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일상들

남명 선비문화 축제

정헌의 티스토리 2011. 10. 11. 21:26

          ■ 제35회 남명 선비문화 축제  

 

                             봄 산 어덴들 방초 없으라만은

                             보다 천왕봉 더높아 사랑스럽다.

                             빈 손으로 들어와 무얼 먹을까

                             십리 은하수 마시고도 남으리. 

 

 

           ▷ 가는 길

               산청군 시천면 / 남명기념관, 산천재 일원  

 

 

           ▷ 주요행사 ( 2011.10. 8 - 9 일)

               남명선생묘소참배,  남명제례/기념식, 전국 한시 백일장, 학생 백일장, 국악 공연, 마당극 공연,  전국 시조 경창

               대회 외  남명유적 전시, 가훈 우수작품 전시, 국립공원 사진전, 민속놀이체험, 서예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

               졌습니다.

 

 

           ▷ 제례후에




              문화체육관광부선정 지역민속축제로서 조선시대 실천유학의 대가인 남명조식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 10월 8 - 9일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 일원에서 제 35회 남명선비문화축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선생 탄신 510주년을 기념하는 남명 제례가 전통 제례 방식으로 봉행되고 있습니다. 

               남명 선생의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 호는 남명으로  연산군 7년인 1501년 합천 삼가에서 태어납니다.

               퇴계 이황 역시 같은해 태어났습니다.  





   




                봉심? 

                제관 외 여러분들이 잔을 드리고 있습니다.

 

                남명 (1501. 6. 26 - 1572. )은 이조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데 힘썼습니다. 

 




 




               선생의 나이 5세때 아버지가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 장의동으로 이사하여 약 20년간 학문에 힘씁니다.

               26세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고향인 합천 삼가 선산에 장사하고 여막에 살다가,  30세때 처가가 있는 김해 탄동으로 

               이사를 하여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제자를 가르칩니다. 





 




                그의 나이 38세때 나라에서 헌릉참봉(參奉)을 주었으나 받지 않고,  48세때 전생서(典牲署)의 주부(主簿)를

                제수하였으나 또한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계부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사화(士禍)이후

                흩어진 선비들을 모아 학문에 힘씁니다.

                51세때  종부사(宗簿寺) 주부(主簿)에 임명하자 이도 사양하고,   55세때  단성 현감(縣監)에 임명 되었어도

                또 받지 않고 정치하는 방향만 글로써 국왕께 올립니다.

 

        






    

               선생 나이 61세때 산청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학문과 후세 양성에 전념하다 72세로 별세할때까지

               여기서 살았습니다.







 


             남명 선생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생활해온 일과 그가 남긴 문장을 추술해 보면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실행(實行)에 중점을 두어 적절하고 의리있는 꿋꿋한 선비정신 입니다.

             그의 학문을 경의학(敬義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합니다.

             敬이란 안으로 바른 마음을 갖는 것이요,  義란 밖으로 사물을 올바르게 처리하여 실천하는 것으로 그에게는 알

             고서 올바르게 실행해야 된다는 점이 중시됩니다.

 

 









              두번째, 자기의 맡은 직분에 충실할 것과 백성과 선비가 임금과 관리보다 나라의 근본이라는 사상입니다.

              선비가 벼슬길에 나선다면 그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일을 하지않고 눈치만 보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국록을 허비하는 염치없는 짓이므로 자기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삶이 당연하면 살고, 죽음이 당연하면 죽는다. 만종(萬種)의 재물도 내일의 굶주림도 또한 대수롭지 않으며 오직

              의리가 있는 바이다."

              "충신과 진덕에서 의리를 함께 보존하기 까지에는 용감하고 엄격하고 절도있고 결단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


              등등 선비의 의지를 바탕으로 한 그의 가르침은 모든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임진왜란이란 민족적 위기를 당하

              였을때 대의명분으로 나라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많은 의병장수를 배출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할수 있습니다.

 

 







              그의 학문적 특색은  조상의 주된 성리학풍을 이어받은 퇴계 이황 선생의 理論的인 학문보다는, 실천적 면에 

              더욱 힘을 써 경상우도의  토착한 선비들의 宗師가 되었으며,

              특히 유학자들이 돌아보지 않는 노장학(老莊學)에두 상당한 인식을 가졌다 합니다.

              또한 이론이 많다고 해서 꼭 도리를 밝게 통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이론과 저술(著述)을 중시하지 않

              았다 합니다.




             

 




               후에 조정에서 남명 선생의 유덕을 찬양하여 문정(文貞)이란 시호를 내리고  領議政에 증직하였으며,

              길이 전승하기 위하여 사림들이 덕산에 덕천서원을 세우고 사액(賜額)을 받아 지금도 제향하여 추모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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