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청 산들길. 수계정. 환아정. 대장마을 - 내리교간 탐방로.
산청읍내에도 여러 길이 있다.
대표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6구간중 산청읍내를 통과하는 길, 읍내 이곳저곳을 연결하여 산청 항노화 산들길로 이름붙인 명상의 길. 느림의 길, 청춘의길, 전통시장길이 있고, 가볍게 꽃봉산.문암대를 거쳐 경호강변을 따라 되돌아 오는 등산로가 있다.
외지에서 산청을 찾아 가볍게 걷고자 한다면 아래와 같이 조합해 보면 하루코스로 부족함이 없겠다.
먼저 조산공원(성우아파트 인근)에 주차하고 꽃봉산 - 회계산 - 문암대를 거쳐 경호강변을 따라 되돌아 오면 천천히 약 2시간이내로 소요된다.
이어 내리교를 건너 내리교 - 대장마을간 간 신설된 탐방로, 환아정, 수계정, 경호강변으로 난 지리산 둘레길 6코스인 경호강변을 따라 조산공원 주차장으로 되돌아 온다면(또는 역순) 1시간 20분 내지는 2시간쯤, 합하여 약3시간 30분에서 4시간쯤이면 충분할 듯 하다.
오늘은 대장마을에서 내리교간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지만 산청에 살고 있는 분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이를 소개하고자 답사에 나선다. 이 길은 지리산 둘레길 중 산청읍내를 통과하는 포장된 도로 구간 대용으로 이용해도 된다.
▷탐방코스
산청향교 - 수계정 - 환아정 - 경호1교 - 대장 ~내리간 탐방로 - 산청읍내- 산청향교
(천천히 탐방로 들머리 찾는 시간 약 30분 포함 총 2시간 50분, 대장마을에서 내리교까지는 약 50분 소요 / 2022. 11. 10.)
▷탐방안내도
외지에서 오신 분이라면 적색 점선을 따라 한바퀴 둘러보는데 천천히 3시간 30분~4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생각된다.
○ 빨간색 실선은 명상의 길(1.5km)로 산청소방서에서 산청향교와 뒷편 향교산, 수계정을 거쳐 군청 뒷편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향교와 앞쪽의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수계정이 주요 볼거리이다.
○황토색 실선은 느림의 길로(3.86km)중 경호강의 우측변으로 난 길만 주의깊게 봐 놓으면 된다. 군청뒷편에 환아정이 신축되어 있어 볼거리이며 강변으로 난 탐방로 주변 경관이 좋다.
○청색길은 청춘의 길(1.1km)은 성우아파트에서 꽃봉산 중허리로 난 포장된 도로로 몇 음식점 등을 제외하면 그다지 볼 것은 없다.
○분홍색 길은 산청전통시장길이며 시장주변의 음식점 등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안내도에 표시는 없지만 대장 - 내리간 탐방로는 기존 농로에 탐방로를 신설하여 이어붙인 길로 걷기좋은 길이다.
○아래 꽃봉산 안내도는 아쉽게도 회계산- 문암대로 이어지는 코스를 넣지않았다. 위 대충 그린 안내도를 참고하면 된다. 가볍게 걷기엔 좋은 길이며 문암대 주변 경관이 좋다.
꽃봉산 - 체육쉼터을 지나 회계산, 문암대를 거쳐 강변을 따라 되돌아 오는 코스까지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조금 아쉬다는 생각이 든다.
▷탐방후에
11월 10일,
만추를 지나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이곳은 산청향교로 앞쪽에 수령 약500년의 은행나무 한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본인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향교 앞쪽이다.
명상의 길은 인근 산청소방서에서 향교와 향교 뒷산을 지나 수계정으로 이어가는 길이지만 오늘의 주 탐방로는 대장마을 - 내리교여서 빠른 길을 따라 수계정으로 간다.
원불교 앞을 지나,
향교에서 5분여 남짓, 수계정으로 왔다.
언제 설치되었지? 떡하니 산청공원으로 이름지었다.
우리에겐 수계정이 낮익은 지명으로, 산청사람에게 산청공원이 어디냐고 물으면 잘 모를 수 도 있다.
수계정.
정면에서,
측면에서 한컷 더.
산청공원의 맨 상부엔 충혼탑이 있다.
충혼각
충혼각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산청군 출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존영을 보관하는 곳이다.
수계정의 전망 정자.
수계정은 크게 남.북. 동쪽으로 들,날머리가 있고, 비교적 근년에 강변쪽 사면에 데크길을 만들었다.
강변쪽 데크길을 완전히 걷기 위해 북쪽으로 살짝 내려선다.
이만큼에서 산청공원 허리를 가로지르는 데크길을 신설하였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이 산청구간에선 경호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15분쯤 수계정 주변과 데크길을 걸어 남쪽 산청초등학교 뒷편 도로변으로 내려왔다.
탐방로는 초등학교 뒷편 강변으로 나 있다.
금서면으로 이어지는 다리(경호교).
수계정과 산청초등학교를 구분짓는다.
산청초등학교 뒷편이다.
황노화 산들길
초등학교, 경찰서. 군청이 나란히 있어 , 이곳은 초등학교가 끝나는 지점쯤이다.
군청 갈림길.
군청 뒷편의 환아정이 준공된지 얼마되지 않아 이곳 이정표에 환아정 표시는 없다.
사면 데크길이 아닌 군청 뒷편 한아정쪽 능선을 따라 오른다.
환아정 옆문이다.
물론 살짝 돌아 앞쪽의 정문으로 올라도 된다.
환아정 담.
동쪽 방향에서 바라본 환아정.
겹처마로 지은 집은 흔치 않다.
환아정은 (현)산청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며 1950년 3월 화재로 소실되었다.
2018년 산청읍 중심지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여 2022년에 세번째로 복원하여 준공하게 되어 산청군민의 오랜 숙원과 자존심을 함께 이루어 내게 되었다.
복원된 환아정은 대지면적 3,500㎡, 건물연면적 222㎡로 전통한옥방식으로 지어졌으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누각일 뿐만 아니라 한옥에서 보기 드문 겹처마를 이루고 있다.
정문은 사의문 편액을 달고 있다.
환아정
선비의 고장 산청의 상징적 건물이었던 환아정은 1395년 2대 산음현관 심린(심린)이 창건하였으며, 환아정이란 정자 이름은 중국의 황하강 하류에 있는 경호강에서 한 장자가 대명필 왕희지에게 거위 한 마리를 주고 정자 이름을 부탁하여 지은 이름이 환아정이 되었으며, 권반(권반)께서 중국 역사를 인용하여 이름을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환아정 현판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참고>
현지의 환아정 안내표지판에 환아정 이름을 '중국의 황하강 하류에 있는 경호강에서......... '로 표시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중국 왕희지의 거위와 관련된 고사는 회계산 아래 사는 어느 도사가 황희지에게 거위와 도덕경을 바꾼데서 유래하는데 그곳은 현재 소흥(샤오싱 / 옛 이름이 산음) 시로 항저우 동남쪽 약 60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또한 소흥시에 경호라는 호수가 있다. 양쯔강 상하이에서 황해로 합류되고, 황하는 북경에서 황해로 흘러드는데 맞는 내용인지 의심이 든다.
환아정은 창건 된 지 200년 만인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고, 1608년(광해군1) 41대 현감이신 권순에 의해 두 번째로 복원되었으며, 이후 1911년 일제강점기에는 학교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1950년 3월 화재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후대에 영남의 3대 누정으로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산청의 환아정을 꼽고 있다.
옛 선인들은 환아정이 있는 산음을 방장요지(방장요지) 즉,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였다. 신선이 되기 위해 환아정에 오르지 않고서는 죽어서도 편안하게 저승 문턱을 넘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이승의 평생 소원을 풀기 위해 멀고 먼 험난한 노정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전국의 시인묵객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환아정이었다.
또한 보기 드문 역사적인 배경과 화려하고 예술적인 건축미, 빼어난 주변 환경 등으로 "산음이 있어 환아정이 있고, 환아정이 있어 산음이 있다"고 할 만큼 환아정은 산음인의 자부심이요 구심점이며 큰 긍지였다.
<이상 현지 안내문에서>
소헌 정도준님이 현판을 썼다.
소헌 선생은 진주 출신 서예가로 대단하신 분이다.
환아정 중건기
옛 선현들은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정자와 누각을 지어 그 지역의 지리를 널리 알리고 백성들과 시인묵객들이 올라 시문을 짓기도 하고 풍류를 즐기며 세파에 시달린 심신을 달래며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하였다.
우리고을 산청은 동국의 진산 두류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동남으로 그 맥이 흘러 북쪽에는 문필봉이 우뚝하니 가라성 같은 학자가 끊이지 않았고 왕산에는 가락국의 역사가 서려있다. 남쪽에는 웅석봉이 나래를 펼치고 멀리 두류 덕유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북풍한설 막아주고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의 맑은 물은 굽이굽이 감돌아 백성들의 젖줄로서 풍족하였다. 난정기에 상고하건대 중국 회계산음의 산림과 유수는 그 아름다움이 더 비할데가 없다고 했는데 어찌 우리 산음의 풍광이 회계에 뒤지겠는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운림천석의 자연환경이 천혜의 명승을 이룬 이곳에 일찍이 일천사백년대 초에 청송 심린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더니 백성은 순박하고 정사가 태평하였다. 이에 객사의 후원으로 정자를 창건하고 권반이 이름을 지으니 환아정이라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초기 격동의 시기에 이런 대 역사를 추진할 수 있었는 것은 아마도 심린 현감의 부. 조부. 증조부가 삼대에 걸쳐 정승의 직에 있었기 때문에 조정의 협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환아정은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영남 삼대 누각으로 손꼽혔으며 산청이 선비의 고장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누각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하여 소실되었고 1640년경 권순에 의해 복원되었으나 1950년 화재로 인해 또다시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중간에 여러 차례 보수와 단청 그리고 부속물을 건립한 바 있으나 기존의 기문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일일이 열거치 않는다. 선현들이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을 길이 보존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이다. 수많은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이 그동안 고을의 수령들이 복원을 생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실행치 못하였다. 이에 평소 전통문화의 중요성과 역사의식이 투철한 이재근 군수가 산청의 상징적은 환아정을 복원키로 결단하고 심재화 군의회 의장과 군의회가 합심하니 그 정성이 대의를 성사케 한 것이다.
총1,210평 부지에 정자와 누각의 고유한 멋을 살려 2년여 만인 2022년 5월에 완공하니 그 자태가 웅장하여 옛 모습에 비해 손색이 없다. 오호라! 세상이 조석으로 변해 고도와 고례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러한 대 역사를 이룩함은 천운이 도래함인가. 이는 육백여년 전에 선현들이 세운 큰 뜻에 매우 부합하는 일이며 영구히 보존치 못했던 송구스러움을 이제야 면하게 되었음이다. 역사를 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선현들의 숭고한 얼이 새겨진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풍광에 세속의 얽매임을 씻고 심신을 가다듬어 산청이 선비의 고장이요 실천유학의 산실이며 나라의 위기에는 기꺼이 목숨도 바치는 의로운 백성들이 대를 이어 사는 곳임에 긍지를 느끼며 올곧은 선비정신을 배양하여 환아정과 함께 천추만대에 그 정신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이에 중건기문을 짓는다.
서기 2022년(임인) 오월 일
성균관 고문 원임부관장 청송 심동섭 짓고 신구 윤효석 쓰다.
환아정에서 바라본 금서면 창주 일원,
고속도로 산청 IC, 종합운동장과 체육관, 문화예술회관 등등이 있으며 산청한방약초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이곳은 경호교.
산청읍내 방향
상량.
용 세재신축년음시월오일사시(서기 2021년11월 9일 입주상량 / 응천상지오광, 비지상지오복 구.
겹처마.
하부는 돌기둥을 세워 완벽한 복원은 아닌셈이다.
15분여, 환아정을 둘러보고,
환아정에서 강변 데크길로 내려서는 길을 따라도 되고,
군청 뒷편으로 내려서서 데크길을 따라도 된다.
군청 뒷편의 경변데크길을 따른다.
지금 경호강은...
경상남도 진주시, 산청군, 함양군에 걸쳐있는 길이 32km의 하천으로 남강의 상류부에 속한다.
함양군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생초면 강정에서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임천을 만나 경호강을 이루며 진양호로 유입된다.
환아정 후문쪽에서 내려오는 데크길과 만난다.
경호 1교, 좌측 저만큼 보이는 마을이 대장마을이다.
상류쪽,
경호교 뒷편에 보이는 아담한 동산이 산청공원이자 수계정이 있는 곳이다.
건너편
강물이 이렇게 고요하고 맑아 경호강이라 했을 것이다.
경호1교를 건넌다.
향교에서 수계정, 환아정 등을 둘러보고 이곳까지 오는데 1시간쯤 소요되었다.
물론 걸음만 걷는다면 20분쯤이면 된다.
경호1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수계정, 초등학교, 우측의 환아정.
경호1교를 건너 강변을 따라 대장마을로 간다.
이 길은 지리산둘레길 6구간중 일부이기도 하다.
대장교를 건너면,
대장마을이 보인다.
마을로 진입 직전 바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강변쪽 이 농로가 끝나는 곳에서 바로 치고 올라도 된다.
길의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며 주변 묘지 등으로 이어지는 길로 인해 조금 어수선 하다.
비추천이지만 이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첫번째 희미한 갈림길에선 우측, 이내 나타나는 갈림길에선 좌측, 이후 죽~가운데로 난 길을 따른다고 생각하고 오르면 된다.
여름철은 잘 모르겠지만 그외에는 살살 다닐만 하다. 짧지만 경사는 제법 있는 편이다.
(실제로 이 길을 따라올라 농로를 만나 다시 대장마을로 내려서는데 약 30분여 소모했다.)
대장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직진.
주 농로를 따른다고 생각하고 오르면 된다.
우측으로 우회하여 마을 뒷편으로 길은 이어진다.
대장마을회관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만나,
밤밭도 지나고,
대장마을에서 0.9km쯤 오르면 포장된 농로는 끝이난다.
대장마을 입구에서 15분쯤 소요되었다.
농로가 끝나는 곳에 이정표가 있다.
지나온 대장마을 0.9km,
진행할 내리교 2.4km를 알린다.
대장마을에서 내리교까지는 3.3km가 되는 셈이다.
이후 탐방로를 따른다.
길의 넓이는 임도보다는 좁고, 4륜 오토바이가 지날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다.
(중간중간 계단으로 인해 4륜 오토바이가 다닐 수는 없음)
오르내림이야 있지만 심하지 않아 크게 힘들지도 않다.
쉼터.
위 쉼터에서 바라본 산청읍내.
앞쪽은 통합 산청 중. 고등학교와 관련 시설들이다.
중간 중간 쉼터도 있다.
사진상으로는 뚜렷하지 않지만 오늘 최고의 경사길이다.
지계곡으로 내려서는 계단길로 길이가 길지는 않다.
오늘 최고의 계곡이다.
여유가 있다면 무지개다리를 놓음직도 한 곳이다.
위 계곡을 지나면.
머지않아 도로를 만나고,
윗쪽으로 2채의 전원주택을 만난다.
이후 도로를 따른다.
고속도로 상부를 잇는 다리를 건넌다.
인근이 펜션마을이고, 최근 많이 뜨고 있는 수선사도 편도 0.7km정도 거리로 도보로 편도 10분이 채 안걸릴 것이다.
위 고속도로 상부를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내려가도 되지만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도 된다.
내리교로 내려섰다.
대장마을에서 천천히 50분여 소요되었다.
건너편 봉우리가 꽃봉산으로, 날아갈 듯한 정자가 보인다.
내리교에서 바라본 회계산 능선,
저만큼 끝에 문암대가 있다. 문암대는 능선상의 편편한 바위지대로 주변 경관이 좋다.
서두에 꽃봉산- 회계산 - 문암대 -강변 코스를 따르면 이곳 내리교 다리목으로 되돌아 오게 되어 있다.
내리교 상부쪽,
강변을 따르는 길이 지리산둘레길 6구간 중 산청읍내를 지나는 길이다.
해운각(해운각)
꽃봉산의 옛 이름은 화봉(花峰)이다 꽃 화에 봉우리 봉자를 쓴다. 꽃봉산 남쪽 강가에 위치한 누각이다.
김분순(金分順)은 경주김씨로 척지(자머리)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자 차황 만암에 거주하는 임만업에게 출가했고, 딸 덕조가 태어났다.
덕조는 일본인 집에서 잔일을 돕다가 그들을 따라 일본으로 들어갔다. 14세때 잠시 한국에 나왔으나 형편이 어려워 곧바로 되돌아갔는데 재봉일과 일꾼들 밥 짓는 일 등을 하며 돈을 모았다.
김분순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불교에 입문하여 '海雲해운'이라 이름하고 믿음을 돈독히 하였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딸 덕조와 같이 지냈다. 해방이 되자 모녀는 함께 귀국선에 올랐다. 입국할 때 일본서 모은 돈으로 끈을 꼬아 들어왔는데, 화폐개혁으로 결국 못 쓰고 말았다.
귀국 후 해운(김분순)은 해인사를 왕래하며 불교를 더욱 독실하게 믿었다. 그동안 힘써 모은 돈 27,000원을 주고 현재 해운각이 선 일대의 땅 5.6정을 구입했고, 남은 돈으로 상당한 토지도 매입할 수 있었다.
해운은 생전에 자신이 구입한 이 땅에 연화대(蓮花臺)와 해운각을 건립할 것 등을 덕조에게 부탁하고 1967년에 세상을 떠났다.
덕조는 새마을운동 지도자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1982년에 어머니 해운의 뜻을 받들어 해운각을 완성하고 일대를 손질했으며, 뒷편 암벽에 (蓮花臺, 金分順) 각자를 새겼다. 그리고 부모의 묘소를 연화대 한쪽 곁으로 모셨다.
해운각의 기문은 소광 오규환이 집안에 들어앉아 보름 동안을 쓰고 고치더라고 하였다. 각자의 글은 김명부가 썼고, 석공은 정곡에 거주하던 사람이었다.
오가는 길손의 휴식처로, 해운각 건립과 일대의 환경정비를 보시행으로 행하고자 했던 한 보살(김덕조)이 있었고, 그 뜻을 받은 딸(임덕조)가 있었다. 임덕조는 2015년 현재 95세로 마당머리 남쪽 연화암을 짓고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현재는 별세하였으며, 임덕조 보상의 구술을 요약 기술하였다)
<산청금석문총람 연화대 각자 편에서 >
임덕조 보살님의 기억이 어렴풋 하다.
과거 샞전에 농협에도 자주 오시던 인상좋은 분이었다.
요산완수혼망귀(樂山玩水混忘敀/희롱할 완,핍박할박 또는 돌아갈 귀) 산수중에 즐겨 노느라 돌아갈 때를 잊었고,
농월음풍실염귀(弄月吟風實厭敀 /싫을 염)달 희롱하며 시 읊조리니 정말 돌아가기 싫어
불로무상천경채(不老無償天景債 /갚을 상, 빚채) 하늘이 내린경관 그저 빌어 늙음을 마다하고
한생미보화룡귀(限生未報化龍敀) 한정된 생애 갚지못하고 용이되어 돌아가리
초광고서(岹洸攷書/산높은모양 초, 물 용솟음할 광, 상고할 고) / 오규환
용화반(龍化泮/ 학교반)
위쪽 해운각(海雲閣)현판에 長善灘(장선탄)에 銀鱗(은린/비늘린)뛰고 용화반(龍化泮)에 船遊可樂爽而快矣 (선유가락상이쾌의/시원할 상)로다. 可使妙手畵工(가사묘수화공/부릴사)이 模此景(모차경)으로도 未能眞寫(미능진사)로라.
내리교 일대의 여울 장선탄(長善灘)에 은어 뛰고, 이 아래에 있는 소인 용화반에서 선유.가락. 시원.상쾌하다. 뛰어난 화공으로 하여금 그 풍경을 그리게 하더라도 진경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 쓰고 있다.
반은 학교라는 뜻이다. 중국의 주대에 제후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귀족학교가 반궁(泮宮)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궁'이 성균관과 문묘를 이른다고 하고, 반촌(반촌)으 성균관 주변 마을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용화반은 용이 되는 법을 배우는 곳'된다. 위의 시에서 이런 내용을 표현한 낱말이 화룡(化龍)일 것이다.
1916년 丙辰生龍(병진생용)
현재의 나이로 따지면 100세가 조금 넘었다.
총 34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 이름으로 생각되는 각자도 몇 있다.
조대(釣臺)는 낚시터란 의미다,
바로 옆에 성사묵(成思默) 이름이 보인다.
역사상 낚시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을 들라면 강태공을 들 수 있다. 중국 고대의 역사를 보면 하-상(은) -주나라로 이어진다. 강태공(성은 강, 이름은 상) 주나라 문왕(서백)의 아들 무왕이 상(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성사묵이란 인물은 창녕성씨 정절공파의 지파로서 둔촌공파 인물로 나온다. 자는 인백(人伯) 생평기간은 1833~1874년, 자세한 기록은 없다. 이 각자의 주인과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이곳 용화반 강 한 가운데 바위에도 조대 송인석(釣臺, 宋仁錫) 각자가 있다. 이 인물은 천왕봉에도 이름을 새겨두었다한다. 해당인물과 각자의 내력에 대한 사항은 알아내지 못했다.
강변을 따르면 경호1교로 이어진다.
조산공원.
주변에 청소년 수련관이 있고, 성우아파트도 인근이다.
이곳의 주차공간은 항상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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