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남의 부인을 엿본 죄

정헌의 티스토리 2010. 7. 7. 18:14

남의 부인을 엿본 죄

 
어느 마을을 지나던 김삿갓은 우연히 담장 너머로 예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루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김삿갓은 그만 걸음을 멈춘 채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참을 여인에게 넋을 빼앗긴 채 서 있는데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 왔다.
『여보시오』
누군가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자기 뒤에 웬 사내가 서 있었다.
갓을 쓴 품이 제법 어울리는 것으로 봐서 글줄이나 읽는 선비 같았다.
『당신이 나를 불렀소?』
김삿갓이 묻자 사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여기에 당신하고 나 말고 또 누가 있소?』
여인에게 정신이 팔려 누가 부르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를 불렀소?』
김삿갓이 사내에게 묻자 그는 대뜸 성을 내며 되물었다.
『당신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저기 집안에 서 있는 여자는 내 마누라  인데 왜 남의 여자를 넘보고 있는 거요? 당신 혼 좀 나야겠군』
그러고 보니 사내는 자신이 훔쳐보고 있던 여인의 남편인 성 싶었다.
그는 당장 멱살이라도 잡으며 대들 기세였다.
김삿갓은 급한 김에 꽃구경을 하고 있었노라고 둘러댔다.
『그게 무슨 말이오? 댁의 집 담장을 따라 핀 꽃이 하도 곱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고 있던 중이오』
그러나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소? 당신은 이 근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사는 누구요?』
『나는 그저 지나가는 과객이오. 시를 읊으며 전국을 유랑하는 사람이라고 알아두시면 될 거요』
시를 짓는 사람이라고 하자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정말 시를 지을 줄 안단 말이오?』
그러면서 자신이 운을 부를 테니 거기에 맞춰 시를 지어보라는 것이었다.
『좋소, 운자를 불러 보시오』
김삿갓은 우선 사내에게 남의 여편네나 기웃거리는 좀팽이로 기억되는 것이 싫었고, 그 다음으로는 초면부터 건방지게 사람을 얕잡아 보는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심산이었다.
사내가 첫 운자를 불렀다.
『기역!』
『운자(韻字)가 한문이 아니고 언문풍월이오?』
『한문이든 언문이든 아무려면 어떻소? 힘들면 좀 더 쉬운 운자로 불러 주리까?』
그런 말을 듣고서는 물러설 김삿갓이 아니었다.
『아니오. 잠시만 시간을 주시오』
운자치고는 다소 어려웠으나 김삿갓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빨리 글귀를 생각했다.
일부러 자신을 골려 주려고 그런 운자를 불렀다는 것쯤은 이미 그도 알고 있는 바였다.
『요하패(腰下佩) 기역!』
허리에 기역자니 낫을 찼다는 뜻이었다.
사내는 다시 빠르게 운자를 불렀다.
『이응!』
이번에는 김삿갓도 바로 응대했다.
『우비천(牛鼻穿) 이응!』
소의 코를 뚫고 이응자를 달았으니 결국 코뚜레를 달았다는 뜻이었다.
사내는 또 운자를 불렀다.
『리을!』
『귀가수(歸家修) 리을!』
리을(ㄹ)은 한자의 '몸 기(己)'로서, 즉 집에 가서 자기 몸을 닦으라는 뜻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부르는 운자에 대해 조금도 막힘 없이 응대하자 더욱 큰소리로 다음자를 외쳤다.
『이번에는 디귿!』
『불연점(不然點) 디귿!』
불연(不然)이란 '그렇지 않으면' 이란 뜻이고, 디귿자에 점을 찍으면 망할망(亡)자이니, 이 말은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김삿갓이 지은 글귀를 모아보면 이런 뜻이었다.

네 허리에는 기역자 낫을 차고
소의 코에는 이응자 코뚜레를 꿰었구나
집에 가서 자기 몸이나 수양해라.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결국 사내를 모독하는 시였다.
하지만 그 사내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음, 과연 시를 쓰긴 쓰는 자 같구먼. 오늘 당신 운 좋은 줄 아시오』
자신을 모독한 줄도 모르고 사내는 자기집으로 들어갔다.
김삿갓도 남의 집 처자를 훔쳐보다가 망신을 당할 뻔했다고 중얼거리며 서둘러 그 집 앞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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