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수목원, 매천사, 돌탑조류농장, 엉뚱한 바람개비, 연곡사 국보순례길
가볍게 걸음걸을 곳으로 구례수목원과 천은사 저수지 둘레길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수국꽃 한창일 구례수목원을 걷기로 합니다. 지난 봄 벚꽃필 때에 찾은 적이 있는곳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가볍게 걷기좋은 수목원입니다. 오늘은 조금 떨어진 고개너머의 산수유자연휴양림 위치도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매천재는 매천 황현선생이 자결한 자리에 세운 재실로 광의면에 위치하고 있어 지나가는 길에 둘러보았습니다.
구례 돌탑(조류)농원은 김정표선생이 28년간 쌓은 돌탑 25기가 있습니다. 정교하교 깔끔하게 쌓은 돌탑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당초 일정은 돌탑농원을 둘러보고 동리산 태안사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김선생의 추천으로 '엉뚱한 바람개비'로 코스를 바꿨습니다. 입구에 주인외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만 김선생 이름을 팔면 박대하지는 않을 듯 싶었습니다. 이곳은 바람개비 테마정원으로 꾸미고 있는 중으로 그 면적 또한 상당히 넓습니다. 아직은 시작단계라 많은 일이 남았습니다. 몇 년 후 주인장 의도대로 꾸미고 나면 구례지역에 또다른 명물이 탄생될 듯 합니다.
코스가 바뀌는 바람에 남은 시간에 연곡사를 둘러보았습니다. 피아골 입구라 할 수 있는 외곡리에서 연곡사까지는 약 8km로, 계곡을 따라 한참 들어가야 하지만 몇 국보와 보물이 있어 이를 연계하는 걸음을 걷고 피아골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습니다.
귀가길 화계장터앞 향미가든에서 재첩국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천천히 귀가하였습니다
▷일정
구례 수목원 - 숲과 브런치 중식 - 매천사 - 구례 돌탑(조류)공원 - 엉뚱한 바람개비 - 연곡사 국보순례길 - 하동 향미가든 석식 / 2026. 7. 4.
▷탐방후에
◐구례수목원

구례수목원 매표소를 지나 좌측으로 살짝 내려서는 곳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후 수목원 입구로 갑니다.
우측에 카페가 있습니다.

매표소,
주차후 수목원 입구로 올라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봄에 찾았을 때는 차에서 내려 입장료 문제를 해결했는데 오늘은 직원이 직접 밖으로 나와서 매표에 도움을 주는 친절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른 2,000원(경로 면제) 단체(20인이상) 1,6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없습니다.

구례수목원은 금년 봄, 벚꽃과 산수유 꽃 필무렵 찾은 적이 있어 지형은 그의 기억하고 있습니다.

입구 잘 지으진 건물의 주 기능은 화장실,
지하에 세미나실도 있습니다.

수목원으로 들어섭니다.
수목원은 다양한 주제원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만 아주 넓은 곳은 이니므로 이곳 저곳 빠짐없이 다녀보심도 좋습니다.

지난 봄에 대충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둘러보았다면, 이번엔 반시계 방향으로 둘러볼 겁니다.
지난 봄에 걷지 못한 길을 위주로 할 겁니다.

겨울정원 인근을 지나 윗쪽으로 오릅니다.


밤나무 쉼터에 왔습니다.

밤나무 쉼터 앞쪽에 수국이 활짝 피었습니다.
몇 고양이 상이 있는 곳입니다.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면 옐로우가든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꽃이나 나무잎이 노란색 화초나 수목을 심었습니다.


옐로우 정원에서 전망대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곳까지 왔으니 전망대를 올라봅니다.
수목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시야는 서쪽으로 제한적입니다.

북동쪽?
저기 인공터널 너머에 산수유휴양마을이 있습니다.
나중 수목원을 한바퀴 걷고 차량으로 저곳을 둘러볼 겁니다.

다양한 수국들이 식재되어 있고, 또 싱싱합니다.


언제나 어느곳에서나
우리는 서로에게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믿음이 되어주며,
손 내밀면 맞잡을 수 있는 온기가 있어
서로의 사랑으로 푸르게 자라는 나무의 향기처럼 서로에게
행복한 사람이 되자
-우리는 서로에게- 중에서

맨발로 걷는길 상부쪽에 왔습니다.
지난 봄날 이곳에 왔을때는 맨발로만 다녀야 되는가? 하고 걷지않은 길입니다.

데크



해먹쉼터도 있습니다.

수목원탐방로 방향?
맨발로 걷는 길 하부쪽으로 내려왔으니 길을 달리하여 다시 올라갑니다.

여러 종류의 산수국을 보실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 테마원주변입니다.




맨발로걷는 길 상부로 되돌아 왔습니다.
옆이자 아랫쪽에 기후변화테마원이 있습니다.

기후변화테마원 윗쪽에 외국화목원이 있습니다.

외국화목원에도 수국이 많습니다.

숲속 그늘마당으로 왔습니다.

소나무 숲속 그늘마당도 쉬기 좋습니다.
남해안쪽으로는 재선충으로 인해 많은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어, 한편으로 나중 이곳이 무사할런지 우려스럽다는 훗날 걱정도 해 봅니다.

숲속 그늘마당에서 전시 온실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전시온실


전시온실 아랫쪽으로 내려섭니다.

종보존원
어린이 체험장으로 주로 이용됩니다.

어린이놀이숲

맨발산책로 아랫쪽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봄향기원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가을 벚나무
가을에 벚꽃을 피운다는 귀한 벚나무입니다.

봄향기원으로 왔습니다.

진달래원쪽으로

이곳 저곳 둘러보니 1시간 30분여 소요되었습니다.
산수유자연휴양림을 차량으로 한바퀴 둘러보고, 천은사 입구쪽에 있는 숲과 브런치에서 점심을 먹을 겁니다.
◐숲과 브런치

천은사 저수지 아랫쪽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이자 경양식집으로 보시면 됩니다.

과거 두어번 들런적이 있는 집입니다.

별실
과거 카페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쉼터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소박한 정원은 잠시의 대기실 역할도 합니다.
◐ 매천사

<숲과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구례읍방향으로 내려오면 머지않은 곳(수월리 월곡마을)에 매천사가 있습니다.
황현 순국지
우국지사 황현이 1910년 일제 강점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곳이다.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1888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 정치에 실망하여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평생 초야에 뭍여 지냈다. 동학농민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한 <오하기문>과 186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상을 기록한 <매천야록>을 남겼다.
1902년 이곳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로 이주하였다. 1907년 신학문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호양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황현이 순국한 집터에 1962년 사당인 매천사를 세워 그의 순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대월헌(待月軒)
'달을 기다리는 집' 이라는 뜻으로, 매천선생이 머물며 순절한 구례 광의면 수월리 월곡마을의 사랑채를 가리킵니다.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의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 대월헌에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담은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음독 순철하였습니다. 당시 그가 남긴 유목은 '대월헌철필첩'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편에 오동나무가 있습니다.
선생이 저술한 책 <오하기문, 梧下記聞>의 이름 유래가 된 나무입니다.

매천황선생묘정비(梅泉黃先生廟庭碑)

매천유물관을 둘러봅니다.

매천 황현
본관은 장수이며 자는 운경, 호는 매천이다. 세종대의 재상 황희의 후손으로 황시묵의 3남 2녀중 장남으로 광양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구례의 천사 왕석보 선생(1816~1868)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시문에 능하여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1883년 특설보거과 초시에 급제하였으나 시골 출신의 한미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1등에서 2등이 되자 출사를 단념하였다. 32세가 되던 1886년 구례 만수동으로 이사하여 후학양성과 독서,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에 구한말의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과 <오하기문>, 약 1,200여 수의 시가 쓰여졌다.
1902년에 16년간의 구례 간전면 만수동 생활을 정리하고, 구례 광의 월곡마을로 이사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 망명을 계획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6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1833~1906)을 대신하여 격문을 작성하였으며, 다음해에 피아골에서 전사한 고광순(1848~1907)의병장의 전기를 짓기도 하였다. 1908년에는 구례지역의 신학문 보급을 위해 호양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자 원통해하며 음력 8월 7일에 절명시 4수와 유서를 남긴 뒤 음독 순절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순종 융희 4년(1910) 7월에 일인(日人)이 마침내 한국을 합병하였다. 8월에 황현이 그 소식을 듣고는 몹시 비통해하며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어느 날 저녁 <절명시> 4장을 짓고, 또 자제들에게 글을 남기길
吾無可死之義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但國家養士五百年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되었는데
亡國之日 나라가 망한 날을 당해
無一人死難者 한 사람도 나라의 어려움에 죽는 자가 없다면
寧不痛哉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吾上不負皇天秉彛之懿 (짐질 부,떳떳할 이, 아름다울 의)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下不負平日所讀之書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고
冥然長寢良覺痛快(어두울 명) 영원히 잠들어 버린다면 참으로 통쾌함을 깨달을 것이니
汝曹勿過悲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이 글을 다 쓰고는 바로 독약을 마셨는데, 그 다음 날에야 가족들이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우 원이 급히 달려가 보고는 할 말이 있는지 묻자, 황현이 말하기를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다만 내가 써 놓을 글을 보면 알 것이다."하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죽는 일이란 쉽지 않은가 보다. 독약을 마실 때에 세 번이나 입을 대었다 떼었다 하였으니 내가 이와 같이 어리석었단 말이냐."하였다.
이윽고 운명하니 향년 56세였다.
※<매천집>은 매천 선생과 가까웠던 창강 김택영(1850.~1927)이 1911년에 선생의 글을 모아 편집, 간행한 문집이다. 위의 글은 선생의 생애를 정리한 <本傳,본전>에 기록된 것이다.

절명시 4수
亂離滾到白頭年 (난리곤도백두년, 흐를 곤) 난리 속에 어느덧 백발나이 되었구나
幾合損生却未然 (기합손생각미연) 몇 번이나 죽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네
今日眞成無可奈 (금일전성무가내, 어찌 내(나)) 오늘에야 참으로 어쩔 수 없게 되었으니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푸를 창) 가물거리는 촛불 저 하늘 환히 비추네
妖氛晻翳帝星移 (요분암예제성이, 기운 분, 어두울 암, 깃일산 예,) 요사한 기운 가리워 황제 별자리 옮기니
九闕沈沈晝漏遲 (구궐침침주루지) 구중궁궐 적막하고 시간조차 멈추었네
詔勅從今無復유 (조칙종금무복유) 황제의 조칙 이제는 다시 없을 터
琳琅一紙淚千絲 (임랑일지누천사, 옥 림(임),옥이름 랑) 종이 한 장 쓰는 시에 천 줄기 눈물
鳥獸哀鳴海嶽嚬 (조수애명해악빈, 큰산 악,찡그릴 빈)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심륜, 빠질 륜(윤)) 무궁화 세상은 이제 망해버렸네
秋鐙掩券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등잔 등, 가릴 엄(암) 가을 등불에 책 덮고 지난 역사 돌아보니
難作人間識者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 글자 아는 사람 노릇 쉽지 않았네
曾無支廈半椽功 (증무지하반연공, 일찍 증, 큰집 하,서까래 연) 나라를 위해서는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불시충) 나의 도리 다할 것일 뿐, 충성은 아니로세
止竟僅能追尹穀 (지경근능추윤곡, 마침내 경, 겨우 근, 곡식 곡) 자결했던 윤곡을 이제 겨우 따를 뿐
當時愧不躡陳東 (당시괴불섭진동, 부끄러워할 괴밟을 섭)논쟁했던 진동처럼 못했던 것이 부끄럽구나
윤곡 :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몽고군이 침입하자 가족과 작별하고 분신 자결한 인물
진동 :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국정을 문한하게 하는 여섯 명을 처형할 것을 주장한 인물

유적과 유물
매천사 :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 22-3
호양학교 : 구례군 광의면 지하 1길 31
지리산 역사문화관 황현관 :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377-36
구안실(苟安室,진실로 구) :구례군 간전면 구안실길 54-9
매천 황현 생가 : 광양시 봉강면 서석길 14-3
매천 황현 묘소 :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1134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

매천사
매천사는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역사가이며, 우국지사인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의 본관은 장수, 자는 운경(雲卿,벼슬 경), 호는 매천으로, 황희(黃喜) 정승의 후손이며 시묵(時默)의 아들이다.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나 구례로 이사하여 주로 활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재주가 빼어나고 시문에 능하여 이름을 떨쳤다.
황현은 고종 23년(1886) 생원시에서 장원하였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 韓末三才'로 불렸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잇따라 일어나자 국가와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역사를 춘추필법에 따라 기록하였다. 그 결과 <매천야록>, <오하기문> 등을 지었으며,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게 하엿다. 1910년 8월 일제가 나라를 강탈하자, 국치를 원통해 하며 <절명시>4수와 유서를 남긴 후 순국하였다. 해방 후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여 그의 절의 정신을 기렸다. 또한 매천 선생이 말년에 활동하였던 이곳에 그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62년 앞면 3칸, 옆만 1칸 규모의 사당을 짓고 매년 봄에 제례를 모시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매천사를 둘러보고 돌탑 (조류) 농장으로 갑니다.
◐구례 돌탑 조류농장

카카오 내비에 <구례돌탑조류농장>으로 입력하시면 됩니다.
입구 길의 노폭이 좁고 갈림길에서 헷갈릴 수 있습니다만 현지의 안내 이정표를 따르심이 좋습니다.

돌탑조류농장
개인 농장이다 보니 번듯한 주차장은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승용차 10대 정도쯤 주차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욕심같아선 아랫쪽 논을 사들여 주차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싶습니다만 논을 사들일 여력은 없다고 합니다.

첫 인상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쌓았다 싶습니다.
높이 또한 있습니다.

앞쪽에 관람료 투입구함이 있습니다.
금액은 성인 5,000원, 초.중.고등학생 3,000원입니다.
아래에 계좌번호도 표시되어 있으니 현지에서 입금도 가능합니다.


이곳엔 농장주 김정표(이정표가 아니라 김정표라 함)님이 28년간 25기의 돌탑을 쌓은 곳입니다.
현 나이 78세라 하니 선생 나이 50세때(1998) 몸이 좋지 않아 이곳으로 내려와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고, 현재 건강상태는 양호해 졌다고 합니다.

주 직업이 조적 즉 벽돌을 쌓는 일이어서 돌과 시멘트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탑 하나하나 정교하고, 균형이 있고 또 예쁘게 쌓았습니다.

농장의 면적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사진상 맨 우측 아시바(비계, 작업발판)를 매어 둔 곳이 전망대 입니다.

나름 안내 표시가 있어 이를 따르시면 됩니다.
큰 농장(감나무밭 속에 돌탑과 조류 사육장 있음)은 아니어서 이곳 저곳 둘러보시면 됩니다.




돌탑농원 중간에 야무지게 만든 조류사육사가 있습니다.
현재 공작, 거위, 토끼, 닭 등이 보입니다.
따라서 이곳 주변에는 조류냄새가 제법 날 수도 있습니다.


이곳 사진상 좌측 낮은 건물이 법당입니다.

법당은 이곳입니다.

법당 내부

큰 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교적 작은 탑도 있습니다.



전망대를 방향잡아 갑니다.
주변은 감나무 밭입니다.또한 살구나무도 있습니다.

이건?

산장의 여인 / 원곡 권혜경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 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러진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 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 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

이곳에도 조류(공작) 사육장이 있습니다.

전망대에 왔습니다.

탑을 쌓을때 사용하던 일명 아시바를 통해 오르고 그 상부가 전망대인 셈인데, 튼튼하여 오르는데 별 지장은 없지만 공사판의 자재를 조립하여 놓았으므로 철제 모서리 등 조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시바는 표준말로 비계라고 하는데 이 말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작업발판 또는 가설발판이란 말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한사람 겨우 오를 수 있습니다.
주인장은 이 길을 여러 수천번 오르내렸을 겁니다.

맨 꼭대기는 이런 모습입니다.
아파트 7층 높이쯤 된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돌탑농원


구례읍내

이곳은 소형 돌탑을 쌓을려고 기초공사를 해 놓은 곳 같습니다.
파이프를 중심으로 원형이 되도록 돌탑을 쌓아가는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첨성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항아리?




이 돌은 베트남에서 수입한 건축자재로 쌓은 것이라 합니다.

오미자차를 내어놓습니다.
김정표(이정표에서 성만 바꾸면 이름기억하기는 쉽다고 합니다.)선생은 호탕하고 말 붙임성도 좋아 부담없는 심성을 가지고 계신것 같습니다.
금년 78세이면 아직 몇 기는 더 쌓으실 수 있겠다고 하였더니 이젠 편히 살고싶다고 하십니다.
건강이 좋지않아 이곳에 정착하며 돌텁을 쌓기 시작한 이야기, 중간 중간 노가다(조적쌓기)하여 가며 벌어들인 돈으로 돌탑을 쌓을 재료를 사들인 이야기, 매실(살구?) 따기 체험행사 이야기, 입장료를 받지 않으려 했는데 이곳 방문객이 입장료 함 만들어 준 이야기, 20억원에 매매를 권유하는 어느분 이야기 등등...........
이야기 중간에 엉뚱한 바람개비 정원을 꾸미고 계시는 분을 이야기 하면서 한번 찾아가 보라고 하십니다.
지중해 연안의 하얀, 산토리니 풍의 담, 안으로 오르는 길이 경사가 좀 심하다는 이야기, 현 직장에 다니시고 계시면서 주말이면 가족과 정원을 가꾸는 이야기, 찾아가 봐도 된다며 오늘 집에 계실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태인사에 갈려는 마음을 접고 엉뚱한 바람개비를 찾아 갑니다.
1시간 30분의 시간이 돌탑쌓는 아야기 듣는데 정신이 팔려 금새 지나갔습니다.
◐엉뚱한 바람개비 (연구소)

구례 간전면에서 남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르다 보면 우측편에 있습니다.
남도대교 약 2km전방쯤에 있습니다.

도로변 들머리

관계자외 농장 출입을 절대 금지한다는 팻말이 있습니다.
어제께 돌탑농원에 왔다 가셨다? 돌탑농원 주인이 이곳에 방문?....
하여튼 돌탑농원 김사장님이 추천해서 왔다고 주인에게 양해를 구할 생각입니다.

들머리
이곳이 멋지게 꾸며지고 하얀 색깔로 변할때쯤이면 그리스 풍을 느낄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엉뚱한 바람개비도 있습니다.


바람개비 연구소

맞은편 골짜기가 피아골입니다.

승무랑, 분자랑
이름인것 같은데................
윗쪽으로 면적이 상당히 넓은 농원입니다.

현 여러 바람개비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아직은 많은 일을 더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이곳 저곳 여러 바람개비 사진을 촬영하였지만 준비 기간이기에 사진을 올리지는 않아야 할 듯 싶습니다. 농원이 완공되면 그때 다시 와봐야 겠습니다.
약 30분여에 걸쳐 둘러본 엉뚱한 바람개비 연구소였습니다.
◐ 지리산 연곡사

오후 6시를 막 넘는 시간입니다.
아직은 해가 길어 연곡사에 왔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우측편에 카페 연우당이 있습니다.

천왕문
연곡사는 백제 성왕 22년(서기 544)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절의 터를 잡을 적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선종사찰로 번성하였고 도선국사, 현각선사 등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인진왜란 당시 연곡사 스님들이 승병활동을 했던 보복으로 왜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으나 임란 이후 소요태능스님이 중창불사를 하여 400여 스님들과 더불어 이곳에 총람을 개설하고 선풍을 일으켰다.
1907년 연곡사가 항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현제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국보 53호), 북승탑(국보 54호)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보물 151호),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 동승탑비(보물 153호), 소요대사탑(보물 154호) 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중흥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나무아미타불
..................

누각이라 할 수 있는 보제루, 대웅전과 마주보는 안쪽엔 삼홍루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삼흥루 아래로 바로 들어서지 않고 우회하여 들어갑니다.

삼홍루(三紅樓)
피아골의 붉은 단풍과 관련된 이름인 듯 합니다.

주 불전은 대적광전

좌측 무설전


관음전
대적광전 좌측편에(마주 보았을 때)에 있습니다.

우측편에 명부전

저곳으로 가면 삼성각

대적광전을 잎에서 바라보았을때 우측 뒷편으로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조금 오르면 연곡사 승탑이 있습니다.

연곡사 동 승탑 / 국보
승탑은 이름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구례 연곡사 동 승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사리탑 가운데에서 가장 형태가 아름답고 장식과 조각이 정교한 작품이다.
맨 애랫돌에는 구름 속의 용을 팔각으로 장식하였고, 그 위에 중대석 받침에는 면마다 형태가 다른 사자상을 새겼다 지봉돌은 목조 건축의 지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기왓골, 처마, 기와 각 부분의 장식이 매우 섬세하다. 지붕 아랫면에는 구름무늬와 여자 선인(仙人)을 조각해 놓았다. 지붕마루 측면에는 작은 종을 걸었던 구멍이 있고, 그 윗부분에는 잡상(雜像 /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 네 귀에 여러가지 신상을 새겨 얹는 장식 기와)을 얹었던 흔적이 있다. 탑의 가장 윗부분은 연꽃, 봉황, 보주 등의로 세밀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도선국사의 사리가 안치된 탑이라 전해온다. 일제가 동경대학으로 반출하려고 하여 없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일 신라 후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동승탑 좌측 앞쪽에 탑비가 있습니다.

연곡사 동 승탑비 / 보물
승탑비는 승탑과 짝을 이루어 세운 비이다.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는 동 승탑 앞쪽에 서 있는 비이다. 비석의 몸돌인 비신은 없어지고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머릿돌은 구름 속에 용 5마리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휩싸인 보주(寶珠 /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놓았다. 머릿돌의 세밀한 조각과 날개를 갖춘 받침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받침돌은 뿔이 하나 달린 용 모양의 머리, 날개 달린 거북 모양의 등을 갖춘 상상 속의 동물인 '연'을 형상화한 것이다. 용의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한 비좌(碑座)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해 놓았다.
동 승탑과 짝을 이루어 만들어진 통일 신라 시대의 비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연곡사 국보순례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동승탑 탑비에서 북승탑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있습니다.
소요시간 20분, 거리 600m표시가 있습니다만 이 시간 및 거리는 국보순례길 전체를 말합니다.
언뜻 동슽탑에서 북승탑까지 거리가 600m, 20분 소요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동승탑 좌측 뒷편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있습니다.

동승탑에서 오르는 계단길이 운치있습니다.

북승탑


연곡사 북 승탑 / 국보
승탑은 이름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구례 연곡사 북 승탑은 네모난 바닥 돌 위에 세워진 8각형의 승탑이다. 전체적으로 규모와 형태, 각 부분의 장식과 조각이 연곡사 동 승탑과 약간 차이가 날 뿐 그의 동일한 모습이다.
기단은 3층으로 아래 받침돌, 가운데 받침돌, 위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받침돌은 2단인데 아래에는 구름무늬, 위에는 두 겹으로 된 연꽃무늬 16잎을 새겼다. 위 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몄다. 특히 위쪽의 단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迦陵頻迦/막을 가, 자주 빈)를 돋을 새김하였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사천왕상 등을 꾸며 놓았다.
이 승탑은 연곡사 동 승탑을 모방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찰 내에 현각 선사 탑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각 선사 승탑으로 추정하며, 8각형 승탑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내려갑니다.


연곡사 소요대사 탑


연곡사 소요대사 탑
연곡사 소요대사탑은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효정 원년(순치 6년, 1650)에 세운 것이다. 탑신의 한 면이 소요대사지탑 순치육년 경인(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 庚寅) 이라는 두 줄의 글귀가 뚜렷이 새겨져 있어서 탑의 주인과 건립 연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탑은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을 두고, 위로는 머리 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에는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인왕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 여덟 곳에 큼지막하게 꽃 장식을 얹어 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에는 봉황 4마리가 형태가 완전하에 남아 있다. 연곡사에 있는 다른 탑 2기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탑이다.
소요대사 태능은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에 불타 버린 연곡사를 크게 중창하고 서산대사의 선맥을 이은 큰스님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고광순의병장 순국지 (연곡사)
1907년 10월 고광순 의병장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곳이다.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1896년 기우만이 이끄는 창성의병에 참가하였다. 1906년 6월 최익현. 임병찬 등이 일으킨 태인의병에 참여하려 했으나 태인의병이 해산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2월 양한규 의병과 함께 남원을 점령하고자 하였으나, 양한규 의병이 일본군에 패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1907년 중반 연곡사에 근거지를 두고 지리산에서 장기항전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1907년 10월 17일 일본군의 급습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고광순은 순국하였고 의병도 해산되고 말았다.
<현지 안내문에서>

구례 의병장 고광순 순철비 / 향토문화유산
구례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는 구한말의 의병대장 녹천(鹿川, 사름 녹) 고광순 의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고광순 의사는 헌종 14년(1848)에 창평 고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항일 의병 활동을 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에는 호남 의병대장이 되어 직접 제작한 불원복기(태극기에 광복이 머지않음을 표시한 깃발)을 앞세우고 남원, 광주, 화순, 순천 등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곳 연곡사에 들어와 유격전을 펴다가 일본 군경에 포위되어 1907년 음력 9월 11일 장렬히 순국하였다. 이 순절비는 1958년에 구례 군민들이 뜻을 모아 돌아가신 자리에 세웠으며, 2007년에 고광순 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구례군에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뒤로 보이는 건물이 무설전입니다.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 보물
이 비는 고려 전기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경종 4년(979)에 건립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비문은 학사 왕융(王融, 화할 융)이 짓고, 글씨는 동정주국(同政柱國) 장신원이 쓴 것이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돌 거북은 웅장해 보인다. 두 눈이 부리부리하고 입이 큼직하며, 수염이 달린 용머리를 하고 잇다. 등 중앙에 비를 꽃아 두는 부분의 안상(眼象)에는 꽃 조각을 새겨 놓았다. 받침돌 위에 놓인 비의 미릿돌에는 여러 용이 서로 얽한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비석 안으로 스민 물을 빼는 물구멍이 받침돌과 머릿돌 윗부분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현각선사비명(玄覺禪師碑銘)'이라는 비 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탑비는 귀부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조각난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연곡사 삼층 석탑 / 보물
석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곳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은 3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삼층석탑이다. 기단은 전형적인 3층 석탑의 3중 기단과는 달리 석재 여러 개로 3중으로 기단부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기단의 4면 모서리와 가운데는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맨 위의 기단이 넓은 데에 비하여 탑의 몸체인 탑신부가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지붕 윗면의 경사는 경쾌한 곡선을 기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의 추켜올린 모습도 우아하다,
지붕돌이 밑에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하였다.이때에 위층 기단 안에서 동조 여래 입상 1구를 발견하였다. 탑에 사용한 돌의 구성 양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피아골 순국의사 위령비
이곳 피아골은 민족의 수난과 시련의 시기에 인고의 세월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인 곳이다. 정유재란때 강토를 침로하던 왜군에 맞서 수많은 승군과 백성들이 피가 내가 될 정도로 처절한 전투를 벌이더 순국하였으니 피내골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구한말에는 일본제국의 한일합방에 맞서 수백명의 고광순 의병부대가 연곡사에서 불원복(不遠復, 광복이 멀지 않았다)이라는 글자를 태극기에 써서 드날리며 최후까지 무장투장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6.25전쟁 기간중에는 이 지리산 일대에서 약 2만명 이상이나 되는 군인과 민간인들이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죽어가햐 했던 슬픈 역사가 있었다. 같은 조국을 꿈꾸었으나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했던 민족의 운명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분단의 상처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야속한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강산은 더욱 푸르기만 하니 조국을 위해 흘렸던 그 많은 피들은 붉은 잎들이 되었는가 피아골의 단풍은 해마다 더욱 붉기만하다. 광복74주년 8월 15일 백중날에 연곡사 스님들과 신도들은 뜻을 모아 셰계평화와 조국 통일을 간절히 발원하고 피아골 순국선열의 명복을 빌며 이 비를 세운다. 영령들이여 편안히 잠드소서

연곡사 일주문을 나섭니다.
연곡사에서 30분~ 35분여 머물렀습니다.
차량으로 피아골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 갑니다. 과거 노고단을 거쳐 피아골로 내려온적이 있어 초행은 이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당시보다는 많이 변했습니다.
◐향미가든

화개장터 앞에 있는 향미가든에 저녁식사를 하러 들렀습니다.



재첩국을 시켰습니다.
깻잎도 맛있고, 재첩국도 시원합니다.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이라 합니다.

이집 메뉴
과거 이집에서 현지인의 소개로 지리산권 관광아카데미 회원들과 아침식사를 한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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