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구례 수락폭포, 숲과 브런치, 천은사, 쌍산재, 운조루, 곡천재

정헌의 티스토리 2024. 9. 9. 15:10

■구례 수락폭포, 숲과 브런치, 천은사, 쌍산재, 운조루, 곡천재

 

구례엔 화엄사, 사성암, 천은사, 연곡사, 문수암 등의 사찰과 노고단, 지리산정원 구례수목원, 섬진강 대나무 숲, 지리산호수공원과 치즈랜드 등 가 볼만한 곳이 많이 있다.

오늘은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수량이 조금 많을려나 하고 수락폭포를 둘러보고, 중식후 가볍게 걸을 걸을 곳으로 천은사와 상생의 길을 찾았다, 운조루 안채의 수선도 끝났을 것 같고, 이웃해 있는 운조루 유물전시관과 곡천재를 둘러봐도 되겠다. 가는 길목의 쌍선재는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5호로 등록되어 있다.

운흥정(산동면 시상리}과 천개의 소나무 숲(광의면  천변길 12)은 이번에 알았다. 언제 다시 찾을 일이 생겼다.

 

▷탐방코스

구례 수락폭포 - 숲과 브런치 - 천은사 - 쌍산재 - 운조루 - 곡천재

 

 

▷탐방후에

 

▣수락폭포

 

구례 수락폭포 입구의 어느 상가 뒷 담벼락에? 있는 불상이다.

소위 말하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의 불상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기억해 둔다.

 

 

 

 

 

수락폭포에 왔다.

 

수락폭포로의  진입하는 중간에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지만 성수기가 아니라면 폭포앞 몇 상가가 있는 곳에 주차하면 된다.

전날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졌나 하고 들렀지만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높이 약15m의 수락폭포는 기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으로 구례 10경중의 한 곳이다. 신경통, 근육톡, 산후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나면서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폭포상부에 있는 '신선대'는 신선들이 모여서 바둑을 두면서 소일하였다고 하며 폭포 앞 우측에 있는 우뚝 솟은 바위는 <할미암>으로 아들 못난 부녀자가 치마에 돌을 담아 올려놓으면 득남하다는 말이 구전되어 오고 있지만 폭포상부로 올라갈 수 도 없고, 할미암은 어느 바위를 말하는지 폭포 주변에서는 가늠되지 않는다.

 

 

 

 

 

이곳이 처음은 아니지만 폭포수가 떨어지는 앞쪽의 자연 석축이 오늘 따라 새롭게 여겨진다.

 

 

 

 

 

둑을 이루는 이 바위 안쪽으로 널려 있는 일부의 돌들을 들어내면 더 경관이 좋지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 수락폭포 계곡은 전남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 결과 다른 곳보다 산소음이온이 월등히 많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산소음이온은 인체의 면역력 증진,  알레르기. 비염, 천식증상완화. 혈액정화, 두뇌기능 향상 등 다양한 효능이 있어 공기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일종의 민간 치료장소로 각광을 받던 수락폭포가 이번(2013냔7월 발표)결과를 과학적 근거가 있는 물맞이 폭포, 천연 워터 테라피로서 더욱 명성을 얻을 것으로 본다고 현지 안내문에서 안내하고 있다.

 

 

 

 

 

수락폭포 앞 동쪽편에 거대한 할미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 마땅한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바위라 할미바위가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크기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작다.

 

 

 

 

 

개인적인 수락폭포 주변의 경관은 좋지만 상부 오염원이 별로 없는데(물론 몇 가구의 마을이 있고, 생각외의 저수지가 있음) 깨끗한 느낌은 덜하다.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계곡을 막은 주변 환경도 뭔가 시골스럽다.

 

 

 

 

 

동편제 판소리의 대가인 국창 송만갑 선생께서(1865~1939, 구례읍 백련리 출생) 득음하기 위해 수련했던 장소 라고도 한다.

운봉 국악의 전당에 가면 송만갑 선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여타의 지역 같으면 떡~하니 이름 3자가 각자되어 있을만한 곳인데 이곳 석벽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바위위의 소나무는 오늘 보니 식재된 위치가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

 

 

 

 

▣ 숲과 식당(브런치)

 

천은저수지 조금 아랫쪽 도로변에 위치한 카페를 겸하는 식당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현재의 이 집 음식메뉴(샐러드, 경양식 비슷)를 좋아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장년층 이하라면 종종 찾을 것 같다.

지역 맛집으로 통하는 곳으로 찾는 분들이 많다.

 

 

 

 

앞쪽엔 약간의 정원이 있어 대기하거나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다.

 

 

 

 

 

과거 마주보는 건물은 식당, 좌측의 건물은 카페였는데  2023년 초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카페와 식당을 통합하여 숲과 브런치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 천은사와 상생의 길

 

중식후 가볍게 걸음을 걷고자 천은사에 왔다.

이곳 천은사와 상생의 길은 전에 소개한 적이 있어 오늘은 몇 장의 사진으로 대한다.

 

 

 

 

 

계곡

 

 

 

 

 

천은사 넓은 주차장에 주차후(주차료 없음) 천은사와 상생의 길을 걸으면 된다.

천은사와 상생의 길을 걷는데 1시간쯤 잡으면 된다.

 

 

 

 

▣ 구례 쌍산재

 

쌍산재에 왔다.

입구에 소형 주차장이 있으며,  마을 앞에도 주차장이 있어 특별한 날이 아니면 주차의 여지는 충분하다.

 

 

 

 

 

두 곳의 대문이 닫혀있어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하고 기웃거려 본다.

이때까지만도 입장 시간이 지나서 문이 닫혀있다는 걸 몰랐다.

 

 

 

 

 

밖에서 보면 비슷한 입구가 두 곳 있다.

 

쌍산재의 관람시간은 오전 11시 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다.  따라서 관람시간 약30분 정도를 감안하여 오후 4시에 입장을 마감한다.

지금 시간이 오후 4시를 살짝 지난 시간이어서 대문을 모두 닫아 두었다.

참고로 매주 화요일은 정기휴관일이므로 이곳을 찾을 때는 기억해 둠이 좋을 것 같다.

쌍산재 관람안내에 대한 문의사항은  010 - 3635 - 7115

 

 

 

 

 

입구에 명천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다.

당몰샘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사철 마르지 않은 맑은 샘물로 당초 담장 안에 있었는데  마을 주민의 이용 편의를 위해 담장을 안쪽으로 둘러다고 한다, 당몰샘의 당몰이란 '윗몰' '아랫몰'하듯 마을을 단위로 나뉘어 부르듯이 당몰이라 부른다. 

과거 호열자(콜레라)병이 전국을 휩쓸었을 때에도 마을 주민은 아무도 해 없이 무탈하였다 한다.

 

 

 

 

 

당몰샘

千年古里 甘露靈泉, 飮此水者 壽皆八旬

천년고리 감로영천이요, 음차수자 수개팔순이라.

천년 된 마을에 이슬처럼 달콤한 신령스러운 샘이요, 이 물을 먹은 사람은 팔십 이상의 수를 한다고 한다.

 

또 옛날 좋은 물이 있는 명당을 찾아나선 어떤 이가 미세한 약저울로 물 무게를 재었더니 당몰샘 물이 제일 무거워 우리 마을로 터를 정하였다 한다. 7년 가뭄에 석 달 장마에도 물량은 일정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돌고 여름에는 냉기가 더욱 느껴지며 물맛 뒷끝이 깔끔하고 물을 길러가 며칠씩 두고 움용해도 물맛이 변합없이 좋은 샘물이라 한다.

오늘은 청소 중이다.

 

 

 

 

 

정문이다.

문이 닫혀있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문이 작고 소박하다. 웬만한 세도가의 솟을대문과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데문간에 전라남도 제5호 민간정원 표시가 있다.

 

 

 

 

 

살짝 잠겨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관람 입장을 마감했단다.

멀리서 왔다고 했더니 30분여면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며 관람을 허한다.

참고로 입장료는 10,000원이며, 커피나 매실차 중 하나를 웰컴티로 제공한다.

 

 

 

 

 

보이는 건물이 안내소인 셈이다.

주인(안내인)은 쌍산재를 먼저 둘러보고 내려와 주거시설을 살펴보라고 안내한다.

 

 

 

 

 

대숲 돌계단길이 정갈하다.

 

 

 

 

 

대나무 숲으로 오르면 첫번째 만나는 건물이 별채인 거연당이다,

 

 

 

 

 

거연당

많은 손님 접객을 맞이하는 독립공간으로 유학자들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가족의 화합이나 집안 대소사를 논의했으며 대숲에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다.

 

 

 

 

거연당을 지나 오른다.

 

 

 

 

 

호서정

해주오씨 문양공 성균진사공파부군 24새손 치회(致會, 호는 호서)를 기리기 위한 정자이다.

정자 주변의 자연 경관을 절기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호서정

 

 

 

 

 

측면에서,

 

 

 



호서정을 지나오르면 양쪽 넓은 잔디밭이 있다.

 

 

 

 

 

 

 

 

 

 

 

 

좌측 잔디밭

 

 

 

 

 

우측 잔디밭

 

 

 

 

 

 

 

 

 

 

 

 

서당채 쌍산재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위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르면 살짝 우측편에 위치한다.

 

 

 

 

 

가정문(嘉貞門/아름다울 가, 곧을 정)편액을 달고 있다.

 

 

 

 

 

가정문 입구의 요지일월(堯之日月)

요임금이 다스리던 태평스런 시대.

 

 

 

 

 

순지건곤(舜之乾坤) / 순임금이 다스리던 태평스런 세상

이기서 日月은 시간적인 말이고, 乾坤은 공간적인 말로 서로 대(對)가 된다.

따라서 요지일월, 순지건곤은 춘첩자(春帖子/표제 첩, 입춘을 맞아 대문이나 기둥에 써 붙이는 글)로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글귀로 유학자들이 이상향으로 여겼던  요임금과 순임금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태평한 시대를 말한다.

 

 

 

 

 

쌍산재

문양시호 오연총을 시작으로 해주오씨 중시조인 오현보는 해주, 동복, 보성을 식읍으로 받은 연유로 분파됬고 이 세 고을을 관향으로 세대를 잇는다.

중시조 6세 오석은 상호군을 자내고 (중략), 11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오숙상은 구례 사도에 입향해 은거하며 학문 연구에 전념했고 (중략)  23세 오형순(炯淳/ 빛날 형, 순박할 순, 호는 쌍산)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쌍산재는 해주오씨 문양공 성균진사파 23세손 형순의 아호이며 개인 서재이다.

대대로 선친의 글방(서재)이었으며, 집안 자제들이 수학하던 곳이며 쌍산재의 유래가 된 곳이다.

 

 

 

 

 

사락당(四樂堂) 편액도 있다.

 

 

 

 

건물 우측편으로 가 본다.

 

 

 

 

 

측면이다.

 

 

 

 

 

 

 

 

 

 

 

 

 

 

 

 

 

 

 

 

 

 

 

 

 

 

 

 

 

 

 

 

 

 

 

 

 

 

 

 

경암당

해주오씨 문양공 성균진사공파 부군 25세손 주석(柱錫, 호는 경암)을 기리기 위한 한옥이다.

 

 

 

 

 

경암당(絅菴堂 /끌어쥘 경, 책력 암, 집 당)

 

 

 

 

 

 

 

 

 

 

 

 

 

 

 

 

 

 

 

 

 

 

 

측면에서 바라본 경암당

 

 

 

 

 

경암당 좌측 뒷편에 밖으로 나가는 샛문이 있다.

영벽문(暎碧門/비칠영, 푸를 벽)을 나서면 사도저수지가 있다.

 

 

 

 

사도저수지 둑.

일제시대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란다.

 

 

 

 

 

과거 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작은 계곡이었을 것이며, 화엄사 종소리가 계곡을 타고 들려온다고 해 종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물이 맑지 않다.

 

 

 

 

 

저수지를 둘러보고 되돌아 간다.

 

 

 

 

 

쌍산재 담을 따라서도 길이 있다.

저만큼 금줄을 쳤다.

 

 

 

 

 

다시 쌍산재로 되돌아 간다.

 

 

 

 

 

 

 

 

 

 

 

 

 

 

 

 

 

 

 

경암당

 

 

 

 

 

 

 

 

 

 

 

 

 

 

 

 

 

 

 

안채

 

 

 

 

 

안채는 종부의 일상 생활과 가사일, 취미생활이 이루어 졌다. 가옥 구조는 남부형 일자 구조로, 음식 재료를 보관하는 부엌 상부쪽에 다락이 있고 각 방이나 마루 끝 벽면에 살림 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벽장등 수납공간이 있다.

 

 

 

 

 

사당

3년 상을 마친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본채의 동쪽에 세워 4대 위패를 모셨다.

사친(事親), 돈목(敦睦), 근학(勤學), 계주(戒酒), 택교(擇交), 절용(節用) 등 14가지 실천 덕목을 사당 현판에 새기고 자손들이 지키도록 하였다.

 

 

 

 

 

영서당 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상 우측의 건물은 안채에서 바라봤을때 좌측의 건물로 건너채이다. 건너채는 혼례 시기가 다가온 딸들의 처소로 안채와 가까이 있다.

굴뚝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이다.

 

 

 

 

 

영서당
행복이 가득한 경사로운 집

이 집과 다음 사진의 적덕헌은 비교적 근년에 신축한 집인가? 인터넷 상에서 쌍산재를 검색해 보면 안채, 사랑채, 건넌채는 있어도 이들 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곳이 많다.

 

 

 

 

 

적덕헌

쉼이 있는 공간

 

 

 

 

 

적덕헌과 연결된 정자 평원정

 

 

 

 

 

 

 

 

 

 

 

 

사랑채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어 바깥 주인이 거처하며 지인들 접객하였다.

 

 

 

 

 

집안 건물을 둘러보고 나갈 준비를 한다.

 

 

 

 

 

장독대

안채 좌측 부엌옆에 있다.

 

 

 

 

 

 

 

 

 

 

 

 

사랑채를 대문채쪽에 바라본 옆 모습이다.

한약방의 약초보관함과 비슷한 것이 보여 약방을 했느냐 물었더니 비상시 등을 대비해 약초를 보관한 것으로 이야기 한다.

 

 

 

 

 

대문을 나선다.
주인은 향촌에 은거해 양택에 서실을 두고 학문하며 선비다운 삶을 실천한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힘쓰고 있다.

 

 

 

▣ 운조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오미리),

운조루에 왔다.

 

 

 

 

 

앞쪽 연못

 

 

 

 

 

집앞으로 수로가 있다.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문지기 역할을 하신다.

입장료는 1,000원

조금 더 받아도 되는데.....

 

 

 

 

 

이택상주(麗澤相注 / 고울려,나라이름리(이), 못 택, 물댈 주)

려택상주로 읽으면 무식하다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

두 개의 연못이 맞닿이 서로 물을 댄다.(윤택하게 한다).  벗이 서로 도와서 학문과 덕을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다.

 

 

 

 

 

행랑채의 방인지 창고인지?

 

 

 

 

 

역시 행랑채,

흔하지 않은 나무를 본다.

 

 

 

 

 

 

 

 

 

 

 

 

운조루 고택은 영조52년(1776년)에 낙안 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것으로,  조선 시대의 양반 가옥의 대표적 건물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집터가 금환락지(금환락지 /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땅)형세로 남한 3대 길지의 하나라고 한다. 집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와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에 왔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ㅡ자형이나 ㄱ자형 안채가 많은데, 이와 달리 운조루 고택은 ㄷ자형 안채와 T자형 사랑채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식이다.이 형식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운조루를 세우기 시작한 해는 1771년으로 유이주가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보고 살았던 집의 형식으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운조루는 7년이라는 긴 공사 기간을 거쳐 1776년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의 초기 모습은 1800년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전라 구례 오미동 가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측면의 저 문을 나서면 사당이 있다.

 

 

 

 

 

안채 마루에서 바라본 마당

전에 보이지 않았던 장독을 저곳에 배치했다.

 

 

 

 

 

이것의 용도는 소변통?

사실이라면 안채 마루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라 조금 민망할 듯도 싶다.

 

 

 

 

 

안채 옆쪽의 사당도 둘러본다

 

 

 

 

 

사당

 

 

 

 

 

 부엌을 통해도 되고, 안채로 들어서는 문의 다른쪽 입구로 들어가도 안채 뒤를 돌아볼 수 있다.

 

 

 

 

 

우물,

 

 

 

 

 

안채 뒷편이다.

 

 

 

 

 

사랑채

 

운조루는 운조루 고택의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의 이름이다.

이는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사는 집' 또는 '구름 위를 나는 새도 돌아오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운조루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에서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산굴 수 :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게으를 권 :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 에서 첫머리은 雲자와 鳥자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 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

 

 

 

 

 

사랑채의 다른 한쪽도 둘러보고 운조루 텀벙을 마무리 한다. 

 

 

 

 

▣ 곡전재(穀田齋)

 

곡전재에 왔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476번지, 운조루 앞쪽 가까운 마을안에 위치하고 있다.

 

 

 

 

 

입장료를 모아 불우이웃돕기에 쓰겠단다.

딱히 정해진 금액이 없으므로 성의껏 내면 되겠다.

 

 

 

 

 

대문을 들어서면 곡전재 관람안내 이정표가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돌아보도록 안내한다.

 

 

 

 

 

곡전재는 구례군 향토문화유산 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에 곡전 이교신이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쳐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목조 건축양식의 주택으로서 부연을 단 고주집, 문살의 외미리 형식, 기둥 서까래 등이 매우 크고 지붕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영호남지역에서 발견되는 부농의 말기형식 주택으로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ㅡ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25m이상의 호박돌 담장을 설치하여 집터의 환경을 금환(金環)의 개념을 도입한 점 등이 독창적이며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중간채? 사랑채?를 우측으로 돌아 간다.

 

 

 

 

 

중간채 우측에 춘해루가 있다.

 

 

 

 

 

춘해루(春海樓)

 

 

 

 

 

중간채? 사랑채?의 춘해루를 돌아가면 연못이 있다.

동행랑채 뒷편인 셈이다.

 

 

 

 

 

 

 

 

 

 

 

지나온 곳

중간채?(사랑채?)와 동행랑채는 춘해루로 연결되어 있다.

 

 

 

 

안채로 왔다.(오른쪽 건물)

 

곡전재는 원래 6채 53칸 규모였으나 현재는 5채 51칸 규모이다, 이 집이 지어진 시기는 1929년 일제강점기 시대이지만 건물은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한옥 구조를 따라 지었다. 이 집을 지은 박승림은 서울에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고, 집의 관리는 이교신에게 맡겼다. 1940년 박승림이 서울에서 사망한 뒤 유족인 며느리가 집을 이교신에게 매각하였다. 이후 이교신의 고인 곡전을 따 집의 이름이 곡전재가 되었고 지금까지 5대째 후손들이 살고 있다. 2005년 구례군 향토문화재가 되었다.

 

 

 

 

 

주요 건물의 구조는 대체적으로 트인 ㅁ자 형태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 중간채?, 처마만 보이는 건물은 동행랑채로 중간채와 춘해루로 이어져 있다.  저쪽 보이는 작은 건물은 서행랑채로 보면 되겠다.

 

 

 

 

 

안채 뒷편으로 이어간다.

이곳에도 건물이 있다.

 

 

 

 

 

연못으로 작은 물레방아도 설치했다.

 

 

 

 

 

 

 

 

 

 

 

 

뒷뜰이다.

과거 채소밭으로 사용되었음직 한 곳으로 잔디를 곱게 가꾸고 있다.

 

 

 

 

 

 

 

 

 

 

 

 

 

 

 

 

 

 

 

능소화

 

 

 

 

 

장독대

 

 

 

 

 

 

 

 

 

 

 

 

장독대를 앞에서 본 모습이다.

 

 

 

 

 

 

 

 

 

 

 

 

 

 

 

 

 

 

 

 

 

 

 

 

 

 

 

 

 

 

 

 

 

 

 

 

 

 

 

 

 

 

 

 

 

 

곡천재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곡전재 앞쪽에 이런 께끗한 집이 있다.

구례나날

펜션인가?

 

 

 

 

 

 

 

 

 

 

 

 

 

 

 

 

 

 

 

정산서다실

 

 

 

 

 

다실을 운영하는지 하지않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