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삼가헌, 육신사
칠곡 가산수피아를 시작으로 가실성당을 둘러보니 6시경입니다.
귀가길 약간의 여유시간에 달성군 하빈면에 있는 삼가헌과 육신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일정
달성 삼가헌 - 육신사
▷탐방후에
◐삼가헌

삼가헌에 왔습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도로가 좁은 편이며 주차장 다운 주차장은 없습니다.
대문채로 들어섭니다.

대문체를 들어서니 우측의 개 한마리가 민망할 정도로 짓어댑니다.
개짓는 소리에 주인양반이 빙 밖으로 나옵니다.
집을 둘러보러 왔다고 양해를 구하니 둘러보라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사랑채

초가집은 문간채

안채는 노부인이 거주하고 있고,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문구가 있어 안채로 들어가보지는 않았습니다.
달성 삼가헌 / 국가민속문화유산
삼가헌 고택은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를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는 파회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의 주택이다. 묘골마을은 사육산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1769년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이곳에 초가를 짓고 지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고 이름하였다. 삼가(三可)란 중용에 나오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벼술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음을 뜻한다,
1783년에 성수의 아들 광석이 이웃 마을에서 분가하였고, 1826년에는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1874년에는 광석의 손자인 규현이 원래 있던 파산서당을 약간 앞으로 옮기고 누마루를 달아 별당채인 하엽정을 현재의 모습으로 지었다.
삼가헌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영남 내륙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넓은 터에 안채와 사랑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별당채 그외 여러 부속채로 구성된 배치 형식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사랑채 좌측으로도 고방채 및 안채로 들어가는 협문이 있습니다.

좌측 토담벽으로 지은 일부만 보이는 건물이 곳간채 입니다.

사랑채를 둘러봅니다.
몸채는 전면 5칸, 측면 4칸이고 뒤쪽으로 2칸의 날개채가 있는 ㄴ자형 건물이다. 사랑대청에서 안채 쪽으로 꺾어져 돌출된 한 칸의 마루와 붙은 방은 작은사랑으로 쓰이는데, 책들을 보관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상청(喪聽)을 차리기도 한다. 대들보 밑에는 '삼가헌'이라는 당호가 적힌 현판이, 작은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는 '禮義廉恥孝悌忠信(예의염치효제충신)'이라고 쓰인 글이 걸려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禮義廉恥孝悌忠信(예의염치효제충신)

사진상 오른쪽 상부에 삼가헌 당호가 걸려있습니다.

사랑채를 둘러보고 하엽정으로 향합니다.

하엽정으로 향하는 협문

협문을 지나니 바로 연지가 있습니다.

하엽정(荷葉亭/연 하)
이 정자는 삼가헌의 별당입니다. 원래 파산서당(巴山書堂)으로 쓰던 ㅡ자형 건물을 1874년에 ㄱ자로 돌출된 누마루 한 칸을 늘여 붙여 지금의 모양과 같이 다시 지었습니다.
연당에 연꽃이 만발하는 여름날 방문을 활짝 열어젖이고 감상하는 연지의 풍광은 그야말로 절경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파산서당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荷葉亭
하엽은 수련과 식물인 연꽃의 잎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연지

하엽정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갑니다.
◐육신사

중간 도로상에 충절문(忠節門)이 있습니다.
절의 일주문과 비슷한 기능을 할 것입니다.

묘1리 마을 회관앞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순천박씨 충정공파 묘역 출토 태실 관련 유물
이 태함은 사육신의 한 분인 박팽년의 16세손 박면동의 묘터에서 나왔다.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 태전봉 정상에 뭍혀있던 이 태함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를 묻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주인은 알 수 없으나 태함의 형태로 보아 조선조 임금 성종~명종 시기의 것이라는 전문가의 추정이 있었다.
2010년 박면동의 4세손 박우순이 달성군과 협의하여 현 위치로 옮겼다.

박팽년 기념관

묘운

대단한 한옥형태의 카페입니다.

각도를 달리하여 한번 더.

카페 묘운 옆에 충효당이 있습니다.

충효당

충효당은 인조 22년(1644년) 충정공 박팽년의 7대손인 금산군수 박숭고 선생이 별당으로 건립한 후 충효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청년에게는 예와 음악, 궁도, 마술 등을 실습시키고, 부녀자에게는 법도를 가르쳤던 곳입니다. 본래 정면 5칸, 측면 2칸 이었으나 1995년에 후손 박우순 선생이 이곳으로 이축아혀 돌출된 누마루를 부설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현지안내문에서>

육신사쪽으로 갑니다

옹기종기 한옥마을
느린 우체통도 있습니다.







도곡재

도곡재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
도곡재는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묘골마을에 있는 고택이다. 이 건물은 정조 2년(1778)에 대사성을 지낸 서정공 박문현이 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선생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고 이름하였다.
박종우는 달성 10현 중 한 사람으로, 낙재 서사원에게 가르침을 받고 한강 정구 문하에 있었던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향하여 통곡하고, 평생 동안 지은 글을 모두 태워 버렸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를 숭정처사(崇禎處士)라 부르며 평생토록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도곡재는 원래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사랑채였으나, 후대에 재실로 사용하면서 왼쪽에 퇴칸1칸을 달아내고 대청을 넓혀 누(樓)처럼 꾸몄다. 안채. 사랭채. 대문채 등이 3개의 권역으로 분리되에 '튼ㅁ자' 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 남부지방 양반 가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현지 안내문에서>

조그만 연지 뒷편의 조그만 건물은 사당일까?

도곡재

도곡재 마루


도곡재 앞쪽으로 이런 소로가 있습니다.
도곡재를 둘러보았습니다.

보호수 수종 회화나무, 수령 154년 나무 둘레 100cm
현재 묘골에는 동.서로 약 30m거리를두고 두 그루 회화나무 고목이 있다. 한 그루는 육신사 외삼문 밖에 있으며, 다른 한 그루는 운경정사 내에 있다.


육신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홍살문

우츨 대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봅니다.


숭절당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이곳 홍살문엔 태극모양을 넣지 않았습니다.

우물터?

육신사
육신사는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충정공 박팽년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부터 나머지 분들의 음식도 장만하여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그 뒤 하빈사(河濱祠)를 지어 이들에게 제사지내다가, 1694년(숙종 20) '낙빈(洛濱/ 물이름 락(낙),물가 빈)'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6년(고종3)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이 철폐되자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유림들에 의해 그 자리에 사당을 세워 다시 사육신을 봉안해 왔다.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햐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하였으며, 2003년부터 2011년에 거쳐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을 복원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우측 태고정이 있습니다.

태고정

일사루(一是樓)
모든 것은 본시 하나이다 또는 옳은 것은 모직 하나뿐이다리는 철학적이고 냉엄한 삶의 기준을 담은 현판입니다 빈부, 귀천, 생사 등 세상의 이치가 결국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음을 꺄닫고 마음가짐을 다스리라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합니다.<대구신문>

태도정(太古亭 / 태고정)
아주 오랜 옛날(太古)의 선량하고 순박한 백성들의 마음처럼, 오직 올곧고 바른 것만을 좇으며 살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정자의 당호입니다.
<대구신문>


이 건물은 태고정의 부속건물?

절의문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육신사를 나섭니다.

육신사 절의문 앞쪽에 관광해설사의 집이 있습니다.
옆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합니다.



서산재

서산재(曙山齋 / 새벽 서) 입구



무슨집?

담너머로 살짝 엿봅니다.

마을 윗쪽에 잘 지은 한옥이 있어 올라가 봅니다.

이런!
정암 한의원입니다.

정암한의원

위 한의원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박두을 여사 생가앞으로 내려왔습니다.
외손쪽으로 재벌가안대.......
아직 미완입니다.

박두을 여사 생가
삼성그룹 창업자 故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1907~2000)여사는 사육신 중 한 분인 취금헌 박팽년의 후손으로 태어나 21세에 이병철 회장과 혼인하였다.
유교 집안에서 전통적 부덕을 익히며 성장하였고 일생 동안 바깥 활동을 삼가고 집안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특히 예의 범절에 밝고 근검절약을 생활 속에서 실철해 왔다.
구전에 의하면 17세에 여사의 관상을 본 한 스님이 손금을 한번 보자 하시더니 이상하다며 버선을 벗어 보라고 하시고 발 바닥까지 보고 나서 일국의 왕비가 아니면 거부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두을 여사 생가 복원 차원에서 본채와 헛간채는복원되었으나 사랑채, 창고, 대문채는 복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가(價?) 복원된 건물은 박두을 여사 친 오빠 박노성씨의 증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마을앞쪽으로 내려와 오늘 일정을 마칩니다.

강정보 녹색길
육신사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강정보까지 가는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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