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의신옛길
오랫만에 하동 의신옛길을 찾았읍니다.
의신 옛길은 화개면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변을 따라 난 옛길을 탐방로로 정비한 거리 약 4.2km의 길입니다. 서산대사가 걸었던 길이라 서산대사 옛길이라고도 합니다.
▷코스
화개 신흥마을 - 의신옛길 - 의신마을 - 도로를 따라 신흥마을 / 편도 4.2km, 2026. 8. 5
▷탐방후에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주차장에 주차하였습니다.

신흥마을은 평소에는 모르겠지만 특히 여름철은 주차공간이 부족합니다. 지형상 마땅히 넓힐 곳도 없습니다. 도로변에 몇 대씩 주차 공간이 있지만 넓지 않습니다. 따라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학교를 개방하여 외지인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왕성분교 모습입니다.
학생수는 7명이라 합니다.

왕성분교 주차장입니다.
교직원을 위한 주차공간이어서 여유가 많지는 않습니다.

마을앞 도로변을 따라 의신마을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의신옛길은 신흥마을 상부쪽 끝에 있습니다.

앞쪽 하천엔 시멘트 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많은 토사가 쌓였습니다.

보의 상부쪽에 이런 암반지대가 있습니다.
바위 이곳 저곳에 세이암을 비롯한 여러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바위 곳곳에 이름 등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세이암은 앞쪽 바위의 상단에 각자되어 있습니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언급한 별천지 화개동, 세이암(洗耳嵒)과 게(蟹, 게 해)
지리산 대성계곡은 유리알처럼 맑아 잔잔한 흐름을 이루고 계곡마다 바위를 휘돌아 흐른다. 주변에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반석 하상에는 하천의 마식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포토홀군(바위구덩)이 확인되고 세이암( 洗耳嵒)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세이암에는 신라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세속의 비속한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신선이 되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곳이 귀를 씻은 곳이라 한다.
한편 최치원이 지리산 옥류(玉流)에 목욕을 하는데 게(蟹, 게 해)가 선생의 발가락을 물었다. 선생이 이것을 고약하게 여겨 그 게를 잡아 멀리 던지며 다시는 여기서 사람을 물지말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 게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위 암
巖(암석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岩(명사 밑에 붙어 어떤 종류의 암석임을 나타냄). 嵓, 嵒, 巌, 巗.

이 바위엔 회란석(回瀾石 , 물결 란(난)으로 각자되어 있습니다.



진사 정 은(進士 鄭 誾, 온화할 은)

강 바닥면의 암반중 주변보다 높은 곳입니다.

이곳에 세이암 각자가 있습니다.

뒷편 바위에도 여러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윗쪽에는 이, 김, 조 삼인의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고,

이렛쪽에도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합니다,
남명선생은 <유두류록>에서 불일폭포로 오르면서 바위에 새겨넣은 여러 이름을 보았다. 그런데 그 인물들은 역사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남명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아마도 썩지않은 돌에 이름을 새겨 억만년토록 전하려 한 것이리라. 대장부의 이름은 푸른 하늘의 맑은 해와 같아서, 사관(史官)이 책에 기록해 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사는 숲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않기를 바란다. 이는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까마득히 잊혀질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날아가 버린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찌 알겠는가? 두예의 이름이 전하는 것은 비석을 물 속에 가라앉혀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새도 지나가면 흔적조차 없는데, 그 그림자야 말해 무었하랴.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한 가지도 하지 않고서 돌에다 이름이나 새겨 남기려 하는 것은, 새의 그림자나 구름의 그림자처럼 흔적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산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대 자기의 이름을 남겨놓았던가?
<남명과 지리산 / 최석기 교수 >

이쪽 바위에도 적지않은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명암 정식 선생도 다녀가셨습니다.
명암선생은 진주분으로 산청 덕산 구곡산 아래에서 무이구곡을 짓고 말년을 보내신 분입니다.
전국 웬만한 곳에 이 분의 이름이 각자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암벽에도 여러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쪽 바위,

위 바위 중간에 세로로 세이암이라고 적혀 있는 듯 싶습니다만 흐릿하여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 분이 누구인지 아시는 분?
尹袓定(윤저정, 좋아할 저(袓), 조상 조(祖))

신흥 마을이 끝나는 곳에 의신옛길 들머리가 있습니다.

들머리 입니다.

신흥~의신 옛길

편도 4.2km,








탐방로가 완만한 곳만 있는 것은 아님니다.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서산대사의 도술 "의자바위"
서산대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승군의 궐기를 호소하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의자바위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쳐들어와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훔쳐 가려는데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왜병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가버렸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부터 의신사 범종은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하천변으로 내려서면 오늘 탐방로중 절반쯤 오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의 대부분 계곡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소형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임시 출입이 허용되는 구간도 있습니다만 제한적입니다.

한시감쯤 중식시간을 갖습니다.

중식후 나머지 구간을 이어갑니다.




사람이 거주하지는 않은 듯 한데 라디오 소리 큽니다.











신흥 2.6km,
의신 1.6km
합하면 4.2km가 됩니다.

서산대사와 함께하는 우리의 옛길
서산대사(1520~1604)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출가(1540)하여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얻었습니다. 신흥~의신 주변에는 쌍계사, 칠불사, 의신사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도 여러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신흥사가 있었던 신흥마을과 의신사가 있었던 의신마을 연결한 4.2km의 이 길은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무르는 동안 오가던 옛길입니다.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






저만큼 의신마을이 보입니다.













의신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4.2km, 점심시간 약 40분 포함하여 약 3시간 30.분 소요되었습니다만 한여름 덥기도 하여 많이 쉬었기 때문에 시간은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원통암과 서산대사 / 원통암은 서산대사의 출가지이자 수도처
기리산 덕평봉의 남쪽 아래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 오며. 옛 의신사(현 의심마을 터)의 31개 산내 암자 중 하나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도량이다.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숭인장노, 추월조능, 원오일진스님 등 많은 고승대덕이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조계종의 祖師(조사)인 벽송대사(碧松大師(1464~1534)가 마천골에 초막(현 벽송사)를 짓고 수도할 때 많은 제자가 운집하여 지리산 일대가 대선림(大禪林)을 이루었다.
운학(雲鶴, 서산대사의 아명)은 15세 때 동학 5~6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다 원통암에 들렀는데 숭인장노의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1534년), 21세에 삭발 득도(1540) 했다.
운학이 숭인장노와 영관대사의 지도 아래 삼철굴, 의신사, 대승암, 원통암, 원적암, 은신암 등에서 수행하던 어느 날, 봉성(현 구례) 성촌마을을 지나가다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불조(佛祖)의 심인을 깨달아 부용영관대사의 법맥을 이었다. 33세에 승과에 급제한 후 교종판사, 선종판사 그리고 최고승직인 선교 양종판사직에 오르고, 선종의 총본산 봉은사 주지를 맡았다. 그러나 이내 사직하고 지리산으로 돌아와 내은적암, 황령암, 능인암, 칠불암 등에 머물면서 퇴락된 가람을 중수하고 '삼가귀감'(유가, 도가, 선가귀감)을 저술했다. 훗날 묘향산과 금강산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군을 조직하고 도총섭이 되어 전쟁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으며, 묘향산 원적암에서 85세로 입적하였다. 대사는 최초로 선종과 교종을 통합했으며, 나아가 유,불, 선 삼교를 회통하여 국론을 대통합으로 이끌었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 조선 불교 중흥에 크게 이바지했다. 원통암은 토굴 같은 작은 암자이나 지리산 심장부에 해당되는 곳이다. 풍수지리설로는 청룡백호가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고, 앞에는 백운산 세 봉우리가 안산으로 우뚝 솟아 마치 청학이 날개짓하며 비상을 준비하는 형국이다. 예로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는 천혜의 명당 터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구한말에 화재로 폐사된 것은 1997년 7월 인법당과 산신각을 복원하였고, 2011년 11월에 서산선문(西山禪門)과 청허당(淸虛堂)을 새로 짓고 서산대사 영정을 청허당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불교의 중흥조이며 구국의 승병장인 서산대사의 행화도량 원통암은 온 국민과 함께 잘 보존해야 할 유서깊은 문화유산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원통암 0.9km,




도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걷는 것이 힘들다면 군내버스 이용도 알아보심이 좋습니다.


이곳 다리만 건너면 신흥마을입니다.


의신마을에 약 1시간, 신흥마을에 도착하여 의신옛갈 탐방을 마무리 합니다.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2시간 50분, 점심시간 약40분, 의신에서 신흥마을까지 도로를 따라 약 1시간 합하여 4시간 30분 소요되었습니다. 천천히 쉬어가며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귀가길 노량에 들러 전어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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