 

 

 

 

 

올빼미

접시와 성형된 화병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올빼미(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의 동물로, 피카소가 매우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였습니다.

피카소는 화병을 변형시켜 올빼미와 인물의 표정이 섞인 신화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빛나는 부엉이 / 1955>는 접시 전체를 부엉이의 몸체로 형상화했고, <여인의 얼굴을 한 올빼미 / 1952>는 피카소의 가장 대표적 주제인 인물과 동물을 혼합해 피카소 도예 특유의 조형성을 보여줍니다. 

<안내문에서>

 

 

 

 

동물

 

피카소의 작품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합니다. 비둘기, 염소, 부엉이, 개 등 피카소의 삶과 작품 안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비둘기와 염소는유년 시절 그림의 주요 소재였으며, 염소를 해부한 경험은 이후 평면과 입체에서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하며 회화와 조각 그리고 도자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둘기는 1949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평화의회 포스터에 그려지면서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피카소는 작업실에서 여러 동물을 직접 키우며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시켰고, 각 동물의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안내문에서>

 

 

 

 

 

 

 

 

 

 

 

가운데

 

음각물병 / 1954

백토, 화장토, 파라핀

백색 에나멜 장식 , 보링로드 각인

 

 

 

 

 

염소 머리 / 1950

백토, 산화 파라핀 장식, 유약 시유

 

염소 머리 / 1950

백토 산화 파라핀, 에나멜 장식

 

염소 머리 / 1950

백토, 산화 파라핀 장식, 유약 시유

 

 

 

 

 

큰 새와 검은 얼굴 / 1951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얼굴

피카소가 미술을 처음 시작했던 유년 시절부터 말년까지 가장 많이 제작한 작품은 초상화였습니다. 인물은 그에게 가장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도자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역시 '얼굴'입니다. 피카소는 동일한 모티브를 반복해서 그리기를 즐겼는데,  이러한 제작법은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확장해 가는 실험의 과정이었습니다.

도자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도, 석고 틀 위에 백토를 올린 뒤 찍어 만든 작품부터 백토 위에 검은 화장토를 채색하고 나이프로 얼굴선을 새긴 후 유약을 칠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재료와 기법에 따라 무한하게 확장되었습니다.

<안내문에서>

 

 

 

 

 

네 개의 얼굴이 그려진 아즈텍 화병 / 1957

백토, 화장토, 파라핀,

백색 에나멜 장식, 나이프 각인

 

 

 

 

 

 

 

 

 

 

 

비주류로 인식되었던 소박한 예술, 장인의 예술, 공방의 예술인 도예는 피카소에게  장르간의 경계를 재정의할 방법, 더 정확하게는 이 경계를 자유롭게, 끊임없이, 즐겁게 넘나들 수 있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조각은 무잇인가? 회화는 무었인가?

우리는 진부한 생각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의에 매몰되어 예술가의 역할이 새로운 생각과 정의를 만드는 것임을을 망각한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안내문에서>

 

 

 

 

 

 

"내가 만든 도자기를 모든 시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브르타뉴 지방의 마을이나 다른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 물을 길어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피카소와 도자기>, 요안 포플라르

 

 

 

 

 

동영상실

 

 

 

 

 

피카소를 만나다 2000

 

루치아노 엠메르

40분 01초

국립현대미술관 자막 제공

 

 

 

 

 

신화

 

신화는 피카소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거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피카소가 발로리스의 마두라 공방을 처음 방문하였을 대 제작한 <목신의 머리 / 1947>작품 역시 신화를 주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염소의 뿔과 다리를 가진 반인반수 파우누스(목신)와 같은 신화 속 인물에서 자신과의 유사성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했습니다.

신화 속 인물은 피카소 작품에 투영된 원초적 남성성과 정체성을 반영한 주제입니다. 

<안내문에서>

 

 

 

 

 

 

 

 

 

 

 

투우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에게 투우는 주요한 작업 주제 중 하나입니다. 9살에 그린 투우 그림을 평생 간직할 만큼 그의 정체성과 정서를 형성한 근간이었던 투우는 도예에서도 다양하게 제작되었습니다. 동그란 접시는 투우의 원형 경기장과 같아 접시 위에 투우사가 말을 타고 창으로 찌르는 장면 등 투우의 상세한 장면들을 역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아를(Arles), 님므(Nimes), 발로리스(Vallauris)의 투우장을 즐겨 다녔던 피카소는 투우를  언어 없는 대화라고 일컬으며, 투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관념을 표현하였습니다.

<안내문에서>

 

 

 

 

 

 

 

 

 

 

 

사람들 

 

피카소는 1904년 23살의 나이에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주하였습니다. 파리에서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곡예사, 어릿광대 등)을 주인공으로 삼아 표현의 다양성을 실험하였습니다. 또한 1916년에 러시아 발레단의 무대미술을 의뢰받아 이탈이아에 가게 되면서 발레와 춤의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피카소는 무대 위의 무용수 등 춤추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도자에서도 춤의 형태와 무용수의 움직임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감은 그의 예술세계를 형성하는 소중한 소재였습니다.

<안내문에서>

 

 

 

 

 

플루트 연주자와 기사들 / 1956

네명의 춤추는 사람들  / 1956

플루트 연주자와 기사들 / 1956

 

 

 

 

 

 

 

 

 

 

 

정물과 풍경

 

피카소는 초기 입체주의를 실험하던 1910년대부터 정물과 풍경을 주요한 소재로 활용하면서,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정물화를 다수 제작했습니다. 피카소는 반복적으로 두개 이상의 정물을 병치시키는 방법을 통해 형태와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도자에서 정물은 입체주의의 탐구적인 자세와 다른 일상적이고 편안한 장식적 요소로 표현되었습니다. 식탁 위의 사물들을 실용적인 접시 위에 새롭게 장식함으로써 일상적 기물을 예술로 전환하였습니다.

<안내문에서>

 

 

 

 

도예와 판화

 

1920년대 후반, 피카소는 판화 제작(동판화)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평생 2,500여 점의 판화 작품을 남겼습니다. 1945년에 새로운 기술을 작품에 도입하기 위해 석판화를 시작했으며, 이후 리노컷이라 불리는 리놀륨판화(목판화와 유사한 부조판화)를 제작했습니다. 도예를 시작할 무렵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도예에 판화 기법을 적용하고 그 점점을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에는 리놀륨에 형상을 새긴 뒤 석고로 캐스팅한 후 점토나 테라코타 판에 찍어낸 사각형 타일 형태의 작품 9점이 설치되었습니다.

 

 

 

 

 

 

 

 

 

 

 

피카소는 천재적인 창조자였지만 도예 작업에 필요한 물레를 어떻게 사용하는 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수공예에 통달한 사람에게 가졌던 그의 호감은,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능력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두라 공방의 젊은 도예가 장 데르발에게 물레 작업의 기술적인 세부사항을 전해 들을 때도, 그는 데르발을 아랫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동등한 동료 예술가로 대우했다. 또한 이달고 아르네라에게 리놀륨 판화의 비밀을 전수받을 때는 이해가 빠르고 겸손한 학생이었다.

<피카소의 이발사>. 미니카 체르닌. 멜리사 뮐러

 

 

 

 

 

 

 

 

 

 

 

 

 

 

 

 

 

 

 

 

 

 

 

피카소 도예의 연대기적 배경

 

 

 

 

 

창문도 작품이 되었습니다/

 

 

 

 

 

예술품을 보는 시각이 좁은가 봅니다.

언뜻 볼때 왜 이렇게 표현하였나? 하였는데 작품이라고 하니 달리 보입니다.

 

 

 

 

◐도립미술관 2층 / 2관, 3관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우리는고도로 기술화된 현 시대에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나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 거대한 기술 시스템과 도시 인프라, 비인간적인 존재들과 얽혀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감시와 관측, 도시 공동체와 자연환경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장면들은  '인간 이후'가 먼 미래의 재난 시나리오가 아니라,이미 현재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또 다른 현실임을 보여준다.

 

이곳의 작업들은 기술을 단순히 두려움이나 경외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시선과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기계와 알고리즘, 테트워크와 맛물리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계산 가능해지고 무엇이 끝내 수치회 되지 못한 채 남는지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경, 테이터로 추상화된 움직임, 표준화된 화면속에 재구성된 자연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안간 중심적 사고'를 낯설게 만든다. 동시에 도시의 기술 시스템 속에 지워지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 혹은 비인간적인 생명, 비표준적인 몸, 기록되지 않은 데이터에 관한 질문을 함께 불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보다는  '인간이 중심이 아닌 세계에서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다. 기술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관게망 안에서, 책임과 돌봄,감각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를 따라가야 하며, 어떤 것들을 것들은 속도를 늦추거거나 멈추게 할 책임이 있는가. 그에 따르는 윤리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해 보기 위한 공간이다. 전시 끝에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거대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미 변하고 있는 감각과 관계의 구조일지도 모른다. 인간 이후를 상상하는 일은 결국, 현재의 인간을 다시 정의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셰계의 조건을 새로 그려보는 일과 맞닿아 있다.

 

 

 

 

 

3관의 작품들입니다.

 

 

 

 

 

오주영 / <황조롱이 드론> 2025.

 

 

 

 

 

 

 

 

 

 

 

2관으로 이동

 

 

 

 

 

로비 상부의 조형물 중 하나,

 

 

 

 

 

2관에 왔습니다.

 

 

 

 

 

서성협 / <겹쳐진 기념비>, 2026, 합판에 먹, 유채,  스텐실, 

 

 

 

 

 

 

 

 

 

 

 

 

 

 

 

 

 

이진주 / 기억의 방법, 2008, 장지에 채색

 

 

남겨진 얼굴들, 이어지는 목소리들

우리가 언떤 방식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공동체를 어떻게 이루는지를 묻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특정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얼굴과 몸, 이름과 이야기가 다양한 매체로 남아있다. 이 이미지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여전히 말을 걸어오는 존재들로 배치된다. 개인의 초상과 집단의 역사, 사적인 상처와 공적인 폭력이 서로 포개지는 자리에서, 기억이 감정의 영역을 넘어 정치와 윤리의 문제라는사실을 드러낸다.

 

 

 

 

 

박영숙 / 미친년 시리즈 #3

 

이곳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완성된 영웅 서사나 단일한 역사 서술이 아니다. 카메라에 포착된 얼굴들,  영상 속에서 겹겹이 나오고 사라지는 목소리들, 이름이 적힌 자리와 지워진 자리,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장면들이 서로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어떤 이미지는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오랫동안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주체들을 전면으로 불러들이고, 다른 작업은 전쟁과 국가 폭력, 사회적 재난 속에서 사라진 이들의 말을 다시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때 기억은 하나의 사건을 회상하는 행위라기 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을 현재로 옮겨오는 실천으로 이해된다.

 

 

 

 

 

박영숙 / <미친년들 시리즈 #1>, 1999

 

우리는 이제 '누가 기억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머무르지 않고, '누가 기억할 것인가', '어떤 형식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함께 묻는다. 얼굴을 응시하고, 목소리를 듣고, 침묵의 자리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관객 지신이 이미 누군가의 과거를 이어 듣고 있는 현재의 중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우리가 말하는 '우리'라는 범주가 어떤 역사와 감정을 품고 있으며, 그 바깥에 여전히 남겨진 얼굴과 목소리는 없는지 묻도록 만든다.

 

 

 

 

 

박영숙 / <미친년 프로젝트. 갇힌 몸 정처없는 마음 #2>

 

그리하여 남겨진 얼굴들을 통해 이어져야 할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말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은 더 이상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관계와 공동체를 다시 쓰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무엇을 잊지 않기로 할 것인지, 어떤 이야기들을 앞으로의 시간속에서 계속 이어 말할 것인지에 대한 자기만의 대답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영숙 / <미친년 프로젝트. 갇힌 몸 정처없는 마음 #1>

 

 

 

 

 

영상실

 

 

 

 

 

특별전시실

좌측의 액자와 커튼 뒤에 작품이 있습니다.

 

 

 

 

 

거울

 

 

 

 

 

뭔 / 캐릭터(점. 선, 면), 2014년, 스레인리스 스틸, 전구, 아크릴, 대구 미술관 소장

재벌가의 인맥도를 표시한 것이라 합니다.

 

 

 

 

 

1층 전시실일 겁니다.

오학진 / 나다라타 2023, 2023, 폐차 부품, 철, 조명 등 가변크기, 

 

 

 

 

 

 

 

 

 

 

 

 

 

 

 

 

 

 

 

 

 

 

 

 

 

 

 

 

 

 

 

 

 

 

 

서성협 / <릅기와 배기> 2024.

송풍기. 스탠드, 덕트 호스. 하모니카, 모터 컨트롤러, 전원타이머

 

 

 

 

 

키큰 나무를 가로의 영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층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창원수목원

 

창원시내에 위치한 수목원입니다.

 

 

 

 

 

오늘은 피크닉 장에서 준비한 충무김밥 등으로 점심먹는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창원수목원은 도심속의 수목원치고 면적도 꽤 넓으며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이쯤에서 마무리 합니다.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문신미술관

 

창원시립마산박물관에 왔습니다.

이웃하여 창원시립 문신박물관이 있습니다.

마산박물관엔 별 볼것이 없다길래 들어가 보지 않았습니다.

 

 

 

 

 

문신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야외 작품,

 

 

 

 

 

못과 대지 / 박종배

 

 

 

 

 

문신미술관에 왔습니다.

정문도 예술품이라 합니다.

 

입장료는 어른 500원,  경로 무료

 

 

 

 

 

문신선생의 작품의 특징은 좌우 대칭에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정대칭이 아니라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문신선생 상

 

 

 

 

 

 

 

 

 

 

 

살던 곳

 

 

 

 

 

 

 

 

 

 

 

 

 

 

 

 

 

 

 

 

 

 

 

 

 

 

 

 

 

문신미술관엔 문신미술관, 원형전시관, 특별전시관 건물이 별도로 있습니다.

먼저 문신미술관을 둘러봅니다.

 

 

 

 

 

1층

 

 

 

 

 

 

 

 

 

 

 

 

 

 

 

 

 

 

 

 

 

 

 

 

 

 

 

 

 

 

 

 

 

 

 

 

 

 

 

 

 

 

 

 

 

 

 

2층으로 갑니다.

 

 

 

 

 

 

 

 

 

 

 

 

 

 

 

 

 

 

 

 

 

 

 

 

 

 

 

 

 

문신미술관 2층 전시실을 둘러보았습니다.

 

 

 

 

 

문신원형미술관으로 갑니다.

 

 

 

 

 

 

 

 

 

 

 

 

 

 

 

 

 

 

 

 

 

 

 

문신 연대기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원형을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는 파기하는데 반대 문신선생은 원형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안재영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실 건물로 왔습니다.

 

<Missing you, 사물의 기억>

 

그의 작품을 설핏 보면 색의 들고남, 붓의 움직임, 공간의 깊이 등 알듯 모를 듯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지 는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 여전히 우리는 그림이, 미술작품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관념의 경계와 울타리를 넘어서면, 그의 작품은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속 어떤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될지도 모른다,

깊은 공간에서 색들이 겹쳐 서서히 앞으로 다가오는 색들의 임체감과 움직임을 만드는 그의 작품은 색과 움직임들 사이에서 전체 화면을 균형적으로 조절되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있는 선의 흔적과 작고 선명한 색들은 우리 눈을 화면 전체에 끌고 다니며 화려한 색들의 유희를 느끼게 한다. 어떤 형상도 없이 이런 유희를 만들어내는 것의 그의 작가적 역할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난해하다.

 

 

 

 

 

 

 

 

 

 

 

개인적으로는 썩 호감이 가지 않는다.

 

 

 

 

 

미술관 주변을 둘러봅니다.

윗쪽에 문신선생 묘소도 있습니다.

 

 

 

 

 

 

 

 

 

 

 

 

 

 

 

 

 

폐자재인데 이렇게 쌓아두니 작품같습니다.

 

 

 

 

 

 

 

 

 

 

 

문신선생 묘소입니다.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나는 서민과 함께 생활하고,

나는 신처럼 창조한다

 

문신 / 1923~1995

 

 

 

 

 

마산앞바다.

고층 빌딩이 시야를 많이 가립니다.

 

 

 

 

 

시내쪽.

문신미술관을 둘러보고 저도 연륙교로 갑니다.

 

 

 

 

◐저도 연륙교

 

연륙교 2km쯤 못미쳐 카페 '쿠'에서 쉬었다 갑니다.

 

 

 

 

 

카페 쿠

 

 

 

 

 

팥빙수를 시켰습니다.

날씨가 살짝 덥기도 했지만 팥빙수 맛이 좋습니다.

 

 

 

 

 

카페 쿠에서 잠시 쉬었다가 저도 연륙교에 왔습니다.

 

 

 

 

 

들머리

 

 

 

 

 

사랑의 열쇄

 

 

 

 

 

옆에서 저도 연륙교를 한번 보고,

 

 

 

 

 

건너 갑니다.

 

 

 

 

 

연륙교 주볌 몇 카페가 운치있습니다.

 

 

 

 

 

 

 

 

 

 

 

 

 

 

 

 

 

 

 

 

 

 

 

 

 

 

 

 

 

 

 

 

 

 

 

 

 

저도 연륙교 주변에서 잠시 산책후 귀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