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종학당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한국 유교문화와 충청지역 국학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곳으로 도서관(Library) + 기록관(Archives) +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가진 복합 문화공간 '라키비움'과 유교문화 콘텐츠를 가상하는 기획전시실을 통해 유교문화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기커, 대중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종학당은 논산에 있는, 파평윤시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이다. 1997년 충청남도 유현문화재 재152호로 지정되었다.
농특회 모임이 논산 노성면 지장정사에서 있어 가는 길에 잠시 둘러본 한국유교문화진흥원과 종학당이다 두 시설이 서로 인근에 위치하야 같이 둘러보면 된다.
▷탐방코스
한국유교문화 진흥원 - 종학당 - 지장정사(템플스테이) / (2024. 11. 1.)
▷탐방후에
▣한국유교문화진흥원
논산 노성면에 위치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다.
넓지는 않지만 주차장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본 건물과 주변 여러 숙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관 건물로 왔다.
근년에 신축된 아주 깨끗한 건물이다.
효자고기 을문이 이야기
충남향교전 방부터 둘러본다.
향교는 고려 인종대부터 약 900년간 국립교육기관으로 향학을 주도하며, 인재양성의 산실, 향촌 질서유지의 리더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공자와 성현을 제향함으로써 유교이념 실천에 앞장서 왔습니다. 현대의 향교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었고, 유림은 유교의 가르침을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충남향교전은 향교의 사람과 향교의 일을 향교의 역사자료를 통해 되돌아보는 자리로, 충남의 34개 향교중 11향교와 공자 사당인 노성궐리사의 역사자료를 펼쳤습니다.
2024 한국유교문화축전을 기념하여 마련한 제1회 기증. 유탁유물 특별전 <충남향교전>이 우리 곁의 향교를 이해하고, 향교와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위.아래 자료에 대한 캡션 대부분 현지 자료를 재 구성한 것이다.>
학문의 전당, 향교를 살피다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으로, 국가에서 배정해준 정원(元額校生)외에도 보생(保生)이 추가로 배정되기도 했다. 교생은 동재와 서재에서 유숙하며 유교경전과 역대 시문, 역사서를 강학하고, 과거시험을 통해 입신하여 나라의 인재로 성장하였다. 또한 이들은 은퇴하여 향촌으로 돌아와 향촌사회의 리더로사 향학을 주도하고, 유풍을 진작시켰다.
소학(小學) :주희가 쓴 어린이 또는 유학입문자를 위한 수신서
격몽요결 : 율곡 이이가 아동을 위해 만든 유학입문교재
동몽선습: 중종때 박세무가 오륜과 중국. 한국의 역사를 약술한 초급교재
효경: 13경의 하나로, 효의 원칙과 규범을 수록한 유교경전
삼강행실도: 우리나라와 중국 서적에서 삼강(三綱)에 모범되는 충신 효자 열녀 행실을 모은 언행록
성리대전 : 명나라 호광등 학자 42명이 송나라 때의 성리학설을 집대성한 책
사서삼경:유교의 중요 경전인 사서(논어,맹자, 대학, 중용)와 삼경(시경, 상서, 주역)
자치통감:송나라때 사마광이 지은 294권 분량의 역사서
통감절요:송나라 강지가 자치통감을 간추려 엮은 50권 분량의 역사서
사기:중국 전한시대 사마천이 상고시대부터 한무제 태조연간의 중국과 주변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백록동규현판1586년(선조) 충청도관찰사 이인의 명에 따라 홍산향교 명륜당에 게시된 현판
<백록동규>는 1180년 송나라 주희가 여산에 백록동서원을 중건하고 서원의 벽에 게시한 5개 항목의 규약으로, 유학의 기본 윤리와 교육방식을 체계화 한 것이다. 주자학을 중시한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 유교 교육의 일관된 교육사상과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와 자녀 시이에 친함이 있고(父子有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고(君臣有義),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분별이 있고(夫婦有別), 어른과 이이 사이에 차례가 있고(長幼有序), 친구 사이에 믿음이있어야 한다(朋友有信) . 이 다섯가지 조목은 요.순 임금이 설을 사로도 임명하여 경건히 베풀게 한 다섯 가지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다.
.....................................
청금록(靑衿錄)은 선비의 역사이다.
청금은 동방의 仁者이다.
靑은 仁의 상징이요, 衿(옷깃 금)은 선비옷의 옷깃이니, 선비를 높이는 뜻이다.
그러므로 청금록에는 선비가 있고, 道가 있다.
성현을 모시는 곳,
향촌의 중심, 향중의 일상을 이끌다.
향교는 교육.제향 외에도 향촌사회의 상위 계층이자 지식인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향촌의 자치 규약을 만들어 실천하고, 유풍을 진작시켜 향촌사회의 질서유지를 도모하였다. 또한 향교가 이룬 학문적 성취를 향촌민에게 재공함으로써 인재육성과 함께 유교문화전통 유지를 꾀하였으며, 지방관을 통해 효자와 충신, 열녀 포창을 중앙에 청원함으로써 향촌의 긍지를 높이고자 하였다.
유풍진작: 삼강오륜 숭상, 전통의례 계승, 풍속교화, 권선징악
전통의 계승, 오늘에 이어지다.
1894년(고종31)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와 과거제도가 철폐되고, 1895년(고종32) 고종이 근대교육에 대한 교육조서를 발표하였다. 양반층의 향촌 지배력과 지식독점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일제의 민족교육말살에 대항한 민족교육을 국권수호를 위한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하는 근대식 교육이었다. 근대화의 물결은 향교의 교육 기능을 축소 소멸시키고 문묘 제향만 명백을 유지시켰다. 광복 후 향교는 성균관과 함께 조직과 체계를 정비하여 향교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현대화의 물결은 구성원의 축소, 재정과 운영의 어려움, 시대와 세대 부적응 등 새로운 난관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교와 유림은 우리민족의 정신문화, 유교전통을 가장 일선에서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남향교
부여,논산이 각 4곳, 아산,천안,예산,보령, 서천이 각 3곳, 금산,청양.홍성, 서산, 당진이 각 2곳, 공주와 태안엔 각1곳 도합 35곳의 향교가 있다.
충남향교관을 둘러보고 반 지하로 내려간다.
반 지하층은 전시관과 도서관으로 나누어 진다.
당신은 어떻게 보여지기를 원하는가
죽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신념, 다름을 이해하며 적재적소의 인재 배치를 주장한 혜안,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생각으로 행한 도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열정, 이번 전시에서는 이색으로부터 박팽년과 이지함, 권시와 이유태, 홍대용과 김정희, 이상재와 김복한 등에 이르기까지 14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조금은 다르게 보였던 이들의 삶의 태도를 용기와 소통, 도전과 창조라를 네 가지 관정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먼저 전시관 구역을 둘러본다.
전시총괄 정자근
전시책임 이상균
프롤로그
누구나 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선비가 될 수는 있습니다.
가느다란 이 선을 따라 역사 속 인물들이 삶을 들여다보며
한 사람의 존재가 지니는 감화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선의 끝에서 마침내 내면의 선비와 마주하시기를 바랍니다.
1.사물을 보는 방식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 전 버거<다른 방식으로 보기 중>
한국 성리학의 토대를 마련한 목은 이색 선생은 원나라 유학시절 서투른 중국어와 작은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하던 중국인들에게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작은 하늘이라 말한다 坐井觀天曰小天'라고 답했습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며, 그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각자 보는 방식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목은 이색 초상화
고려 말 문신 이색의 초상화이다.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시대에 새로 옮겨 그려졌으며,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 선비의 큰 스승이자 한국유교의 대표 인물인 목은 이색을 첫 번째 k-유교인물로 선정하여 그의 한시와 문장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영문 번역을 더해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K-콘텐츠로 선보이고자 합니다. 옛 선비의 시선으로 나와 주변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사물을 관찰하다.
위대하다, 사물을 살펴보니
형세에 따라 모양을 드러낸다.
맑은 물도 깊어지면 검어지고
누런 산도 멀어지면 푸른 빛을 띠지
지위가 높으면 위엄은 저절로 무거워지고
집이 누추하면 덕은 더욱 향기를 발한다
늙은 나는 말을 잊은지 오래라서
작은 뜰이 이끼 흔적만 가득하다.
2.다르게 보기
"우리는 역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역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 마거릿 맥밀런 <역사사용설명서>중
뛰어난 역사적 인물들이 때로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에 도전하고, 죽음 앞에서 신념을 지키는 용기로 행동할 때 주변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여 세상과 소통하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창조의 열정을 불태우지만 시대를 앞서간 이들이 얻는 것은 시기와 질투뿐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두려움에 맞섰던 이들을 통해 세상은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다름을 이해하고, 다르게 보는가?"
조선, 청년에게 / 월남 이상재
지금 조선 청년에 대해서 희망이 크다고 하는 것은 조선 청년은 도덕과 지식이 있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의 역사가 사천 년 내려오면서 단련되어 온 습관과 다른 것을 봐도, 길러 오기를 도덕심으로 길러온 까닭에 그 지식이 도덕으로 자라나고 도덕심이 자라난 까닭에 무엇으로 짐작해 보느냐 하면 지금 세계는 점점 악랄해져서 도덕아런 건 없어지고 모두 물질만 최고로 치는 세상인데 물질이라는 것은 일상적으로 남은 사랑하지 않고 제 이기적인 욕심만 채우는 마음이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소나무와 잣자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계절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세한도 발문 중
"선비로서 충 효 절의 도학을 모두 겸비한 이는 중봉 한 분이라고 하였다."
에필로그
도전하는 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창조하는 자, 다름의 눈으로 세로움을 만들어 가는
용기있는 자, 진정 강한 것을 내 안에
소통하는 자, 편견에 맞서고 도량이 넓은
오늘의 당신이 내일의 선비입니다.
도서관으로 왔다.
상당한 량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꼭 유학과 관련된 도서는 아니다.
문화가 기록이 되기까지
우리의 일생은 늘 기록과 함께였습니다. 일상의 기록이 역사와 문화가 된다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기록되고 싶으며, 무었을 기록하겠습니까?
복합문화공간 솔비움의 전시는 서화와 서책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을 통해 유학자들의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아울러,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지원받은 전승공예품을 통해 무형문화재 공예분야 전승자들이 재해석한 전통의 삶을 전시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북산산 순수비를 고증해 준 <황초령 순수비 탁본>
함경도 함흥에 위치한 황초령비의 탁본이다. 순수(巡狩)는 원래 고대 중국의 풍습으로 임금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천지산천에 제사하고, 지방의 정치와 인심을 살피던 고대 중국의 풍습이다. 우라나라의 경우 신라 진흥왕 때 순수비는 확정된 국경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다.
황초령비에는 이 목적을 밝힘과 함께, 충성을 다한 백성들에게 포상을 약속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황초령비 발견을 통해 이야기로만 전해졌던 북한산 수수비를 고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황초령비의 건립연대는 상단부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운령비와 비슷한 진흥왕 29년(568)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앞쪽에 청연실
세미나실 비슷해 보인다.
앞쪽
본관 건물을 둘러보고 부속 건물인 한옥 연수원을 둘러보러 간다.
1 식당. 관리동
2.학이재, 시습재
3.온고재, 지신재
4.성의재, 정심재
5.박문재, 약례재
6.호연재, 집의재
7.실사재, 구시재
구경하는 집
실사재(4인실), 구시재(2인실)
실사재
주련 / 보통 4언절구인데 사진에는 이것밖에 없다.
道侶仙舟碧玉流(도려선주벽옥류/짝려) 친구들과 배 타고 푸른 물 위에 떴네.
漢北江南空悵望(한북강남강창망/슬퍼한 찰)한양과 강남을 부질없이 바라보니
不知人事幾閒秋(부지인사기한추/기미추) 사람 일이 어느 사이에 가을 된 줄 모르겠네
호연재
집의재
숙박동은 그의 비슷하다.
온고재, 지신재
▣종학당
홍살문이 있다.
생각외로 넓고 건물 하나하나가 모양새가 있다.
크게보아 3곳의 건물이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자 우측편으로 윤덕병님의 기념식수가 있고, 뒷쪽으로 종학당이 있다.
종학당은 1625년 인평대군 사부(師傅) 통토 윤순거(파평윤씨 24세)가 사저(현 병사)에 자녀질의 교육을 위해세운 사설 교육기관이다. 1628년 현 기지(基地)에 상급과정 학사(學舍)로 7칸 전후퇴의 백록당과 7간 2층 누각인 정수루를 창건하고 대소 과거 준비생 및 석학들의 학문 연구와 기호학파 유림들의 학문 교류 중심 도장 역할을 하였다. 1665년 동토 윤순거는 명재 윤증을 초대 사장에 임명하고, 명재는 1682년에 교육과정 및 학규인 '초학획일지도(初學劃一之圖)'와 후에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를 제정하여 운영하였다. 1829년 종학당을 현 위치로 이건하여 상급과정의 백록당 및 정수루와 초학과정의 종학당을 연계하여 종학을 통합운영하여 오다, 1910년 국치 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상급과정은 폐쇄되고, 초학만 유지되다 1919년 그마져도 폐문되었다. 2001년 종중 결의에 의해 종학당, 백록당, 정수루, 보인당 등 그 일원을 총칭하여 종학원(宗學園)으로 명명하였으며, 창건 후 280여 년에 걸쳐 42명의 문과 급제자와 31명의 무과 급제자 그리고 수많은 생진과(셍진과) 및 석학을 배출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정수루
백록당, 정수루 입구,
이곳은 보인당을 둘러본 후에.
보인당으로 먼저 간다.
보인당의 폭?이 6칸?
보인당은 인평대군의 사부(왕자의 스승)이었던 동토 윤순거 선생이 노성면 두사리 물래고개에 본당과 동.서재를 갖루어 유림들의 교육과 학문창달 및 연구 그리고 교류를 위하여 설립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중도에 퇴락하여 도피된 것을 1987년 종회장 덕병공(명재선생 8대손)이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던 한옥을 매입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을 부종회장 기병공, 운영위원장 의중공의 감독하에 강당을 건축하였으며, 보인당이라고 한는 당호는 중토선생(명재선생의 중부)께서 1650년대 두사리 교육장에서 쓰던 당호를 그대로 계승하게 한 것이다.
<현지 표지석에서>
보인당 편액을 달고있다.
좌측면에서 본 보인당
화장실인가?
백록당과 정수루 정문인 셈이다.
백록당(白鹿堂) 과 정수루(淨水樓)
1. 1628년 무진 3월 3일에 동토 윤순거 선생(1596~1668)이 자여질(子與姪) 및 인척의 자손, 그리고 유림들의 교류, 학문의 창달과 연구, 대.소과 준비생들의 학사로서 7칸전후퇴(退)의 백록당 서축과 7간2층 누각인 루를 창건하고 오가백록(吾家白鹿)이라 휘호(揮毫 /붓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이르는 말)함
2.1915년 을묘에 대화재로 백록당과 정수루는 반소하였다.
3.1997년 기묘에 충청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
4. 2000년 경진에 국.도.시비 2억원, 자부담금 일천사백만원. 도합 이억일천사백만원으로 7간전후퇴의 백록당을 복원,
5.2001년 신사에 국.도.시비 3억원과 자부담금 2천일백만원 등 도합 삼억이천일백만원으로 7간2층 누각의 정수루와 3간 솟을대문, 연못과 인공섬, 그리고 건물주변 30M의 석축을 복원 영조함,
6.1910년 경술국치후 폐쇄당했으며, 창건 후 이때까지 282년 동안 이곳에서 탄생한 대과급제자가 42명에 이르고 기외 수많은 석학과 생.진과생을 배출하였음.
<현지 표지석에서>
백록당 측면부,
정수루
정수루에도 올라본다.
정수루에서 바라본 연못
종학당으로 왔다.
종학당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가곡저수지 건너편에도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과 충헌공 윤전재실이 있어 둘러봄직 한데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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