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양 화림동 정자기행
함양군 서하면 봉전마을에서 부터 안의면 소재지까지, 남강 지류를 따라 길을 내고 정자를 서로 연결하여
선비문화탐방로라 이름 붙였다. 봉전마을 거연정에서 안의면 소재지까지 약 10.1 km, 농월정까지 약 6km 거리로,
초행일 경우 화림동의 정자와 주변 계곡을 따라 기분좋게 걸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황석산청소년 수련원 기점으로 황석산과 연계하여 원점회귀 산행을 한 적이 있으며, 두번째로 초여름
강변을 따라 걸어본다.
▷ 가는 길
함양 안의 - 서하면 봉전마을/ 거연정
특히 산봉우리, 기타 지명이 실제와 다른곳으로 표시된 곳이 더러 있다.
아래 지도에서 거연정으로 표시된 곳은 군자정으로 거연정은 이웃한 다리 상부에 있다.
▷ 탐방코스
구, 봉전초등학교 - 거연정 - 군자정 - 영귀정 - 동호정 - 경모정 - 람천정 - 농월정
(쉬엄 쉬엄 2시간 20분, 6km / 2014. 6. 1 )
▷ 탐방안내도
▷ 탐방후에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구, 봉전초등학교가 선비문화 탐방관으로 바뀌었고 선미문화 탐방로의 출발점 되는 곳이다.
교정(선비문화탐방관)내엔 비각과,
한켠엔 정자도 있다.
학교 좌측 상부에 이런 한옥도 보인다.
선비문화 탐방관 외견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출발한다.
교정을 벗어나 도로변으로 나오면 봉전교가 있고,
입구 화장실 앞에 비치된 버스시간표가 있다.
안의면 소재지에서나 아니면 농월정 관광지 앞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당일은 안의 정류장에서 오후 2시 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농월정 관광지에서 승차하여
거연정까지 이동하였다.
먼저 거연정을 둘러본다.
전시서 선생이 시복거(처음부터 살곳을 정하다) 한것을 추모하기 위해 1872년 후손인 전재학, 전민진 등이 건립한
정자로 표시되어 있다,
일부 자료에는 진시서 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과 군자정을 동시에 지었다고 한다,(도서 허균의 누와 정)
당시 거연정은 특별히 억새로 지붕을 덮었다고 한다,
현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대개의 정자가 풍광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풍광 속에 들어앉아 있다,
정자 주변으로 두 갈래 계류가 나눠지고, 기암의 바위와 나무들이 계곡의 운치를 한껏 끌어 올린다,
'거연'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때 성리학의 대가 주츼의 시에서 따 왔다한다,
주자는 말년에 무이계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중 <정사 精舍>에서
琴書四十年 (금서사십년) 거문고 타며 공부한지 사십년
幾作山中客 (기작상중객) 나도모르게 산중사람 다 되었네
一日茅棟成 (일일모동성) 띳집 짓는데 하루면 족하니 / ( 띠모, 마룻대 동(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居然我遷石 (거연아천석) 문득 나와 샘과 돌이 함 몸이네,
거연이 화림동의 정자 이름이 되었다,
居거자는 시尸와 고古의 합자로 움직이지 않고(주검) [尸], 옛날 [古] 그대로 살고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연然은 그러하게, 또는 문득 등의 의미를 가진 말이므로 '오래전부터 나와 자연히 하나 된 속에 그렇게 살고 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다,
주변,
진시거가 화림동 石泉정원속에 거연정을 세은 것은 자연을 벗 삼아 그와 하나 되는 즐거움을 맛보려는 심사였고,
정자 지붕을 억새로 이은 것은 무이 계곡에서 띳집 짓고 살면서 자연의 도를 즐긴 주자의 은일생활을 흠모한 까닭에서
였다, 지금은 지붕의 모습도 달라졌고, 철제 교량으로 이어졌지만 산수중에 오래 머물고자 했던 당시 선비들의 욕망과
옛 성현의 은일한 행적에 대한 사모의 정만은 아직도 '거연'이라는 두 글자 속에 살아 있다,
거연정 바로 아랫쪽에 봉전교가 있다.
봉전교 입구의 이정표.
봉전교 아랫쪽 가까이 군자정이 커다란 암반위에 서 있다.
군자정이 있는 천연의 바위는 조선초기 문신 정여창 선생이 처가인 이곳 봉전마을에 머물렀을 때부터 영귀대(詠歸臺)
라는 이름을 가진 풍류의 상징물로 존재해 왔다한다,
<논어> 선진편에
공자가 하루는 여러 제자들에게 자신의 포부을 말 하라고 했는데 이때 증점(증점)은 남들과 달리 이렇게 말했다.
"늦은 봄에 얇은 봄옷이 마련되면 관동 예닐곱명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 바람 쏘이고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莫春者春服旣成 冠童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모춘자춘복기성 관동육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
공자가 증점의 뜻에 큰 공감을 표시했는데 이 일이 후세 선비들이 소요음영하는 명분이 되었고,풍류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잘생긴 바위에 고사와 관련되거나 풍류가 깃든 이름을 붙이고 그곳을 즐기는 자신을 성현들의 행적
과 풍류에 투영하여 자족하는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 그들이 바위에 흔히 붙였던 이름으로 '영귀'를 비롯하여 장자가
말한 魚樂어락의 경지를 상징하는 觀魚관어, "창랑 맑은 물에 갓끈을 씻겠다"고 한 어부사의 주인공 굴원과 관련된
濁瓔탁영 그리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뜻의 澄心징심, 洗心세심 등이 있다,
<허균의 누와 정에서>
다른 각도에서,
군자정이 영귀대 바위위에 세워진 것은 1802년 정선 전씨 입향조인 거연정 주인 화림재 진시서의 후손들이
정여창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고 군자정이라 명명했다한다,
거연정, 군자정을 둘러보고 봉전교를 건넌다.
봉전교를 건너면서 상부쪽 거연정.
탐방로는 대체로 데크로드가 많다.
전번 탐방때와 다른 점은 전 데크로드에 페인트 칠을 하였다.
초반 노송의 숲이 싱그럽다.
영귀정을 지난다.
각도를 달리하여,
영귀정 옆의 다른 정자.
영귀정을 지나면서,
대황. 다곡 갈림길에서 잠시 도로를 따르기도 한다.
좌측으로,
사과농장을 지나.
개울 건너로 길이 이어진다.
동호정 앞에 도착한다.
동호정 앞쪽의 넓은 반석 또한 유명하다.
동호정은 장만리선생의 호에서 따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東湖는 동쪽의 호수라는 뜻이지만 성리학의 비조인 송나라 주희가 동호에서 은거한 사실로 미루어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 동호는 주자의 은거지나 주자의 독서강학 공간을 뜻하는 말로 인식되었을 것으로 주장하는
분도 있다, 주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소운경이라는 사람은 금나라의 정벌로 송나라가 남쪽으로 밀린 후 세
상을 등지고 동호가에서 채소를 가꾸며 30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은일처사와 관련된 여러 일화로 미
루어 볼때 동호가 은일자의 거처로, 그리고 동호에 사는 인물은 곧 은일자라는 의미로 통하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겠다,
동호정으로 건너가는 징금다리
주면 경관이 좋아 쉬었다 간다.
조선 선조때의 충의지사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인 장대진, 장대헌 등이 1985년에 세운 정자이다,
장만리는 당시 사림의 추항을 받은 충의지사로 선조16년(1583)에 통정대부 정릉령에에 부임했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때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 길을 재촉한 공로로 나라로부터 영세불망자(영세불망자)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또한 호성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비교적 현대에 지은 건물로 화림동의 다른 정자에 비해 규모가 크며, 단청, 공자와 그의 제자가 관련된
일화를 그린 고사인물화, 호랑이 그림, 용 조각등 다양한 소재들이 창방과 들보 등에 치장되어 있어 외견상 매우
화려해 보인다,
금적암(琴笛岩) 각자가 있다,
거문과와 피리를 불던 바위?
동호정 앞의 넓은 바위를 차일암이라 한다.
하늘을 덮을 많큼 넓은 바위란 뜻이란다.
동호정 아랫쪽에 소나무숲이 있다.
소나무숲 주변에 개미귀신이 많이 보인다.
농로를 지나,
호성마을을 지나,
경모정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커다란 바위도 보이고,
경모정을 지나.
람천정으로 향한다.
람천정.
람천정 앞쪽도 잠시 쉬기는 좋지만.
물이 맑지 못하다.
람천정 앞쪽의 이정표.
강을 건너지 말고, 계속 내려 가는 길이 좋다.
과거 밤산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어 임시라는 표시가 있지만,
지금은 수종을 편백나무로 교체하였다.
아주 어린 편백나무 식재지역을 지나면,
서하교까지 소나무 숲으로 난 길을 따르게 된다.
틈새로 보이는 강변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
서하교 건너, 황암사이다.
절이 아니고, 사당이다.
농월정 쪽으로 도로를 따르면,
구 도로(급 커브길)와 신도로가 만나는 아랫쪽 지점에 농월정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농월정은 화재로 소실되고 없지만 (지금은 신축된 농월정이 있음)
주변 반석은 멋진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건.
물이 맑았으면 ...........
농월정이 있었던 자리.
이후 안의면 소재지까지 약 4km 정도 탐방로가 이어지지만 주변이 주로 농지이어 그 재미가 덜해,
농월정 관관단지에서 2시간 20분여 일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