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반야사, 쌍계사, 성삼문 묘소
김종범사진문화관에서 한걸음이라도 거리를 단축시킬려면 성삼문묘소, 쌍계사를 먼저 둘러보고 반야사를 가는게 좋지만 반야사 동굴법당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오후 5시) 땜에 반야사로 먼저 왔다.
반야사는 옛 광산의 동굴에 차린 법당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는 곳이다.
쌍계사는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논산8경 중 한 곳이다. 대웅전의 거대한 기둥과 문살, 대웅전 뒷면으로 문이 있는 것도 일반 사찰과 다른 점이다.
오가는 길목에 섬삼문 묘소가 있어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잠시 들렀다.
▷탐방코스
논산 반야사 - 쌍계사 - 성삼문 묘소 (2024.11. 2.)
▷탐방후에
▣논산 반야사
반야사 주차장이 넓직하다.
현재 시간은 오후 4시 40분을 막 넘고있다.
웬 석축?
주차장에서 이 석축만 돌아 오르면 반야사 경내이다.
우측으로 해우소 표시가 있다.
반야사는 대웅전과 부속건물?로 동굴법당이 있는 단촐한 절이다.
대웅전은 나중 둘러보기로 하고 먼저 동굴법당으로 향한다.
큼직한 매의 석상이 있다.
대웅전 뒷편에 동굴이 있다.
동굴 법당 입구와 우측 저곳에도 동굴이 있다.
동굴법당으로 간다.
용궁회상
동굴속으로 들어서면 굴은 두가닥으로 나눠진다.
먼저 직진하여 관음상으로 간다.
관음보살을 모셨다,
빛과 어울려 정교한 모습을 하고 있다.
되돌아 용궁법당?으로 간다.
용왕님을 모신 앞쪽에서 굴은 좌측으로 휘어진다.
용왕님
이곳 동굴에는 한쪽으로 물이 고여있다.
코끼리를 타고 있는 아기동자
물이 맑다.
동굴(과거 광산)의 깊이야 있겠지만 더 이상의 진입은 막았다.
되돌아 나간다.
동굴법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동굴법당 입구 좌측 뒷편이다. 별도로 동굴이 있지는 않다.
우측 뒷편엔 깊은 동굴이 있다.
주변엔 혹시 모를 파석이 떨어질까봐 시멘트를 발랐다.
가까이 접근해 본다.
낙석의 위험을 줄였지만 상당히 위압적이다.
과거에는 이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중으로 막아두어 출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동굴 안쪽에서 내다본 경관이다.
이곳은 대웅전 내부이다.
이 축대는 이곳이 과거 광산이었을때 사용하던 구조물인가 보다.
요사?
한옥으로 지었으면 더 어울릴텐데 좀 아쉽다.
겨울해는 짧다.
이곳 반야사를 둘러보는데 25분여 소요되었다.
현재 시간은 5시 5분을 가리키고 있고,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할 때 쌍계사와 성삼문 묘소는 둘러 볼 수 있을것 같다.
은근 시간이 남으면 대둔산 태고사도 생각했었는데 이곳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다.
이 축대가 궁금해 다가가 본다.
뭔지 모르지만 과거 광산으로 이용될때 슬러지를 배출하는 공간인지?
하여튼 이곳으로 어떤 물체가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논산 쌍계사
내비에 논산 씽계사를 검색하여 쌍계사로 간다,
저수지 직전에 우측편에 쌍계사 주차장이 있지만 번잡할 철이 아니어서 무시하고 쌍계사로 진입하였다.
이곳은 양지추모원과 쌍계사 갈림길이 있는 곳이다.
쌍계사 100m 직전으로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이 순간 좁아보여 양지추모원 주차장에 주차했다.(사실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앞쪽에 이런 저수지가 있다.
카카오 지도에는 저수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쌍계사로 간다.
차량 안에서 볼 때와는 달리 충분히 넓은 길인데 그대로 차량으로 진입할 걸 하는 후회가 살짝 든다.
시간상으로 늦어 마음이 조급해서 일 것이다.
부도 옆을 지난다.
이 부도군은 나중 내려올 때 둘러보기로 한다.
쌍계사 아랫쪽이다.
두 계곡을 양쪽에 두고 있는 지점에 있는 사찰이어서 쌍계사라 했나보다.
두 계곡에 흐르는 물은 보이지 않는다.
차량을 이곳까지 이동하는 건데........
그래봐야 3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쌍계사 편액이 달려있다.
이 문루는 봉황루이다.
앞쪽 옆에 화장실이 깨끗하다.
봉황루 아래를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쌍계사는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까지 갖춘 이름난 절이다.
고려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에 기록된 쌍계사 중건기(절을 수리하거나 고쳐 지었다는 기록)에 따르면 쌍계사는 백암사라고도 불렸으며, 고려 후기에 이행촌이 발원하고, 목은 이색이 문장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중건기에는 쌍계사 혜명스님과 관계가 있는 절이라고 전하는데, 관촉사를 세운 혜명과 같은 인물이라면 쌍계사를 세운 시기는 고려 초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후 쌍계사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승려 성능(性能) 등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전설에 의하면 파랑새가 붓을 입에 물고 대웅전 탱화를 그렸다거나 대웅전 기둥 중에 칡덩굴나무로 만든 기둥을 윤달이 든 해에 안고 돌면 무병장수하며 저승길에 고통 없이 갈 수 있다고 한다. 대웅전 문의 꽃무늬 문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법당 안으로 햇빛이 잘 투과한다고 한다. 또한 쌍계사를 둘러싼 불명산의 기운은 풍수학적으로 갈마음수(渴馬飮水)형으로 가뭄이 심한 해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1739년(영조15)에 단층 건물로 다시 지어 졌으며,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절을 다시 짓는 불사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쌍계사도 2층의 불전을 세우고 삼세불(가운데 석가여래,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불 등 세분의 부처)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에 모신 삼세불의 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 중에 "선조38년(1605)에 불상을 조성하고 쌍계사 2층 전각에 봉안했다"라는 내용이 있어 1605년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어깨가 넓고 목이 짧은 대신 허리가 길고, 두꺼운 눈두덩이와 살찐 배 등의 체형으로 보아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는 목조불상으로 알려졌으나 2015년 보물 제1851호로 승격 당시 최종 마감이 흙을 빚어서 만든 소조라는 사실이 밝혀져 소조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사찰의 입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 80호인 부도 9기가 남아 있으며, 사찰 경내에는 문루인 봉황루, 명부전, 칠성각 겸 산신각, 나한전, 비가 내려도 얼굴 부분이 젖지 않는다는 관세음보살상이 자비스런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봉황루를 들어서면 우측에 범종루가 있다.
대웅전
대웅전을 바라봤을대 좌측의 이 건물은 요사일것 같다.
이웃한 건물이다.
이 대웅전은 다포양식(기둥 상부 이외의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열한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탑의 잔재인가?
이곳 쌍계사에는 탑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명부전
보수 중이다.
대웅전 앞에서 되돌아 본 경관이다.
정면 봉황루, 좌측 범종루,
대웅전 우측편에 위치한 나한전,
나한전 뒷쪽에 칠성각 겸 산신당
대웅전 측면의 모습이다.
기둥을 굵기가 상당하다.
출입문,
대웅전에는 소조석가여래 삼불좌상(보물 제1851)을 모셨다.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대웅전에 있는 석가여래와 왼쪽의 아미타불, 오른쪽의 약사불 등 세 불상이다. 이 대웅전은 1739년(영조15)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불상 안에는 조성발원문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경전과 복장물(불상을 만들 때 그 안에 넣는 값진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 발원문에는 1605년(선조38) 3월부터 7월까지 당대 최고의 장인 원오가 신현, 청허, 신일, 희춘 등 4명의 조각승과 함께 불상을 제작하였다는 내용이 묵서(먹물로 쓴 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적으로 불에 탄 절을 다시 짓는 일이 일어났는데, 쌍계사도 이때 2층의 불전을 세우고 삼세불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웅전은 1층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불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17세기 삼세불상으로서는 비교적 큰 불상에 해당한다.
세 불상 모두 어깨가 넓고 목이 짧은 대신 허리가 길며, 두꺼은 눈두덩이와 살찐 배 등 체형으로 보아 조선 초기 불교 조각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2013년 4월에 논산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불상이라는 명칭으로 충남유형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었으나 2015년 보물로 제지정되면서 순수한 목조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소조로 마감한 사실아 밝혀져 소조상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불상 위 천장에는 운궁형식의 닫집이 있는데 여기에는 천상 세계를 나타내는 연꽃 봉오리, 용, 극락조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대웅전 문살.
대웅전의 문살에 연꽃, 난초, 국화, 작약, 목단, 무궁화 등을 새긴 꽃살문은 색감이 아름답고 무늬가 정교하여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앞의 안내문을 보면 대웅전 문의 꽃무늬 문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법당 안으로 햇빛이 잘 투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웅전 좌측 측면,
대웅전 뒷면
뒷면에 문이 있음이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역시 안내문을 보면 대웅전 기둥 중에 칡덩굴나무로 만든 기둥을 윤달이 든 해에 안고 돌면 무병장수하며 저승길에 고통없이 갈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
어느 기둥이 칡덩굴 나무이며, 안고 돌 수 있는 기둥이 과연 있나?싶다.
안내문도 없고, 전서로 씌여진 제목이 어려워 누구의 비인지 모르겠다.
현지 안내문에 비가 내려도 얼굴 부분이 젖지 않는다는 관세음보살상이 자비스런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고 했는데 이분이 관세음보살이신가?
그래서인지 얼굴이 깨끗하다.
관세음보살상 쪽에서 바라본 쌍계사 전경이다.
요사 앞을 지나
봉황루를 나선다.
들머리 부도탑
충남문화재 자료 제80호로 9기가 있다.
우측에 여백도 두었다.
쌍계사를 둘러보는데 20분여 소요되었다.
▣성삼문 묘소
성삼문 묘소에 왔다.
도로변에 넓은 공터(주차장)가 있고, 묘지 또한 거리가 가까워 지나는 걸음이라면 잠시 둘러도 좋다.
사당입구의 삼문에는 무이문(無二門)현판을 달고 있다. 두 임금을 섬지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충문공매죽헌성선생신도비
사당에는 성인각 현판이 달려있다고 한다.
사당엔 대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묘지로 가는 길
조선 초기의 문신 매죽헌 성삼문(1418~1456) 묘
성삼문은 1438년(세종20)에 식년(3년에 한 번씩 치르는 과거)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1447년(세종29)에는 문과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학사가 되어서는 신숙주와 함께<禮記大文諺讀예기대문언독>을 편찬하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정음청에서 정인지 등과 한글 창제를 위해 명나라 언어학자 황찬에게 13차례나 오가며 음운을 연구하여 한글 창제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1455년(세조 원년) 4월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왕의 국문을 받아 사망하였다. 한강변현 노량진에서 거열형을 당한 후 그의 시신은 조선 8도에 매장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쪽 다리가 이곳이 묻혀서 일지총(一肢塚/사지 지)이라고 불리고 있다.
묘의 크기는 둘레 30m, 지름 13m이며, 주변에는 최근에 제작하여 배치한 상석과 문인석, 돌기둥 등이 있다. 무덤 입구에는 하마비와 묘비가 있으며, 무덤 앞에는 묘표가 있다.
섬삼문과 논산 지역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절개와 지조를 상징으로 하는 성삼문의 묘가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대에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성삼문의 출생과 고향에 대해 인터넷 상에서 검색하니 예상외로 시원한 대답이 없다.
본관은 창녕, 호는 매죽헌, 조선 영조34년에 충문(忠文)시호가 내려졌고, 아버지는 도총관 성승(成勝)이고 어머니는 현감 박첨의 딸이다. 외가인 홍주(洪州 /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 생가 복원되어 있음)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는에서 "낳았느냐?"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으로 이름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홍주는 현 충남 홍성이다.
고려시대 호장이었던 성인보를 시조로 하는 창녕 성씨의 가계에서 가문의 흥기는 고려말 조선초에 활동하였던 여완(시조로 부터 5세손, 1309~1397)때 이루어졌지만 그는 조선의 건국과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그러나 그의 3아들(석린, 석용, 석연)이 급제 후 고위직에 오르면서 정치적 비중을 높였을 뿐 아니라, 세조대까지 다수의 문과 급제자가 다수 배출(석용의 후손(손자) 중 삼문외 다수, 석연의 후손 중 다수 문과 급제)되면서 집안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에 거족 혹은 명족이라고 하면서 가문의 위상을 강조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고 있어 부지런히 묘까지 갔다오는데 6~7분 소요되었다.
귀가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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