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화순 운주사
운주사는 전남 화순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26㎞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태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개천사, 서쪽에는 운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운주사의 창건과 천불천탑의 건립은 통일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하여 흔히 천불천탑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전해진 사료에는 아직까지 이 점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에(雲住寺在千佛千塔之左右山背石佛塔名一千又有石室二石佛像相異座)이란 기록이 보이고 있어 현존 석불석탑의 유래를 짐작할 수가 있다.
사찰경내의 많은 석불과 석탑은 그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중기인 12세기 정도로 평가되며 일시에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적제312호로 지정된 이곳은 1984년 이후 4차례 발굴과 석조불감 해체 복원, 원형다층석탑 보수, 일주문 신축, 보제각 신축을 했으며 97년에는 와불 진입로를 정비 하였다. 현재 사찰경내에는 석탑 21기, 석불 93구가 보존되어 있다.
◆ 9층석탑 : 운주사는 풍수지리상 배형국이라 하고 9층석탑은 돛대 역할을 한다고 전한다.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며 석탑 옆면의 꽃문양이 이색적입니다. (보물 제796호)
◆ 원형다층석탑 : 원형다층석탑은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둥근모습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6층이나 그 위로 몇 층이 더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연화탑, 떡탑 등의 별칭이 있다. (보물 제798호)
◆ 운주사 석조불감 : 원형다층석탑 남쪽 5m 지점에 위치한 이 불감은 팔작 지붕 형태로 그 안에 석불좌상 이체(二體)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있다. (보물 제 797호)
◆ 와불 : 도선국사가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서울이 된다고 전해온다.
< 이상 화순군청 문화관광과 운주사 편에서 발췌>
▷ 가는 길
화순 - 능주 -평리사거리 - 도암삼거리 - 운주사 또는 진주 - 보성 - 춘양 - 운주사
▷ 여행코스 (2010. 11. 6)
나주 덕룡산 불회사와는 약 5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덕룡산 산행 후 오가는 길목에 있어 시간을 내어 들렀다.
일주문을 지나 가운데 도로를 따라 대체로 좌측 불탑, 우측 불상을 둘러보며 진행하면 석조불감과 원형 다층석탑을 보실 수 있다. 이어 대웅전과 대웅전 우측 뒤편의 언덕위에 있는 바위까지 좌측으로 오르면서 좌우로 석불과 탑들을 둘러 보고 우측으로 내려오면 다시 대웅전이다. 대웅전 앞에서 와불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오른 후 칠성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 경내 대부분을 둘러 볼수 있다.
▷ 여행후에
운주사 매표소.
입장료는 어른 1인 2,500원이다.
영구(귀)산 운주사 일주문을 지난다.
주변의 산들이 숲으로 둘러쌓여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인데......
가운데 주 도로를 따라 좌우로 석탑과 석불을 보아가며 진행한다.
우측 언덕 위로 이런 탑도 있다.
9층석탑 ?
중심부로 여러기의 비슷한 탑들이 있다.
운주사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고들 한다. 나도 그렇다. 마치 부모 형제를 찾아뵌 것 같다. 일주문을 지나자 만자 오른쪽 석벽에 비스듬이 앉아있거나 서 있는 석불들을 보면 마치 오랫동안 집 떠난 나를 기다려준 다정한 식구들 같다고 한다. "왜 이제 오느냐, 그동안 아프지 않았느냐" 하고 저마다 말을 걸어 오는 것 같다. 사 가지고 간 만두나 찐빵을 내어놓으면 당장이라도 둘러앉아 다들 맛있게 웃으면서 먹을 듯 하다.
그런데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못생겨서 오히려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들은 대부분 코기 길고 이마 쪽으로 눈이 올라붙은 비대칭 얼굴인데 그나마도 그의 다 뭉개졌다. 오랜 세월 만신창이가 된 탓인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춘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평소 내가 참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난다. 그래서 그들을 볼 때마다 부처님을 뵙는다기 보다 골목에서 마주친 이웃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정이간다.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의 스승 운주사 석불들 중에서>
어떤 부처님들은 너무 위압적이어서 공연히 주눅들 때가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경주 석굴암 대불이 당대의 영웅이나 권력자들을 위한 석불이라면 이들은 민초들을 위한 석불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는 그런 영웅적 존재가 아니라 운주사 석불같은 평범한 존재다.
그들은 항상 겸손의 자세를가르쳐 준다. 삶에서 어떠한 자세가 중요한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가슴께로 다소곳이 올려놓은 그들의 손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손이다. 부처는 인간으로 부터 기도의 대상이 되는 존재인데 그들은 오히려 인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인간사회의 사랑과 평화를 염원하는, 이 얼마나 이타적인 삶의 겸손한 자세인가.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의 스승 운주사 석불들 중에서>
운주사 석불중에서 눈을 뜨고 있는 이를 찾긴 힘들다. 다들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고 양손을 무릎 아래로 손바닥이 보이게 내려놓고 있는 자세는 무엇하나 소유하지 않고자 하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있는 자세다.
눈을 감으면 비로소 남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하더라도 남을 위한 존재인 내가 보인다. 그동안 나는 나를 위해 항상 눈을 떠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는 다 나를 위한 존재였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이기적인 삶인가. 지난 여름에 매미가 너무 시끄럽게 운다고도 싫어하지 않았던가. 매미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인데 나는 매미만큼이라도 열심히 산 적이 있었던가.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의 스승 운주사 석불들 중에서 발췌>
보물 798호로 지정된 원형다층석탑.
이 탑 앞쪽에 운주사 석조불감이 있지만 보수중으로 천막에 가려 볼 수 없다.
대웅전.
대웅전 우측 뒷편으로 오른다.
거대한 바위아래 석불이 있다.
마애불.
가운데 코를 중심으로 턱, 눈 등 윤곽이 희미하다.
공사바위?
대웅전 뒷편 언덕 위의 바위로 운주사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인다.
위 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운주사 대웅전 앞으로 되돌아 내려왔다.
운주사 대웅전 앞에서 와불방향으로 오르는 도중의 탑이다.
비슷한 탑이 2기 나란히 있다.
위 탑이 위치한 거대한 처마바위 아래로 석불군이 있다.
정호승 시인은 눈을 감고 영원을 바라보는 이 부처님을 뵙고 나서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마모될때로 마모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영원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버린 듯 고요히 앉아있는 석불의 모습에서 울컥 울음이 솟았다고 한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무릎위에 올려놓고 고통의 절정에서도 고요와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석불의 초탈한 모습에서 아마 내가 지향해야할 살의 자세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했다.
손은 빈손으로, 눈을 감고 영원을 향해 그렇게 살아가거라 !
와불로 오르는 도중의 석불.
언덕위에 와불이 있다.
............
두 와불님은 몸 전체 길이가 10여미터가 넘고 암반 전체와 한 몸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와불님이 일어나시려 한다면 산등성이 암반 전체와 함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형국이었다. 와불님이 암반에서 따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와불님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허망한 바람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와불님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해온 까닭은 무었일까.
그것은 '허망한 소원에 매달리지 말고 현실적인 삶에 더 성실하라. 미래에 대한 꿈과 이상은 지니되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라. 발은 지상에 두고 마음은 밤하늘의 별을 향하라'는 뜻은 아닐까.
또 아무리 바닥에 넘어지고 나딩구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닐까. 넘어져서 누워 있을 때 타인이 일으켜 세워 주길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바닥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가르침....
나는 와불님이 부부불이라는 사실 앞에, 천 년 동안이나 비가 오면 비가 맞지 않도록, 눈이 오면 눈이 맞지 않도록 서로 감싸주셨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랑의 진정성, 그 한없는 깊이와 넓이의 영속성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를 진정 사랑해야 한다면 이 부부 와불님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와불님 곁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와불님은 몸피가 너무 커서 발치쪽에서는 그 모습을 제대로 불 수가 없었다. 다행이 머리 쪽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전신이 다 보였다. 와불님은 무었보다도 단아한 눈매가 감동적이었다. 마치 불효한 나를 나무라지 않고 인자하게 잔잔히 웃으시기만 한는 내 노모의 눈매 같아서 더 다정해 보였다.
<정호승 시인의 와불 일어나다에서 >
와불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주변의 산들은 과거에 산불이 났었는지 황량하다.
주로 동백나무를 식재하였는데 토질이 나빠 어느세월에 자랄런지...........
와불이 위치한 언덕위에서 본 낙조.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이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칠성판을 지나.
아래로 내려서면 불상군이 있다.
우에서 좌로.
좌에서 우로.
오랫만에 다시와 본 운주사이다.
이로서 오늘 일정을 마친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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