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 장릉, 아트빌리지.
김포 잘릉은 조선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를 모신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사망할때까지 정원군인 '군'의 신분이었으며, 생존 당시 왕이 아니고 추존된 왕이다,
인조반정으로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이 되자 이미 고인이 된 정원군은 정원대원군으로 높여졌고, 10년
후에 묘호가 원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묘도 원으로 추승되어 홍경원이라 했다, 원래 양주 곡촌리(현 남양주주 금곡
동) 처갓집 선산에 초라하게 묻혀있었으나 인조가 왕위헤 오른후 현재의 김포로 옮겨지면서 장릉이 되었다,
인헌왕후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김포 성산 언덕에 예장했다가 역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 가는 길
▷ 장릉 안내도
▷ 탐방코스 (2019.8.22.)
김포 장릉 - 김포 아트빌리지,
▷ 탐방후에
▣ 김포 장릉
장릉 주차장,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장릉 정문이자 매표소,
이곳 입장료는 어른 1인 1,000원이나, 광복절 맞이 고궁, 왕궁 무료개방이다,
주차료 또한 무료개방인지 모르겠다,
김포장릉은 규모가 크지 않으나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갈림길이 있다,
어느쪽으로 가도 되지만 우측의 길이 능으로 바로가는 길이다,
걷기 좋다,
연못을 만난다,
좌측에 재실이 있고 우측에 장릉이 있는 셈이다,
연못가 철종 즉위년(1849) 12월 26일 장릉령(令. 왕릉 등을 관리하는 정5품의 관직)에 임명된 이제상이
1850년에 연지를 수리하고 지은 시가 있다,
능침 아래 황페해진 연못 줄곧 그대로 두었는데 (寢下荒池一任他. 침하황지일임타 / 잠잘 침,)
열 장부가 일하여 이십일 만에 완성하였네 (十丁攻役兩旬過, 십정공영양순과 / 열흘 순.)
나그네가 노니는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非要遠客遊觀美, 비요원객유관미)
재관이 빠트린 것이 많아서라네 (是爲齋官闕漏多, 시위재관궐루다)
돌길에 낀 안개는 작은 섬을 두르고 (石磴霾雲籠小嶼, 석등매운롱소서 / 돌비탈길 등, 흙비 매, 대그릇 롱, 섬 서.)
금빛 연못에 밝은 달은 맑은 파도를 비추네 (金塘霽月印淸波, 금당제월인청파 / 못 당. 비갤 제, 맑을 청, 물결 파 )
선왕이 남긴 은택 덕본에 백성이 자식처럼 오니 (先王遺澤民來子, 선왕유택민래자 / 갈릴 택)
진실로 종표와 시직에 복이 아니겠는가. (展矣宗邦福不那, 전의종방복불나 / 의조사 의, 어찌 나 )
좌측 재실,
나중 되돌아 오는 길에 돌아보기로 하고 장릉으로 간다,
장릉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
사적 제 202호
장릉은 추존된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아들로 1587년 (선조20년) 정원군에 봉해졌으며, 1619년(광해군 11년) 세상을 떠났다,
1623년(광해군 15년) 첫째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에 추존되었다,
인헌왕후는 1590년 정원군의 부인이 되어 3남(능양군 인조, 능원군, 능창군)를 낳았다. 623년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계운궁이 되었으며, 1626년(인조4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1632년(인조10) 원종과 인헌왕후로 추존되었으며 능의
이름은 장릉이 되엤다, 능에는 호석이 둘러져 있으며, 능으로 승격되면서 문.무석인 등의 석물이 다시 세워졌다,
추존: 세상을 따난 후 신분 등을 높임,
호석 : 흙이 흘러내려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능 주변을 감싼 석물,
홍살문,
香路와 御路,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물을 들고 가는 길이다, 좌측 약간 높고 넓은 길이 향로이고,
우측 약간 낮족 좁은 길이 어로로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다.
탐방객은 어로를 따라 걸어가면 되나 돌길 보다는 흙길이 좋다,
정자각,
가운데 제상이 있다, 제상祭床은 제사때 제물을 차려 놓는 상이다,
제상을 앞에서 바라보았을때 우측에 축상(祝床. 제향 때 축문을 올려 놓는 상). 향상(香床, 제향 때에 향로나 향합을 올려놓는 상),
관세상(盥洗床, 대야 관, 정자각게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씨는 상으로 동쪽에 위치)있고,
좌측에 망료상(望燎床, 제향이 끝난 후 사용한 축문을 태우는 상으로 서쪽에 위치), 준상(樽상, 술통 준, 제향 때에 술그릇을 올려
놓는 상) 등이 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장릉,
정자각에서 릉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다,
1. 곡장(曲墻) :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삼면으로 둘러 놓은 담장.
2. 능침(陵寢) :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봉분(봉분)아리고도 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각석을 생햑하고 호석이 둘러져 있음,
3. 석호(石虎) : 능을 수호한다는 의미로 봉분 주위에 배치하는 돌로 만든 호랑이.
4. 석양(石羊) ;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봉분 주에에 배치하는 돌로 만든 양.
5. 망주석(望柱石) : 봉분 좌우측에 세우는 한 쌍의 기둥, 윗부분에 세호(가느다란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음,
6. 혼유석(魂遊石): 혼령이 노니는 곳이란 뜻으로 석상(石狀)이라고도 함.
7. 상계(上階) : 능침 공간을 장대석으로 구분지어 두 단으로 나누었을 때 만 위의 단,
8. 문석인(文石人) : 관복을 입고 능 주인을 보좌하는 인물상.
9. 무석인(武石人) : 갑옷을 입고 능 주인을 호위하는 인물상.
10. 석마(石馬) : 말의 형상을 조각한 돌, 문석인과 무석인의 옆이나 뒤에 서 있음,
11. 장명등(長明燈) : 어두운 사후 세계를 밝힌다는 의미를 가진 석등,
12. 하계(下階) : 능침 공가능ㄹ 장대석으로 구분지어 두 난을 나누었을 때 맨 아래의 단,
13. 예감(예감) : 제향 때 축문을 태우는 곳,
14. 산신석(山神石) : 능이 위치한 곳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리.
15. 비각(碑閣) :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 둔 곳,
16. 정자각(丁字閣) : 제향을 모시는 건물로 제향 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축믈. 정청과 배위청으로 구성되며 정(丁)자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함, 단청이 되어 있음,
17. 수복방(守僕房) :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무는 건물.
18. 향로와 어로(香路, 御路) :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제향 때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라 하여 향로라 하고, 오른쪽의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로라 함.
19. 판위(판位) : 능에 행차한 왕을 위해 마련한 자리, 배위(拜位)라고도 함,
20. 홍살문(紅箭門) :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의 문,
비각,
육경원 비석 받침돌
인조의 어머니인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 구씨(추존 인헌왕후)가 1626년(인조4)에 승하하자 무덤의 이름을 육경원
(毓慶園/ 기를 육)이라 하고 이곳 김포에 예장하였다,
다음해(1627년, 인조5)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 추존 元宗)의 무덤 흥경원(興慶園)을 양주 곡촌리
(현 남양주시 금곡동) 에서 육경원으로 옮겨와 두 원을 합하여 흥경으로 하였다. 1632년 (인조10)에 홍경원을 장릉
(章陵)으로 격상시키면서 종전에 있던 석물들 중 사용하지 않게 된 일부를 능 좌측 언덕에 묻었는데, 세월이 지나면
서 육경원의 비석 받침돌이 지상으로 노출되어(2007년) 이 지리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14대 선조의 가계도
의인왕후 박씨
인목왕후 김씨 - 영창대군
공빈 김씨 - 임해군, 광해군
인빈 김씨 -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주존왕 원종) ---- 인헌왕후 구씨 : 능양군(인조), 능원군, 능창군,
순빈김씨 등 이하 생략,
정원군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과 비범한 관상으로 부왕인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선조가 사망하고,
이복 형인 광해군이 왕이되자 정원군은 잠재적인 정적으로 집중적인 견제와 감시를 받았다, 특히 정원군의 어머니
인빈 김씨의 무덤과 정원군이 살던 집터에 왕기가 서렸다는 소문 때문에 광해군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더욱이 정원군의 셋째 아들 능창군은 성품이 호탕하고 인물이 훤칠하며 무예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마침
능창군이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 등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고자 한다는 상소가 들어왔다, 그러자 광해군은 곧바로
능창군을 강화도로 유배보낸 후 죽였다, 광해군 7년(1615)에 일어난 이른바 '신경희 옥사'다,
정원군이 더욱 낙담한 건 아들을 잃은 지 2년 후였다. 지관 김일룡이 "새문동 (정원군기 살던 집)에 왕기가 서려 있
으니 그곳에 궁궐을 짓자"라고 광해군에게 보고했다, 광해군은 그곳을 빼앗아 경덕궁(현재의 경희궁)을 짓게 한다,
정원군은 광해군이 나머지 아들들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술로 달래다가 40새의 나이에 화병으로 죽는다,
정원군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623년 광해군이 쫒겨나고 정원군의 큰아들인 능양군이 왕위에 오른다, 정원군
의 부인인 인헌왕후는 아들이 왕이 돠자 남편의 한을 풀듯 빼앗긴 새문동 집터(경덕궁)으로 되돌아가 몇 년을 살다
1626년 숨을 거둔다,
릉 주변을 둘러보고 산책로를 따른다,
왕릉 앞 저수지 뚝으로 내려왔다,
저수지 둑을 지나 재실쪽으로,
재실(齋室),
재실은 크게 재실과 행랑으로 구분될 수 있다,
행랑은 대문, 하인방, 마구간, 창고, 집사방 등이 있는 부속건물이다,
이 건물은 원종(원종)과 인헌황후 구씨의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이다,
제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그외 부속 공간인 행랑 등
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간 측면에서 본 재실.
행랑,
정문으로 나간다,
산책하기엔 거리가 조금 짧은 것이 흠이지만, 두바퀴 세바퀴 돌아도 되겠다,
▣ 김포 아트빌리지
김포시민의 일상속에서 문화를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웨해 모담산 2만 4천평 부지에 약 20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한옥 14채를 포함한 총 26동의 건물을 지었다,
언제든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각종 문화예술체험장, 아트센터 전시관, 한번에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
연장, 전통놀이체험마당, 전통한옥숙박체험관, 예술동아리 단체들을 위한 다목족 홀과 연습실 등이 조성되었다,
아트빌리지 안에 식당이 있다,
맛집으로 알려져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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