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터키여행 7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성소피아 사원, 그랜드 바자르 외

정헌의 티스토리 2014. 5. 1. 22:40

           ■ 터키여행 7  이스탄불 /

                           돌마바흐체 궁전, 성소피아 사원,  그랜드 바자르, 탁심광장, 보스포러스 크루즈, 피에로티언덕   

   

              터키여행 7일차, 오늘의 주요 일정은 이스탐불 시내 관광입니다.

              앙카라에서 숙박후  약 4시간여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오후 일정인 셈입니다.        

              이스탐불은 비잔틴, 오스만 제국때의 수도로 당시 주요 유적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 일정 (2014. 4. 18)

               앙카라 - 이스탄불 / 돌마바흐체 궁전, 성소피아 사원,  그랜드 바자르, 탁심광장, 보스포러스 크루즈, 피에로티 찻집

 

 

 

 

 

           ▷ 여행후에 

 

 



           △ 앙카라 시내의 Bera 호텔에서 조식 후 출발합니다.

 

 

 

 

 

 

 


           △ 이스탐불로 이동시간을 고려하여 제법 일찍 호텔문을 나섰지만,

               사소한 차량 고장으로 1시간여 지체됩니다.

 

               터키에서 관광버스는 이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사용 년수를 5년으로 제한하여 대체로 새차입니다.

               또한 외국인을 태운 관광버스는 최고속도를 90km 이상은 규제를 한다 합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대부분 흰색임) 가격을 물어보니 한화 약 3억원 정도로 국산 버스보다 비싸며,

               휘발유 가격 또한 약4.8 내지 5Tl (한화 약 2,500원) 로 우리나라 보다는 비쌉니다.

               차량 구입에 따른 세금 또한 많아서 승용차 또한 소형이 많습니다.

 

 




 


           △ 호텔앞 신호등입니다.


               빨간 신호일때는 빨리 건너고,  파란 신호일때는 천천히 건너라 합니다. (물론 빨간 신호는 정지를 나타냄)

               사람 우선이어서 빨간 신호등일때 건너도 규제하지 않는다 합니다. 경찰도 오히려 보행자를 도와준다 하니......

               상대적으로 차량수가 적어서 그런건 아닌가 싶습니다.

 

 



 

 


           △ 이스탐불로 향하는 초반은 넓은 구릉형태의 고산지대 입니다.

 

 

 

 

 

 

           


           △ 중간 산맥을 넘어오면,

               실제로는 터널을 지나오면 기온은 완연히 차이가 납니다.

               주변의 나무도 많아지고, 숲이 무성해 졌습니다.

 

 

 

 

 


           △ 잠시 휴식 후.

               

 

 

 

 

 

 


          △ 흑해와 마르마르해를 연결하는 해협을 보스포러스 해협이라 합니다.


               흑해가 호수가 아니라 바다인 것은 이 해협으로 지중해와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동서양을 구분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는 2개의 다리와,  해저터널(열차전용)이 1곳 있답니다.

               따라서 이 다리 주변은 항상 복잡하다 합니다.

               특히 이곳에서의 4월은  ㅇㅇ기간이라 하여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더욱 그렇답니다.

              

 



 


           △ 이스탐불에 도착하여 중식을 마칩니다.

               식사는 주로 호텔뷔페식이며, 현지식에서도 주로 뷔페식이 많습니다.

               여러날이다 보니 이 집 음식이 무었 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 식당에서 도보로 시내를 가로 지릅니다.

 

 

 

 

 

 

         


           △ 탁심광장 (Taksim Meydanı) 입니다.

 

 

 

 

 

 

                


           △ 이 광장은 나중 저녁때 빨간트랩을 타기위해  다시오게 됩니다.

 

               탁심은 이스탄불 주요 교통의 허브이자 관광객과 이스탄불 시민 모두에게 인기있는 곳입니다.

               이스티클랄 거리(독립 거리)라는 긴 보행자 거리는 이 광장에서 끝이 나며, 노스타르기지 트램(nostalgic tram)도

               길을 따라  이 광장에서 출발하고, 런던 지하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지하철인  튀넬의 종점 또한

               이곳입니다.

 

 

 

 

     


           △ 광장 주변에  보이는 이슬람 사원입니다.

 

               이스탐불에는 크고 작은 이슬람 사원이 많습니다.

               외관으로 보면 모든 사원이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반면에 교회도 있읍니다만 걷으로 보기에 십자가가 반듯한 그런 교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 대형의 터키국기가 휘날리는 탁심광장을 지나,

               전세 버스를 타고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동합니다.

 

 

 

 

             ▣ 돌마 바흐체 궁전

 

 


           △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 돌마(Dolma , 가득찬) 바흐체(Bahce, 정원) 궁전은 가득 찬 정원이란 뜻으로,

               해변을 흙으로 메우고 세운 곳이라 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하고자,

               서구화를 추진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하던 1대 술탄 압둘마지드에 의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이 왕궁이 건립되었습니다.

              

 

 




           △  50만 금화, 즉 현재 돈 5억 불에 맞먹는 기금으로 건립된 이 궁은 1856년 완공되었는데,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3층의 대칭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

               4톤과 2톤 중량의 샹들리에를 포함한  36개의 샹들리에,  58개의 크리스탈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

               손으로 직접 짠 대형 카펫과 세계 각국 에서 선물받은 물건 등이 전시되어 있고 연회장 또한 웅장합니다.

 

 

 

 

 

 


            △ 그러나 결국 막대한 건축비 지출은 어려웠던 왕실 재정을 더욱 악화시켜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궁전 실내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붉은 카핏을 위로만 관광객이 다니도록 하고 있습니다.

 

 

 

 

 

 

 


           △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인테넷 까페를 잘 찾아보면 실내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실수 있습니다.

 

 

 

 

 

 

 

 

          

 

 

 

 

 

 


 

 

 

 

 

 

 

 

 

 

 

 

 

 

 

 

 

 

 

 

 

 

 

 

 

 

 

 

 

 

 

 

 

 

 

 

 

 

 

 

 

 

 

 

 

 

 

 

 

 

 

 

 

 

 

 

 

 

 

 

 

 

 

 

  

 

 

 


                           △ 돌마 바흐체 궁전을 둘러보았습니다.

 

 

  

 

 

 


           △ 이스탐불을 구유럽과 신유럽으로 구분 할 수 있으며,

               신.구 유럽은 대체로 금각만 (Golden Horn)으로 구분짓습니다.

               금각만의 다리를 건너 구 유럽에 위치한, 성 소피아 성당으로 이동합니다.

 

 

 

  

 

           △ 성 소피아 성당

 

               아야 소피아(Ayasofya) 또는 하기야 소피아 라고도 하며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라 합니다.

               아래 내용은 위키백과 사전의 자료입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편집]

 

              하기아 소피아는 원래 정교회 대성당이며, 교회는 360년, 이스탄불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

              불렸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이 정교회 대성당이 이때부터 하기아 소피아로 불리게 되었는지, 훗날의 재건 때부터 하기아 소피아로 명명되었는지는

              불확실 합니다.

              최초의 정교회 대성당은 목조 지붕을 가진 바실리카였던 것 같지만, 오늘날에는 그 위치 밖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404년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성 크리스소톰)를 추방시키는데 수반된 난동으로 교회가

              소실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재건, 415년에 축성되었습니다.

              이 대성당도 현재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바실리카이며, 현재에도 일렬의 원주와 주기, 장식된 대들보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교회 대성당도 532년 1월 13-14일 니카의 반란 도중 일어났던 대화재로, 황궁의 일부나 성 이레네 성당

              함께 다시 소실해 버립니다.

 

              두 번의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즉위후 소피아 정교회 성당의 재건을 결정하여, 그 설계를 안테미오스

              이시도로스에게 맡겨집니다.         

              공사는 5년 11개월이라고 하는 단기간에 종료되어, 537년 12월 27일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맞이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메나스 총대주교에 의한 헌당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교회를 세웠다는 생각을 하여 “솔로몬

              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 라고 외쳤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서 재건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의 소재지로서 동방정교회

              제일의 격식을 자랑하였으며, 또 동로마 제국의 황제의 사당으로서 이용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순례자들의 기록을 보면, 대성당 안에는 현재는 없어진 시설이나 성유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러시아인 스몰렌스크이그나티오스의 기록에서는, 대성당 내부에는 많은 예배

              당이 설치되어 있으며 노아의 방주의 문이나 성 십자가, 아브라함의 테이블 등 많은 성유물들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또, 이 시대에는 근처에 총대주교구의 자택이 병설되어 있어, 현재는 출입구가 되어 있는 부분은 총대주교 자택으로 통

              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편집]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거한(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오스만 제국술탄 메흐메드 2세는,  그 날

              오후에 도시로 입성하자마자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  고 외치면서  영토 확장 목적의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이 대성당을 몰수,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

              언하였다.

              이때에  대성당과 연결되어 있는 총대주교 자택의 통로는 파괴되고  대성당 내부는  십자가가 떼어지고  성화(이콘)는

              석회칠로 덮어지고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메라브가 더해졌다.

 

              그 후, 네 개의 미나렛(첨탑)이 증축되어 교회 내에는 민발로 불리는 설교 단상도 장착되었다.

              아야 소피아 자미로 불리게 된 이 정교회 대성당은 토프카프 궁전 쪽에 위치해 있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마다 방문하게 되어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스크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터키 공화국[편집]

              1923년 오스만 제정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은 하기아 소피아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터키 정부는 하기아 소피아를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üzesi)으로

              개조해 그 안에서 기독교이슬람이든 종교적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13일에 아른츠 부총리가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다시 바뀌기를 원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 돌마바흐체 궁전을 둘러보고 성 소피아 성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성소피아 성당과 이웃하여 블루모스크가 있습니다.

 

 

 

 

 

 


           △ 성소피아성당, 불루모스크, 톱카프 궁전, 히포드럼광장, 예례바탄 지하궁전은 서로 인접하여 있습니다.

 

 

 

 

 

 

 


           △ 성소피아 (아야 소피아) 성당을 둘러봅니다.

 

 

 

 

 

 


          △ 비잔틴제국(동로마)의 성당 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양식이 섞여 있는 소피아 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 동로마제국(비잔틴 제국)때인 서기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은 것을,

               532년~537년에 걸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 완공되었으며,

               오스만제국에 의해 비잔틴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 되었습니다.

 

 

 


 

 

 

 

 

 

 


 

 

 

 

 

 

 


 

 

 

 

 

 

 

 

 

 

 

 

 

 

 

 

 

 

 

 

 

 

 

 

 

 

 

 

 

 

 

 

 

 

 

 


             벽면의 십자가가 뜯긴 흔적은 1204년 4차 십자군 전쟁때 약탈해 간 것이라 합니다.

 

 

 

 

 

 

 

 

            △ 현재,

                 오랜 세월이 흘러 일부 기둥은 기울어져 있고, 바닥 또한 고르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성당안에서 가이드 이야기는 수신기로 듣습니다.

 

 

 

 

 


             △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세례요한의 벽화라 합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성모마리아와 세례요한이 탄원하고 있는 장면으로,

                 이 그림은 모나리자에서 보듯 다른 방향에서 보아도 예수의 눈이 따라 다니는 기법을 사용했다 합니다.

 

 

 

 

 


             △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한 후 그리스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이 그림 위에 회칠을 하였습니다.

                 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 회칠을 벗겨내려 하자 그림들이 함께 떨어져 나간 것으로, 이와 비슷한 그림이

                 몇군데 있습니다만 현상태 그대로 둔다 합니다.

 

 


 

 

 

 

 

 

 

 

 

 

 

 

 

 

 

 

 

 

 

 

 

 

 

 

 

 

 

 

 

 

 

 

 

 

 

 

 

 

 

 

 

 

 

 

 

 

 

 

 

 

 


              △ 간절한 바람은 기도와 같다 합니다.

 

 

 

 

 

 

 

          △ 엄지손가락을 끼우고, 손바닥은 붙인채 떼지 않고 한바퀴 돌리면 기원이 이루어진다 합니다.

               물론 소원을 빌면서,

 

 

 

 

 

 

     

                          △ 성소피아 성당은 궁전이 아니고 단독의 거대한 건물입니다.

                              1층에 이어, 2층으로 둘러보고 나옵니다.

 

 

 

 

 

 

 

 

 

 

 

 

 


            △ 웅장한 성 소피아 성당을 둘러보았습니다.

 

  

 

 

 

 


           △ 밖으로 나오면,

               불루모스크가 성소피아 성당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 뒤로 불루모스크,

 

 

 

 

 

 

 


           △ 성소피아 성당 인근에 지하 저수지인 예레바탄 지하궁전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우린 일정에 없는 코스라 패스.

 

 

 

 

 

 


           △ 도보로 그랜드 바자르 가는 중에,

 

 

 

  

 

 

 

 

 

 

 

 

 

 


           △ 성 소피아 성당에서 도보로 천천히 약 25분,

               시장이 가까와 졌습니다.

 

 

 

 

 

 


                       △ 그랜드 바자르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이랍니다.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합니다.

                           이후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에 걸쳐 그 곳에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주 아케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 현18개의 출입구와 5천여개의 조그만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의 가장 큰 바자르

                                 중의 하나로 터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가 되고 있습니다.

                                 가이드 왈

                                 물건의 진품여부는 알수 없다,

                                 값은 10분의 1이하로 흥정하라 등 몇가지 주의를 줍니다.

 

 


 

 


           △ 관광 일정상 처음으로 한식입니다.

               서울정이라 이름붙어 있습니다.

 

 

 

 

 

      


           △ 석식후,

               성 소피아성당 인근으로 전철을 타기위해 되돌아 갑니다.

 

 

 

 

 

 


           △ 불루모스크 야경

 

 

 

 

 

 

 

 

 

 

 

 

 

 

 

 

 

 

 

 

 

 

 

 

 

 

 

 

 

 

 

 

          △ 성 소피아성당일 겁니다. 

 

  

 

 

 

 


           △ 이곳에서 전철을 타고 (전세버스 이동은 교통의 혼잡 때문에 전철 이용)

               금각만의 유람선 탑승장 인근으로 이동합니다.

 

 

 

 

 

 


           △ 금각만 중간쯤,

               유람선을 타고 금각만(골든 혼) 및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 야경 투어에 나섭니다. 

 

 

 

 

 

 

 

 

 

 

 

 

 

 

 

 

 

 

 

 

 

 

 

 

 

 

 

 

 

 


           △ 돌마바흐체 궁전 옆을 지납니다.

 

 

 

 

 

 

 


           △ 해변에 접하여 있습니다.

 

 

 

 

 

 

 

     


           △ 보스포러스 해협의 다리가 보입니다.

 

 

 

 

 

 

 


           △ 다리 조금 못미쳐

               야간 크루즈는 맛뵈기 정도입니다.     

 

 

 

 

 

 


           △ 지하철인데,

               한구간만 이동합니다, 탁심광장이 종점입니다.

 

 

 

 

 

 


           △ 탁삼광장,

               터키공화국 건립 50주년 기념탑?

 

 

 

 

 

 


           △ 탁심광장의 빨간 트랩입니다.


               도로를 따라 난 철길로 운행되는 전철로 걷은 것 보다는 조금 빠른 것 같습니다.

               우리 일행은 트랩 이용보다는 걷기로 합니다.

 

 

 

 

 

 


           △ 서울의 명동거리 같이 혼잡합니다.

               거리가 유명하여 각국의 젊은이들이 관광차 들러는 곳이라 태반이 관광객이라 합니다.

 

 

 

 

 

 

 

 

 

 

 


 

 

 

 

 

 

 

 

 

 

 


           △ 무슨 방송국이라든가?

               이곳 마당에서 싸이의 공연이 있었다 합니다.

               인근에서, 탁심광장 빨간트랩 일정을 마칩니다.

 

 

 

 

 


           △ 피에로티 언덕을 오르기 위해 이동하였습니다.

               일정엔 케이블카 탑승이지만 공동묘지로 난 길을 걷기로 합니다.

 

 

 

 

 

 


           △  테오도시우스 성벽주면에 있는 피에로티 언덕은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로티가 이곳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소설을 썼다고 하여 피에르 로티의 차이하네 또는 찻집이라 합니다.

 

 

 

 

 

 


           △ 프랑스 해군장교였던 피에르 로티는 이스탄불에 부임해 있던 중 유부녀 아지야데와 사랑에 빠집니다.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이곳 공동묘지에서 데이트를 하였다 합니다..

 

 

 

 

 

 


           △ 그러나 이 장교는 임기를 마쳐 프랑스로 되돌아 가게 됩니다.

 

 

 

 

 

 

 


           △ 후에,

               삐에르로티는 이스탐불로 되돌아와 그 녀를 찾게 됩니다.

               사방으로 수소문 한 결과 그녀는 유부녀였던 까닭에 명예살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 그녀를 잊지못한 피에르 로티는,

               죽는 날까지 그녀를 그리워 하며 이곳 언덕에서 골든혼을 바라보며 작품을 썼다 합니다.

 

 

 

 

 

 

 

 

 

 

 

 

 

 


           △ 피에르로티 찻집입니다.

 

 

 

 

 

 

 


           △ 피에로로티 본인 및 아지야데  그밖의 여러 사진들이 걸려있습니다.

 

 

 

 

 

 

 

 

 

 

 

 

 

 

 


           △ 사과차,

 

 

 

 

 

 

 


           △ 피에로티 찻집 뒷편엔 다른 건물과 가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곳까지 승용차가 다닐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 피에로티 언덕에서의 야경 또한 좋습니다.

               오늘은 바쁜 이스탐불 관광이 되었습니다.

               일명 신유럽 지역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하여 오늘 일정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