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회 산청 목화축제
산청 목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벌씨 11회째다.
당시 면화가 가져온 획기적인 사실에 비하면 아주 조촐한 목화축제이다,
▷ 일시및 장소,
2017. 10. 22, 산청군 단성면 목면시배유지
▷ 탐방후에
△ 식이 끝난 식장이다.
지금은 점심시간,
오후엔 베짜기 시연과 풍류가 곁들여질 것이다.
△ 면화전시관 건립 기념비,
1997년 6월에 건립되었다.
그러고 보니 20년이 되었다.
산청에 살고있으면서도 젊었을 시절에 면화시배지가 산청에 있는줄 몰랐다.
△ 목화씨는 문익점 선생이 가져오고,
시배는 장인 정천익이 했다.
가져온 사람 공이 큰가? 재배한 사람 공이 큰가?
공덕비가 나란히 있다.
△ 면화전시관이다.
입장료가 1,000원?인가 있다.
오늘은 축제일이라 특별히 면제다.
△ 면화를 재배하여 베를 짜기까지 과정을 볼 수 있다.
△ 문익점 선생은 고려 충혜왕 원년(1331) 지금의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 재배는 장인 정천익이 했다,
△ 면화 전시관을 둘러보고,
옆쪽에 위치한 부민관으로 왔다.
△ 부민각 (富民閣)
삼우당 문익점 선생이 고려 공민왕때 좌정언이 되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면화씨를 가져와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에게 무명옷을 입게 하였다. 이는 오직 백성과 국가를 위함이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좌사의대부 우문관제학 경연동지사로 벼슬을 사직한 후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시다 70세인 1700년 2월 8일
본가에서 돌아가시자 정종은 선생의 공과 덕이 지극히 크고 높음을 기리어 예장할 것을 명하였다.
이어 태종도 참지의정부사 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에 추증하고 강성군에 봉했으며 시호를 충선공이라 하고
부조묘를 세우라 명하였다.
세종대왕 또한 선왕들의 뜻을 이어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을 추증하고 부민후(富民侯)를 추봉(追封)
하였다. 이 의의를 오랫도록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7간 집을 짓고 부민각이라 이름하였다,
△ 산청 문익점 효자비,
삼유당 (三憂堂) 문익점(1329*139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이 세워진 곳은 원래 문익점 선생이 살던 마을이었다, 선생이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하고 있을때 왜적이
침범해 왔다, 지나는 곳마다 분탕질이 심하여 모두 피난을 갔지만, 선생은 홀로 여막을 지키며 평소와 같이 곡
(哭)하고 있었는데, 왜적도 이를 보고 감동하여 나무를 다듬어 "효자를 해치지 말라" 고 써서 세웠기에 일대가
모두 형안하였다 한다. 1383년(우왕9)에 정려(旌閭)를 내리고 이 마을 이름을 효자리라 이름지었다.
크기는 세로 160cm. 가로 50cm이다.
△ 면화시배지를 둘러본다,
△ 산청군 단성면을 지나간다면,
잠시 짬을 내어 둘러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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