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칠곡 호국평화 기념관, 꿀벌나라 테마공원, 향사 아트센타, 공예테마공원, 기산면 장석영선생생가, 사적비, 녹리고택, 말하는 은행나무

정헌의 티스토리 2026. 6. 19. 17:59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꿀벌나라생태공원. 향사 아트센타. 공예테마공원, 기산면 회당 장석영선생생가. 사적비. 녹리고택, 말하는 은행나무

 

칠곡보 생태공원 주변에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호국평화기념관, 꿀벌나라 테마공원, 칠곡 향사아트센타, 공예테마공원 등이 있습니다. 칠곡보 건너편으로는 관평루가 있습니다. 이곳 주변은 호국평화기념관 주차장에 주차 후 도보로 이곳 저곳을 다닐 수 있으며 뒷편 자고산 전망대까지도 갔다 오실수 있습니다. 주차료나 입장료 등은 없습니다.

기산면에 회당 장석영선생 생가가 있습니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 났을때 칠곡지구 국채보상운동회회장을 지냈으며 파리장서 작성에 관여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머지않은 곳 조그만 대흥사 앞쪽에 수령 약 800년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노석리 마애불상군은 기본정보를 가지지 않고 지나가면서 이정표만 보고 무턱대고 찾은 곳으로, 도보로 왕복 약 0.8km 산길을 갔다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입구만 확인하였습니다.

 

 

▷일정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꿀벌나라생태공원. 향사 아트센타. 공예테마공원 - 기산면 장석영선생 생가, 사적비, 녹리고택 - 말하는 은행나무

 

▷탐방후에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왔습니다.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주변

뒷편 보이는 건물은 꿀벌나라 테마공원입니다.

 

 

 

 

 

먼저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둘러봅니다.

 

 

 

 

 

1층 로비

 

 

 

 

 

3층까지 있던가?

 

 

 

 

 

먼저 3층 전망대에 올라 조망을 보고,  내려오면서 2층, 1층 전시관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전망대는 기대와는 달리 조그만 하며,  칠곡보와 건너편 관호산성이 건너다 보입니다.

 

 

 

 

 

2층엔 식당

 

 

 

 

 

북카페

 

 

 

 

 

전시관

 

 

 

 

 

 

6.25전쟁사

 

1945. 8. 15~1950. 6. 24 분단 그리고 준비된 전쟁, 광복. 남북 정권수립. 남침준비

1950. 6. 25~1950. 7. 31 기습남침과 지연전, 북한군 기습 남침, 유엔군 참전, 전연전

1950. 8.   1~1950. 9. 24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 낙동강 방어선. 북한군 8.9월 총 공세. 총반격

 

 

 

 

 

1950. 9. 15~1950.11.24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인천상륙작전, 38선 돌파. 북진

1950.11.25~1951. 6. 22 중공군의 개입과 철수, 중공군 개입, 전면 철수, 1.4후퇴

1951. 6.23~1953. 7. 27 기나긴 휴전협상과 정전협정 체결, 휴전협상. 고지쟁탤전. 정전

 

 

 

 

 

1950.7.18, 대전에서 열린 국군-유엔군 작전회의에서 3명의 지휘관들이 대한민국 마지막 방어선을 낙동강으로 결정하고 있다.

 

 

 

 

 

낙동강 방어선

낙동강 방어선은 대한민국의  90%를 북한군에게 뻬앗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수많은 호국용사들이 낙동강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최후의 방어선이다. 부산을 기지로 총반격을 위한 교두보라는 의미에서 '부산 교두보', 워커 미 제8군 사령관이 설정한 방어선이라는 의미에서 '워커 라인'이라고도 한다,

 

 

 

 

북한군의 전략

북한군은 '광복 5주년인 1950년 8월 15일까지 반드시 한반도를 공산화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공세를 펼쳤다.

 

 

 

 

 

국군과 유엔군의 전략

국군과 유엔군은 천연장애물인 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설정하여 북한군을 저지하고 총반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동족을 겨눈 총부리 북한군과 공산진영

6.25전쟁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김일성의 의지외 이를 후원한 스탈린의 결정, 그리고 마오쩌둥의 지원으로 시작된 처참한 비극이었다.

 

 

 

 

 

자유 수호를 위한 방패 국군과 자유진영

대한민국은  "1950년 봄, 북한이 전면적인 공세를 취할 것이다."리고 명확하게 예측하였지만 이를 대비하지 못했다.

개전 초기 북한군의 선두에 선 소련제 T-34 전차는 전차를 처음 보는 국군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6.25전쟁 칠곡의 55일 전투사(1950. 8. 1.~1950. 9. 24)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자유진영에 대한 공산진영의 위협을 낙동강에서 성공적으로 차단한 전투였다. 만약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거나 해외 망명정부의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군의 8월, 9월 공세를 저지한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직후 낙동강 방어선 전역에서 일제히 총반격을 개시하였다. 9월 23일 김일성이 북한군에게 총퇴각 명령을 내림으로써 전세는 역전되었고, 9. 24일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에 상륙한 아군과 신속히 연결하기 위해 낙동강을 건너 북한군을 추격하였다.

 

 

 

 

 

왜관 전투, 북한군의 도하를 저리하라!

8월 15일 광복절까지 부산 점령이 어렵다고 판단한 북한군은 목표를 대구점령으로 변경하고, 북한군 제3사단을 왜관에 투입하였다. 이에 맞선 미 제1기병사단은 금무봉과 자고산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금무봉 전투와 미군의 희생(1950. 8. 9 ~ 8. 10.)

금무봉(268고지)은 대구로 향하는 경부선 철도와 국도가 나란히 지나가는 중요한 보급로로서 낙동강의 감제고지 역할을 하였다.

8월 9일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 제3사단이 금무봉을 점령하였다. 이것은 북한군이 미 제1기병사단의 퇴로를 차단하고 남진할 경우 임시수도 대구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금무봉 탈환을 위해 미 제7기병연대가 공격에 나섰지만 실패하였다. 다음날 공군의 폭격과 야포가 집중적으로 금무봉을 강타한 뒤, 경전차소대와 보병부대가 협공하여 금무봉을 탈환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북한군의 매복기습과 포격에 의해 부산단장과 참모장 등 다수의 장교와 병사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한편 당시 미 제7기병연대는 국군 지원병을 편입하여 병력을 보충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카투사(KATUSA)의 시초가 되었다.

 

 

 

 

 

자고산 전투와 북한군의 학살 만행(1950. 8. 13~8. 17)

자고산 303고지는 왜관 일대와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경부선 철도 및 국도를 감시할 수 있는 곳으로서 북한군의 공격로를 통제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8월 13일 왜관 북쪽 수중가도로 강을 건넌 북한군 제3사단은 국군 제1사단이 있는 328고지와 미 제1기병사단 제5기병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자고산을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고산을 지키고 있던 미군 박격포소대는 접근하는 북한군을 국군의 증원병력으로 오인하여 포로가 되고 말았다. 8월 17일 미군은 강력한 공중폭격을 가한 뒤 병력을 투입하여 자고산을 탈환하였다. 그러나 포로가 되었던 박격포소대원 41명은 전화선이나 군화끈으로 양손을 뒤로 묶인 채 잔인하게 학살당한 뒤였다, 8월 20일 유엔군사령관은 북한군의 만행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전쟁기간 동안 북한군의 비인도적인 행위는 계속되었다.

 

 

 

 

 

또하나의 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귀하의 동지들이 수행한 전투는 혁혁한 것이였으며, 동시에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처절했던 공방전, 그리고 정전

전세를 역전시킨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장기화 되었다.

1950년 10월 38선을 돌파한 국군과 유엔군은 채 한달되 되지 않아 압록강변의 초산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10월 25일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세로 이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중 국경선까지 진격한 국군과 유엔군은 약 30만명에 달하는 중공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태세를 갖출 겨를도 없이 철수해야만 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국군과 유엔군은 재반격하여 공산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내고, 다시 38선을 회복하였다. 이후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1951년 7월부터 시작한 휴전협상은 무려 2년동안 이어지다가 1953년 7월27일에야 체결되었다.

 

 

 

 

 

추모의 공간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고귀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모든 분들의 고귀한 희생은 한 줄기 빛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호국 평화의 성지 칠곡

칠곡에서 일으키는 호국 평화의 불씨

대한민국은 6.25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 세게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성장하였다. 그것은 호국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칠곡에 뿌리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칠곡은 호국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평화통일을 위하여 오늘도 호국과 평화를 염원하는 불씨를 일으키고 있다. 이 염원의 불씨가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그날, 호국 평화의 성지 칠곡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호국평화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인근에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칠곡보 사계절 썰매장 등이 있고 자고산으로의 등산도 가능해 보입니다.

 

 

 

 

◐꿀벌나라 테마공원

 

꿀벌나라 테마공원은 호국기념관을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측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이곳에선 칠곡의 대표 특산물 벌꿀을 테마로 한 오감만족 생태체험관입니다.

 

 

 

 

 

 

 

 

 

 

 

 

여러 제품들

 

 

 

 

 

양봉의 역사

 

인류 최초로 꿀벌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로 기원전 3,000년 무렵 꿀벌이 그려진 벽화를 통해 이를 추측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도 꿀벌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양봉 또한 활발해졌다. 로마 제국이 서양을 지배하면서 양봉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으며, 양봉에 쓰이는 도구도 발전했다. 아시아에서도 중국 진나라 때 책인 <고사전>에  "157년부터  167년 무렵에 꿀벌을 길렀다."라고 쓰인 기록을 통해 아주 오래전무터 꿀벌을 길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꿀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근면과 성실, 청결과 협동, 민주적 의사결정, 배려와 희생.

 

 

 

 

 

뒷편 꿀뜨기 체험장 쪽으로 가봅니다.

 

 

 

 

 

꿀뜨기 체험장

 

 

 

 

 

꿀뜨기 체험장

 

 

 

◐향사 아트센터

 

이웃해 있는 칠곡향사아트센터를 둘러봅니다.

 

 

 

 

 

건물을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좌측편에 꿀벌나라생태공원이, 우측편에 공예테마공원이 가까이 있습니다.

이곳에도 입장료는 없습니다.

 

 

 

 

 

향사아트센터는 칠곡출신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병창 보유자였던 향사(香史) 박귀희 명창(1921~1993)의 호를 따서 만든 국악 공연장입니다.

 

 

 

 

 

건물이 깨끗하고 규모 또한 있습니다.

 

 

 

 

 

 

 

 

 

 

 

박귀희 명창

1921년 칠곡군 가산면 하판동(현 송악리)에서 태어난 박귀희 명창은 매일 학교가는 길목에 있던 국악전수소에서 귀동냥으로 판소리 단가를 배우며 이것이 명창의 길로 접어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명창 이화중선의 대동가극단에 입단하여 대구극장에서 데뷔무대를 가진 뒤  '소녀명창'으로서 전국을 누비며 공연을 펼쳤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여성창극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창단하였고, <옥중화>, <햇님과 달님> 등의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 창극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가야금을 연주하며 창을 하는 가야금병창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였던 박귀희 명창은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병창 보유자가 되었다.

한편 박귀희 명창은 체계적인 국악교육이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국안인들과 함께 '국악예술학교, 현 국립전통예술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후학 양성과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던 박귀희 명창은 생애 마지막 순간 지산이 가진 모든 재산을 조건 없이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고 1993년 7월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안내 팜플릿에서>

 

 

 

 

 

예술가, 교육가, 사업가 국악의 어머니 향사 박귀희 명창

 

 

 

 

 

향사 박귀희 명창의 국안인생 73년

창극계 최초의 여창남역(女唱男役)

열정을 다한 국악교육의 선구자.

 

 

 

 

 

향사 박귀희 명창의 지인들

박동실, 강태홍, 오태석, 유성준, 이화중선, 임방울, 박초월, 박녹주, 김소희, 김여란

 

 

 

 

 

 

 

 

 

 

240석 규모의 대공연장도 있습니다.

 

 

 

 

 

대관실로는 대연습실, 소연습실, 공연장 등이 있습니다.

 

 

 

 

 

전통문화와 예술을 수호하고 다양한 교육사업을 통해 국악 경연장으로서 향사 박귀희님의 소리를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공예테마공원

 

이곳은 공예테마공원으로 왔습니다.

 

 

 

 

 

앞쪽, 

 

 

 

 

 

예태미술관

 

 

 

 

 

2023년 개관한 예태미술관은  '예전의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통해 문화예술의 향유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2026. 6. 16(화)~22(월)

인연의 형상 가족 & 꿈이란 주제로 곽호철님의 작품이 곧 전시될 듯 합니다.

 

 

 

 

 

맞은편 저곳엔 무인 휴게소가 있습니다.

 

 

 

 

 

조용합니다.

 

 

 

 

 

이곳에서 무료로 차를 마시며 쉬쉴 수 있습니다.

 

 

 

 

 

앞쪽엔 4곳의 공방이 있습니다만, 현 공예체험은 이루어지는지? 아닌지? 애매합니다.

 

 

 

 

 

 

 

 

 

 

 

문은 열려있으나 비어있는 듯 합니다.

 

 

 

 

 

공예테마공원 앞에서 바라본 칠곡 보 생태공원입니다.

 

 

 

 

 

향사 아트센터 앞을 지나,

 

 

 

 

 

꿀벌나라 테마공원 앞으로 되돌아 주차장으로 나와  이곳 일정을 마칩니다.

 

 

 

 

 

◐ 노석리 마애불상군

 

노석리 마애불상군을 찾아왔습니다.

 

 

 

 

 

이곳에 차량을 주차후 약 400m정도 산중턱으로 올라야 합니다.

왕복 0.8km 정도면 30분 이상 소요될 것 같아 이만큼에서 들머리만 확인하고 되돌아 갑니다.

 

 

 

 

 

 

◐장석영선생 생가.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회당 장석영선생 생가에 왔습니다만 아무런 안내표지판 하나 없어 이 집이 맞나 싶습니다.

 

 

 

 

 

정원엔 다양한 화초를 가꾸고 있습니다.

후손인듯 싶은 아주머니가 혼자? 살고 계시는 듯 합니다.

집의 내력에는 무슨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녹리고택으로 가는 길에 잘 지어진 양옥건물이 있습니다.

장석영선생 생가와 녹리고택 사이에 있는 건물입니다. 이곳은 장씨 집안의 어느분 주택이라 합니다.

 

 

 

 

 

녹리고택과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입니다.

 

 

 

 

 

아헌정사(我軒精舍)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AI에게 물었더니 1811년(순조11)애 아헌(아헌) 장선원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나옵니다.

 

 

 

 

 

위 아헌서당 옆에 녹리서당이 있습니다.

 

녹리서당은 조선 후기 영남이 대학자인 四未軒(사미헌) 장복추(1815~1900)선생이 만년에 후학을 양성하며 강학하던 곳이라 합니다. 사미헌의 호를 따서 일명 '구욱재'라고도 불린다 합니다.

비교적 근대에 지어진, 그러니까 아주 유서깊은 서당은 아니라 합니다.

 

 

 

 

 

甪里書堂(녹리서당,  사람이름 록(녹))

 

 

 

 

 

녹리서당 뒷편에 녹리고택이 있습니다.

 

 

 

 

 

장세완 선생님

집만 둘러보고 간다니까  내집에 온 손님인데 꼭 올라와 차한잔 하고 가시라 합니다.

한참동안 선조(사미헌 장복추 선생)에 대한 이야기, 파리장서 초안 과정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유학자의 집안을 표시한 내용으로 보시면 될 듯 싶습니다.

 

 

 

 

 

 

 

 

 

 

 

 

 

 

 

 

 

녹리고택 우측 뒷편에 조그만 사당이 있습니다.

 

 

 

 

 

 

 

 

 

 

 

장석영선생 생가 앞에 녹동서당이 있습니다. 

녹동서당은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아 독립운동가인 회당 장석영 선생의 사당이라 합니다.

 

 

 

 

 

녹동서당

 

 

 

 

 

만서정(晩棲亭, 살 서, 깃들일 서)

 

 

 

 

 

 

 

 

 

 

 

 

 

 

 

 

 

 

 

 

 

 

 

 

 

 

 

 

 

 

 

 

 

 

 

 

 

 

 

 

 

회당 장선생 사적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경주 칠곡 출신으로 1919년 4월 2일 성주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회당 장석영(1851.10.24~19260 6 . 8.  1980년 독립장) 선생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장석영 선생은 1905년 을사5조약이 늑결되자 이승희, 곽종석 등 유림과 더불어 <請斬五賊疎 /청참오적소>를 국왕께 올렸으며, 1907년  이래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지방의 보상회장으로 추대되어 비밀결사가 있을 때마다 대표직을 맡아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1912년에는 해외 독립운동기지와 이주개척지의 한교(韓僑/높을 교) 동태를 기록한 요좌기행(遼左紀行)을 저술하여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1919년에는 곽종석, 김창숙 등과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기로 계획하고 청원문 초안의 작성을 담당하고 여기에 유림대표 137명중 1인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사건으로 체포되어 1919년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말하는 은행나무

 

은행나무 바로 아래에 조그만 주자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지 않겠지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때면 많은 차량을 감당하기에는 비좁아 보입니다.

 

 

 

 

 

일명 말하는 은행나무입니다.

 

 

 

 

 

크게 매력있어보이지는 않지만 수세는 상당합니다.

 

 

 

 

 

말하는 은행나무

 

성주에서 칠곡 퉁지미 마을로 시집온 새색시는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시부모님의 눈치로 답답한 마음이 밀려올 때마다 뒷산 어귀에 있는 큰 은행나무를 찾아가 떨어진 잎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은행나무가 어머니로 나타났고, 새색시 앞에 선 어머니는 애잔한 눈물을 훔치며 따스한 손길로 은행나무 두 잎을 쥐어 주었다. 하나는 갈라진, 다른 하나는 갈라지지 않은 은행나무잎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보름달이 뜨는 날 은행나무로 가서 떨어지는 잎을 잡으라 말하시곤 다시 은행나무로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새색시는 꿈속에서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은행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았고, 잎이 갈라져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새색시는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 출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말하는 은행나무>

 

 

 

 

 

 

 

 

 

 

 

 

 

 

 

 

 

 

 

 

 

 

 

 

 

 

 

 

 

바로 인근에 대흥사가 있습니다.

과거엔 제법 큰 사찰이었다 하나 지금은 조립식 건물을 부속사로 가진 외형상 조금은 초라한 사찰입니다.

 

 

 

 

 

은행잎 노랗게 물들철에 찾으면 더욱 좋겠다 싶습니다.

 

칠곡 호국평화기념관.꿀벌나라생태공원, 향사 아트센타, 공예테마공원,  기산면 회당 장석영선생생가, 사적비, 녹리고택, 말하는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